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땅을 충만하게 하라는 창조질서는 인간의 자기애적 욕망으로 무너졌다.
덜 벌어 덜 쓰자. 그래야 '모든 생명'(인간 뿐 아니다.)이 함께 살 수 있다.
코로나로 잠시 멈추게 되었다. 이 욕망의 속도를 멈추게 되었다.
자신의 이념과 신념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 성경 속 다윗의 예를 들어주셨고 그리고 히틀러, 모택동 예시를 알려주셨다.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 또한 자신의 신념과 이념을 위해 땅이나 물을 더럽히거나, 고기를 먹는 등 수많은 생명을 죽인다.
신학은 해체하는 이론이라 말씀해주셨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높아지는게 아니라 모두가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해체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멈춰야한다. 인간의 역사는 반복된다. 그 반복을 멈춰야한다.
교회 헌금은 모든 생명체를 공평케 하는 수단. 이걸로 건물을 지어 올리는 것 말이 안된다 하셨다.
학생 시절, 교회 헌금은 당연히 교회 자금으로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교회 자금'은 교회 건물을 유지/보수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헌금 잘 하라는 말이 참 불편했다.
자기를 부인하고, 썩어져야,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 그것이 구원이고 부활이고 거듭남이다.
아침 일찍 온 일꾼, 늦게 온 일꾼 이야기를 해주셨다. 익히 알고있는 이야기인데 새롭게 들렸다.
지금은 교회 안에서 몸 붙여 함께 살고있다보니 각자 일을 나누는게 자연스러운데, 그런 일상의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저 능력이 다를 뿐이지 모든 사람이 동일하다, 그저 존재만으로 소중한 나라가 하나님 나라다, 존재한다는 가치에 대해 전해주셨다.
마지막으로 베데스다 연못의 38년된 병자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이렇게 하면 내가 나을거야,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어, 그 고지 신화를 믿고 따르려하지만 예수는 그 모든 것을 뒤엎었다. 낮은 곳으로, 해체되는 것이 예수의 길임을 안다.
그 길은 홀로는 못한다. 같이하면 된다. 용기를 가지라 말씀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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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쉬이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은 어렵다. 근데 예수는 그 길을 가셨다. 근데 또 사실은 예수 뿐 아니라 많은 선배들이 그 길을 따랐다. 근데 보다 더 쉬운 길을 가고싶은 마음에 뒤를 돌아보게 된다. 예수 따르는 길엔 쉬운 길 없음을 다시금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