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발생한 탈북민 모자의 아사 사건은
새터민은 물론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아사한 지 두 달이 넘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눈의 가시, 그 분노의 메세지를 담았습니다.
사람이 먼저다는 좌파의 세상에서 발생한 탈북민의 아사는
복지 포퓰리즘의 외식적 공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애란 박사는 그의 유튜브 방송을 통하여
탈북민을 탄압하는 복지 정책의 허상을 피눈물로 성토하였습니다.
강명도 교수는 탈북민에 대한 복지정책을 믿고 투표하였는데
탈북민을 위한 복지 정책의 공약을 하나도 실행하지 않았다며 좌파 독재 정권과 결사항쟁의 투쟁을 결의하였습니다.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탈북단체를 위한 모든 후원이 끊어졌고
베테랑 탈북민의 안보강사마저 자리를 잃었습니다.
메이저 언론과 방송을 비롯하여 종편에서조차 출연이 금지되어
사실상 베테랑 탈북민도 굶어죽을 지경이다는 아우성이 담장을 넘었습니다.
탈북민은 북한에서 주체교육을 받고 북한의 기둥으로 살았으나
고난의 행군으로 3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하면서 아사의 공포를 극복하고 살기 위해 무조건 탈북하였습니다.
탈북 과정에서 만나는 인신매매의 덫은
탈북민의 인권, 그 비극의 사연을 낳았습니다.
김길선 기자는 교육과 책과 영화로 주사파를 배운 사람은 공산주의자가 되고
그 땅에서 몸으로 직접 주체교육을 받은 사람은 반공주의자가 된다고 일갈하였습니다.
반공교육이 가장 잘 된 탈북민은 반공교육을 한번도 받은적이 없지만
종북 주사파의 적폐를 궤멸시키는 위대한 정신입니다.
오늘날 민노총은 북한의 체제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조직이요,
종북 주사파는 북한 체제에서 하루도 살지 못하고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 갈 것이라고
한송이를 비롯한 의식있는 탈북민은 한결같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북한 선교는 대남적화 통일 선교의 소굴이 되었고
사회적 기업과 사회적 선교는 세상을 섬기는 미명하에 좌파의 코드를 새겼습니다.
아름다운 공동체 마을의 이상은 사회주의 함정이요,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북한을 미화하는 촛불의 횃불 용비어천가였습니다.
좌파의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 가는 평화와 평등과 인권과 민주는
개인의 자유를 사회적 책임으로 강조하는 사회주의 이념의 올무와 함정과 덫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적 이념의 지성이 만들어 가는 좌파의 카르텔은
석과불식의 숲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2016년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밝힌 자유 통일의 선포는
자유 통일을 바라지 않는 모든 집단의 총력으로 탄핵의 비극을초래하였습니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배려하고 탈북을 독려하였던 자유 통일의 선포로 인하여
북한을 비롯하여 중국과 글로벌 정치와 배신의 정치까지 촛불과 연대하여
건국이래 최악의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극을 협작으로 만들었습니다.
좌파 정권의 눈의 가시는 탈북민의 존재, 그 자체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사기 탄핵과 그 무효를 주장하는 우리공화당을 중심한 태극기 애국세력입니다.
탈북민 모자 아사 사건은
좌파정권의 탈북민에 대한 탄압이 낳은 복지외식의 비극입니다.
요금을 내지 못해 전기와 수도와 도시가스가 끊어진 지 4개월.....
휴대폰마저 끊기고 마지막 찾아간 곳은 구청 사회복지 창구였습니다.
수도가 끊기고 물마저 사먹지 못하면.....
건강한 사람도 몇 일 버티지 못하고 아사할 수 있습니다.
탈북한 후 인신매매로 팔려서 만난 중국인 남편의 임신 중 잦은 폭행은 간질이라는 장애아을 낳았고
폭행에 견디지 못하고 중국에서 이혼한 후 한국에 돌아 왔으나 탈북민을 위한 모든 복지 혜택은 끊어졌습니다.
10만원의 아동 수당도 5세가 넘으면서 끊어졌고
간질병을 앓는 아들을 맡길 때도 없고 그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일할 곳도 없었습니다.
아동 수당으로 받았던 잔고로 남은 마지막 찾은 돈 3858원은
물 한모금 마시는 생존의 골든타임이 되었습니다.
생존의 골든타임, 아사자의 마지막 시계는
사망한지 두 달 후에 발견되었습니다.
휴대폰에 모든 정보가 있기 떄문에
휴대폰을 잃어버리거나 끊어지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연락을 할 수 없습니다.
문득 휴대폰이 없이 살아가는 필자는
그 동안 알고 지낸 모든 사람에게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도 찾지 않은 것은
사실상 연락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카페의 마지막 글을 쓰게 되겠지만
카페의 글이 더 이상 포스팅되지 않으면 신상에 큰 변고가 생긴 것입니다.
카페의 글이 날마다 포스팅되면.......
생존모드의 골든타임을 잘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는 증거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죽음의 순간을 산약초 산행을 하면서 겪었는데
산약초 산행 초기에 능선으로 가장 높은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다른 길로 하산하였는데 사방의 절벽을 만났습니다.
돌아 갈 수도 없고 내려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절벽에서 아래로 드리워진 나무가지를 발견하고 곡괭이를 아래로 던져놓고
그 가지를 붙들고 2미터 높이의 아래로 뛰어 내렸습니다.
순간 손목 정도의 굵은 나무 가지였는데
발이 땅에 닿기 전에 나무 가지는 끊어졌고 몸이 방향을 잃으면서 아래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높은 산의 정상 아래라 급경사였고
그대로 몸은 곤두박질치며 추락하였습니다.
팔을 벌였으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고
추락에 가속도마저 붙어 풀뿌리는 그냥 뽑혔습니다.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최대한 팔을 벌여 무엇이라도 잡히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한참을 추락하다가 무엇이 손에 잡히면서
몸이 거꾸로 멈춰섰습니다.
손에 잡힌 것은 풀뿌리였고
멍하니 하늘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 보아도
무엇인가 잡고 몸을 일으킬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위를 보고 있는 다리부터 옆으로 움직여
풀뿌리를 잡고 있는 손과 평행되게 하고 겨우 몸을 일으켰습니다.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니까
높은 산의 중간까지 내려왔습니다.
생각해보면 뒤의 베낭이 몸의 하중을 받아 땅을 파면서 속도를 늦추었고
풀뿌리를 잡은 손의 힘으로 추락을 멈추었습니다.
문득 곡괭이가 생각나서
곡괭이를 찾으러 추락지점까지 올라갔습니다.
어슬픈 산약초 산행으로 죽음의 고비를 겪고 , 그 후 안전한 산행을 연구하며
로프를 이용한 산약초 산행으로 험산의 레즈 스포츠를 산약초 산행으로 즐겼습니다
훗날 곡괭이를 찾으러 올라갔던 마음은
산삼을 채취하는 길동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숲을 헤지며 산을 오르다가 다른 길로 내려왔는데
큰 바위의 벼랑길을 만났습니다.
다행히도 주변에 나무와 풀들이 많아 힘든 길을 내려왔는데
그 바위 아래 가족삼이 아주 반겼습니다.
너무나 기쁘게 다섯 뿌리의 가족삼을 채취하고 내려오는데
손이 허전하여 보니 곡괭이를 두고 왔습니다.
그래서 곡괭이를 찾으러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또 다시 가족삼이 발견되었습니다.
하루에 두 번씩이나 가족삼을 발견하고 채취한 기쁨과 행복은
산약초 산행의 영원한 보람이 되었습니다.
그 때 채취한 산삼은 작은 것은 나눠먹고
큰 것을 골라 두 뿌리씩 세 병의 담금주가 되었습니다.
산약초 산행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인 곡괭이는 산약초를 채취할 뿐만 아니라
험산을 다니는 지팡이가 되고 뱀이나 짐승을 만나면 물리칠 수 있는 무기가 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죽음의 고비를 만나게 되고
그 골든타임을 잘 극복하면 보람된 인생의 행복이 빛들 것입니다.
좌파 정권의 눈의 가시는 탈북민과 우리공화당을 중심한 태극기 애국 시민이요,
그 분노의 함성은 좌파 정권의 골든타임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