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평가에 다중 지능 이론 접목한 창동중 손지선 교사

[유담]

수행 평가에 다중 지능 이론 접목한 창동중 손지선 교사

모든 아이들이 MVP인 교실을 꿈꾸다

지필 고사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행 평가조차 획일화된 기준으로 시행하는 현실에서 '아이들이 잘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는 생각은 어쩌면 이상에 가깝다. 서울 창동중 손지선 교사는 이상을 현실로 끌어들여 아이들의,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의 수행 평가를 실시한다. 아이들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성과보다 참여가 중요한 수행 평가로 성적은 물론 아이들의 마음까지 보듬는다.

손지선(30) 교사는 2009년 2월, 우연히 발견한 서울 면목고 송형호 교사(본지 609호 테마 인터뷰)의 인터넷 카페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했다. 송 교사가 다중 지능 이론으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것."이거다. 싶었어요. 중학교보다 입시 부담이 큰 고등학생도 하고 있으니 중학교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했죠."그때부터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폴더 하나로 시작한 자료가 3월 학기를 시작할 즈음에는 폴더만 30~40개, 파일은 600개가 넘도록 쌓였다.

아이들은 모두 빛나는 보석이다

그렇게 안 모든 것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었지만, 신입 교사가 처음부터 하고 싶은 수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행 평가는 아이들의 컨디션이나 성격에 좌우되는 부분이 있어요. 수업 시간에 성실하고 잘하던 아이라도 수행 평가를 보는 날실수하면 그 아이를 평가해줄 다른 방법이 없어요. 실수하고 우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죠."
영어는 지필 고사 50%, 수행 평가 50%이니 수행 평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당연히 수행 평가를 놓치면 지필 고사로 좋은성적을 받기 쉽지 않다. 듣기 평가를 제외한 나머지 수행 평가(30%)만큼은 아이들의 능력 그대로 살려줄 방법을 도입해야겠다고다시 한 번 결심한 계기다.
"공부는 좀 못하지만 컴퓨터를 무척 잘하는 아이가 있었어요. 사교성도 떨어지고 교실에서 존재감은 없었지만, 숙제를 내주면 다른 친구들은 단순하게 하는 작업도 항상 동영상으로 만들어 제출했어요. 그 친구에게 동영상 교과서를 만들어보라고 했죠. 물론 기가막히게 만들어냈고요. 아이들 앞에서 그 친구 칭찬을 많이 해줬어요." 그 후 반 친구들의 시선이 달라졌고, 자신감을 얻은 아이는 친구들과 활발하게 어울리더란다. 그때 얻은 자신감은 대인 관계는 물론컴퓨터 분야 특성화고에 진학할 결심을 하게 할 만큼 진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요즘 아이들은 '쿨' 해요. 친구들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요. 성적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상대의 능력을 인정하다 보면아이들은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않죠."
손 교사는 서로 인정하다 보면 왕따 현상이 없어지고, 당연히 학교 폭력도 줄어든다고 말한다. 실제 손 교사가 3학년 담임을 맡은 2013년에는 중3 전체가 학년 초 단순 사건 한 번 외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한 번도 열리지 않을 만큼 안정적인 학사 일정을 보냈다.

우아한 백조일수록 발짓은 바쁘다

손 교사를 만나러 간 날. 3학년들은 졸업 고사까지 마친 터라 손 교사의 수업을 직접 볼 수 없었다. 동영상을 통해 본 손 교사의 수업은 아이들에 의해 진행되는 듯했다. 정작 선생님은 옆에서 지켜보거나 간단하게 조언해주는 모습이 전부일 만큼 한가해 보였다.
"1년 동안 진행할 수업을 학기 시작하기 전에 준비해요. 아이들의 반응까지 생각하며 수업을 짜죠. 이렇게 준비하지 않으면 다양한 수업 진행은 불가능해요. 수면 위 우아한 백조도 물밑에서는 쉼 없는 발짓을 하듯, 수업 시간에는 한가해 보여도 이런 수업을 위해 이외 시간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죠. 하하."
다른 학교에서는 비중이 50%인 수행 평가를 1~2차례 실시한다면, 손 교사는 1~2점짜리 수행 평가를 수십 회 실시한다. 수업 시간에 하기보다 숙제를 내주는 형식. 아무리 내용이 단순해도 마감에 맞춰 내기만 하면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우수함' 보다 '성실함' 과 '관심' 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 흔히 수행 평가를 '건너뛰는' 버릇이 있던 학생들도 제출만 하면 점수를 받을 수 있으니 관심을 갖고 당연히 성적도 오른다.
중3이면 고등학교 입시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수십 번 수행 평가를 준비하다 보면 불만을 나타내는 학생이나 학부모는 없었을까?"단어 그림책을 만들면서 단어를 외우고, 스토리텔링 책을 만들면서 교과서를 수십 번 읽죠. 동영상 교과서를 제대로 만들려면
그림과 소리를 맞추기 위해 셀 수 없이 오디오를 들어야 해요. 수업 진행을 하려면 참고서의 문법 내용을 안 볼 수 없죠. 또 연극을 준비하려면 대본 작업까지 해야 하니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공부를 저절로 하는 셈이에요."손 교사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영어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난다.

영어를 통해 인생을 배워라

손 교사는 중학교 영어 교육의 목표는 '영어는 재미있는 것, 해볼만한 것' 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든언젠가 한 번은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시기가 오고,중학생 때 느낀 '재미' 가 영어 공부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가되면 충분하다고. 한 예로 올해 수능에서 영어 만점을 받은 한 제자는 중3 때 만났다.
성적은 하위권이지만 음악과 기타,노래에 관심과 재능이 있고, 사람들에게 주목 받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영화OST를 수업 시간에 불러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축제 때는 밴드를 결성해 공연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졸업할때는 같은 반 친구들과 영화도 한 편 만들었고요." 이런 과정을 통해 생긴 영어에 대한 흥미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공부에 몰입하는 가장 큰 동기가 됐단다.
제대 후 아르바이트로 학생들을 가르쳐 뒤늦게 교사의 길을 결정했지만, 손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수업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아이들을 좀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학습 방법과 특성이 잘 드러나 많은선생님, 학부모들과 공유하고 싶은 바람에서다. 영어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인생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손 교사는 3월 첫 수업 시간이면 자신의 명함을 나눠주고, 아이들도 직접 명함을 만들어보게 한다.
그 안에서 아이들의 꿈을 들여다보고,응원하고 싶어서다.인터뷰를 마칠 무렵 손 교사는 이 한 마디를 꼭 넣어달라고 했다.
"최고가 아닐 수도 있지만, 제 수업은 최선입니다."나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아이들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은 손 교사의 자신감을 응원한다.

다중 지능 수행 평가,
최고의 성과는 '자신감'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 지능 이론을 수행 평가에 어떻게 적용하나?

인간의 능력에는 언어, 음악, 공간, 신체·운동, 인간 친화, 자기 성찰, 자연 친화, 논리·수학 지능 등 8가지 종류가 있다. 각각의 지능 조합에 따라 다양한 재능이 나타나므로 종전의 지능검사만으로는 사람의 재능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다중 지능 이론이다.
이를 토대로 아이들 개개인에 맞춘 수행 평가를 기획한다. 교과서 단원별로 애니메이션이나 스토리 단어집을 만들고, 연극을 제작해 공연하거나 직접 선생님이 되어보게 한다. 단원마다 적합한 활동 내용이 있다. 모든 활동을 잘하지 못해도 아이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최고의 결과를 나타내고, 이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관건은 공정한 채점일 터. 어떻게 해결했나?

우선 수행 평가 방식을 3학년 전체가 통일했다.
아이들의 숨겨진 재능을 드러내자는데 선생님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 종전 수행 평가처럼 점수를 깎기 위한 방식이 아니라, 수많은 수행 평가로 점수를 쌓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제출 여부, 날짜 엄수등 지침이 있고 모든 학생의 상세 점수를 공개한다.

한창 사춘기인 아이들에게 새로운 수행 평가를 실시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하면 귀찮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아도 자기만의 능력을 가진 친구가 한 반에 한두 명은 꼭 있다.우선 그 아이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과제로 주고, 친구들 앞에서 많은 칭찬을 해주는 마중물을 통해 아이들의 관심을 끌어낸다. 아이들의 재능에 맞춰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관건이다.

다중 지능 이론을 부모들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들도 경험의 중요성을 안다. 문제는 '기왕 하는 거 다 잘하라' 고 강요하고, '부모가 원하는 것을 잘하기' 바란다는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낼 기회를 줘야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수용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학교 선생님과 많은 소통을 하는 것도 아이들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부모들이 모르는 아이의 여덟 시 간을 선생님들은 알고 있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