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collecting gold dust' 라는 사야도 영어 법문집을 받아서 읽어봤는데
사야도께서 어린시절과 젊은 시절 수행을 어떻게 하셨는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하신 부분이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내용이 좋아서 그 부분만 번역해서 수행모임 오시는 분들과 공유했는데 한번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파일은 첨부하였으니 다운로드하여 읽으셔도 됩니다.
-서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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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제 막 집중 수행을 마쳤지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법이 가장 중요하며 법은 어디에나 언제나 있다는 것입니다. 법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마십시오. 집에서도 수행을 멈추지 않고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수행한다는 것은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에 관한 모든 수행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수행은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결국 삶의 방식이 바뀌는 일입니다.정말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바르게 노력을 계속 한다면 조건들이 충분히 만족되었을 때 결과는 오게 됩니다. 붓다께서는 “법을 소중히 여기면 법이 너희들을 보호해 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법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 법을 보호한다는 의미는 수행을 한다는 뜻입니다. 수행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법이 당신을 법의 물결을 타고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계속 수행하십시오!
법이란 무엇입니까? 모든 것입니다: 자연적 이치, 원인결과입니다: 수행하는 마음입니다(예를 들어 알아차림, 사마디, 노력, 신심, 지혜); 수행할 때 관찰되는 모든 것들입니다(감각기관으로서의 마음을 포함해서 육문의 대상들, 여러 체험들, 생각, 좋거나 싫거나 좋지도 싫지도 않은 느낌들) 그리고 우리가 아직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거나 알아차리지 못한 것들. 이 모든 것들은 다 우리가 체험하는 것들의 일부분입니다. 수행을 통해서 우리는 오력의 힘을 키워나가게 됩니다. (오력-사띠, 사마디, 노력, 신심, 지혜)
이런 마음의 요소들이 강해졌을 때 힘(bala)이라고 불리고 그런 마음의 힘은 우리를 보호하고 보살펴주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 줍니다. 수행을 하고 있는 한 우리는 이런 오력의 힘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쉐우민 큰 사야도의 가르침 밑에서 나는 여러 해에 걸쳐서 집중수행을 했지만 이런 마음의 힘을 오직 집중 수행할 때만 사용할 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간 다음에는 전혀 사용하지 못했었습니다. 법에 귀의한다는 삼귀의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법이 귀의처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까지 나는 정말 헌신적으로 수행을 해야 했습니다.
열세 살 무렵 처음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강력하고 규칙적인 호흡을 요구하는 수행방법을 계속 닦아나갔고 어느 순간 그 체험이 가져다주는 육체적인 즐거운 느낌과 정신적인 고요함에 훅 빠져버렸습니다. 큰 사야도께 제가 이런 체험을 했고 또 이것을 스스로 좋아한다고 말씀드렸을 때 사야도께서는 호기심을 가지고 저의 체험에 대해 물어보셨습니다. 사야도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특별한 수행 체험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씀을 듣고 나자 나도 역시 그런 체험을 하고 싶어졌고 결국 수행을 더 열심히 하게 하는 동기유발이 되었습니다.
나는 하루 종일 아주 세심하게 알아차림을 유지했을 때 고요하고 즐거운 느낌을 유지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알아차림을 유지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큰 사야도께서는 또 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말씀을 해 주셨는데 나 자신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알 때 마다 행복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차림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나는 알아차림에 집중하게 되었고 나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아차림 하든지 그것은 곧 즐거움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안다는 것은 결국 알아차림 한다는 의미이니까요! 그러자 때때로 예상치 않았던 불선법의 마음이 일어날 때조차도 그것 자체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나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알아차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내가 큰 사야도께 수행 체험을 보고 드리면 사야도께서는 그게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종종 물어보셨습니다. 한 번은 저에게 배의 부품, 꺼짐이 왜 일어나는지 아느냐고 물어보셨는데 그 때 제가 호흡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때 수행의 주 대상은 바로 배의 부품 꺼짐을 관찰하는 것) 그러자 왜 호흡을 하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 질문에 제가 대답을 바로 못했는데 그 답을 얻기까지 6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매일 좌선을 할 때마다 그 질문은 배를 관찰하는데 끈질기게 따라 붙었고 6일 째 되는 날에 호기심을 가지고 왜 호흡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자 그 때 호흡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답을 얻게 되는 이런 일은 정말 가슴 뛰는 체험이었으며 나는 곧장 법당에서 나와 사야도께 답을 말씀 드렸습니다. 이 일은 내가 알아차리고 조사할 때 일어나는 내면의 호기심을 부채질하였고, 다른 모든 수행의 결과를 이끌어주었습니다.
여러 많은 종류의 통찰지가 개발될 수 있습니다. 자연적 이치에 대한 지혜는 우리 자신이 하고 있는 이 수행의 이치, 알아차림의 이치, 알아차리고 체험하는 대상의 성질, 있는 그대로의 성질을 이해하는 지혜를 포함합니다. 그것에 대해 항상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고 알아차림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알아차림이 견고해지고 힘이 좋아지며 지혜가 생겨날 때마다 우리는 이전에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면에서 자연적 이치를 보게 될 것이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의 힘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수행은 지혜와 함께 항상 변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지만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으며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지혜가 이미 그것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는데 그것은 지혜의 성품과 다양한 지혜의 역할이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혜 쪽 보다는 애써서 노력하는 것에 훨씬 더 익숙한데 가령 졸릴 때 졸음에 빠지지 않으려고 물리적으로 힘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렇게 힘을 쓰는 대신에 졸음이라는 것에 대해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궁금해 하고 지혜가 일을 하고 있다면 왜 지금 졸리는 걸까? 무엇 때문에 졸리지? 지금 느낌은 어떤가? 이런 질문들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행자들은 이렇게 질문하는 대신에 이 졸음의 상태와 싸우려고 하는데, 그것은 졸음이 수행에 좋지 않은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되고, 지금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점검하기 보다는 즉각적으로 그 상태를 바꾸고 고치기 위해서 애를 쓰게 됩니다. 나는 스승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신 첫 번째 가르침을 기억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무엇이든 알고 있다면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아차림이라는 그것 자체가 이미 좋은 것이다.
a note from the teacher.hwp
첫댓글 _()_()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두사두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