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미술사1
랭스 대성당의 천사의 미소
1. 주후 496년, 프랑스 상파뉴지방의 랭스 대성당(La cathedrale de Reims)에서 유럽교회사의 역사적 전환점을 이루는 획기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간 프랑크족의 영토 내에서 기독교가 전래되는 것을 박해하던 클로비스 1세(Clovis I)가 성 레미기우스주교(St. Remigius)에 의해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의 세례는 콘스탄티누스대제의 기독교공인(313년)에 버금가는 일로서 이후 알프스이북의 기독교화(Christianisierung)의 효시이며 보장이었다. 또한 개인의 회심에 의한 기독교로의 개종이 아닌 종족과 부족단위에서의 기독교화라는 유럽에만 있는 국가교회 전통의 시작이었다.
이 역사적 사건은 주후 476년 서로마제국이 붕괴된 이후 권력의 중심이 알프스이북의 게르만족에 의해 세워진 프랑크왕국으로 이동함을 의미하였다.
프랑스왕국은 카페왕조 이후 약 1000년간 이 교회에서 국왕들의 대관식을 거행함으로 자신들이 프랑스는 물론 독일과 이탈리아 역사의 공통의 뿌리가 되는 메로빙거왕조를 연 클로비스1세의 후예임을 자임해 왔다.
2. 랭스 대성당 서쪽 정문(파사드) 문설주에 세워진 천사상은 지중해시대를 넘어 대서양시대교회역사를 연 프랑크족의 선교의 역사, 교회의 역사를 나타낸다.
오늘날 고급 샴페인과 와인 산지로 유명한 상파뉴(Champagne)를 찾아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에 의해 ‘미소 짓는 천사’(L'ange au sourire)라 불리며 아낌을 받는 두 천사상은 사실은 이 지역의 선교를 위해 순교의 피를 흘린 초기 선교사들과 사명자들의 수고와 헌신을 기리는 조각상이다.
먼저 서쪽 파사드 세 개의 정문 중 왼쪽 문에 있는 천사의 미소의 의미를 살펴보자.
미소 짓는 천사 곁의 슬픈 표정을 짓는 남자는 전통적으로 로마제국시대 뤼테스(Lutece, 파리의 옛 지명)에서 복음을 전하다 머큐리산에서 순교한 생 드니(St. Denis, 성 디오니시우스)로 여겨진다.
생 드니는 도미티안황제시절 갈리아지역 최초의 선교사로서 그의 순교 후 이교도신전이 있던 머큐리산은 순교자의 산이라는 의미의 몽마르트(Montmarte) 언덕으로 불리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대제의 기독교 공인 후 상파뉴지역에도 주후 401년 랭스 성당이 세워지는 등 기독교가 전래된다. 하지만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서로마제국 멸망 후 기독교선교는 또 다시 박해에 직면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클로비스 1세를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게 하심으로 프랑크왕국 내 복음화의 길을 다시 여신다.
랭스 대성당의 서쪽 정면(Westfasade) 왼쪽 문의 ‘미소 짓는 천사’는 순교자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진 선교의 역사를 웅변해 준다.
상파뉴지역 순교자들의 모습을 장식한 문에 세워진 천사의 미소는 복음을 전하느라 고난당한 이들의 최후 승리를 대변하는 미소이다. 피 흘리는 박해와 순교의 고난이 있었지만 결국은 이렇듯 번듯한 대성당이 세워지고 이 문을 드나들 영혼들을 얻기 위해 그토록 애쓰고 수고한 선교의 열매를 거둠에 대한 감사와 겸손한 만족의 미소이다.
이제 서쪽 파사드 세 개의 정문 중 가운데 문에 세워진 천사의 미소의 의미를 살펴보자.
중앙문의 미소 짓는 천사와 그 옆의 다소곳한 표정의 여인은 누가복음 1장의 수태고지에 등장하는 가브리엘천사와 동정녀 마리아이다.
기독교미술사에서 꽈뜨로쎈토(Quattrocento, 400=1400년대)의 시기 즉 르네상스 여명기의 회화와 조각에서 가장 많이 다룬 도상은 수태고지(Annunciation, 성모영모) 장면이다.
마치도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인류역사에 구원의 새 역사가 시작된 것처럼 중세말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새 시대가 임박하고 있음을 감지한 작가들의 영감이 시대정신을 수태고지로 작품화 한 것이다.
그런데 중세 말 어떤 작품에서도 가브리엘천사가 마리아를 향해 미소 짓는 모습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생명구원의 역사에 쓰임 받는 엄청난 사명 앞에서 ‘놀람, 사색, 반문, 순종, 은총’의 다섯 단계를 거치며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라는 말씀 앞에서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라고 고백하며 사명을 받아들인 마리아의 순명(順命)에 가브리엘천사는 미소 짓는 것이리라.
이 미소는 마리아처럼 이곳 상파뉴 지역의 선교를 위해 생명을 드리기까지 수고하고 헌신한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힌 사명자들, 말씀에 순명한 이들을 향한 미소이다.
3. 순교자들의 피위에 사명자들의 선교의 열매로 세워진 유럽교회가 오늘 다인종·다문화·다종교의 이민국가화 한 유럽의 영적 상황에서 제 역할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60년대 이후 가속화한 세속화의 물결과 설상가상으로 이슬람의 공격적인 진출까지 겹쳐 선교적으로 대응해야할 유럽교회가 맥을 못 추는 영적 약체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사회가 경제적 도약을 이룩한 1960-70년대는 동시에 유럽교회가 가시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한 때이다.
외국인노동력이라는 이름으로 저 멀리 한국으로부터 그리고 비서구지역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들이 장차 유럽에서 선교적 역할을 감당할 디아스포라교회를 형성하기 시작한 때도 정확히 이 무렵이다.
영적으로 노쇄한 유럽교회와 협력하여 유럽교회의 회복, 유럽의 재부흥을 이루도록 디아스포라 이주민교회를 예비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기만 하다.
2013년 8월, 파리에서의 이틀간의 미션유럽 대표단회의를 마치고 파리에서 150km 떨어진 랭스 대성당을 찾은 일이 있다.
유럽역사의 전환점을 이룬 프랑크왕국의 기독교화가 시작된 이 역사적인 자리에 와서 천사의 미소를 대하며 불현듯 김교신선생의 ‘조와’(弔蛙)에 나오는 글귀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 멀리 아시아로부터 그리고 세계각지로부터 유럽에 이주해 온 이주민들 속에 담겨온 신생 비서구교회들이 노쇄한 서구교회와 함께 상생을 이루며 유럽교회의 회복과 유럽재부훙을 이루어가는 모습에 두 천사가 다시금 미소 짓는 것은 아닌가?
금년은 유럽 한인 사회의 기원을 이루는 파독 광부, 간호사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예비하신 섭리로 50년 전 이 곳 유럽 땅에 디아스포라 한인들을 보내셔서 삶의 둥지를 틀고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게 함으로 이제 ‘이 때를 위함이 아니냐’ 하시며 유럽 현지교회와의 협력을 통해 유럽의 회복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경륜 앞에서 순명(順命)의 모습을 보일 때이다.
해 설 :
1. (요약) 랭스 대성당은 교회건축공법이 정점에 도달한 전성기 고딕(the High Gothic)시대의 대표적 건축물(1225-99)이다.
이때부터 건축에 종속되었던 조각과 회화가 건축으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한다. 미소 짓는 천사상은 비잔틴양식과 로마네스크양식의 그림이나 조각에서 표현된 인물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인간적인 기쁨의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의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의 복원이 이 조각상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인물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자연주의 조각에서 흔히 인체의 동세를 표현하는데 사용된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 자세를 취하고 있다. 허리에서 무릎으로 흘러내리는 S자형의 선으로 인체의 운동감을 표현하는 콘트라포스토 기법은 중세 기독교 미술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가 이 무렵에 다시 등장하였다.
수태고지 장면의 가브리엘천사와 순교자와 함께 미소 짓는 천사가 입은 의상의 흘러내리는 듯 한 굵은 옷 주름은 고대 고전주의 조각 특유의 옷 주름에 의해 신체의 양감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신체의 구조가 옷의 주름 아래로 보이게 만드는 잊혀졌던 고전 예술을 다시 찾아낸 것이다” (E. H. 곰브리치)
2. (고딕양식, 건축) 서구 기독교미술의 정수로서의 고딕 교회건축은 12세기 중반 프랑스 일 드 프랑스(Il de France, 파리와 그 근교) 지역에서 탄생한다.
르네상스기 최초의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G. Vasari)는 이 아름다운 교회건축양식이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에서 창안된 것을 폄하해 야만적인 고트(Goth)족에 의한 양식(maniera dei goti)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고딕(Gothic)이란 용어가 유래하였다.
하지만 고딕양식은 그의 낮은 평가와 달리 전 유럽에 파급되어 1500년경까지 지속됨으로 그 전시대의 로마네스크양식(Romanesque, 1050-1150년)과 함께 서구 기독교 미술의 백미를 이룬다.
최초의 고딕 건축 양식은 파리 근교의 생 드니 수도원교회(St. Denis, 1140-44)에서 출현하였다.
이후 샤르트르 대성당(Chartres, 1145/94-1220)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Notre Dame de Paris, 1163-1250), 아미앵 대성당(Amiens, 1220)을 거쳐 랭스 대성당(Reims, 1225-1299)에서 프랑스 고딕양식의 완성을 이룬다.
농촌사회의 경제적 번영을 기반으로 한 로마네스크양식과 달리 고딕양식은 상공업을 바탕으로 12세기 중반에 시작된 시민계급의 출현과 도시의 태동이 그 산실이다.
로마네스크양식이 수도원의 개혁운동을 이념적 토대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한 성지순례 과정에서 산출된 전 유럽규모의 미술운동이라면 고딕양식은 1100년경 시토(Citeaux)교단에서 시작된 성모 마리아 경배사상을 신학적 기반으로 당시 국내적, 국제적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한 대도시(metropolitain)의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정신을 대변하는 새로운 문화운동이었다.
당시 대도시 중심부에는 지식을 전달하는 중세대학들과 고딕 대성당들이 그 도시의 자부심의 상징으로 경쟁적으로 세워졌다.
이 대성당들은 모두 ‘노트르담’(Notre Dame)이라는 명칭을 지니는데 이는 영어의 'Our Lady'(독일어, Unserliebfrau)에 해당하는 말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위에서 파리 노트르담 성당과 구분하기 위해 편의상 사용한 ‘랭스 대성당’ 역시 그 정식 명칭은 ‘랭스 노트르담 대성당’(La cathedrale Notre Dame de Reims)이다.
그런데 프랑스 고딕양식의 시작과 완성이 프랑스 국왕들의 종묘 역할을 해온 생 드니교회와 대관식교회인 랭스 대성당 등 두 국가기관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종말적 심판의 날을 강조한 로마네스크양식과 달리 세상 권력에의 존경과 순종을 강조한 고딕양식의 세속화경향의 반영이라 여겨진다.
이제까지 건축사에서 가장 문제가 되어온 천장과 벽체의 하중문제를 해결한 늑재궁륭과 부연부벽(flying buttress)의 창안, 교회내부의 첨두아치로 된 아케이드, 이에 따라 하늘 높이 치솟는 교회첨탑,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창문들을 통해 들어오는 ‘천상의 빛’ 등으로 대변되는 고딕양식기에 교회건축공법은 정점에 달한다.
그 결과 이제까지 건축에 종속되어 왔던 조각과 회화가 건축으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한다.
3. (전성기 고딕 조각) 랭스 대성당 서쪽 정면부(Westfassde, 파사드) 중앙문과 왼쪽 문에 있는 ‘천사의 미소’ 조각상은 미술사에서 고딕시기 자연주의 조각 발달의 정점에 도달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파사드 중앙문의 미소 짓는 천사와 그 옆의 다소곳한 표정의 여인상은 동정녀 마리아로 누가복음 1장의 수태고지(Annunciation, 성모영모) 장면을 묘사한 조각이다.
그리고 파사드 왼쪽 문의 미소 짓는 천사와 슬픈 표정을 짓는 남자상은 로마제국시대 뤼테스(Lutece, 파리의 옛 지명)에서 복음을 전하다 머큐리산(몽마르트언덕)에서 순교한 성 디오니시우스(St. Dionysius, 생 드니)의 모습이다.
랭스 대성당은 현재의 자리에 주후 401년 최초로 세워진 후 852년 중건을 거쳐 1211년부터 고딕양식으로 개축되기 시작한다. 1245년에서 1255년 사이 서쪽 정면부(파사드)가 세 개의 정문과 중앙의 장미창, 3층의 쌍탑 형식 등 고딕 대성당의 전형을 갖출 때 두 천사상은 중앙문과 왼쪽문 기둥에 기대어 세워졌다.
이 때 두 천사상은 이른바 ‘기둥조각’으로서 아직은 조각이 건축에 종속되어 있는 전성기 고딕(the High Gothic)시대의 모습을 지닌다.
그러나 인물상들이 로마네스크양식에서와 같이 건물의 일부가 아님은 물론 거대한 고부조물(약 280cm 높이)로 처리됨으로 단독 환조상 같은 느낌을 준다.
인물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자연주의 조각에서 흔히 인체의 동세를 표현하는데 사용된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 자세를 취하고 있다. 허리에서 무릎으로 흘러내리는 S자형의 선으로 인체의 운동감을 표현하는 콘트라포스토 기법은 중세 기독교 미술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가 이 무렵에 다시 등장하였다.
수태고지 장면의 가브리엘천사와 순교자와 함께 미소 짓는 천사가 입은 의상의 흘러내리는 듯 한 굵은 옷 주름은 고대 고전주의 조각 특유의 옷 주름에 의해 신체의 양감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신체의 구조가 옷의 주름 아래로 보이게 만드는 잊혀졌던 고전 예술을 다시 찾아낸 것이다” (E. H. 곰브리치)
그리고 이제까지 비잔틴양식과 로마네스크양식의 그림이나 조각에서 표현된 인물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인간적인 기쁨의 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의 자연주의의 복원이 이 조각상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박성은)
랭스 대성당 서쪽 정면부의 ‘미소 짓는 천사상’은 중세 미술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등신대 인물 조각상의 재생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양식의 회복인 르네상스의 예고이다.
(교회사에서 클로비스 1세의 세례연도는 496년과 498년 두 가지 학설이 있다. 이 글에서는 1996년, 클로비스 1세 세례 1500주년 기념예배를 드린 랭스 대성당의 입장을 존중해 세례연도를 496년으로 표기하였다)
(16. 0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