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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여행4 - 혼간지와 쇼세이엔, 도지와 니조성에 긴카쿠지와 철학의 길을 보다!
2019년 4월 7일 나라에서 교토 에 도착해 1박하고 다음날 시내를 보는데 호텔을 나와 걸어서 찾은
히가시 혼간지 (東本願寺) 는 진종 오오타니파 본산 의 통칭으로 정식 명칭은‘真宗本廟( 진종본묘 )’
인데.... '니시 혼간지' 의 동쪽에 위치하므로 '히가시 혼간지' 라고 부른다고 하며 그 외에도 오히가시
(お東) 라 불리며 문의수장(門首) 은 1996년 부터 이어온 오타니 초오켄 (大谷暢顯, 淨如) 이라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1600년에 동서 20만 대군이 격돌한 세키가하라 전투 에서
서군을 격파해 일본의 실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는 에도 막부도 열기
전에..... 1602년에 거대한 사찰인‘혼간지’(本願寺) 의 힘을 약화 시키기 위해
혼간지 절을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 와 ‘니시혼간지’(西本願寺) 2개로 분리 시킵니다.
원래 절인 니시 혼간지 는 1272년 히가시야마산(東山) 에 창건된 것을 159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라고 하는데....... 본파(本波) 라고 불리며 일본
불교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신란(親鸞) 을 모신 사당으로 경내에는 국보와
중요 문화재가 많고 또한 1581년에 지은 일본 최고의 노(能) 무대 가 있습니다.
1602년에 혼간지에서 갈라져 나온 히가시 혼간지 (東本願寺) 는 1895년에 재건했다고 하는데,
크기는 나라(奈良) 동대사의 다이부쓰덴 (大佛殿 대불전) 다음으로 일본 2위의 목조 건물인
'고에이도(御影堂)' 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혼간지를 나와 10분쯤 걸어 지천회유식 일본 전통
정원인 쇼세이엔 步成園 (보성원)에 가는데 사철 좋지만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 이 멋지다고 합니다.
쇼세이엔 은 히가시 혼간지의 별채 정원 이니 혼간지(本願寺) 센뇨 宣如(선의) 대사는 1653년에
정원으로 만들어 별채 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쇼세이엔 步成園 (보성원) 은 지금도 가로
세로 200미터 로 엄청 큰 정원이지만 과거에는 카모가와 강 鴨川 (압천) 에 닿을 정도로
어마어마 하게 넓은 정원 이었다고 하는데........ 새삼스레 다시 권력 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본 정원 은 전통적 선 사상 에 입각해 "명상" 을 하기 위한 곳이라니 중국의 전통 정원 양식과는
다른데 가나자와의 겐로쿠엔 이나 오카야마의 고라쿠엔등 회유식 정원 에는 다실 이 산재되어
있기는 하나 숫자와 규모에서 중국에는 못미치는데..... 정원내의 건물에서 "차경된 바깥 경관"
을 감상할 수 있도록건물의 동향 혹은 남향에 문이나 창문 을 두는 방식을 많이 이용한다고 합니다.
일본은 기하학 형태로 전정된 수목 이나 잘 다듬어진 잔디 에 긴카쿠지 (銀閣寺 은각사) 에서 보듯
이끼 종류를 많이 사용하는데 좁은 정원에서 수목의 크기를 정원에 맞추기 위함이라나요?
또 일본은 연못, 폭포, 분천 등의 다양한 수경기법 을 도입하는데 연못이나 폭포의 형태도
자연스러운 곡선 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며 일본 정원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수경기법은
물을 상징화시키니........ 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수경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고산수기법 입니다.
가장 대표적인게 료안지 정원 에서는 15개의 암석과 왕모래로 바다속의 섬 을
상징화하고 있으며, 교토 은각사 나 야마구치시의 조에이지 정원 도
모두 그러한데..... 일본의 암석 활용은 암석의 재질, 크기 및 비례등을
고려하여 암석간에 시각적 균형 을 이루도록 암석을 배치하는 기법을 씁니다.
또 정결한 모래를 나무 밑동이나 바위의 가장자리 까지 빈틈없이 깐후 갈퀴로 긁는데
직선, 유선, 타원과 동심원 등이 나타나면서 의도된 형상이 모래 위에
표현 되는지라...... 맑고 정숙하여 흐트러짐이 없으니 바라보는 사람들도
자세를 흐트러지게 할수 없으니 교토 료안지나 오사카 사천왕사 마당이 그러합니다!
두 나라에 비해 우리 한국 의 전통적인 정원은 신선, 유교, 도가, 풍수 등 여러
사상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 인공적인 연못과 함께 세운
"누와 정자" 가 특징으로 사대부 선비들의 문화공간 으로 자연 경관이
수려한 곳에 누와 정 을 세워 주변 풍광을 감상하면서 풍류 를 즐겼다고 봅니다.
한국 정원의 특징으로 또 다른 형태인 화계 를 들수 있는데 계단 형태의 화단 으로 풍수
사상의 영향 을 받아 배산임수 형태의 집 을 지었던 선조들은.... 집 후면의 언덕을
계단으로 하여 화단 을 조성하고 화초나 관목 소교목 등을 심어 후원 을 꾸몄습니다.
연못 의 형태가 중국이나 일본은 자연스러운 곡선 을 띠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는 직선형 방지 로 되어 있으며 원형의 섬 이 조성되어 음양오행의 원리 를 상징화 시킵니다.
우리나라 암석 활용은 암석을 장식적 요소로 활용하여 형태가 특이한 하나의
암석 즉, 괴석 을 화분에 꽃을 심듯 석분, 석함, 혹은 석대에 심어서
배치하는 방법을 씁니다. 신라 는 서라벌에 별원 을 호사스럽게 조성
하였으니... 연못가에 지은건물에 임해전 (臨海殿) 이란 멋진 이름을 달았습니다.
정원의 양식 은 지역의 자연환경, 종교,문화 등 다양한 요소가 반영되어 서로 다른데
프랑스의 평면 기하학식 정원 은..... 프랑스 라는 나라의 지형이 비교적
평평해 수면이나 파르테르 와 같은 평면적 요소를 주로 사용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후원이나 일본의 축경식 정원 등은 산이 많은 자연 환경 을 반영하고
상직적 심상의 세계 를 표현했듯 정원의 양식은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고 하겠습니다.
교토 미나미구(南区) 에 도지 とうじ 東寺(동사) 는 헤이안 (平安 평안) 시대에 호국(護國) 사찰로
건립되었으며 일본 진언종(真言教) 의 근본 도량 이니 헤이안쿄(平安京, 교토) 로 천도한
2년 후인 796년에 건립 되었다고 하니, 헤이안쿄(교토)의 정문에 해당하는 라쇼몽
(羅城門 라쇼문) 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지어진 두 사찰 중에 동쪽에 위치하여 도지
(東寺 동사) 로 불리게 되었다는데 "서쪽의 절" 인 사이지(西寺) 와 한 쌍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823년 사가 일왕(천황) 이 진언종의 조종(宗祖) 인 구카이(空海, 홍법대사 弘法大師)
에게 땅을 하사함으로써 일본 진언종의 근본 도량 이 되었으며 헤이안시대
후기에는 사세 (寺勢) 가 쇠락하였으나.... 가마쿠라 시대 에 홍법대사를
숭배하는 신앙이 민간에 널리 퍼지면서 숭배의 중심 사찰 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절의 중심 전당은 금당(金堂) 으로 병을 고친다는 약사여래(薬師如来) 가 있으며 좌우에
협시보살 과 함께 있는 약사여래상은 화재로 소실후 160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상의 높이만 2.88미터에 대좌와 광배까지 포함하면 10미터인데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높이가 55미터인 5층탑(五重塔) 은 일본에서 가장 높은 목탑 으로 826년 홍법 대사
구카이가 착공 해서는 사후인 9세기 말에 완공되었다는데 이것 역시 화재로
소실된 후 1644년에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 의 지시로 재건된 것이라는데
탑은 교토의 상징 이 되었으니 탑에 들어가는 것은 일년중 며칠만 허용된다고 합니다.
어경당(御影堂) 은 홍법대사가 생전에 거처로 사용하던 구역에 건립된 주택풍의 불당
으로 한쪽에 홍법대사 상 이 안치되어 있으며, 홍법대사가 죽은 매월 21일 이
되면 시민이 참여하는 추모행사 가 진행된다는데..... 역시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도지 (東寺 동사)에는 옛 불상들이 많고 정원과 연못이 있으며 절에는 또한 엄격한 사립
대학이었던 라쿠난 이 있어 상류층 학생들이 교육 받았다는데 도지 (東寺 동사)
의 역사적, 종교적 중요성을 인식해 유네스코는 몇몇 교토부의 다른 국보들과
함께 도지를 고도 교토의 문화재의 일부로써 유네스코 세계유산 으로 지정 했습니다.
매달 21일에 "벼룩시장" 이 도지(東寺) 주변에서 열리는데 3월 21일에 사망한
홍법대사를 추앙 하는 의미에서 주로 고보산 으로 불리며 다양한
골동품과 예술품, 의복, 도자기, 식품 등이 전시되는 전형적인 벼룩시장 입니다.
일년 중에 가장 마지막에 열리는 12월 21일의 벼룩시장 은 그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하며 21일의 벼룩시장 보다는 더 작고 사람이 덜 붐비는 골동품 중심의
시장은 도지에서 매달 첫번째 일요일 에 열리며 탑이 있는 안쪽은 입장료 를 받습니다.
매소로공원 을 지나 찾은 니시혼간지 (本願寺 본원사)는 1244년 일본 불교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신란(親鸞)의 묘소 인 대곡본묘(大谷本墓) 에서 출발한 것으로 1272년 히가시야마(東山) 에서
창건되었으며..... 후에 사원으로 발전해서는 1321년에 혼간지(本願寺 본원사) 가 되었다고 합니다.
렌뇨 에 이르러서 교세를 크게 확장하여 호쿠리쿠 지방과 기나이에 확고한 지반을 갖게
되었으며 1496년에 셋쓰국 이시야마 (현재 오사카성 자리) 에 이시야마 혼간지
(石山 本願寺) 를 세우니...... 15~16세기 지방의 무장들이 자립해 전쟁으로
날을 지샜던 센고쿠 시대 에는 다이묘에 맞먹는 봉건 세력 으로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5번째 니조성 (二条城 이조성)은 동서 480미터에 남북 360미터 로 성벽 밖으로는 폭 13미터,
깊이 17미터인 해자 를 두르고 있습니다. 성 안에 해자 앞에는 커다란 음성지원
안내판 이 있는데 일본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나... 다만 소리
가 너무 커서 마당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이니...... 그냥 한번 읽기만 하고 가는게 보통 입니다.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니 니조성 니노마루 입구에 중간크기 정도의 문이 있는데 지붕의
재질이 특이하게도 신사에서 처럼 히노키피즙 나무 껍질 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니노마루 건물 입구는 단아하게 축조되어 있으며 입구에 있는 지붕의 처마는 검은
옻칠을 한 바탕에 화려한 금박으로 장식 을 하였으니 서양인들은 연방 감탄사 를 냅니다.
처마 가운데에는 새모양을 조각한 현판 이 걸려있는데.... 한눈에 보이도 매우 정교하게 조각
되어 있는걸 알 수 있습니다. 니노마루 에 들어가려고 우리가 산 입장권을 보이니
안된다는데.... 그러니까 "600엔 짜리가 아닌 천엔짜리 표" 를 사와야 한다는 뜻으로 알아
듣고는 다시 밖으로 달려나가 표를 되돌려주면서 400엔을 함께 넣으니 새 티켓 을 내줍니다.
니조성 은 모토리큐 니조조 (元離宮 二条城) 라고도 부르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 는
덴노가 머무르던 교토 고쇼 (京都御所 경도어소) 를 보호하고 또 자신이
교토를 방문했을 때 머무를‘쇼군 將軍’의 거소 로 사용하기 위해 1601년에
건축을 지시하여 착공 2년 후에는 니노마루(二之丸) 부분이 먼저 완공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야스는 니조성을 지으면서 성의 건축 비용은 서부의 도자마 다이묘들 에게 뜯어
냈으며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 천황(일왕) 으로 부터 정이대장군 으로
임명받고 이곳에서 취임 축하연 을 벌였다는데... 손자 도쿠가와 이에미쓰 가
혼마루(本丸) 와 천수각 등을 지었으니 1626년에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가니 혼마루 천수각터 로 여기서 내려다 보는 경치 가 좋으니
혼마루를 둘러싼 해자 들을 천천히 내려다 봅니다. 그리고 안습 이라고 불리는
건물은 황실의 별장인 가쓰라리큐(桂離宮) 일부를 이용해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히가시야마(東山) 역에 내려 언덕을 올라가 6번째로 쇼렌인 靑蓮院(청련원)
이라 불리는 절로 들어가는데 절이라기 보다 암자 로 실내 구조가 특이한데다가
방 안에 앉아서 또는 굴곡이 진 마루 를 걸어서..... 그윽한 정원 을 구경하는게
묘미 라는데 쇼렌인 은 교토 도심 한복판 에 있음에도 깊은 산속 에라도 들어온 듯 합니다.
방 안에 앚아서 정원 풍경을 보노라니...... 문득 "차 한잔을 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드는데.... 정원 을 내다보며 시간 가는줄 모르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니 내
바로 옆에 어느 서양인이 양반다리를 하고 눈을 반쯤 감은채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마도 서양에 “젠” 이라고 전해진 "일본의 선(禪)" 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일까요?
다다미 방에 앉아 정원 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바쁜 여행 도중에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그러다 보니 마음의 평화 가 찾아오는 것이 그만 행복해
집니다. 그러고는 일어나 방의 바깥을 따라 굴곡지게 길게 만들어진 마루 를 걷습니다.
집을 한바퀴 돌면서 정원과 또 그 뒤로 이어지는 인적이라고는 없는 산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다가.... 문득 D 일보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에 나오는 변영로 시인 의 시 ”꿈 팔아 외롬 사서“ 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꿈팔아 외롬사서
산골에 사쟀더니
뭇새 그 음성 본을 뜨고
갖은 꽃 그 모습 자아내니
이슬, 풀, 그 옷자락 그립다네.
쇼렌인 을 나와 언덕길을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큰 절 이 보이는데, 오늘 여덟번째
방문지인 지온인 知恩院(지은원) 이라 부르는 교토에서도 알아주는 큰 사찰로
민중불교 정토종 의 본산 개조 호넨 이 살던 곳에 묘당을 세운게 절의 시초라고 합니다.
언덕을 내려와 203번 버스 를 타고 긴카쿠지 銀閣寺(은각사) 정류소에 내리니....
“‘벚꽃이 흩날린다 서러워 마라/ 흐드러진 열매 맺는 시대 키워..../
희망의 앞날을 기약하는 축복 일 뿐이니.’최범영의 ‘벚꽃이
흩날린다고 서러워마라’중, 그렇다. 벚꽃은 봄이며 희망이며 밝은 미래 다.”
누가 벚꽃은 필 때 보다 질 때가 더 아름답다고 했던가요? 사진을 찍으면서 올라가
드디어 3거리 에 도착해 골목길 로 접어드니 언덕길 좌우로 가게 들이 밀집해
있는데 긴카쿠지(은각사) 를 찾아온 사람들로 인산인해 라 복잡하기 그지 없습니다.
금각사 (金閣寺) 인 킨카쿠지가 금박 을 입힌 데 반해, 긴카쿠지는 은각사(銀閣寺)
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은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방문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본래는 여기 긴카쿠에 은박을 입힐 예정 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절을 건설 하면서 오닌의 난 후유증 으로 인한 재정난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해
이름만 남았다는 이야기 가 정설로 받아들여 진다는데.....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참배길 을 따라 중문으로 들어서면 지센카이유식 정원 이 방문객을 반깁니다.
이 정원은 흰 모래로 만든 바다 긴샤단 (銀沙灘) 과 마찬가지로 흰 모래로 만든 모래더미
고게쓰다이(向月台 향월대) 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모래 정원은 긴카쿠와 더불어
긴카쿠지 명물로 소박한 긴카쿠(銀閣) 와 어우러져 정적인 아름다움 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고게쓰다이(向月台 향월대) 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밤에 달빛을 감상 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일반관광객은 밤 까지 이곳 절에 머무를 수 없어 그 풍취 를 느낄 수는
없습니다. 긴카쿠지銀閣寺(은각사) 절 전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절 안에 긴카쿠(銀閣) 와 도구도(東求堂 동구당) 는 일본의 국보 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긴카쿠지 를 내려와 왼쪽에 수로를 따라 나 있는 길을 걷는데 오늘 10번째 방문지 인
철학의 길 哲學の道 이니..... 에이칸도에서 북쪽으로 긴카쿠지 (銀閣寺) 에
이르는 수로를 끼고 나무가 심어진 작은 길 을 말하는데, 교토 대학 교수인
니시 기타로 가 이 길을 걸으며 사색하기를 즐겼으니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네이버 에서 “철학의 길” 을 검색하니 당연하다는 듯..... “교토 철학의 길” 이 나와서
놀라는데... 원래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 Philosophenweg 이니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 등 철학자들이 산책하며 명상에 잠기고 영감 을 얻었다는 길이지요?
네카어강변 아름다운 길 을 걸어 산책하다 보면 철학에는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철학가
못지않은 사색 에 잠긴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전철이 다니는 테오도르 호이스
다리 쪽에서 부터 시작해 카를 테오도르 다리가 있는 곳 까지 산 중턱길 이니
남의 것이라도 좋으면......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배우는 일본인들의 자세가 놀랍습니다.
첫댓글 철학자의 길은 원래 하이델베르그에 잇던데 일본인들이 모방한듯합니다.
그렇지요? 모방이지요!
남의나라 것이라도 좋은 것은
스스럼 없이 배우는 사람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