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1862∼1918)
파리 교외의 작지만 아름다운 전원도시 상 제르망 안 레이라는 곳에서 드뷔시는 대단치 않은 도자기상을 하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자 아버지는 장사를 그만두고 회계원으로 취직했다. 집안이 어려워 아홉 살의 그는 동생들과 함께 칸느에 사는 숙모에게 보내졌다. 햇빛이 눈부신 그곳 지중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은 후일 <바다>라는 음악으로 표현된다.
넉넉지 못한 집안에서 자라면서도 그는 약간 유별난 구석이 있었다고 한다. 같은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고 과자를 사먹을 때면 양은 적더라도 꼭 비싼 고급과자를 사서 혼자 먹곤 했다는 것이다.
양친은 아들을 음악가로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일찍이 그의 악재를 발견한 모테라는 부인의 권유로 드뷔시는 파리 음악원에 들어갔다. 11세 때의 일이었다. 음악원의 아카데믹한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그는 학업을 팽개치고 멀리 찬바람이 몰아치는 모스크바로 갔다. 그 곳에서 또 그는 차이코프스키의 재정 후원자였던 폰 메크부인댁 자녀들의 피아노 교사로 드나들게 되었다. 그러나 얌전히 피아노나 가르칠 드뷔시는 아니었던지라 묘령의 그 집 큰딸을 좀 집적거리다 들통이 나 쫓겨나고 말았다. 그 곳에서의 소득이라면 처음으로 접한 러시아 음악과 집시 음악에서 큰 감흥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음악원에 입학한 지 10년 만인 1883년 그는 로마대상 2위를 차지해 1885년 로마로 유학을 떠났다. 순수한 프랑스 기질의 소유자인 그에게는 로마에서의 생활이 썩 흡족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파리로 돌아온 드뷔시는 상징파 시인 말라르메의 집에서 열리는 집회를 통해 인상파 화가들과 사귀면서 그들의 노선에 따라 자기 음악을 전개하여 완성시켰다. 세인들이 그의 음악을 ‘인상주의 음악’이라고 하는 것도 거기에서 연유한다.
1888년과1889년, 두 번에 걸쳐 독일 바이로이트로 가서 바그너의 음악을 접하고 그는 한때나마 열렬한 바그네리안이 되기도 했다. 얼마 후에는 곧 이탈해 오히려 저항하는 자세를 취하지만, 1889년에는 바그너 이외에도 그를 몹시 자극한 사건이 또 하나 생겼다.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참가한 자바,캄보디아 등 동양의 음악을 접하고 그 신선한 매력에 홀딱 반한 것이었다. 그는 낭만파의 다른 많은 작곡가들처럼 단지 이국적인 분위기에 일시적으로 끌린 것이 아니라 대담하고 거칠 것 없는 음악적 표현에 사로잡힌 것이었다. 한편 16세기경 프랑스 옛 음악의 거장들이 남긴 작품들에서 진짜 프랑스 정신을 포착할 수 있었으니, 이제 드뷔시 예술을 형성할 조건을 다 갖춘 셈이었다.
드디어 1892년, 그 모든 것들이 뭉뚱그려져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으로서 표출되었고 이듬해, 역시 유명한<현악 4중주>가 태어났다.
걸작들을 속속 내놓는 가운데도 그의 명성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고 생활 또한 궁색했다. 그는 반주나 편곡 따위 일로 연명했으며 평론가로서 약간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음악보다 문장 쪽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금세기로 접어들어 그는 10년에 걸쳐 작곡한 오페라 <펠리아스와 멜리잔드>를 세상에 내놓았다. 몽환의 세계로써 인상주의를 극명하게 보여준 이 명작은 초연 때부터 한바탕 소동을 불러일으켰다.
원래 이 가극의 대본은 <파랑새>로 유명한 벨기에의 연극작가 메테를링크의 상징주의 연극에서 제재(題材)를 얻어 만든 것이었다. 초연에서 애초의 약속대로 배역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가극의 내용도 원작과는 거리가 멀도록 손질한 것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메테를링크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드뷔시의 집까지 쫓아와 덤비는 바람에, 그는 의자 뒤에 숨어 간신히 난을 피했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드뷔시는 타고난 청개구리와도 같은 저항정신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앞둔 암울한 시대의 유럽 중심에서 혼자만의 꿈속을 살다간 작곡가라고 볼 수있다. 그가 키운 후배는 한 사람도 없었다. 전쟁중에도 그는 세 곡의 소나타를 쓰고 1918년 3월 25일 밤.독일군의 폭격이 맹위를 떨치던 파리에서 56년의 생을 마쳤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Pr lude I'apr s-midi d'un faune
프랑스의 시인 말라르메의 상징시에서 만들어진 이 곡은 드뷔시의 위치를 확고부동케 한 명작으로, 1892년 30세 때에 작곡하여 그 이듬해에 초연되었고, 당시의 파리 사람들은 이 곡에 흥분하여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어쩐지 나른한 여름날의 오후. 시칠리아 섬 해변의 숲이 우거진 그늘에서 졸고 있던 목신 포느 (머리와 몸통은 사람이고, 그 아래는 짐승처럼 생겼음)는 꿈처럼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나무 사이로 목욕을 하고 있는 요정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자신도 모른다. 목신은 저편에서 흔들리는 하얀 것에 감정의 불꽃을 태우며, 또한 이전에 숲이나 샘가에서 보았던 요정을 상기하면서, 달려 나아가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환상 속에 껴안는다. 일어나는 몽롱한 욕정에 빠지는 관능의 즐거움. 이윽고 환상의 요정은 사라지고, 망연한 권태가 상쾌하게 그의 마음을 감싼다. 목신은 또다시 오후의 고요함과 그윽한 풀내음 속에 잠들어 버린다.
처음에 주요 주제가 플루트로 연주되고, 이어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이것을 발전시키며, 하프가 가볍게 맞장구를 친다. 여름날에 가벼운 미풍이 나뭇잎을 흔드는 느낌이다. 베일을 쓴 듯한 분위기로 플루트와 첼로가 그것을 연출한다. 멀리 메아리치는 호른의 울림에 하프가 조용히 화답하고 있다. 목신 포느의 꿈길일까? 작은 심벌의 잘게 새기는 타음(打音)이 리드미컬하게 울리며 폼페이의 옛 무곡을 본뜬 정취를 그리는데, 이윽고 얼마 후 제 1주제가 약음기를 단 현악기에 의해 재현되며 조용히 마친다.
세 개의 교향묘사곡 「바다」 "La Mer" Trois esquisses symphoniques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완성한 이듬해인 1903년에, 드뷔시는 그 전부터의 계획이었던 「바다」의 작곡에 착수했다. 그리고 1905년에 완성하여, 같은 해 10월 파리에서 초연했다. 드뷔시는 당시 엠마 발다크 부인과 연애에 빠졌으며, 그 때문에 아내 릴리는 자살을 꾀했다. 그러한 일로써 주위로부터 차가운 눈총을 받았는데, 클로드 엠마라는 딸을 얻고 나서 심경도 가라앉아 제작이 진척되어서, 1905년에 「바다」는 완성되었다.
제 1악장 바다의 새벽부터 낮까지. 물소리 외에 암흑의 바다에는 신비가 깃들고, 밤의 장막이 천천히 내린다. 태양의 희미한 줄 하나가 동쪽 하늘에 방사되어, 이윽고 물에 반영한다. 밝아지는 수평선과 새벽의 구름을 물들이는 빛, 그 빛이 비치는 해면. 하늘은 연분홍에서 보라빛으로 햇빛을 받아 차츰 개어 간다. 넓은 바다, 잔물결도 보이지 않는 조용하고 온화한 바다.
제 2악장 파도의 장난. 밀려 왔다가 밀려 가는 물결이 즐겁게 장난치듯이 변화하며 우아하게 흔들린다.
제 3악장 바람과 바다와의 대화. 불길하게 울리는 천둥 소리. 질풍에 채찍질을 당해 소용돌이치는 파도. 치닫는 백마처럼 사납게 부는 바람. 거치른 하늘과 물과의 대화. 이윽고 큰 바람이 지나가며 조용한 세계가 나타난다. 바람과 물결의 즐거운 장난을 부드럽게 그리고 거칠게 묘사한다.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어린이 세계」Children's Corner Suite for Piano
딸에게 선사한 작품으로, 그의 동심과 자식에 대한 어버이의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무소르그스키의 『어린이 방』을 읽고 이 곡의 작곡을 착상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른이 본 어린이의 세계가 아니라, 어린이가 그려서 어린이의 마음에 떠오른, 어린이가 본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 박사 클레멘티가 지은 같은 이름의 피아노 연습곡을 달리 해석해서 표현한 것으로, 운지상의 기교를 다루었는데, 그것을 천진난만하고 우스꽝스러운 맛을 섞어서 만들어냈다.
코끼리의 자장가 크고 온순하며 익살스러운 코끼리. 그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어린이의 기분을 조용한 자장가로 나타내고 있다.
인형에의 세레나데 둥글고 귀여운 눈, 미소를 띤 입술. 어린이다운 애정이 표현된다.
눈이 춤추고 있다 따뜻한 방에서 어린이들이 유리창 너머로 내리는 눈을 보고 있는 정경인데, 펑펑 내리는 눈의 느낌을 즐거운 가락이 가볍게 노래해 간다.
어린 양치기 우리에서 풀려난 양떼가 목장의 어린 풀의 냄새를 맡으면서 꽃과 미풍 속을 거닐며 돌아다닌다.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 곱술머리에다 입술이 튀어나온 흑인 인형 골리워크는, 관절이 어그러져서 중풍에 걸린 것처럼 걷는다. 가락이 맞지 않는 이상한 모습으로 뛰기도 하고, 날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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