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85] 내동리-당재-황장산-새끼미재-용강리

[애즈산(산처럼)]

산행정리:2005.7.18

13:50내동리-14:10당치마을-14:30당재-15:55모암3거리-16:20황장산-16:40망바위-16:50새끼미재-17:00암자-17:10마지막 독가촌-17:40용강리

오전 6시 인천을 출발. 광주에 장모님을 모셔다드리고 지리산 피아골 들머리 내동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차량을 농평마을 오름길 적당한 주차 공간에 쉬게 하고 당재로 향한다. 햇볕은 무척이나 뜨겁다. 농평마을까지는 새로 도로포장이 잘 되어 깔끔한데 작열하는 불볕더위와 아스팔트에서 후끈후끈한 지열이 쏟아져 나오는데 머리가 아플 정도이다. 평화로운 당치마을과 농평마을을 지나 당재에 오르기까지는 땀깨나 흘렸다.

지리산 주능 삼도봉에서 흘러내린 산줄기는 불무장등과 통꼭봉을 지나 당재에서 한숨을 몰아쉰 후 남쪽으로 다시 솟구쳐 황장산과 촛대봉을 만든 후 섬진강으로 흘러내린다. 황장산 능선은 남부 능선처럼 지리산의 지능선 중에서 상당히 긴 축에 속한다. 당재는 구례 내동마을과 화개 목통마을을 이어주는 고개인데, 그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 내린 비에 곳곳이 무너지고 유실되었다.

몇 년 전 삼도봉에서 내려선 후 이곳을 거쳐 목통마을로 하산한 적이 있었다. 당재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아침 겸 점심으로 빵 한 조각과 팩 우유 1개로 허기진 속을 달랜다. 그래도 기운이 샘솟는다. ​오늘은 오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코스를 물색하던 중 짧게 잡았다. 산행이 워낙 늦게 시작되어 시간 관계상 황장산을 목표로 하였다. 아마 새끼미재에서 하산을 하는 것이 가장 합당할 것이다. 십여 분 휴식 후 황장산을 오른다.

황장산(948m). 황장산도 창암산, 구곡산과 마찬가지로 지리산의 자산(子山)이다. 900m가 넘는 근사한 봉우리이지만 고봉들이 즐비한 지리산 자락에서 소외되어 대접을 받는 봉우리는 아니다. 비수기나 산불 경방 기간에 지리 산꾼들이 가끔 찾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황장산도 섬진강 강가에 우뚝 솟은 당당한 지리산의 준봉이다.

​당재를 출발한 후 화개재에서 토끼봉 오름길처럼 20여 분간 제법 긴 된비알이 정신없이 이어지는데 다리가 무거워 잘 나아가지 못한다. 아마도 뜨거운 염천의 더위 때문일 것이다. 황장산 직전 제법 전망 좋은 바위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으로 더위를 식히며 왕시루봉 쪽을 조망하는데 노 굿이다. 남쪽으로는 황장산이 어느 틈에 성큼 다가와 우뚝 서 있다. 모암마을로 떨어지는 삼거리를 지나 망바위에서 왕시루봉과 느진목재, 문바우등을 정신없이 바라다본다. 내일 올라야 할 봉우리이다.

황장산에 올랐다. 지금의 시각이 4시 20분. 당재를 출발한 지 2시간 만이다. 정상에서 쉼 없이 내리막길을 걷는다. 새끼미재 못 미쳐 조망이 확실히 터지는 바위에서 남부 능선에 취해 한참을 머문다. 주능 촛대봉에는 구름이 덮여있고 삼신봉, 내원재, 성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장쾌하다. 바로 발아래에는 쌍계사가 있는 용강마을이 보인다.

조릿대 숲이 우거진 새끼미재에서 돌발상황이 발생한다. 갑자기 꽥!! 괴성을 지르며 나타난 멧돼지에 놀라 혼비백산했다. 산행하면서 산짐승을 몇 번 만났지만 대부분 조용히 물러나 놀람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혹, 멧돼지가 나를 덮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서 배낭에서 랜턴을 꺼내 들었다. 차에서 내려 산행을 빨리하고픈 급한 마음에 스틱을 챙기지 않아 그 준비성을 후회도 하였다. 다행히 멧돼지는 조릿대 숲속에서 소리를 지르고 이곳저곳 마구 성질대로 날뛰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새끼미재에서 용강리로 내려서는 길은 인적이 뜸하나 아주 양호하다. 급격히 고도를 낮추며 떨어지는데 잠시 후 대나무 숲속의 작은 암자를 만난다. 그리고 십여 분 후 외딴집을 만나는데 사람은 살지 않는 듯하다. 이곳 샘터에서 머리를 처박고 물도 원 없이 먹는다. 이후의 산행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지루하게 내려서는데 더위에 그 길이 멀기만 하다.

남부 능선 위에는 달님이 일찍 나오셨다. 새끼미재를 출발한 지 1시간쯤 되어 용강리로 하산을 완료한다. 쌍계사 주차장에서 바로 구례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피아골 입구에서 내렸다. 차 시간을 알아보니 10분 뒤에 직전마을로 올라가는 버스가 있다. 가겟집에서 시원한 캔맥주로 오후 한나절의 피로를 풀고 버스를 탄다. 농평마을 오름길에서 차를 회수하여 피아골 야영장에서 텐트를 치고 알탕을 했는데 상당히 더운 날씨였던지 계곡물이 그다지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홀로 산행이라 준비한 것은 없다. 그러나 오늘 지리산 품에서 밤을 보낸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즉석 미역국 밥을 게눈 감추듯 비워 버리고 스팸 소시지를 프라이팬에 적당히 익혀 소주를 마신다. 남쪽 하늘에는 달도 서럽게 밝다. 지금의 시각은 8시. 아직 어둡지는 않지만 가스랜턴을 켜서 분위기를 잡는다. 계곡 물소리는 시원스럽게 들려오고 숲속에서는 풀벌레들의 끊임없는 악기 연주가 계속된다.

어둠이 쏟아져 내린 피아골 야영장에는 아무도 없다. 나의 애마, 그리고 안타티카 텐트 1동. 식탁에는 잘 익혀진 소시지 안주와 소주병이 정겹다. 지리산 품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 만인가. 정말 나 홀로 오붓한 시간의 행복감에 마음이 촉촉이 젖는다. 오늘 밤을 첫사랑의 추억처럼 오래 간직하고 싶다. 연인과의 사랑은 없지만, 이 밤을 영원히 사랑해야겠다. 밤이 깊어 랜턴을 끄자 짙은 어둠과 이내 한 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