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강연시간에 맞추어 서울역에서 4시30분 ktx에 몸을 실었다.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물어물어 강연시작 시간보다는 늦은 7시 30분에 도착했는데 강연은 아직시작이 안되고 참가한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늦게 강연이 시작하자 우룹코은 강연장 뜨문뜨문 앉은 산악인들을 앞으로 모여 앉게 주문했다. 세계적인 산악인을 초청한 강연회장의 썰렁함에 괜히 대구산악인들의 의식을 원망함이 떠올랐다.
강연히 시작하자 우룹콥은 빠른 말로 스크린의 등반을 설명해 나갔고 그의 열정이 타올랐다. 19세 등반을 시작해서 히말라야14봉을 오르기까지 그의 등반역사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14봉은 그의 등산사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가 늘 2천에서 시작해서 3,4,5,6 또는 7천에서나 산을 오를때 늘 새로운 루트를 통하여 알파인스타일로 올라 갈 곳을 찾아 도전하듯이 8천미터도 새로운 루트로 올라가는 것이 그의 등산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는 스포츠개념의 등산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스포츠개념에는 정해진경기시간과 규정과 규칙과 상과 관중이 없었다. 그는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한정된시간과 틀에 가두는 한정된규칙과 관중을 의식하는 방식등을 벗어난 자유로운 시간과 자기만의 선택으로 그때그때 루트가 변경되어 새롭게 오르고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산에 신루트를 내는 스포츠개념으로 무산소 알파인스타일의 산을 올랐다. 통역이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에 1부행사가 끝나고 질의시간이 주어졌다.
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그의 등반에 어떠한 질문도 불필요할 정도로 그는 완벽했다. 질문 조차가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14봉등반자가 많아 한국의 산악강국이라는 소리도 우물안에 개구리 소리였다. 14봉으로 한국의 위상을 올렸다는 그들3인과 오은선의 등반 논란이 왜이리 초라할까 생각하였다. 이어서 이어진 그의 트레이닝방법을 소개하는 15분 화면에 나는 그에대한 일말의 의심을 모두 놓아 버렸다.
신루트 알파인스타일 무산소로 그가 이룩한 등산업적은 지금까지의 그 어느 산악인보다 철저한 트레이닝으로 강한파워와 최대유산소과 고수의 기술등을 습득한 완벽한 도전이었다. 그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조금도 과시없는 겸손함과 명예,물질에 걸리지 않는 군더더기 없는 말과 몸매와 산을 좋아서 올랐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전율감이었다.
자정이 넘은 새벽 서울행 기차를 기다리며 동대구역의 차가운 바람이 나의 빰을 때린다. 서울역의 새벽 찬바람이 또한번 뺨을 때리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어디 어디 올랐다고 조잘거리는 산악인들이여, 침묵하라" "그리고 데니스 우룹코 강연을 듣지 않고 산을 논하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