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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무예 제작’ ‘전혀 다른 두 번의 합기도 통합 기회’ -최고 권력자의 지원 1972년전까지는 '합기도통합'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고 나는 서술한 바가 있다. 하지만 여러 과정속에도 통합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합기도1세대들이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지한재 총재는 청와대 경호실 사범으로 자기 임무에 서인혁 총재는 국내를 정리하여 모든 업무를 나한테 위임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나도 부산을 중심으로 열심히 합기도를 보급하고 관리하는데 전념을 쏟았다. 1975년 5월 1일 서울 '문화체육관'에서 합기도대회가 열려 나는 부산에서 버스 3대에 99명의 선수들을 대동하고 대회를 주관하였다. 그당시 대회는 3일간 합기도 시범을 진행하였는데 정말 선수들과 관장들의 열정이 대단하였다. 그때 문화방송(MBC)에서 촬영을 나와 3일간 계속을 녹화를 하여 갔고 5월 5일 어린이날 12시에 전국으로 1시간동안 대회녹화분이 방영되었다. 그 방송은 우리나라의 최고권력자 박정희대통령과 자제 지만군이 함께 시청을 하였고 대통령은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즉시로 중앙정보부장을 불러 "합기도는 대단한 무술이다. 합기도를 키우고 서인선관장을 중심으로 '호국무예'라는 영화를 제작해 보라"고 지시하였다. 나는 중앙정보부와 영화제작소의 협력으로 '합기도 진수'를 보여주려 심혈을 다해 촬영에 임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장애물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청와대 사범인 지한재 총재는 일간지 정치부기자들을 선동하여 나의 독주(?)를 막으려 들었던 것이다. 지관장은 "우리나라에 무술은 합기도뿐만이 아니라 태권도 등 여러 무술이 있으니 모두 참여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설명했고 정치부기자들은 영화제작소에 압력을 행사했다. 결국 '호국무예'라는 국외홍보용 영화는 질떨어지는 종합무술의 집합장이 되어 버렸다. 이후에 박정희대통령은 하와이 이주 75주년 행사에 '무술사절단'을 구성하여 파견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공보처에서는 태권도를 단장으로 하는 명단을 올렸다. 하지만 대통령은 '서인선'을 단장으로 하라고 명령하고 합기도를 명단의 맨위로 올려놓았다. 이렇게 절대 권력자는 합기도에 대한 애착을 보였던 것이다. 만약 지한재 총재가 나를 찾아와서 '이번이 좋은 기회이니 함께 합기도를 통합하고 발전시키자'고 제안하였다면 나는 흔쾌히 받아 들였을 것이고 합기도는 통합할 기회를 마련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권력자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같은 합기도인의 시기와 질투로 절대절명의 기회를 잃은 것에 대하여는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 또다른 권력자의 헛된 야욕 나는 합기도통합의 일념으로 대한기도회를 인수하였다. 국술원의 수장이 대한기도회를 접수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비난도 하였으나 나는 진심으로 합기도의 통합을 원했다. 나는 국민들에게 합기도를 홍보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직접 "묘기대행진". "비밀의 문" 등에 출연하여 시범을 보여 주였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합기도 정말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합기도 도장이 많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나는 자부한다. 그러나 1979년 대통령이 서거하자 합기도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전경환씨는 미국의 체육대학을 유학하였으며 서울 국술원 소속 이한철관장에게 합기도를 잠시 배웠고 박대통령시절 청와대경호요원을 맡았던 사람이다. 특히 형이 전두환 대통령의 후광을 입고 권력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이런 전경환씨가 나와 합기도통합에 대한 만남을 요구하였다. 전경환 본인이 회장을 할것과 나는 부회장이 되어 합기도통합을 이루자는 주제였고 나는 거절하였다. 전경환씨는 수차례 협박성 발언과 회유로 접촉을 해오다가 1984년에 급기야 '새마을합기도'(대한합기도협회 전신)를 만들었다. 이후 여러 회유정책을 발표하며 합기도인들이 모일 것을 강요하였고 대한기도회도 500여곳의 소속도장중 300여곳이 빠져나가 그쪽으로 합류하였다. 그후에도 계속 나를 피박하여 고생한 기억도 있다. 하지만 몇 년만에 전경환씨는 구속되었다. 그렇지만 그가 남긴 불행의 불씨는 합기도계가 여러 파벌을 형성하는데 도화선이 되었고 급속히 합기도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생각해 본다. '전경환씨가 원하는대로 해주었다면 합기도는 통합되었을까?' 이것에 대한 해답은 이글을 읽는 독자가 판단해볼 일이다. 그리고 한번 더 합기도인에게 바라는 것은 앞으로 합기도 통합의 길이 보이면 합기도인 모두가 양보하여 하나로 통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
첫댓글 한국합기도회(Hapkido)와 무예신문은 거의 비슷하게 시작된거 같네요.. 그~ 성함이 기억나진 않지만~ 전화 온 후로 신문이 온걸로 봐서말이죠~~ 요즘은 안오더라구요.. 한 6개월 보내주더니 신문값 내라고 지로가 와서말이죠~
그들의 말은 그렇습니다~ [국내 합기도가 통합하여 온다면~ 경찰 공무원 채용시 단증인정을 해주겠다~!!]
가령 모두 통합될지라도.. 중앙(본부)도장, 지부 ,지관, 기타 땡땡... 뿔뿔히 나뉠 것이고.. 그들을 상대로 (반)강제 연수를 하지않을까~ 생각되네요.. 에휴~~~~~~~~
하루에 2만원~ 수십만원 하는데도 많던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