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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관유로 아론의 머리에 부어 거룩케 하고
(레 8:12)
모세가 관유와 단 위의 피를 취하여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에 뿌려서 아론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을 거룩하게 하고
(레 8:30).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 4:18~19)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 10:38)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 2:27)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 133:1~3)
기름부음은 하나님 앞에 거룩히 분별함이다.
레위기
8장은 아론의 기름부음 받음을 말하고
9장은 그의 제사드림을 말한다.
다윗이 아직 왕 되기 전에 사무엘이 그를 위하여 기름을 발랐다.
그 다음에 비로소 다윗이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했다(삼상 16:12~13).
이것은 직임이 기름부음 다음에 있음을 분명히 우리에게 보여준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직임을 가지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 앞에서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
주 예수님도 이러하셨다. 그분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에서 볼 때
하나님의 손에서 유용히 쓰이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하나님 앞에서 기르부음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기름부음 받지 못한 사람은 봉사도, 사역도 할 수 없다.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에서 외면적인 일로 변하기가 매우 쉽다.
우리는 아주 쉽게 기름부음을 능력과 연결시킨다.
하나님은 나사렛 사람 예수를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으셨기 때문에 성령과 능력을 함께 두는 것은 옳은 일이다.
성령이 능력과 함께 하고, 또한 성령이 하나님의 능력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성령이 능력이 되는 것은 기름부음의 결과이다.
사람의 몸에서 성령이 능력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당초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셨을 때 하나님의 마음 속의 모든 생각은 이러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 방언을 말하기 위함이거나 기적을 나타내거나 기사를 행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거룩히 분별되기 위함임을 알아야 한다.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말한 곳이 많지만 기름부음을 능력과 하나로 연결시킨 곳은 볼 수 없다.
구약에서 기름부음의 유일한 의미는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표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 권의 책이 내게 속할 때 그 책에 도장을 찍는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그분에게 속한 자임을 말씀하실 때 관유로 그 위에 붓는다.
기름부음은 분별을 위한 것이며 거룩케 되기 위한 것이다.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여호와께 분별되어 거룩케 됨이나 여호와께 성결을 의미한다.
주님에 대한 이러한 완전한 드림이 직임의 첫째 조건이다.
어느 누구도 여호와께 거룩히 분별되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직임을 가질 수 없다.
오직 여호와께 거룩히 분별된 사람만이 직임을 갖는다.
언제든지 헌신이 중단될 때 봉사도 중단된다.
언제든지 거룩히 분별됨이 변할 때 직임도 변한다.
성령이 주 예수의 몸에 임했을 때, 그는 먼저 사역하러 간 것이 아니다.
먼저 하나님의 승인 - 하나님이 하신 말씀인『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 이 있었다(마 3:17).
그러므로 기름부음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표명한다.
하나님이 『여기 있는 이 사람은 나의 것이요, 내가 보낸 자요, 내가 쓰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신 후에야 당신에게는 자연히 능력이 있게 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눈 먼 자에게 보게 함을, 누린 자를 자유케 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열납하시는 희년(禧年)이 나온다.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기름부음은 능력이다.
하나님이 나사렛 사람 예수를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으신 후에,
주 예수님은 사방으로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그분에게 부으신 기름은 무엇인가? 이것은 성령이자 능력이다.
성령이 우리 몸에서 기름부음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능력이다. 이것은 매우 놀랍고도 귀한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성력의 능력이고 당신 자신에게 있는 것은 기름부음이다.
만약 당신에게 기름부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당신을 접촉할 때 능력을 만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히 분별될 때
자연히 우리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능력이 있게 된다.
능력은 첫째 문제가 아니라 두 번째 문제이다.
하나님 앞에 거룩히 분별되는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히 다른 사람에게 능력이 있게 된다.
언제든지 헌신(거룩히 분별됨)에 문제가 생길 때 능력에도 문제가 생기고 봉사에도 문제가 생긴다.
기름부음이 있을 때에는 자연히 능력이 있게 된다.
우리는 다윗에게서 이것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아론에게서도 볼 수 있다.
자신에게 있어서 기름부음은 가르침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일어나 하나님을 위하여
말씀을 전할 때 당신에게 기름부음이 있다는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한 때 당신은 억지로 말하거나 힘들여 말하지 않음을 느끼고 당신 위에 기름부음이 있음을 안다.
당신이 한 말은 일반적이고 간단한 말이지만 말할수록 힘이 있고 당신에게 기름부음이 있음을 느낄 것이다.
당신이 말씀을 전할 때 기름부음을 느낀다면 다른 사람은 능력을 느끼게 된다.
어떤 때에는 당신이 말을 해도 바람빠진 타이어처럼 조금도 흥미가 없고 남도 능력을 느끼지 못한다.
차이는 기름부음이 있으면 능력이 있고, 기름부음이 없으면 능력이 없는 데에 있다.
기름부음은 우리 자신에게는 적셔짐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능력이다.
요한일서 2장 27절은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한 내용은 매우 범위가 넓다.
기름부음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친다. 기름부음의 가르침과 사람의 가르침은 완전히 다르다.
사람의 가르침은 많은 이유와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기름부음의 가르침은 그렇지 않다.
기름부음은 당신에게 수다한 일과 말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계심과 계시지 않음으로 가르치신다.
이것이 기름부음의 한 가지 특징이다.
만약 오늘 당신이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주님께서 하라시는 일이라면
당신이 움직일 때 기름부음이 있고 옳다고 느껴진다.
만약 당신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다면 바람빠진 타이어같고, 틀렸음을 안다.
기름부음의 가르침은 교리나 이유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두뇌는 하나님의 생각과 표준과는 너무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다.
만약 기름부음의 가르침이 교리로나 이유로 된 것이라면 사람의 두뇌를 바꿔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근거는
이치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에 있지 않고 기름부음이 있는가 없는가에 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하나님을 좇는 일에서 이유를 말하지 않고
성령이 적셔지는 느낌을 주는가 주지 않는가를 보는 공과(工課)를 배워야 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생각해 보면 지극히 타당성이 있지만 가서 행해보면
자기 혼자 할 뿐 주님의 함께하심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이 곧 기름부음이 없는 것이고, 당신이 틀렸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예(例)로 든다면,
만약 당신에게 기름부음이 없다면 말할수록 힘이 빠지고 속이 공허하며 고갈을 느끼고 바람빠진 타이어같음을 느낄 것이다.
반대로 어떤 경우에는
당신 속에 부담이 있을 때 당신이 말을 할 수록 속에서 아멘이 되고 가뿐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함임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속에 기름부음이 없음을 느끼면서 움직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한 사람도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혼자 활동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당신 속에 기름부음이 없을 때에는 밖으로 무엇을 할수록 속은 더욱 차갑고, 다른 사람도 무엇을 만지지 못한다.
당신이 스스로 기름부음이 있다고 느낄 때에는 다른 사람도 당신에게서 능력이 나옴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 기름부음이 우리에게는 가르침이자 지식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능력이다.
많은 형제들이 생명을 추구하는 것처럼 능력을 추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다른 사람에게 역사함(고후 4:12)을 말해준다.
자신에게서 생명을 찾는 사람은 도리어 생명을 얻지 못한다.
사망이 우리 안에서 역사할 때 생명이 다른 사람 안에서 역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지 말고 우리 자신에게 기름부음이 있는가를 자문(自問)해야 한다.
기름부음이 우리 위에 있다면 능력도 다른 사람 위에 있다. 만약 당신이 능력을 구한다면 아마 능력은 오지 않을 것이다.
능력이 있더라도 겉모양만 있는 신기한 느낌일 뿐 하나님의 말씀하신 그 영적 능력은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자녀 중에 느껴지는 능력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 !
내 자신에게 느껴지는 능력이나 확신있는 능력을 추구하고, 그러한 능력을 가지면남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능력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기름부음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기름부음의 가르침에 따라 주 안에 거했는지를 주의해야 한다.
기름부음을 따라 하지 않는 일에서는 다른 사람이 생명을 만지지 못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이 듣기 원하는 말이나 흥미로운 말을 할 지라도
당신 속에 기름부음이 없다면 즉시 영적 실제와 생명이 없음을 느낀다.
하나님 앞에서 당신에게 기름부음이 있을 때, 자연히 다른 사람은 도움을 받고 생명과 주님 자신을 만지게 된다.
또 한가지, 우리는 기름부음이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기름부음은 나 개인의 체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몸을 위한 것이다.
기름은 아론의 머리에 부어져 수염에 흘러 그의 옷깃까지 흘러 내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로소 선하고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기름부음의 가르침을 추구하고 그 가르침의 인도를 받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에 거하는 기름부음의 가르침을 추구하고 이 가르침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많은 일에 있어서 주님의 안배하심과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에 기름부음에 위반하여 일을 해서는 안된다.
하나의 예(例)를 들겠다.
본래 어떤 형제가 집회를 인도해야 했으나
속이 아주 공허하게 느껴지고 할 말이 없어 다른 형제에게 전하게 했다.
그 형제는 길을 걷고 있을 때 간증을 해야겠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는 그의 성격상 간증하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속에 있는 기름부음이 간증하라고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결국에는 간증을 했다.
그날 저녁에, 말씀을 몇 번 들었으나 깨닫지 못하고 흥미가 없어
오랫동안 집회에 오지 않던 두 친구가 누군가에 의해 집회에 끌려왔다.
그 집회에서 하나님께 그 두 사람을 위하여 합당한 말씀을 준비하기를 기도하는 형제도 있었다.
결국 그 형제의 간증은 바로 이 두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 속에서 인도할 뿐 아니라, 집회에서도 역사하는 기름부음이다.
우리는 결코 우리 몸에 있는 기름부음을 떠나 하나님을 섬길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기름부음이 있는만큼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 뿐이다. 이 기름부음을 넘어서는 안된다.
넘어서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와 손해를 입히게 된다. 우리는 주님이 측량하신 한계에서만 할 수 있다.
우리가 참으로 기름부음을 알 때
비로서 말씀의 봉사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우리에게 기름부음이 있을 때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이 주의하는 바를 주의하게 하시고,
그분이 주신 말씀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봉사하게 하신다.
* * *
형제들이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기 바란다.
모든 봉사는 거룩히 분별되는 데 달려 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기름부음은 당신이 그분께 속한 자임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당신에게 기름부음이 있다면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 나는 주님의 사람이다 !』라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 기름부음이 있다면 어떤 일을 한 것이 주께서 하라고 한 일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당신이 기름부음을 따라 행할 때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능력이 된다.
이 능력은 우리의 머리 속으로 생각하는 그런 능력이 아니요, 강단 위에서 큰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요
기적과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도 아니다.
이 능력은 당신이 봉사를 할 때,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을 만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능력은 다름 아닌 기름부음이다.
우리가 참으로 기름부음의 가르침을 따라 주 안에 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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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형제님 ! 늘 당신의 진솔한 마음 너무나 기뻐요
위치나 채면 거짓 등 주님이 원하시는 것 아니기에
중심을 보시는 주께서 당신을 너무나 사랑 하셔요 . 주여 감사합니다 .....
아멘~~!
아멘~~!
레위 지파의 남자일지라도 30세가 되어야 기름부음을 받고
성소의 제사장 직분을 수행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교회의 사역과 인도 직분의 봉사를 의미하며
가르치는 사역과 인도직분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하나님은 요구하심을 알게합니다
예수께서 30세에 광야의 시험을 이기고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가르치기를 시작했다고 성경이 기록함과
장성한 분량의 장로의 사역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교회들은 어린아이 분량에서 젖먹이는 사역이 오늘 교회의 현실입니다...
아멘.저는 많은 경우 니 형제의 이글을 ..성령의 기름부음에 대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내어 놓기 싫은 간증임에도 성령의 감동으로 내어 놓았을때에 그곳에 주님이 관심하시는 영혼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내가 수치스럽더라도 주께서 원하시면 기꺼히 순종함이 옳다는 경험들...
내 안에 주님의 생명을 만지게 하고 흐르게 하시는 주님을 찬송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