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점
스토리는 스스로 말하지 못한다. 즉 이야기를 말하는 어떤 사람이 그것을 말하기 위해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 장면 안이나 밖에, 그가 서 있는 지점을 통상 시점이라 부른다. 결국 시점은 이야기를 어떤 위치나 각도에서 보고 말하는가와 관련된 문제이다. 시점은 동시에 대상과의 거리와 결합된다. 예를 들어, 묘사에서 대상을 어떤 각도에서 관찰하여 그려내는가에 따라 거리의 양상도 달라진다.
1) 시점을 고정시켜두고 사물을 미시적인 것에서 거시적인 것으로, 가까이에서 멀리로, 아래에서 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정태적으로 묘사할 수 있고(특정한 세부를 자세히 그려보일 때 적절하다),
2) 관찰자가 공간적으로 이동하는 시점의 동적 변화도 가능하며(이때 묘사의 진전을 빠르게 한다),
3) 대상에 대한 심리적 반응과 흥미, 관심의 차이를 드러낼 수도 있다.
통상 시점은 서술자가 텍스트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에 따라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으로 나눈다.
1) 1인칭시점은 다시 주인공 시점(서술자가 <나>이면서 주인공인 경우), 관찰자 시점(서술자가 <나>이면서 사건에 대한 단순한 보고자인 경우), 참여자 시점(서술자가 <나>이지만 주인공이 아닌 경우)으로,
2) 3인칭 시점은 전지적 시점(서술자는 문맥에 나타나지 않지만 작품 내용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관찰자 시점(서술자의 개입을 최대로 막으면서 극적인 방식으로 서술), 제한적 시점(인물의 의식의 흐름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경우)으로 나누기도 한다.
2. 대표적 유형
1) 일인칭 주인공 시점
<나>라고 하는 주인공이 자신의 육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사건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때로는 말하는 서술주체와 보고 있는 초점주체가 다를 수도 있다. 아래의 은희경의 소설이 그런 예에 속한다.
여자는 그것을 목에 둘러보고 결국 그것을 샀습니다. 저는 다른 스카프를 고
르는 척하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유모차에 앉아서 빤히 저를
바라보던, 토끼 모양의 목도리를 두른 아이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당
신이 지난달에 제가 모은 적금을 다 가져가셨다는 걸 이야기하려는 것도 아니구
요. 아닙니다. 그게 아닌데 글이 왜 이렇게 써지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제 느낌
을 숨김없이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래요, 집으로 돌아온 저는
새로 산 옷들을 옷걸이에 잘 걸었습니다. 바라보니까 참 좋았습니다. 저걸 입고
어딜 갈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갈 곳이 없었습니다. 제게는 저런 차림
으로 갈 곳이 없어요. 대리점도 그만두었으니까요. 저는 그래서 혼자서 그 옷을
입어보았습니다. 구두도 신었어요. 방안의 장판이 구둣굽에 상처입을까봐 조심조
심 걸어도 보았습니다. 저는 지금 그 옷을 입고 이 글을 씁니다. 이렇게 좋은 옷
을 입어보기는 정말 처음입니다.(공지영 [사랑하는 당신께])
내가 왜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삶이란 것을 의식할 만큼 성장하자 나는 당황했다. 내가 딛고 선 출발선은 아주
불리한 위치였다. 더구나 그 호의적이지 않은 삶은 내가 빨리 존재의 불리함을
깨닫고 거기에 대비해주기를 흥미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호의적이
지 않은 내 삶에 집착하면 할수록 상처의 내압을 견디지 못하리란 것을 알았다.
아마 그때부터 내 삶을 거리 밖에 두고 미심쩍은 눈으로 그 이면을 엿보게 되었
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삶의 비밀에 빨리 다가가게 되었다.(은희경 {새의 선물})
2) 일인칭 관찰자 시점
<나>라고 하는 주변인물이 자신이 관찰, 목격한 사실, 주인공의 이야기를 말한다. 이 경우, 비현실적인 사건도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이라는 점에서 믿을 만한 현실적인 사건으로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서술자의 관찰 대상인 주인공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다.
대구에서 올라오는 차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앉은 그를 매우 흥미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마기 격으로 일본 옷을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중략)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흠, 고향에서 오누마.' 하고 그는 '휘-'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그의 신세 타령의 실마리는 풀려 나왔다. (현진건 「고향」)
3) 작가 관찰자 시점(혹은 삼인칭 관찰자 시점)
작중인물로 등장하지 않는 서술자가 삼인칭으로 된 모든 인물에 대해 언급하는데, 자기의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외부적인 사실만을 관찰하고 묘사한다. 서술자의 관찰 폭이 제한되어 인물의 내면에는 들어가지 못하나 객관성 확보에 유리하다.
다음날부터 좀더 늦게 개울가로 나왔다. 소녀의 그림자가 뵈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있다. 소녀의 그림자가 뵈지 않는 날이 계속될수록 소년의 가슴 한구석에는 어딘가 허전함이 자리 잡는 것이었다. 주머니 속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한 어떤 날, 소년은 전에 소녀가 앉아 물장난을 하던 징검다리 한가운데에 앉아 보았다. 물 속에 손을 담갔다. 세수를 하였다. 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검게 탄 얼굴이 그대로 비치었다. 싫었다. 소년은 두 손으로 물 속의 얼굴을 움키었다. 몇번이고 움키었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고 말았다. 소녀가 이리 건너오고 있지 않느냐. (황순원 「소나기」)
4) 전지적 작가 시점(혹은 전지적 삼인칭 시점)
작중인물로 등장하지 않는 서술자가 삼인칭으로 된 모든 등장인물(<그> <그녀> <철수>)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때 보고 듣고 생각하는 시점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현실의 다양성을 수용해야 하는 장편소설에 적절하다.
끝선이가 바위 그늘에 숨어 있는 줄을 모르고 두만이는 징검징검 징검돌을 딛고 개울을 건너더니, 무슨 생각이 났는지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고의춤을 풀어 헤쳤다. 그리고 바지를 내리더니, 좍-- 물줄기를 뽑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저만큼 거리가 있고,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끝선이는 하마트면 오메나, 하고 소리를 지를 번했다. 얼른 모가지를 움츠리며 시선을 돌렸다. 두 손은 약간 떨리기까지 하며 매끈매끈한 부로찌를 대구 만지작거렸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입 안이 화끈화끈했다. (하근찬 [봄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