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오균 시인의 시집 <산, 먼동 흔드는>이 2006년 9월 도서출판고요아침에서 나왔습니다.
최오균 시인은 경기 화성에서 태어나 1998년 시조문학 추천으로 등단하였으며, 현재 오늘의시조학회 등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오균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엎친 장마에 덮친 무더위 그래도 바람은 불어 신열에 들뜬 대지 생기 다시 찾는다. 이파리 뒤에 숨었던 풋대추 살며시 얼굴 내민다. 비바람에 씻기고 무서리 맞고 나면 속살 좋이 오르고 진한 맛도 날 게다"라고 적었습니다.
'건강성과 깊이의 아취'라는 해설에서 이지엽 시인은 "최오균의 시는 일차적으로 건강하다...시사적으로 보아 건강한 시학을 추구한 대표적 시인으로 우리는 片石村 김기림을 들 수 있다... ...값싼 감상주의와 니힐리즘의 수렁에 빠진(물론 이것은 상당한 단선적 오류가 있는 해석이지만) 20년대 우리 시단을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바꾸려는 의도를 다분히 가지고 있었다...2000년대 우리 시를 둘러싼 상황은 어떠한가. 암울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자원 경쟁이 일어나고 있고 서민 경제는 계속 하강국면이고 자연은 오염되고 인간의 개인주의와 욕망은 극을 달리고 있다. 시는 이들 어떤 것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암울한 극점에서 최 시인은 생명의 건강성을 노래하고 희망을 얘기한다. ...최오균 시인은 시가 또한 재미를 가져야함을 잘 알고 있는 시인이다. 시에 있어서의 재미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아주 현학적이거나 고도의 난해한 상상력이 빚어내는 재미이다. 그러나 이 재미성은 잘못하면 말장난이 되기 쉽다. 다른 하나는 우리 생활의 유머처럼 읽는 쾌락이 체감되는 재미이다. 이 시의 재미성은 때에 따라 상당히 시니컬한 풍자성을 갖기도 하고 능청거리는 여유를 보여주기도 한다.....최오균 시인은 건강한 시학을 견지하면서도 과정과 내면의 고통을 읽어낼 줄 아는 시인이다. .... 그는 시적 대상을 한줄기로 잘 엮어내면서도 곁가지나 속내의 아픔을 본질적으로 잘 파악하는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첫 시집이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명 한 시인이 도달해야 할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점이 분명 끝은 아니다. 시의 길이 끝이 없듯이 그 정점에서 그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점에서는 길이 잘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허공에 길을 놓아야 할 때가 종종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놓아가는 것이 바른 것인가를 고민해야겠지만 나는 최 시인을 위해 두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하나는 치열한 에코이즘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를 둘러싼 역사에 대한 자각의 형상화 측면이다. 둘은 둘이면서 하나의 길일 수 있다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되는데 분명 이 좌표는 최 시인에게 새로운 경지를 열어줄 수 있으리란 확신을 화해와 아픔을 동시에 담고 있는 이 시집을 보면서 하게 되었다."라고 적었습니다.
********** 꽃구경 -최 오 균
내 손목 잡는 손힘이 전 같잖아 하냥 서글픈 문풍지 울리던 풀밭 나른하게 풀리는 봄날 여든 살 어머닐 업고 꽃구경 길 나서봅니다.
쑥부쟁이 그늘에 핀 제비꽃의 힘겨운 손짓 삘기꽃 피기도 전에 저 할미꽃 등 굽었네요 다북쑥 한 움큼 뜯어 봄내음 맡아봅니다.
일곱 살 손주놈보다 더 가벼운 '박꽃 한 송이' 달 없는 그믐밤이 이젠 자꾸 무섭다 하는 봄볕에 취한 눈가엔 눈물꽃이 내비칩니다.
************ 봄눈 -최 오 균
눈이 옵니다 창밖에
바람도 없이 봄눈이
잔잔하게 작은 눈송이
논밭 위에 내려앉고
벚나무 하얀 팔뚝이
그림처럼 곱습니다.
모질었던 올 봄 눈도
더는 못 견디겠는지
맑은 하늘 실바람에
감쪽같이 사라지고
촉촉이 젖은 땅 위엔
여린 새싹 보입니다.
*********** 달빛 외출 -최 오 균
서늘한 가을바람 억새풀 빗질할 때
동자승 까까머리에 미끄러지는 저 달빛
요렇게 잘 생긴 달이 여기에 또 있었네.
************** 시간의 잔고 -최 오 균
문득 잠이 깬 새벽 장지밖엔 낙숫물 소리 희붐히 갠 강여울에 젖은 발자취 얼비치고 내가 쓸 시간의 잔고 물안개에 스며 있다.
팔 걷고 신 들멘 채 별을 헤며 부린 억척 대물림 '보릿고개'쯤 옛말 사전 갈피에 묻고 응달진 이승의 오지(奧地) 불 밝힌다 했거늘.
갈 길 아직 멀다 했는데 서천(西天)에 붉게 타는 놀 한낱 보람 아쉬움도 뜸이 들면 저리 되는가 오뉴월 겻불 물리듯 훌훌 털고 갈 일이다.
이제야 뒤돌아보면 바람이고 물인 것을 지긋이 말문 닫고 남모르게 곳간 문 열어 내가 쓸 시간의 잔고 달무리에 묻고 싶다.
************ 가볼까 몰라 -중년시 낭만동 사람들 -최 오 균
장기곶 해돋이며 채석강 해넘이를 무창포 바닷물이 갈라지는 그 신비를 불현듯 가볼까 몰라 저문 겨울 바람처럼.
가끔은 저녁노을 강물에 뜬 살진 달을 희미한 옛 그림자 박하사탕 맛 추억을 더듬어 가볼까 몰라 물안개 핀 그 강변에.
하동포구 팔십리 길 수류화개 봄소식을 풀어 내린 허리끈같이 흘러가는 섬진강을 어느 날 가볼까 몰라 하던 일 밀쳐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