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1권 3-273 술회述懷 27 만성謾成 까닭 없이 짓다
1
반생섭강해半生涉江海 반평생 江海로 돌아다녔지만
여년의수구餘年擬首丘 남은 해는 고향으로 갈까 생각한다.
고와림천간高臥林泉間 수풀과 샘 사이에 높이 누우니
세월여전구歲月如轉毬 세월이 공 구르는 것 같아라.
기청춘조환旣聽春鳥喚 이미 봄새 우는 것을 들었었는데
우감후충수又感候虫愁 또 철 벌레들의 수심을 느끼노라.
영회도장소永懷度長宵 수심에 잠겨 긴긴 밤을 지내려니
울울심초초鬱鬱心愀愀 답답한 마음 후련하게 슬퍼지는구나.
반평생을 강과 바다로 쏘다니다가
여생은 고향에서 지낼까한다네.
숲과 샘물 사이 높은 곳에 누워보니
지난 세월이 구르는 공과 같았네.
봄날의 새들이 서로를 부르는 소리도 이미 들었고
제철 벌레의 수심에 찬 울음에 또 감회에 젖는다오.
생각이 꼬리를 물어 긴긴 밤을 지새우니
답답한 마음은 근심을 더하네.
2
내차야고장奈此夜苦長 어찌하랴! 이 밤 괴롭게도 긴데
등화초처량燈火稍凄凉 등불도 퍽으나 처량하여라.
서권포재상書卷抛在床 서책은 평상 위에 던져져 있고
유필치재방濡筆置在傍 먹 찍은 붓은 곁에 내버려 두었네.
궁회욕저서窮懷欲著書 생각하는 것 써서 저술이나 할까 하여도
미능서중장未能抒中腸 속마음 모두 털어 낼 수 없어라.
남아불능유취방男兒不能遺臭芳 남자로 태어나 취방臭芳을 남기지 못한다면
편시도사삼가랑便是徒死三家郎 그것은 헛 죽는 세 집 村의 자식이라.
어찌 이 괴로운 밤은 길기만 할까
등잔불까지 처량하기 그지없다네.
서책을 책상위에 내던져놓고
붓을 가져와 먹물을 적신다네.
다함없는 내 생각을 책으로 지어볼까도 했지만
마음 속 품은 뜻은 오롯이 풀어낼 수 없다오.
남자가 세상에 태어나 이름 석 자 제대로 못 남긴다면
이는 곧 개죽음당한 아무개 집 셋째아들과 같거니.
►비길 의擬 계획함. ~할 예정임
(재방변扌=手)+(疑 의심할 의, 안정할 응, 멈출 을, 멈출 익)
疑 닮게 하다. 손으로 흉내 내어 닮게 만들다
►수구首丘 고향. 여우가 죽을 때 고향 쪽으로 머리를 돌린다는 의미
►전구轉毬 구르는 공(球)
‘공 구毬’ 공(둥글게 만든 운동 기구) 공 모양. 제기(발로 차고 노는 장난감)
►후충候蟲 철 벌레. 특정한 계절에만 나오는 벌레
►울울鬱鬱 마음이 펴이지 않고 답답함. 나무가 매우 배게 들어서 매우 무성茂盛함.
‘답답할 울/울창할 울鬱’ 답답하다. 우울憂鬱하다. 울적鬱寂하다
►초초愀愀 언짢다
‘愀 근심할 초, 쓸쓸할 추’ 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발끈하다
►‘점점 초/끝 초, 구실 소稍’ 점점. 매우. 심히. 이미, 벌써
►‘던질 포拋’ 내던지다. 버리다
►중장中腸 뱃속 내장內腸 한가운데. 즉 맘속에 품은 뜻
►취방臭芳 이름을 빛낼만한 자취 ‘취臭’는 나쁜 이름, ‘방芳’은 꽃다운 이름.
►도사徒死 무익無益한 죽음. 개죽음
●만성謾成 느긋하게 살기/金時習
조세신강건早歲身強健 어릴 때는 몸이 튼실했는데
잔년병입비殘年病入脾 죽을 때가 돼가니 속병까지 든다네.
경행종소호徑行從所好 내 마음에 드는 곳만 쫒아 다니고
다반임편의茶飯任便宜 마시고 먹는 것도 내 편할 대로 했네.
목락산용수木落山容瘦 낙엽 떨어진 산자락은 초췌하고
정공월색기庭空月色奇 아무도 없는 뜰은 달빛이 밝네.
호아공약이呼兒供藥餌 심부름하는 아이를 불러 약밥을 가져오라 이르니
곤래차지이困來且支頤 피곤에 절어 또 아래턱을 괸다네.
►비脾 비장脾腸.
►잔년殘年 만년晩年. 여생(餘生). 늙어서 죽기까지 얼마 안 남음
►경행徑行 곧장 행하다.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함
►‘기특할 기/의지할 의奇’ 뛰어나다. 밝다
►약이藥餌 약밥. 장수보신長壽補身 용으로 먹는 약이 되는 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