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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비유
욥 17:9,2023.06.11.늘찬양교회
욥기 17:9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제 아내가 손가락 수술을 지난주에 했습니다. 오른손 왼손 합쳐서 벌써 3번째 수술입니다.
몸의 연약함으로 인한 부작용이기도 합니다만 그만큼 수고로움을 거쳤다는 것을 대변합니다. 손이 부실하면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몸의 지체 중에 손 외에도 머리, 눈, 발, 코, 입 등을 비롯해 많은 육체의 장기들이 있습니다. 제 주위에 나이가 들어감에 서서히 육체의 여러 부분이 고장이 나서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하며 많은 시간과 돈을 쓰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려움을 당하기전에 주님께서 주신 손과 발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은 손의 비유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Ⅰ. 일하는 손
일하는 손이 아름답습니다. 일하는 손은 창조와 발전의 손이고, 성실과 겸손의 손이며 진실과 순수의 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고 자유를 누리며 생각하고, 사랑하고, 소망을 품고 기쁨을 얻는 것은 우리의 일하는 손 덕택입니다. 책을 펼쳐 든 학생의 손,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주부의 손, 서류를 준비하고 제품을 만드는 직장인의 손, 뜨거운 용광로에서 철을 녹이는 주물의 손, 학교 앞 건널목에서 아이들의 등교를 돕는 봉사의 손,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청소부의 손...각종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는 손으로 말미암아 경제성장을 이루어가며 세상이 밝아지는 더불어 그 사람의 삶이 아름다워집니다.-정용철님의 "언제나 그대가 그립습니다" 中에서-
데살로니가후서 3장 8절을 보면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다음 10절을 보면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그리고 12절을 보면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자비량 선교를 하였던 인물입니다. 낮에도 일하는가 하면 심지어 밤에도 부지런히 일하면서 틈틈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저 역시 일하는 목회자입니다. 그래서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성도 역시 부지런히 일해야만 합니다.
특별히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10절)는 말씀은 그 당시 주의 재림이 곧 이루어질 텐데 일해서 무엇하고 공부해서 무엇하냐고 말하며 놀고먹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하기 싫어하는 저들에게는 먹지도 말게 하라는 뜻입니다. 사지가 멀쩡하고 젊고 일감이 있는데도 왜 일하지 않고 남에게 신세를 지고 폐만 끼치며 사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일하고 스스로 벌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미국에 삼림 왕 심프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무 없는 산에는 나무를 심어서 잘 기르고, 나무가 있는 산에는 나무를 잘 가꾸어서 끝도 없이 울창한 삼림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한번은 고아원에서 함께 자랐던 친구가 거지꼴이 되어 찾아왔습니다. 반갑게 만나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들어보았더니 보는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삼림 왕이 그 친구에게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하면서 자신에게는 끝도 없는 삼림이 한두 개가 아닌지라 이것을 모두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인지도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친구에게 이렇게 돈 벌고 싶지 않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말하기를 자신도 그러고 싶지만 이렇게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느냐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희망이 없는 까닭에 돈이 생기기만 하면 술을 마시고 싸움을 하면서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심프슨이 친구에게 권면하기를 첫째, 주일을 반드시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많이 벌든 적게 벌든 꼭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였고 셋째는 힘든 일이든 쉬운 일이든 월급을 적게 주든 많이 주든 닥치는 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돈을 벌지 못하면 그때에는 자신의 재산 절반을 줄 테니 찾아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친구가 그 말을 듣고 신이 났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가 붙었습니다. 거기에 적힌 대로 철공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일하겠다고 하였으니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주일은 꼬박꼬박 교회에 나갔고 주급을 받아서는 십일조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술은 전혀 입에 대지도 않습니다. 그랬더니 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한결같았습니다.
그래서 사장이 그 사람에 대해서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뉴욕에 큰 철공소 지점을 낼 때 그 사람을 지점장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열심히 일해서 이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러자 그 철공소 주인이 그 사람에게 뉴욕지점을 완전히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삼림 왕 친구 앞에 부자가 되어서 나타났습니다. 그전에는 빈둥거리며 돈이 생기면 술만 마시면서 거지꼴이 되었지만, 나중에는 열심히 일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십일조 생활을 착실히 하고 근면의 생활을 하다 보니 그렇게 성공하였던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바로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즉 근면하면서 부지런한 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Ⅱ. 기도하는 손
‘기도하는 손’이라는 명화가 있는데 요즘은 목각으로도 조각되어 시중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원래 이 그림의 제목은 ‘사도의 손’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종교개혁 당시 독일에서 활동한 ‘알브레히트 뒤러’라는 화가로서 뒤러가 청년 때 시골의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와 함께 그림 공부하기 위하여 도시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일하며 공부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친구가 뒤러에게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내가 일을 해서 돈을 벌 테니 자네가 먼저 그림 공부를 하게. 그리고 자네가 공부를 마치면 그다음엔 내가 그림 공부를 계속하겠네.” 친구의 말을 들은 뒤러는 그럴 수 없노라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둘 다 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진심으로 애원하는 친구의 청을 끝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인 뒤러는 친구가 벌어준 돈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드디어 작품을 팔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작품이 처음 팔리던 날, 뒤러는 기쁜 마음으로 친구에게 그림 공부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대답하기를 “나는 이미 노동일로 손이 굳어져 그림을 그릴 수 없으니 자네나 계속해서 공부하게.” 친구의 손은 그간의 힘든 노동으로 말미암아 손가락이 휘고 굳어져 더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뒤러는 커다란 슬픔에 빠졌습니다. 친구의 희생으로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이루어 냈지만, 친구는 자신 때문에 그의 꿈을 접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친구의 집에 예고 없이 방문한 뒤러는 친구가 그 무디어진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친구는 뒤러가 화가로 성공한 것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뒤러는 자신을 위해 노동으로 거칠어지고 휘어진 친구의 기도하는 손이 사도의 손처럼 거룩하게 여겨졌고, 뒤러는 감동 가운데 그 손을 화폭에 옮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 된 것이 ‘기도하는 손’입니다.
‘킬링필드’라는 영화에 보면, 공산진영의 학살자들이 잡혀 온 사람들의 손을 보고서 노동자인지 지식인인지를 가려내어 처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읽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손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자신의 손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기 바랍니다. 수많은 손금과 주름들과 상처들... 여러분의 삶의 흔적이 바로 손에 담겨 있듯이 그동안 드렸던 기도의 모습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기도는 아니었는가?(눅 18:11)를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진정한 기도는 십자가의 희생과 섬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Ⅲ. 치유의 손
예수님은 사람의 질병을 고쳐주실 때 손을 펴시고 만져주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그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광야에서 손을 들어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나누어 줄 때는 5천 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를 남기는 풍요의 손이 되셨습니다. 귀먹고 어눌한 자에게는 직접 손으로 만져주시며 “에바다”,“열려라” 명하시므로 귀가 열리고 혀가 풀어져서 말도 하는 치유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한량없으신 그의 자비와 인자와 권능의 표현이었으며, 사랑과 구원의 역사요 위로와 평화의 선포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선한 목자는 그 손으로 그의 양들을 먹이고 인도하며 보호해 줍니다.
더불어 제자 베드로와 요한은 합력하여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며 오른손을 잡아 일으킬 때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행 3:6-10)
평신도 집사였던 빌립이 복음의 사각지대인 사마리아 땅에 들어가 복음을 증거 할 때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들이 고침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초대교회가 부흥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행 8:4-13)
그뿐만 아니라 70인의 전도대원들이 합심하여 능력을 행할 때 “귀신들이 항복하는.”(눅 10:17)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눅 10:19),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5-18)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도의 효율성을 위해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까지 부어주셨습니다. 하지만 귀신을 내어 쫓고 병든 자를 고치는 치유기적을 행하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는 사도행전 10장 20절의 말씀을 기억하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야 합니다.
Ⅳ. 보이지 않는 손
마태복음 6장 3-4절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 앞에 교회의 이미지는 어떻게 비쳐야 합니까? 작은 예수로 비쳐야 합니다. 교회를 드나드는 모든 성도는 작은 예수로 세상 사람 앞에 비쳐야 하는데, 그 작은 예수는 어떤 모습입니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이웃과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구제와 선교라는 이름으로 예수님보다 교회 이름을 자랑하려고 하는 모습이 한때 대유행했습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외식을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존경을 받으면 하나님의 상을 잃어버립니다. 예수님은 일평생 가난한 자, 병든 자, 어려움 당하는 자들 편에
서서 그들의 팔과 손이 되어 주셨습니다.
자부를 둘 가진 시아버지가 계십니다. 큰 자부는 그런대로 아들이 잘 벌어서 잘 사는데, 둘째 자부는 아들이 잘 벌지 못해서 늘 가난하고 생활에 쫓깁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 때문에 항상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런데 큰 자부가 남모르게 자기 동서를 돕는 것입니다. 동서를 불러서 위로하고, 남모르게 음식도 나누어 먹고, 필요할 때는 돈도 보태주고, 애들 학비도 좀 주고, 남모르게 큰 며느리가 자기 동서에게 자꾸 그렇게 해주는 것입니다. 시아버지는 모른 체하지만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큰 며느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큰 며느리를 부릅니다. "얘야, 여기 한번 앉아 봐. 네가 하는 일을 내가 다 알고 있어. 너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 우리 집에 너와 같은 며느리가 들어 온 것을 나는 행복하게 생각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해야 해. 네가 하는 일이 정말 고마워서 내가 조금씩 조금씩 준비를 하고 숨겨 놓은 게 있는데, 오늘 그것을 너한테 주려고 한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서 며느리에게 주었습니다. 며느리가 놀랬지요! 자기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시아버지에게 보고한 일도 없고 또 모르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 다 알고 계신다고 합니다. 얼마나 감격했을까요? 은밀히 보시는 자기 시아버지의 그 정성에 감동하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가 방에 들어가서 열어 봤더니 천만 원짜리 수표가 2장 들었습니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럽겠습니까? 여러분,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이 은밀히 구제하는 자를 마음에 두셨다가 상을 주신다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그 상을 받으면 얼마나 기가 막히게 행복하겠습니까? 예수님도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고 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손의 본은 예수님의 손입니다. 그 손에는 못 자국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희생을 드러내는 손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야에 물을 담아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섬김의 손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행복과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 주는 손이 되기를 원합니다.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저는 오늘 일하는 손, 기도의 손, 치유의 손, 보이지 않는 손 4가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손에 대하여 더 많은 비유를 밝힐 수 있으나 최대한 줄인 것입니다. 그리고 4가지 손의 핵심 비유는 은밀함입니다. 손과 팔은 밖으로 드러납니다. 손과 팔이 움직이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상급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철저히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상을 받은 사람들은 천국 가서 받을 상급이 없습니다. 일하는 동기, 기도의 동기, 치유하는 동기, 섬김의 동기가 항상 순수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순수함과 깨끗함은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 안에서 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주님의 사랑에 목말라하며 십자가를 전하는 복음의 사랑꾼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