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엊그제 글누리에서 보내온 아동문학 전문 계간지 <어린이 글수레>를 받았다. 거기 수록되어 있는 나의 동화부터 먼저 읽었다. 내가 써 놓은 글이 활자화된 것을 보니 뭔가 더 새로운 것 같아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작품 몇 곳에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는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데 솔찮은 재정적 투자라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용기있게 책을 출간한 발행인이야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앞으로 이 잡지가 몇 년을 버티어 나갈지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이 엄습해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전에 동화작가 정진채 선생이 사재를 털어가면서 고분분투해오다 결국은 폐간(정간)의 비운을 맞은 계간 <동화문학>이 언뜻 떠올라 그 씁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원고 20매 분량의 동화에 대한 원고료 5만원을 보내 왔다는 사실이었다. 애초부터 나는 큰 돈이 내 수중에는 없기에 발행 기금에는 돈을 보태어줄 수는 없지만, 잡지를 돕는 셈치고 내 딴에는 심혈을 기울여 쓴 좋은 원고는 그냥 보내주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렇게 뜻하지 않게 원고료를 받고 보니 꼭 못 사는 사람을 등쳐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뒷맛이 영 개운치가 읺았다.
2.
지금 우리 나라에는 아동문학 전문 잡지가 둘이 있다. 그 하나는 동시와 동화, 소설 작품을 전문적으로 수록하는 잡지 월간 <아동문예>가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동문학 이론을 전문적으로 수록하는 계간지 <아동문학평론>이 바로 그것이다. 두 잡지는 필자가 문단에 데뷔하던 무렵인 1976년 경에 창간되어 근 30여 년을 버티어 오고 있다. 그 외에도 기독교 계통에서 발행되는 <새벗>과 가톨릭 계통에서 발행되는 <소년>이 있다. 그러나 <새벗>은 재정적 투자의 어려움 때문인지 책의 볼륨이 아주 빈약해졌고, <소년> 역시 지금은 계속 나오는지 그러지 못하는지 파악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이런 열악한 아동문학 잡지 출판 환경인 데에도 지역인 우리 부산에서 <동화문학>의 뒤를 이어 <어린이 글수레>가 창간되었다니 얼마나 대견스럽고 반가운 일인가. 동시와 동화를 쓰고 있는 아동문학가들에게는 발표 매체가 하나 더 생겨 반가운 일이고, 어린이들에게는 볼만한 아동문학 잡지 하나가 더 생겼으니 이 또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산 문화방송에서 발행되는 격월간 <어린이문예>가 있기는 하지만, 이 잡지는 메세나 운동의 일환으로 대기업체의 지원을 받아 무료로 배포되고 있는 만큼 그 운영에 큰 위험 부담은 없을 것이다.
3.
발표 매체가 하나 더 생겨 우리들로서는 더더욱 반갑고 축하할 일이지만 정작 잡지를 발행하는 당사자들로서는 여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첫째로 잡지 발행에 투입되는 재정 확보가 시급하다. 주먹 구구식의 산술로 따져봐도 책 발간 기금과 원고료를 합산하면 한 번 발행하는데 투입되는 돈은 족히 3백만 원 가까이 될 것이다. 일년에 4번 발행되니 합산하면 1천 2백만원이 족히 된다. 책의 판로가 막힌다고 가정했을 때 4,5년이면 5천만 원의 거금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만약,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조그마한 집 한 채 날려버리기는 식은 죽 먹기이다. 발표 매체가 없는 시인과 작가들에게 지면을 제공하고, 상업주의에 오염되어 가고 있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좋은 읽을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이렇게 발벗고 나서는데, 적자만 감수한다면 앞으로 어느 누가 이런 모험을 감행할 엄두를 내겠는가. 모처럼 지역 아동문단에 활력소가 될 잡지 하나가 생기게 되었는데 통권 10호도 채 못 채우고 주저 앉는다면 이건 정말 지역 아동문단의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4.
그럼 우리 부산 지역에서 발행되는 계간 <어린이 글수레>가 영원히 지속되도록 하는 무슨 묘책은 없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분명 있을 것이다. 우선 이 잡지에 좋은 원고를 주는 일이다. 원고료가 있건 없건, 원고료의 액수가 많건 적건 간에 자신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주는 일이 시급하다. 잡지가 잘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판가름은 거기에 수록되는 원고의 질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격월간 <어린이문예>는 20매 분량의 동화와 소설 한 편에 20만 원, 동시 한 편에 10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원고료를 책정한 탓인지는 몰라도 수록되는 원고의 문학적 완성도는 전국의 어느 아동문학 잡지 못지 않게 수준급이다. 그렇다면 산문 한 편에 5만 원, 동시 한 편에 3만원을 책정한 <어린이 글수레>에는 원고료의 액수가 미약하니 그것에 버금가는 만큼의 원고를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다. <어린이문예>는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 발행되는 잡지인 만큼 그만큼의 원고료를 받고 좋은 작품을 준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어린이 글수레>는 이와는 사정이 딴 판이다. 한 개인이 사재를 털어 발행되는 것인 만큼 원고료의 액수를 따지지 말고 가장 좋은 작품을 주어야 함이 당연하다. 그래서 이 잡지가 승승장구하는 그 날 우리는 떳떳하게 더 많은 원고료를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어려울 때 도와준다고 좋은 원고를 주었으니 이제는 잘되는 만큼 더 많은 액수의 원고료를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5.
다음으로는 독자 배가 운동을 벌여 나가야 한다. 우리 협회 회원이 100명을 넘었으니 회원 한 사람이 이년 정기구독(2만 4천 원)만 해준다고 해도 100명이면 잡지 한 호 정도의 발행 기금이 모인다. 이 잡지를 돕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일선 교육현장의 어린이들과 동네 이웃집 어린이들의 정기구독을 받아주는 일일 것이다. 한 회원이 10명의 정기구독만 받아 주어도 금세 1200명이 되고, 그렇게만 된다면 일년에 네 번 정도의 발행기금은 한꺼번에 거뜬하게 모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산술적인 계산이 분명 가능한 데에도 실제에 적용해 보면 잘 안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정기구독을 받아 주었는 데에도 만약에 잡지가 한 두번 발행되다가 종적을 감추면 어떻게 되나 우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잡지 발행인의 최소한의 양심에 맡기면 되는 일이다. 지금 당장 독자 배가 운동을 벌이는 일은 곧 우리들의 발표 매체를 확보하는 길이다. 또한 우리 어린이들에게 아름다운 상상의 텃밭을 하나 마련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6.
<어린이 글수레>의 발행인에게도 몇 가지 주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잡지의 편집주간과 편집장은 청탁한 원고의 문학적 완성도가 미흡할 때에는 가차없이 원고를 반송해서 다시 쓰게 하는 엄격함을 지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매호 발행될 때마다 지면을 점차 늘여 나가야 하는 것은 물론, 그 잡지의 성격을 규정 짓는 보석 같은 고정란을 만들어 그것 하나만을 보기 위해서라도 잡지를 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독창적인 기획 코너의 유인책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동문학 작가들의 동화와 소설, 그리고 동시의 지면을 늘여 나가야 할 것이다. 창간호 <어린이 글수레>는 어떻게 보면 반찬은 푸짐한 밥상 차림 같은데 정작 먹을 것이 별로 없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반찬의 가짓수를 조금 줄이되 풍성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어린이 작품 역시 좋은 작품을 수록하는 것은 말할 것이 없고 그 중에서 뛰어난 작품을 다시 가려 뽑아 시상하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 같다.
7.
계간 <어린이 글수레>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번 창간호가 곧 마지막 호가 되지 말고 적어도 앞으로 한 10년 쯤은 버티어 나가기를 바란다. 계간 <동화문학>의 비운을 밟지 말고 아직은 거친 묵정밭이지만 열심히 갈고 엎다 보면 좋은 열매가 수확될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겨자씨보다 작은 발표 매체 판도에 계간 <어린이글수레>가 민들레 씨앗의 역할을 다 하고, 또한 우리 현대 아동문학사에 큰 획을 긋는 잡지로 성장해 줄 것을 기원한다.
계간 <어린이 글수레> 창간 만세!
부산 아동문학 만세!
첫댓글 어린이 글수레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김문홍 선생님의 격려와 질책이 큰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소민호 선생님, 최복자 선생님 수고 하셧습니다.
두 분 김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니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