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2월 15일, 토)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친 후 우리는 다시 그란카나리아 섬으로 배를 타고 되돌아 왔다. 원래 묵었던 호텔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15분인데, 방청소가 안 되었기 때문에 12시 이전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우리 방만 먼저 청소를 하고 짐이라도 들여 놓겠다고 사정을 해도 안 통한다. 규정상 12시 이전에는 들어갈 수 없단다. 일행 중 누군가가 한국식으로 해결하자고 팁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여전히 대답은 NO. 나는 그들이 야속하다는 생각보다는 자기 일에 긍지를 가지고 원칙을 충실히 지키려는 태도에 감명을 받았다. 그 정도의 원칙과 긍지를 가지고 자기 임무에 충실한 호텔종업원이 제주도의 호텔에는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열두시가 되어 겨우 짐을 들여 놓고 점심식사 전에 일행 중 국립환경연구원의 한의정 과장님과 몇 명은 해수욕한다고 바닷가로 나가고, 나는 번화가로 나가 쇼핑을 하였다. 원래는 미스 최와 같이 나가기로 살짝 약속했는데, 이번에도 제주대의 정 교수가 끼어들어 그만 셋이서 거리를 돌아다녔다. 아 정말 정 교수는 못말려! 나는 전자제품 가게에서 이번에 공부를 잘해 S대에 들어간 큰 아들의 입학선물로 줄 그래픽까지 나오는 소형 계산기를 하나 샀다. 이곳은 관광지역이기 때문에 세금이 없어서 물건값이 한국에 비해 싸다고 한다. 정가가 붙어있지만 마침 미스 최가 나서서 얼마 정도를 깎아 살 수 있었다.
오후에는 일행 중 거물급 네 사람은 마침 한인회 골프대회가 열린다고 하여 골프장을 답사하러 따로 떠나고, 나머지는 근처에 있는 아가에테(Agaete)마을로 답사를 떠났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현지인 가이드가 따라 붙었다. 사실 미스 최의 스페인어는 내가 보아도 수준급이었다. 그녀는 본토인과 대화할 때 전혀 막힘이 없었으며 그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유창했건만 규정에 의하여 유급 가이드가 따라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가이드는 별로 특징이 없는 뚱뚱한 중년부인이었는데, 지금까지의 가이드와는 달리 일에 대한 전문성이나 유머 감각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미스 최를 시켜서 애인 있느냐고 물어 보니 없다고 짧게 대답하고서 그냥 얼굴만 붉힌다.
아가에테 마을은 기존도시로서 원형이 잘 보존되었다고 하여 답사일정에 넣었는데, 막상 가보니 별로 특징이 없는 어촌이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가면서 관광지 개발에 중요한 물 문제에 대하여 스페인에서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를 여러 가지로 물어 보았다. 라스팔마스는 스페인에서 가장 수도요금이 비싼 도시라고 한다. 네 명 가족의 한 달 수도요금은 3천 페세타(우리돈으로 환산하여 이만 원) 정도라고 하는데, 물가를 비교하면 그곳에서 파는 생수 30 병에 해당하므로 상당히 비싸다고 볼 수 있다. 수도인 마드리드에서는 수도요금이 월 1천 페세타라고 하니 라스팔마스에 비교하면 1/3 가격인 셈이다. 그전에는 수도요금을 가구당 일정액을 징수했는데, 2년 전부터 마드리드에서는 계량기를 달아 물절약을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수도정책에 있어서는 우리가 그들로부터 특별히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시가지 쪽이 시끌벅적하다. 웬 일인가 가이드에게 물어 보니 그날이 말로만 듣던 사육제(Carnival)라고 하면서 곧 길이 꽉 막힐 테니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호들갑을 떤다. 사육제란 기독교의 절기인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날로서 40일 동안 금욕기간이 시작되므로 그날은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축제가 벌어진다. 브라질의 카니발은 특히 유명한데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키스해도 괜찮다고 하니 사육제에 맞추어 브라질에 여행을 가보고 싶다.
우리는 호텔에 돌아가기 전에 상점에 들러서 우리의 다음 행선지인 이탈리아 로마 관광에 필요하다는 특별한 지갑을 샀다. 여행기를 읽어 보거나 여행담을 들어보면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성베드로 대성당이 아니고 소매치기이다. 지갑을 털리면 그래도 다행이고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여권을 집시들한테 날치기 당하기 일쑤라고 하니, 우리는 로마에 들어가기도 전에 겁이 났다. 그래서 나온 제안이 소매치기를 방지하기 위하여 목에 거는 지갑을 사자는 것이다. 끈을 목에 걸고 지갑을 T셔츠 안에 넣고 다니면 제아무리 악명 높은 로마의 소매치기인들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속수무책(速手無策)일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근사한 착상이라고 공감하고서 모두들 목에 걸 수 있으면서 천으로 만든 싸구려 지갑을 하나씩 샀다. 지갑을 걸어보니 배 쪽이 튀어나와 아무래도 보기는 흉했지만 돈 잃어버리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 계속
첫댓글 저의 큰 아들이 들어간 S대는 수원대를 말합니다. 큰 아들은 수원대 건축공학과에 들어왔다가 1년을 마치고 외국어대 경제학과로 편입하였습니다. 큰 아들은 외대 졸업후, 여러 회사를 거쳤습니다. 한빛소프트, 타파웨어, 삼성전자를 거쳐 지금은 다단계회사로 알려진 암웨이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큰 아들은 2009년 10월에 라비돌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했는데, 믿기지 않겠지만 결혼식 비용은 밥값, 꽃값 모두 포함하여 1000 만원이 들었습니다. 호화결혼식이 요즘 문제인데, 여러분께서도 한번 라비돌 결혼식을 대안으로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큰 아들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으므로, 저는 손자가 2명이나 되는 할아버지네요.
그러셨군요..
손자가 둘이시라니, 축하드립니다!
영아가 어문계열에 소질이 있습니다. 저도 아빠가 근무하는 대학이라 나름 자랑도 하더군요. 진학이 얼마 안남았는데 수원대에 진학했음 하는 바램입니다. 교수님 글보고 용기내어 추천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