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축제의 그늘
연말연시를 맞아 전국 기초단체가 펼치는 성탄트리 행사가 점점 경쟁으로 치단는 양상이다. 코로나에 지친 사람들에겐 나름 위안이 될 수 있겠지만 과열경쟁 속엔 소중한 전기에너지를 날려 보내면서 예산을 낭비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부산 용두산공원 성탄트리와 해운대 빛축제 행사장에 운집한 사람들 중 과연 코로나에 '집콕'으로 갇혔다가 나온 사람들이 얼마나 되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광안리해수욕장은 평소에도 매주 토요일마다 300대의 드론으로 ‘오징어게임’ 패러디공연을 펼쳐 왔다. 성탄절 당일 저녁시간엔 드론을 500대나 띄웠고 행사장에 몰린 관객들은 열광했다. 혹한에도 아랫도리를 허벅지까지 다 드러낸 젊은 여성들은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추억사진 남기기에 정신이 팔려 이깟 바닷바람쯤이야 추위로 느끼지도 않는 듯했다. 1주일 뒤인 금년 마지막 날엔 드론을 1천200대나 띄운다고 했다.
양산 황산공원 ‘불빛정원’은 금년에 처음으로 경부선 물금역 가까이에 조성됐다. 4대강 사업으로 생긴 60여만 평 공원에서 사람들의 접근이 용이한 곳에 행사장을 꾸민 것이다. 이곳엔 국토종주 자전거도로도 지나고 을숙도까지 운행하던 생태탐방선 선착장도 있다. 부산과 울산 등지에서도 찾는 오토캠핑장도 있다. 행사장을 꾸미면서 트리전구 자체가 조명이라 생각했던지 등을 설치하지 않아 어두웠다.
부산 원도심 용두산공원과 해운대 구남로광장 같은 곳은 기존 가로등이 있어 그대로 불빛축제를 펼치더라도 문제될 게 없지만 황산공원은 별도의 조명을 설치했어야 제대로 작품을 감상하면서 기념사진도 찍을 수가 있는데 많이 아쉬웠다. 그 바람에 지상에 내려앉은 듯한 거대한 보름달 조형물에 사람들이 몰렸다. 보름달은 조명이 약하다보니 더욱 빛났고 달나라를 여행하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인기가 있었다.
불빛정원에 전시된 작품들은 지난달 막을 내린 국화축제 행사장에 등장했던 모형이 여러 점이나 있어 탐방객들은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두 행사를 같은 업체가 수주해서 국화꽃만 걷어내고 꼬마전구를 입힌 것 같기도 했다. 지구촌에서 겨울철에 눈이나 얼음으로 축제를 처음 벌인 곳은 한반도와 가까운 삿포로나 하얼빈으로 기억한다. 이제 우리가 수준 높은 행사를 펼치니 그쪽은 꼬리를 내린 듯하다.
가난시대를 경험한 나 같은 사람은 우리가 이렇게 흥청망청 살아도 되나하고 걱정한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것들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닌 걸 알기 때문이리라. 발전한 전기를 판매해야하는 공기업에 근무하면서도 절전을 단속해야 했던 아이러니라니. 매년 여름이면 예비전력이 간당간당하던 그 시절 부산 영락공원 사무실 온도는 시베리아 같았고 인근 태광산업 직원들은 부채로 더위를 쫓고 있었다.
길거리에 나서면 전동 킥보드가 도로 여기저기에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다. 방치한 그 자체로 2차사고를 일으킬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교차로 보도마다 ‘펼침막’이니 ‘장수의자’니 듣도 보도 못한 설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남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지 자전거 우산 같은 생활용품으로 퍼주기 경쟁을 펼치고 있다. 경쟁적으로 판을 키우는 빛축제도 '빚잔치'로 끝날까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