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종학대학원 하계수련을 다녀와서(최성만)

[선수당 박경희]

[신인간 163.8]

살며생각하며


천도교 종학대학원 하계수련을 다녀와
관암寬菴 최성만_익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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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원우를 만나는 자리
2022년 7월 16일 하계수련을 다녀온 소감을 쓰고자 한다. 먼저 이 글은 이날 어떤 행사들이 어떻게 진행됐다는 것을 알리는 단순한 보고서가 아니라 필자의 주관적 생각과 느낌이 강하게 들어간 글임을 밝혀둔다.

통상 종학대학원 수련은 방학기간에 특정 지역의 천도교 수도원에서 며칠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이번에는 하루로 단축해서 이루어졌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온 사람들은 경전철 우이신설선 ‘가오리’역이나 지하철 4호선 ‘수유’ 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강북1 등을 타고 모임 장소인 근현대사박물관에 내렸다. 부산분원에서는 13명이 꼭두새벽에 소형버스를 타고 올라왔고, 전주에서도 3명이 올라왔다. 당일치기로 수련에 참여했다가 내려가는 여정이라 몸이 피곤했을 것이고 마음도 바쁘고 설렜으리라 짐작된다.

이번 수련은 특히 두 가지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2020년 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온라인(비대면)으로 수강해오다가 처음으로 대면으로 원우들을 만난 자리이고 지방 분원 사람들도 참여한 자리라는 점이다. 수업이든 일반적인 만남이든 대면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의 효과는 비대면에 비할 바 없이 크다는 점은 누구나 실감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간 화면으로만 접하거나 얼굴조차 모르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고 감명 깊었다.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동학 천도교와 관련된 기념관이나 유서 깊은 장소에 직접 와서 함께 견학하고 수련을 했다는 데 있다.

이 두 가지 점 외에도 이번 수련회는 참가자 각자에게 나름대로 의미를 생각게 하고 여운을 남긴 행사였을 것이다.


근현대사 기념관과 의암성사 특별전 관람
먼저 ‘근현대사기념관’(강북구 우이동) 현관마당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 대학원에서 나누어준 선물꾸러미를 하나씩 받았다. 꾸러미 안에는 이날 수련을 위한 자료집 외에 뚜껑에 궁을장(弓乙章) 표식이 새겨진 텀블러, 물, 떡 등이 들어 있었다.

도착시간이 지체되고 있는 부산분원들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사람들은 먼저 ‘손병희 순국 100주기 추모 특별전’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나는 해설사의 상세한 해설을 들으면서 전시된 물품들을 살펴보았다. 이 물품들은 천도교중앙총부에서 이번 기념행사를 위해 대여해줬다고 한다. 3.1운동 민족대표이자 한때 ‘국부國父’로까지 추앙을 받던 의암성사의 100주기를 기리는 전시관치고는 공간도 옹색하고 전시물들도 많지 않아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뜻깊은 전시회였다.

지난 봄 유투브로 생중계된 평화재단 주최 ‘손병희 선생 순국 100주년 기념토론회’에서도 법륜스님은 이런 행사야말로 정부에서 주도하거나 적극 나서서 지원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현실이라면서 개탄했다.

특별전을 둘러보고 나온 우리는 시간이 지체되었기 때문에 다음 행선지 가운데 ‘신숙’ 묘소는 생략하고 ‘여운형’ 묘소와 ‘손병희’ 묘소를 참배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던 여운형의 묘소를 찾아가는 버스 속에서 우리는 심국보 님의 간략한 해설을 들었다. 여운형의 집안은 온통 동학도였다. 해월이 동학을 이끌던 시절 『용담유사』 출판에 기여한 여규덕이 그의 종조부였다. 1918년 신한청년당을 만들어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민족대표로 파견했고 3.1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도 주도적 역할을 한 여운형의 핏속에 동학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동학이 그로 하여금 그런 길을 가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 해방전후사를 다룬 라디오 방송극을 들을 때마다 나라가 분단될 위기에 처해 좌우합작운동에 투신했던 여운형이 공산주의로 기운 그의 활동 때문에 지탄을 받는 분위기로 방송극이 연출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남북 통일정부 구성을 위해 노력했던 김구나 그 밖의 인물들도 ‘빨갱이’로 지탄을 받아야 할 것이다. 부끄러운 친일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채 남북이 강경하게 대치하는 국면의 남한정부에서는 분단의 현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왜곡된 형태로 가르쳐왔고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바뀌지 않았다.

​동학혁명 당시 목숨을 걸고 항일투쟁을 하다 희생된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독립투사나 유공자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 ‘복권’조차 안 되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동학-천도교인이든 아니든 동학혁명을 민주주의의 효시로 중시하고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쫓겨 다니며 숨어서 지내고 있지 않을까. 더는 관군과 일본군에 쫓기지는 않지만 이 사회를 지배하는 여러이데올로기와 ‘초자아’의 압력 속에서 말이다.


의암성사 묘소까지 걷다
이어서 우리는 인근에 있는 손병희 묘소까지 걸어갔다. 이날 행사를 위해 의창수도원에서 특별히 문을 열어줬다고 한다. 그 말이 내게는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이런 역사적 장소일수록 묘소 출입문을 꼭꼭 걸어둘 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손병희’가 무슨 일을 했고 일제강점기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게 하고 역사를 배우게 해야하지 않을까.

묘소 앞에서 우리는 인근에 있는 봉황각에서 박충남 의창수도원장 님의 해설을 들었다. 아담한 나무계단을 걸어 내려가 봉황각에 들어선 우리는 종학대학원에서 준비해놓은 도시락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졌다. 묘소를 참배할 때 비가 쏟아지지 않은 것은 한울님의 은덕이었을 것이다. 점심식사 후 봉황각 대청에 모여 김춘성 선도사님의 지도 아래 천도교 수련을 했다. 이런 실제적인 수련교육이 이날 행사에서 제일 좋았다고 나중에 소감을 밝힌 원우도 있었다. 선도사님은 자료집에 ‘수련의 절차와 방법’을 상세하게 써놓았다.

​수련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박충남 수도원장으로부터 봉황각의 역사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들었다. 이 봉황각과 인근 건물에서 의암성사가 3.1혁명의 지도자급 483명을 매회 49일간씩 7회에 걸쳐 양성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늘날에도 천도교에서 이런 젊은이들, 나라의 동량들을 키워낼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신다.

종교와 영성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고 역사도 잊히는 현실에서 동학-천도교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대목이다. 대청 한가운데 ‘이신환성’(以身換性)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몸을 성품으로, 육신의 삶을 성령의 참된 삶으로 바꿀 것을 가르친 의암성사의 주문(呪文) 수련법이다. 김춘성 선도사님은 자료집에 실린 글 말미에 오랫동안 전국의 수도원을 다녀 보면서 느낀 점이라면 이렇게 적고 있다.


“열악한 시설이나 불편한 환경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수련을 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역사와 전통만 강조하면서 주문 수련을 시키는 방법은 무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명상센터가 있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이색적인 명상센터나 수련원도 많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신청자가 이를 보고 자신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이 수련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위해 수련을 하고자 하는지 이를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자료집 41쪽)


묘소를 참배하고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동학-천도교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되새기기 위해 유적지를 순례하고 묘소를 참배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역사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실행하는 일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가르침도 그것이 개개인에게 전유되면서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죽은 것, 석화된 것에 지나지 않고, 결국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역사와 전통만 강조하면서 주문 수련을 시키는 방법은 무모하다.” 제도와 전통에 갇힌 천도교가 아닌 열린 천도교를 지향하고 수련법도 시대에 맞게 갱신되고 대중화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읽었는데,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이어서 마지막 일정으로 종학대학원 발전방안에 관해 발제와 토론이 있었다. 원우들은 각자 여러 다양한 제언들을 했다. ‘천도교 유투브대학’을 개설할 것을 주창한 이도 있었다.
나는 나누어준 포스트잇에 쓰기만 하고 발표하지는 않았다. 내용이 신랄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깰까봐 주저했기 때문이다.


종학대학원 발전방안 논의
차제에 그 내용의 일부를 밝히고자 한다. 우선 종학대학원의 학사운영과 조직과 같은 사안은 원우들이 토론할 주제가 아니라 교단 측에서 잘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3년에 한 번씩 교령이 선출되면서 교단의 주요 임원들이 물갈이되는 현행 체제에서는 종학대학원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 전 천도교 박길수 동덕이 주관하는 ‘도담다담’ 시간에 참여해 최근 주변 동덕으로부터 들은 “동학인문학당”과 같은, ‘제도종교로서의 천도교’에 갇히지 않은 동학공부모임을 활성화하여 사회적으로 동학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동학이 가진 심층적인 효능이 사람들에게 어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아니면 종학대학원은 동학에 대한 사회적 수요를 효율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체제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학대학원의 자율적 운영, 독립채산제 등 여러 변수와 조건을 두고 관계자들이 숙의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논의사항 중 학습방식 개선(강의식이냐 토론식이냐)을 묻는 질문에 한 원우가 지난 학기 자기는 강의에 이어진 토론시간에 토론 내용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강의식을 선호한다고 발언했다. 나는 그 제언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왜냐하면 궁금한 게 많아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진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 교육전통에 ‘하브루타’(havruta)라는 토론식 공부법이 있다. 모든 지식은 토론을 통해 체화되고 새로워진다. 강사가 강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받아 적는 공부는 진정한 공부가 아닐 것이다. 물론 그 원우도 토론식 강의를 무조건 반대한 것이 아니라 ‘기초과정’과 ‘심화과정’, 또는 ‘수련수업’과 ‘토론수업’ 등으로 강의형식을 다원화하고 세분화할 것을 요구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종학대학원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어쨌든 하루로 압축된 수련회에 참여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교무차장님을 비롯해 관계자 여러분이 세심하고 치밀하게 준비했음을 알 수 있는 뜻깊은 하루였다. 그에 대한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하며 나의 소회 보고를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