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게왕국의 건국배경
7세기 토번의 황제인 송센감포(송첸감포, 손센감포)는 최초로 티베트고원을 통일한다. 그리고 네팔, 인도, 당나라의 문성공주를 왕비로 맞이하는데 모두 불교를 믿고 있었고 자연히 불교가 티베트에 유입된다.
이후 티데조찬(송센감포의 손자)의 집권시기 당나라의 금성공주가 다시 티베트로 시집 온다. 이 때 불교는 더이상 티베트 사회에서 낯선 종교가 아니었다.
티베트에서는 토착 종교인 뵌교세력이 강했는데, 지배층의 불교중시는 이들로 하여금 반감을 야기했다. 내부분열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왕권세력은 불교를, 신권세력은 뵌교를 중시했다. 그리고 이 둘의 대립은 불교탄압, 혹은 뵌교탄압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티데조찬의 아들 티송데첸 시기 인도에서 저명한 불교학자 두 명이 티베트로 들어온다. 이들은 각각 ‘산타 라크시타’와 ‘파드마 삼바바’이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은 왕권과 신권 대립의 전환점이 되었다.
결과는?
왕권(불교)의 승리였다. 이후 왕에게 집중된 토번 제국의 힘은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함락하고, 하서회랑, 타림분지까지 세력을 넓히는 저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9세기 후반, 왕이었던 자신의 동생(티랄파첸)을 죽이고 ‘랑 다마’가 왕위에 오르면서 극단적인 불교탄압이 시작된다. 랑 다마의 뒤에는 뵌교로 대표되는 신권이 있었던 것이다.
랑 다마와 신하들의 극단적인 불교탄압은 티베트 내부의 분열을 야기했다. 이에 갈기찢겨진 티베트 세력은 운남, 아리, 동티벳(캄) 등으로 이주를 했는데, 아리지역에 세워진 왕국이 바로 ‘구게왕국’이다.
실종신고 된 나라 : 구게왕국
구게왕국은 불교탄압을 피해 아리고원으로 이주한 토번의 후예가 세운 왕국이다. 약 700년간 16명의 왕이 통치했다고 하는데, 고원지대 황토산을 깎아 만든 성에는 왕궁과 사원, 주거지 등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구게왕국은 아리고원에 세워졌는데, 아리고원의 동쪽으로는 티베트의 중심지역인 라싸, 서쪽으로는 인도, 북쪽으로는 신장으로 연결되기에 상업이 발달할 수 있는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구게왕국은 상업을 중심으로 발달했을 것이라 추측되는데, 어떤식으로 어떤 상품을 가지고 거래를 했는지는 연구가 좀 필요할 것 같다. (아리지역은 황금과 은이 많이 생산된다고만 알고 있다)
구게왕국 유적지는 1912년 영국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구게왕국이 17세기에 멸망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니 약 300년에 가까운 시간, 역사의 시야 속에 사라졌다가 나타난 것이다.
구게왕국 유적지는 건조한 기후와 적은 강수량으로 인해 보존상태가 상당히 양호하다. 면적은 총 72만 평방미터, 천 개에 가까운 토굴과 보루, 수로 등은 그 옛날 구게왕국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학자들은 이런 구게왕국 유적지를 근거로 약 10만 명의 사람이 생활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구게왕국은 라다크의 군대에 의해 멸망했다고 전해진다. 사실이라면 10만 명의 사람들은 라다크인에 의해 살해된걸까? 아니면 끌려간걸까? 그것도 아니면 역병에 의한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