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욱 목사
경주에 도전하라
우리는 이제 을유년(乙酉年)의 경주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경주에 도전해야 합니다. 마지 못해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정열을 가지고 시작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합니다.
노만 빈센트 필의 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크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12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양팔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의기소침해하는 그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크야, 네 인생은 손이나 팔에 있는 것이 아니란다. 네 머리와 가슴에 있는 것이지. 네가 정말 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단다.”
이 말에 용기를 얻은 아이크는 학교 육상부를 찾아갔습니다. 소년은 달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코치는 계속 거절했습니다. 소년은 코치를 찾아가서 수 차례 부탁했습니다. 결국 그는 육상부에 들어갔고, 그해 최장거리 육상 대회에 도전했습니다. 비록 흔들리는 팔을 몸에 묶고서 제일 꼴찌로 달렸지만 그는 결승점에 도착했고, 누구보다도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말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소년은 후에 더욱 큰 꿈을 품고서 노력해 미국의 하원의원으로 국민을 섬겼다고 합니다.
여러분, 간절히 원하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원하는 일을 도전해야 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도전하지 않는 자에게는 결과가 없습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환경이라도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결과가 있습니다.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성공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리고 도전하는 사람이 실패했을 경우에는 성공보다 값진 교훈이 결과로 남습니다.
희망의 지도
도전적인 경주는 희망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영국의 특수부대 ‘거카’ 사단은 용맹스러운 군대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대원들은 모두 네팔 출신의 거카 족으로, 세계의 분쟁 지역에 즉각 파견돼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거카 사단이 제 2차 세계대전 때 미얀마 전투에 투입됐습니다. 그때 한 병사가 전열에서 낙오됐습니다. 그런데 그 병사는 4개월 동안 2천 km 이상을 걸어 아군의 진지로 돌아왔습니다. 대원들이 깜짝 놀라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나는 정글을 헤매며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습니다. 그러나 이 지도를 보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그 병사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지도를 한 장 꺼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글의 지도가 아니라, 런던 시내의 관광지도였습니다.
이 병사는 런던 시내의 지도를 보면서 미얀마 정글을 해치고 나왔습니다. 그 병사를 구한 것은 지도가 아니라 ‘내가 꼭 런던 시내를 걸어가리라’하는 희망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희망이라는 인생의 지도가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이 지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희망이 길을 만든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희망은 희망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 희망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입니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입니다. 희망은 없던 길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희망은 정글에도 길을 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없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의 길도 어느 누구가 걸어 본 적이 없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 중에서 과거에 살다간 모든 인류와 현재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 중에서 여러분과 똑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과 똑 같은 인생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각자는 어차피 남이 걸어보지 못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기성품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은 기성품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일으키는 문제는 기성품입니다. 왜 사람들은 똑 같은 문제를 일으킵니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창조적으로 살지 않고 기성품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인생의 가치를 알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2005년도를 살아 보았습니까? 2005년도의 길이 걸어 본 길입니까? 누구도 가 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사실은 길이 없습니다. 희망은 길과 같습니다. 희망이 길을 만듭니다. 없는 길을 걸어가면서 만드는 것이 희망입니다. 그리고 희망 자체가 길입니다.
결국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희망의 지도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지도가 없는 사람은 같은 자리만 맴돌거나 방향 감각을 상실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가장 훌륭한 희망의 지도를 알려 줍니다. 최고의 희망의 지도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우리 삶의 프로그램을 준비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4, 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는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11절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성경의 표현이 좀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기업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기업이 되었다는 것은 상속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상속은 자녀가 합니다. 그래서 상속인이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정적으로 읽지 말고 동적으로 현실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나서 식물인간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과 누리는 복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고유한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읽고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만의 목적을 발견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2005년도에서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길을 가기를 원합니까? 아니면 작년의 길, 익숙한 길만 반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2005년도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사람이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 ‘얼마나’ 사랑해야 하나를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의 시간표에 대해서 철저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엄청나게 아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아니고,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도 동등한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교 철학자 마틴 부버는 말합니다. “각 사람의 주된 임무는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이며, 더 위대한 일은 다른 사람이 이미 이룬 무언가를 반복하지 않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자신만의 사역을 추구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15:20).
성경으로부터 이 진리를 배운 사람은 남의 그림 위에 그리는 화가가 아닙니다. 남이 다 그린 그림 위에 자기 이름을 쓰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그리고자 하는 그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진리를 알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니다. 저는 저의 그림을 그립니다. 제가 삶을 낭비하거나 잘못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괴로워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저의 꿈을 막고 있어서 괴로움을 당할 때면 하나님께서 날개로 업어서 지름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겪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살아가기 때문에 저는 타인도 교회도 이런 관점에서 봅니다. 개인과 교회는 새길을 가지 않으면 멸망 외에는 기다리는 것이 없습니다. 남의 그림을 복사나 하는 사람은 진정한 화가가 아닌 것처럼, 새길을 가기를 주저하는 것은 자기 인생을 포기하고 새로운 기회를 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진취적이지 않은 개인도 교회도 저의 길벗으로 삼지 않습니다. 저는 진취적인 개인을 좋아합니다. 발전하는 교회를 원합니다. 발전을 원치 않는 교회와 제 인생의 스토리가 함께 어우러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교회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있어서 저의 인생은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변화를 원하는 교회에서만 제 인생을 투자할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에서 5달란트를 남긴 종과 2달란트를 남긴 종이 아무런 고생 없이 그냥 이익을 남겼겠습니까? 그들이 얼마나 많은 수고와 고통을 겪었겠습니까? 사업이라는 것이 그냥 순풍에 돛달린듯 되는 사업이 있습니까? 이들은 많은 적자와 실패를 겪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땀 흘리는 수고와 잠 못 이루는 고민의 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고생하는 동안에 1달란트를 땅에 묻어 놓은 종은 그들을 향해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저 친구들 많은 돈을 받아서 행복한 줄 알다가 이제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안타깝군. 무얼 그리 고생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아, 나는 땅에 돈을 묻어 놓았으니 실패할 염려가 없어. 수고할 필요도 없고 고민도 없어.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안정된 일인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1달란트 받은 종은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는 평안했습니다. 고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결과는 멸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달란트를 묻어 버리는 사람이나 공동체에게 남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진취적 삶은 선택이 아닙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옵션이 아닙니다. 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에게는 엄청난 복이 약속되어 있고 게으른 거짓 그리스도인에게는 화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2005년도에는 여러분에게 주신 달란트를 묻어두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달란트를 갈고 닦으십시오. 그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하느라 말썽도 생기고, 고민도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개인과 교회에서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까? 문제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일을 하다보면 의견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을 안하면 의견분열도 없고, 문제도 안생깁니다.
묘지와 공동묘지를 독일어로 Friedhof 라고 합니다. Fried는 평화를 의미하고 Hof는 “마당”이나 “뜰”을 의미합니다. 묘지는 평화의 마당이라는 의미입니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싸울 일이 없고, 고민도 없고, 갈등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 속에서는 시체가 썩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기득권이나 누리면서 권리나 주장하면서 편안하게 지내는 사람은 썩어가는 시체와 같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저 좋게 좋게 문제 없이 그냥 지나가면서 망해가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좀 시끄럽더라도, 어수선 하더라도 장사하면서 분주하게 다니는 5달란트와 2달란트 받은 종처럼 사시기를 원합니까?
여러분 개인과 안동 교회가 1년 후에 모습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10년 후에는, 30년 후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경주가 끝난 후를 생각하며 경주하자.
다음으로 우리는 2005년의 경주를 시작하면서 경주가 끝난 후를 생각하면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올림픽 출전 선수가 금메달의 목표를 미리 생각을 해야 경기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메달의 목표가 없다면 경주는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이 우리도 한 해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의 경주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경주를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이 끝났을 때 무엇이 남아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끝났을 때 여러분의 주머니에는 무슨 소지품이 나오면 좋겠습니까? 우리가 고수하는 것, 우리가 주머니에 간직하는 것들이 진정 우리가 누구인지를 밝혀줄 것입니다.
매일의 경주
그런데 경주의 목표는 사소한 한 번씩의 발걸음을 통해서 도달됩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을 통해서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일들을 통해서 생을 만들어 나갑니다. 사소한 붓놀림 하나하나가 모여서 살아 숨쉬는 그림이 완성되어 가듯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이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단하시고 한 해를 출발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희망의 지도를 가지고 게으름의 유혹을 이기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체험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찬송이 여러분의 영혼에 넘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