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 수행 독려하는 선결 조건
깨우쳐 걸림없이 살고자하는 마음
간화선 수행의 양대 축은 발심과 선지식이다. 발심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화두를 들어보려고 한들 화두는 마음에 확연히 맺히지 않는다. 또한 화두를 제시하고 점검하며 발심을 촉발해주는 선지식의 지도없이 수행의 진전은 어렵다.
그렇다면 발심이란 무엇인가. 발심이란 깨치고자 하는 마음이다. 불안하고 초조하며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서 걸림없이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무상과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대자유를 얻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어떤 유혹과 거센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나를 찾고자 하는 간절함 마음이다.
간화선에서의 발심은 이러한 마음이 내면에서부터 확확 달구어져 있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본래 부처로서의 진정한 자기를 사무치게 보고 싶은 그리움이다. 그 님이 그립고 애타게 보고 싶어 낮이건 밤이건 님 생각이 떠나지 않듯이 말이다. 이렇게 발심은 나 자신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목마름이다. 그 한 예를 보겠다.
향엄 선사는 대단한 학문과 논리, 그리고 말재주가 뛰어난 스님이었다. 향엄에게 위산 선사가 묻는다. “지금까지 그대가 터득한 지식은 눈과 귀로 남에게서 듣고 보았거나 경전에서 읽은 것뿐이다. 나는 그런 것은 묻지 않겠다. 이제 그대가 태어나기 전에 본래 면목을 일러봐라.”
그러나 향엄은 답할 수가 없었다. 온갖 책을 뒤적여 봐도 여기에 대한 해답은 얻을 수가 없었다. 이 문제 앞에 모든 것은 쓸모 없었다. 생각의 길이 막혔다. 가슴이 콱콱 막혔다. 향엄은 책을 모두 불살라 버리고 길을 떠난다. 그리고 태어나기 이전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가에 사무치게 골몰한다.
스승의 한마디 말에 발심하여 간절하게 화두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간절히 화두에 대한 의심을 키워나가다 어느 날 기와 조각이 대나무 부딪히는 ‘탁’하는 소리에 오도한다.
발심이 얼마나 절절하느냐에 따라 화두에 대한 의심도 간절해진다. 오직 님 생각이 가득했을 때 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고 님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게 들리듯 말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선가에서는 화두 들 때의 마음가짐을 일컬어, 홀어머니가 전쟁터에 보낸 외동아들 생각하듯 하라고 했다. 생사라는 두 글자를 눈썹에 붙여놓고 머리위에 타오르는 불을 끄듯 절박한 심정으로….
적어도 그 정도로의 사무치는 마음, 절박한 마음이 없으면 화두, 그 문 없는 문으로 한 발자국도 들어설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사무치듯 그리울 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그 님이 언제라도 내 곁에 머물러 아픔을 달래주며 힘과 용기, 지혜를 주기 때문이다. 사실 그 님은 내 자신의 본래 모습이지만 말이다.
화두가 안 들려 잡생각이나 졸음에 빠질 때도 거듭거듭 이러한 마음을 돌이켜 보라. 그렇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화두와 겨루어 나가면 어느새 내가 화두와 하나가 되어 시원하고 맑고 고요한 마음이 가슴 속에서 도도한 물줄기를 이루며 흘러내릴 것이다.
첫댓글 나무 지장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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