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기획도 예술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요. 무대 위 예술이 빛나게 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예술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공연기획자는 또 다른 예술가인 셈이죠.”
해맑은 웃음에 어눌한 말투, 클래식 전문 공연기획사인 순수예술기획의 이상철(33) 대표를 만나면 순박함이 느껴진다. “늘 일에 파묻혀 산다”는 그의 말은 그만큼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연주자들이 많다는 증거다. 기획사 직원으로 시작해 독립한지 2년여 밖에 되지 않은 신생 공연기획사지만 평균 매주 1회, 연간 50회의 연주회를 무대에 올리는 그이고 보면 그 저력의 밑바탕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대표의 원래 꿈은 음악교사였다. 고교 2학년이라는 뒤늦은 나이에 피아노를 전공해 대학에 가겠다고 하자 다들 “어림없다‘는 선입견을 깨고 그는 혜천대 피아노과에 합격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목원대에 편입한 그다. 내친김에 아이들에게 "음악을 쉽게 가르치며 더불어 살자”는 뜻에 경북대 교육대학원에 수석 입학해 전공시험을 1등으로 졸업한 그였기에 그 꿈은 곧 잡힐 듯 했다.
그랬던 그에게 어느 날 공연기획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모 예술기획 기획실장으로 있던 둘째누나의 권유로 같은 기획사에서 6개월만 해보자고 마음먹었던 일이 그만 천직이 되고 말았다. 한 번 마음먹으면 기필코 해내는 그의 진취적 사고는 화장실 청소부터 포스터 벽보 붙이는 일까지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포스터 붙이러 다니다 멸시 당하고, 공연 인쇄물을 납품하러 가서는 택배아저씨 취급 받으며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제가 선택한 일인 이상 절대로 후회하지는 않았어요. 제 성격이 일단 시작하면 운영이라고 받아들이고 실패 가능성은 아예 염두에 두질 않거든요.”
▲ 이 대표는 연주자가 내 공연처럼 일을 맡아줄 사람, 그런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6개월만 하자고 마음먹었던 공연기획사 허드렛일이 어느 새 1년 4개월이 흘렀다. 어느 날 문득 인생의 진로에 대해 고민이 필요했다. 계속 공연기획사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못다 이룬 음악교사의 꿈에 다시 도전할 것인지 진로를 명확히 해야 할 것 같아 공연기획사를 그만두었다. 고민 끝에 음악교사의 길을 포기했다. 와중에 서울지역 공연기획사에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도 있었지만 다 물리치고 자신이 다니고 싶었던 직장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낙방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렇게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그에게 죽비가 내리쳤다. “어느 날 비노클래식 구자홍 선생이 제 등을 때리면서 ‘이상철, 정신 차려’ 하시는 거예요. 취직 안 된다고 그렇게 풀이 죽어 있지 말고 5만원 중고 책상이라고 갖다놓고 기획사 일을 하라고 충고를 해주셨어요.”
이 대표는 가진 돈이라고는 단돈 20만원으로 순수예술기획을 꾸렸다. 구 대표의 배려로 구 대표 사무실 방 하나에 빌붙어 중고 5만원 책상에 넷째누나가 쓰던 노트북을 빌려서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그 후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공연기획사 특성 상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독립하긴 했지만 이 대표는 구 대표의 죽비가 자신의 오늘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순수예술기획은 상호만큼이나 지향하는 바가 뚜렷하다. 기획사를 기획사 위주가 아닌 연주자 위주로 운영한다는 점과 영리와 비영리를 분명히 나눠 함께 진행한다는 점이다. “클래식 공연은 공연마다 운영방식이 달라요. 마찬가지로 연주자들이 요구하는 사항도 다 다르기 마찬가지죠.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획사들은 매뉴얼대로 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연주자가 요구하는 데로 맞춰드리는 것을 목표로 했어요. 또 한 가지는 영리와 비영리 영역을 확실하게 나눠 전문 예술가는 돈을 받고, 그렇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예술가에게는 무료로 봉사하는 것이죠.”
그가 2년 남짓 자신의 공연기획사를 꾸리면서 보람으로 여기는 것은 연주자들이 필요로 하는 궂은일을 소리 나지 않게 뒤에서 돕는 일이다. 그 중에서도 피아니스트 한정강 전 침례신학대 교수를 위해 무료로 연주회를 마련해드린 일을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여긴다. 이 대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대전에서 문화예술에서 그 정도 공을 세우신 분이라면 누군가는 예우를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수님이 현재 73세이시지만 연주하고 싶으실 때까지 도와드리겠다고 말씀 드리면 많이 좋아하세요.”
▲ 이 대표는 내년에 지역 예술인들과 함께 소외된 나라에서 클래식을 더불어 나누는 연주회를 가질 계획이다.
순수예술기획 이상철 대표는 공연이 있을 때마다 연주자 이상으로 진땀을 뺀다. 2년여 밖에 되지 않은 신생 기획사 특성 상 공연 기획에서 홍보물 디자인에 벽보 포스터 부착 및 언론사 홍보, 티켓 운영에 무대 연출까지 도맡아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그런 일보다는 연주자는 곧 동료라는 생각에 공연이 큰 박수로 끝마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 동안 너무 힘들어서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100번 가까이 들었지만 그는 그의 도움을 찾는 연주자들을 외면할 수 없다. “공연기획은 야근도 많고 항상 창의력을 필요로 해요. 또 클래식은 비즈니스 면에서 수익성이 큰 시장도 아녜요. 게다가 예술가의 고집도 세서 요구하는 것도 많구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내가 하면 진정성 있게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버티고 있어요.”
이 대표는 공연기획사 대표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예술가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꿈이다. 또 대전문화예술의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포부도 갖고 있다. 그는 내년에는 태국왕실교류음악회나 말레이시아·한국 교류 음악회 등을 계획하고 있다. 한류의 한 방향으로 클래식을 소외된 나라에서 더불어 나누기 위해서다. 아직은 젊은 나이지만 목표를 세우면 무조건 된다고 믿고 달려온 그였기에 무모한 계획으로 보이진 않다. 이상철 대표는 이렇게 다짐한다. “지역 예술인도 경쟁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지역 예술인과 기획자가 더불어 살아가야 지역 예술이 꽃피울 수 있을 것이라 믿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