다시 권정생을, 평화를 생각한다
권정생 선생님 돌아가신 지 6주기가 다가온다. 몸에 새겨진 고통들을 그만 편히 부릴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 이러저러한 꼴 안 보고 돌아가시길 잘 했다는 탄식, 언제나 빛나던 별 하나가 가뭇없이 지워져버린 아쉬움, 내가 또 우리가 그 빈자리를 채워갈 수 있을까라는 머뭇거림, 그 모든 출렁거림이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데 벌써 6년이 지났다.
세월은 참 속절없다. 분명 그 세월 속에서도 시지푸스가 바위를 밀어올리듯 힘겹게 밀어올린 노력들이 마땅히 존재할 것임에도, 어찌 이 6년 동안은 미꾸라지 한 마리, 아니 두 마리, 아니 한 줌도 안 되는 수 천 마리 미꾸라지가 분탕질한 것만 또렷하게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또 그럴 터이고. 아마 선생님은 10주기가 되실 때까지 편안히 눈 못 감으실 게다. 그러니 우린들 편한 잠자기는 다 틀린 일이다. 뻑뻑한 눈을 비비고서라도 뜬눈으로 세상과 어린이를 지켜볼 밖에.
선생님 문학을 한 마디로 규정할 수야 있으랴만 그래도 그래야 한다면 단연코 그 한 마디는 ‘평화’다. <슬픈 나막신>이, <전쟁 3부작>이,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들이 그러하다. 다른 모든 작품들 역시 평화의 변주이거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되살린다는 것은 평화를 지금, 여기의 모든 이 땅과 이 땅의 사람들과 사람들의 마음 속에 빼곡하게 채워넣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여기는 선생님의 바람과 너무 멀리, 갈수록 멀리 동떨어져가고 있다.
북한은 유례 없는 궁핍 속에서 미숙한 권력을 이어가기 위해 전쟁을 볼모로 트집을 일삼고, 남한은 한 치 양보 없이 누가 이기나 보자는 듯이 치킨 게임에 열을 올린다. 휴전 협정이 평화 협정으로 고양되어야 마땅한데도, 현실의 근본적인 모순을 덮어버리고자 분단 모순을 극대화하는 전략적인 외고집을 반복한다. 그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이 땅의 민중들에게, 어린이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선생님이 그렇게 꿈꾸던 평화는 이렇게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이럴 때, 현실 속에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무릇 문학사는 어린이를 되돌아보고는 했다. 방정환이, 이원수가, 이오덕이 그러했다. 어린이야말로 10년 후, 20년 후의 분명한 구체적 미래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문학 둘레에서 숨 쉬고 울고 웃는 우리네 작가나 평론가, 독자 들 역시 어쩔 수 없이 어린이의 삶과 마음을 앞서 추스를 도리밖에 없다. 모든 문학이 희망의 문학이기에 평화라는 희망을 어린이들의 의식 도처에 깊이 아로새기는 수밖에 없다.
인권이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것으로 말미암아 불이익을 받을 때 망실된다.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장애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피부색이 다르기 때문에,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늙었기 때문에, 어리기 때문에, 가난하기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면 그 모든 것이 반인권의 문제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평화란 내 일상을 내 뜻이 아닌 다른 그 무엇 때문에 억압받을 때 일그러진다. 내가 책을 읽고 싶을 때, 사과나무를 심고 싶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꽃 피는 강변을 걷고 싶을 때, 흙을 일구고 씨앗을 심고 새싹이 움트는 것에 환호작약하고 싶을 때, 그 일들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 또한 평화를 짓밟는 일일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바람을 이어갈 수 있도록 문학은 북을 돋고 손을 내밀 일이다. 그것이 곧 어린이문학이 뻗어나가야 할 희망의 모습이다. 시절이 수상하고 엄혹할수록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문학의 품으로 건사할 도리밖에 없다. 없는 것이다.
새삼 권정생 선생님이 그립다. 그의 새로운 작품도 그립고, 그의 묵은 작품도 다시 읽고 싶다. 그리고 혁명가로 산 선생의 기일과 맞닿아 있는 5월 광주의 혁명도 그립다. 그나마 그리움은 완성태가 아닌 결여태이기에 그래도 그리움 속에는 희망의 씨앗이 깃들어 있다. 그리움이 소진한다면, 희망도 소진할 것이기에.
뜬금없는 이야기이지만 이 반동의 시대에 잡지 일을 맡은 2년의 세월도 흘러갔다.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저어함으로 시작했는데, 큰 흠결 없이 끝나 다행이다. 그래도 편집장과 운영위원들, 독자들, 그리고 무엇보다 일꾼들이었던 편집간사들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허방들이 있었을까 아찔하다. 아무쪼록 마무리가 순조롭게 끝나고 고된 2년의 경험이 오롯이 체화되어 이들 모두의 마음 속에 좋은 글, 좋은 삶으로 새롭게 개화하시기를 바란다. 더불어 새롭게 운영을 맡은 이들 또한 고단한 활동이 성장의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모두들 평화 속에서 건강하시기를 …….
김상욱 (본지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