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진리의 사람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 이렇게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다석 柳永模(1890-1981)야말로 톨스토이, 간디와 더불어 20세기의 진인(眞人)이라고 한다면, 그는 의아심을 넘어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다석은 누구인가 ? 빛보다 어둠을, 한낮보다 저녁을, 생명보다 죽음을 사랑하여 아예 다석(多夕, "하도 지낸 저녁")을 아호로 삼은 사람, 류영모. 그는 기도(기도란 생각하는 순간이다)할 때 눈감듯이 어둠과 저녁을 "참나"(혹은 "얼나")를 밝히는 지혜의 순간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만년에 나이찬 처녀가 시집가는 날을 기다리는
것과 같이 호기심과 설렘과 벅찬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렸다고 한다. 이 세상에 와서 3만 3천 200날의 하도
많은 저녁(다석)을 보내면서 류영모는 영원한 저녁을
그리워했다. 다석에게 영석(永夕)은 다름 아닌 영원한
생명의 세계, 하늘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28세의
다석은 1918년 1월 13일부터 산 날을 세기 시작했다.
아침에 잠이 깨어 눈을 뜨는 것이 태어나는 것이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 잠드는 것이
죽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루동안에 일생을 산다는 일일일생주의(一日一生主義), 즉 다석의 오늘살이 정신이다. 하루를 무심히 지내면 백년, 천년을 살아도 시간을 다 잃어버리는데, 하루하루를 지성껏 살면 무상(無常)한 인생도 비상(非常)한 생명이 된다는 것이다. </font></p>
<p style="text-indent:5px; line-height:120%;"><font size="2">이러한 철저함으로 다석은 말씀 하나, 말 하나에도 철학개론 한권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동양의 숱한 고전과 경전들을 연구하여 YMCA연경반에서 35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가르쳤다(이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 바로 함석헌, 김교신, 류달영, 김흥호, 박영호,
서영훈 등이다). 다석에겐 동양의 경전들도 신약성경을 참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구약성경일 뿐이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이라도 죽으리라'고 했던 공자의 말씀이나 하루살이보다 더 나아가서 순간 찰나의 이제살이를 깨우쳤던 석가의 말씀도 오늘살이의 정신으로 보면 모두 마찬가지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지에서
다석은 기독교의 영성(靈性)이나 불교의 불성(佛性), 유교의 속알(德), 노장사상의 도(道)도 깨우치면 모두 하나의 진리로 귀착된다고 가르쳤다. 이와같은 류영모의 귀일(歸一)사상은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서구의 종교다원주의보다 어떤 점에선 70년을
앞선 탁견이요 혜안이라 아니 할 수 없다. </font></p>
<p style="text-indent:5px; line-height:120%;"><font size="2">시대를 앞서간 류영모의 철학사상은 그 심오성과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연구와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1955년부터 74년까지 20년간 대학노트에 적어 논『다석일지』(1990, 홍익제에서 4권으로 영인됨)가 그의 유일한 저서라 할 수 있는 데,
실로 난해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난해함을 덜어 주는 이가 바로 다석의
가르침을 지극정성으로 실천하고 있는 김흥호(7권으로 나온『다석일지공부』(2001,
솔))와 박영호이다. 류영모가 우리의 살림에서 강조하는 것이 "몸성히", "맘놓이", "뜻
태우" 세가지이다. 이 중에서 "몸성히"를 위해서는 탐욕을 버려야 하는 데, 이를 위해
다석은 40년동안 하루에 한끼씩만 먹었다. "맘놓이"는 치정(癡情)을 끊는 데에서 비롯하고, "뜻 태우"는 지혜의 빛을 말한다. 이를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이 두사람이다. 다석에 의하면, 부부관계가 몸을 허락한 관계라면 사제관계는 마음을 허락한 관계이다. 박영호는 바로 59년부터 81년까지 다석을 가장 가깝게 모신 사람으로 다석으로부터 "마침보람(졸업증)"까지 받았고,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에 따라 경기도 의왕시에서 논밭을 갈며 다석사상을 집성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석을 만나기전에 스승으로 모셨던 함석헌이 천안의 씨알농장에서 불러서 갈
때 차마 편하게 열차를 타고 갈 수 없어 고향 대구에서 천안까지 걸어 간 사람이 바로
박영호이다. 이렇게 스승을 받드는 제자의 지극함이 구구절절 아로새겨져 있음을 보고
느끼고 있노라면 어느새 850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의 마지막까지 단숨에 읽게 된다.
참으로 시원하고도 홀가분한 순간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재음미하게 하는 행복한 책읽기의 즐거움. 원효, 퇴계, 다산을 이어갈 우리 사상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는 기회를 더불어 갖게 하기 때문이리라. </font></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