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는 尙州 땅. 이 땅을 지나는 백두대간은
보통 생각하는 대간과 다른 지형이다. 남원땅 운봉
구역의 지형과 흡사하고 밋밋한 야산의 형세로다.
추풍령에서 피앗재까지가 그러하고 특히 이번 구간은
밋밋하다 못해 논, 밭, 동네길이 혼재된 마루금이다.
특히, 마루금이 상주땅 안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만추에 고즈넉한 상주땅을 밟으며, 대간길 대사들의
심경을 생각한다. 대간 순례는 에트랑제의 고독과
방랑이 심연에 깔려 있을 수 밖에 없다.
성직자처럼 나무나 돌같이 정좌 속에서 삶의 가치를 추구했던
靜的인 사회는 낙엽처럼 흘러가고 눈부시게 변화하는
動的 삶 속의 세상이 도래했다.
럭비나 아이스하키 같은 치열한 경기 중에 고독을 절감해야
하는 순간의 삶이다. 따라서 대사들은
마루금을 걷으면서 삶을 망라해야 하는 것,
걷는 것이 사는 것, 걷는 것이 생산하는 것,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걸으면서 실존의 가치를 맛 보는 것이다.
걷기는 삼신 할머니를 찾아 헤매면서 영혼과 交感하고 안식을
기원하는 과정이다.
내 존재를 느끼고 의식하고, 걷는 과정에서
돈오돈수의 깨달음이 있다. 세상은 움직이는
物理를 현현한다. 우주의 태양계에
속해 있는 지구는 자전과 공전의 운동 법칙하에서
인간의 생명과 삶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어느 때처럼 23시가 넘어서 서울을 출발
지난번 구간 마무리 지점이자 이번 시작 지점인
개머리 고개에 도착한 것이 다음날 새벽 3시경였다.
: 이 곳은 상주시 모서면 대표리(大杓里)와 소정리(召井里)의 경계 :
날씨가 쌀쌀한 고로 5시경에 출발했다.
비소식 때문인지 사방이 우울 침침한 분위기 속에서
금강과 낙동강의 水界 지점을 뒤로하고 개짖는
마을(원소마을)을 지나 야산 속으로 침투했다.
새벽 별빛은 구름 위에서 반짝이고 주변은 전등불이
별처럼 시위를 비추고 우리들의 행열은 뱀처럼
유연하게 구불구불 움직였다.
이러한 산길을 반복으로 걷다 보니 설레임이나
경계심이 사라지고 기분도 덤덤해졌다. 또한,
산책길 걷듯이 걷다보면 따분한 마음이 들고
지루하기도 했다. 개소리를 멀리하고 1시간 정도를
무심하게 걷다보니 지기재 고갯마무가 나타났다. 낮은
구릉지대의 나무 숲길을 걸어 왔다.
논밭이 있고, 잡목의 산이 펼쳐진 상주의 大地는
평화스럽다. 산악 지대의 억센 기질이나 평야의 활대한
야성적 기질이 아닌 온유한 성품을 지닌 선량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기운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산길을 2시간 정도
무리 없이 걷다보니 화동면 소재의 신의터재(일명 어산재)
에 도착했다. 팔음산 포도를 자랑하는 광고판이
여명 속에 을씨년스럽다. 어둠이 걷히고 주위가
서서히 밝혀질 무렵, 신의터에 대사들은
天安스러웠다. 갈증을 해갈하는 사람, 주저 않아
숨을 고르는 사람, 중얼중얼 염불하 듯 말하는 사람,
오줌을 누는 사람, 大字로 두러 누운 사람, 자기 맘대로
자유 공간을 보냈다. 이런 순간순간의 때가
좋다. 자기만의 자유 행위가 인간에 충만된 찰라가
행복이다. 순간의 해방감이야 말로 영적 교감이로다.
마을 가는 농노길을 따라 가다가, 고개마루에서 오른쪽 산길을
따라 들어 섰다. 왼쪽편으로 농가들이 새벽 그림처럼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런 시간 이런 절경을
보느라면 어린 시절이 떠 오른다. 무엇인가 부족하고
불만스럽고 그래서 자유스럽게 살고픈 순간 하루 하루의
틀 속에 억제되였다고 느낄 때의 고독,
아직도 나는 세상의 틀 속에서
허우적 거린다. 틀 속에 갇히어 꼼작 못하고 있으니
허무할 수 밖에...
437 봉우리 자락에 도착해 아침을 했다. 아침을 차리던 중
앞산 나무들 시이로 뻘겋게 달아오른 아침해가
떠 올랐다. 날이 흐리고 맑지 않으니
햇살은 없고 둥근 모습이 떠 올랐다. 높은 산일수록
청명한날일수록 햇살은 부시고 빛난다. 저 멀리서
해가 뜨고 눈이 부시도록 떠오른다. 심총무의 착상으로
조별로 먹걸이 준비를 하기로 했던 탓인지는 몰라도 음식
준비가 풍성했다. 가지 수도 많고, 별미도 있었다.
야외에서 추위를 이기는 방법으로는 뜨거운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이 上策이다. 뜨거운 라면 국물과 겯들여
먹으니 이 또한 一品이로다.
일하고 먹는 기쁨 땀흘리고 배불리 먹는 일이 삶의 즐거움이다.
'백장청규'는 하루 일하고 먹는 것이 日常이라고
(日事日食).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역설도 있다. : 백장 스님의 규율은 선불교
생활에 일대 革新을 일으켰다.
우리는 상주시 화서면과 화동면의 界를가고 있었다.
이번 구간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 윤지미산(538m)을
오르는 길은 땀이 났다. 어느 구간이건 가장 높은 봉우리를
오를 때는 어렵다. 더우기 걷기 중 후반부에 오르는 것은
몸을 더욱 지치게 한다. 윤지미산 정상에서
함께 모여 정상주를 했고, 산상시회를 열었다.
누군가 詩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가 신문을 읽다가 재미있기에 여백을 채울까
생각하던 감태준의 시로 대체했다.
심총무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취흥 돋구는
말이 생각나 술시를 챙겼던 것이 대중을 폭소시켰다.
바쇼의 하이쿠 한 수를 생각했다.
"한 해 저무네
머리에는 삿갓쓰고
짚신을 신으면서"
- 정처없이 떠돌다보니 한 해가 저물었네.
사람들은 송구영신 하느라 바쁘건만
이 몸은 삿갓쓰고 짚신신고 한 해를 맞는구나. -
가파른 내리막 길을 내려왔다. 비탈길에 나무들이
서 있는 모습은 이 시대 민중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연상시켰다.
비탈길의 나무는 고통스런 환경에서 굿굿이 살아서
산사태를 막고 산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한다.
산을 보면 볼수록 變化 無雙하다. 奇奇妙妙, 緻密精巧하다.
四季에 따라 똑같이 변하는 것 같지만 되풀이되는
가운데 질적 변화는 심오할 뿐이다.
E.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무한한 대화이다.'했고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多環적 변화 과정이라고.' 했다.
자연의 변화 또한 시간의 흐름 따라 다양하게 변한다.
그것을 보고 느끼는 자, 諦觀의 멋을 아는 자이로다.
비탈길이 다한 곳에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를
잇는 25번 국도가 우리를 반겼다. 화령재(火領)에
도찰 이번 구간 종주를 마무리 했다.
남은 글
내가 좋아하던 개, 비글을 잃었다. 강민이가 엄마를
위해 키웠던 개이다. 강민이 외국가고 정곤이 군대가 이후
그 싫었던 개가 정이 들었다. 미운정 고운정이 쌓였다.
밖에서 뛰기를 좋아했고, 모습도 스마트했다.
사냥개의 근성은 사냥 대상으로부터 자기 노출을 최소화하려고
했고, 자기 냄새를 억제하려고 한다. 그래서 똥만 보면
딩굴어 똥을 묻힌다. 나는 그것이 싫어서 야단을 쳤다.
어느날 똥을 묻혀 야단을 쳤다. 먼저 집쪽으로 달려 갔다.
언제나 그리듯이 집근처에 있으려니 했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개을 잃고 회한에 젖었다. 개는 개의 본성대로 사는 것이
자유롭고 행복한 것인데 나는 개가 사람 뜻을 따르라고
강요했다. 얼마나 내가 어리석고 미련한 인간인가를 괴로워했다.
며칠 전 숲과 나무연구회 모임에 갔다. 작품 수상식이
있었다. 제천 산 속에 살고 있다는 작가가 수상했다.
'바보 이반의 山 이야기'를 쓴 최성현이란 분이
수상 소감을 했다.
나무, 풀, 꽃, 새, 야생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인데
山의 질서답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山에서는 서로 잘난 체 못난 체 싸우고 착취하고들 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서로를 존중하면서 살아간다. 서로 돕고 진실한
대화를 하고 화목하게 살아 간다. 사람들이
욕심스럽게 살아가는 질서하고는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어눌하게 뒤죽박죽스럽게 말했는데... 끝나고 나니
자연스럽게 명상, 그리고 평화가 나에게 찾아 왔다.
아직도 그 소리와 그 모습 그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비글이를 생각하고 바보 이반을 보면서 세상은
平和로다 라고 사색했다. 개는 개의 본능대로
나무와 풀은 종족 번식의 법칙대로 살아가면 평화로운 것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平和이다. 미래의 인간 삶은 平和 만들기다.
예수의 사랑, 부처의 자비, 공자의 禮는 모두 평화로운 질서다.
平和는 의식주의 상호 균형 있는 나눔이다.
禾(쌀)를 平(골고루 나누어)하게 口(먹는 것)이다.
산의 나무와 풀들 같이 서로 돕고 사이 좋게 사는 것
이것이 우리들의 원초적 삶이였도다.
첫댓글 10년이 훌쩍이라 ㅡ 무상하다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