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시대(上古時代) 한반도 남부에 성장한 소국(小國)을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이라는 3부족사회로 나눌수 있다. 마한은54개, 진한은 12개, 변한은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 졌고 마한의 맹주국은 목지국(目支國), 진한의 맹주국은 사로국(신라), 변한의 맹주국은 가락국(가야)이 었다고 한다.
진한의 12개국 중 신라의 모체인 사로국에는 6촌(알천양산촌, 돌산고허촌, 취산진지촌, 무산대수촌, 금산가리촌, 명활산고야촌) 있었는데 6부촌장 중 자산진지촌장(?山珍支村長)인 지백호(智伯虎)와 5촌장은 기원전 69년 3월에 양산록 나정(羅井) 숲에서 말이 울고 있어 가보니 커다란 자주빛 알이 있었다. 6촌장은 이상하고 궁금하여 그 알을 조심스럽게 깨어 보니 그 속에서 어린 사내 아이가 나왔는데 그 아이를 고허촌장(최씨득성조)으로 하여금 거두어 기르게 하였다. 그후 13년뒤 기원전 57년4월에 6촌장은 알천 언덕에 모여 고허촌장 소벌도리의 추대로 여섯 촌장이 박혁거세를 왕으로 모신다. 그가 곧 신라의 첫째 임금이 되며 국호는 서라벌로 신라(新羅)의 시조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신라 3대 유리왕(儒理王)9년(서기32년)에 육촌을 개칭하여 양산촌을 급량부로, 고허촌을 사량부로, 진지촌을 본피부로, 대수촌을 점량부로, 가리촌을 한기부로, 고야촌을 습비부로 개칭(改稱)되면서 각부 촌장에게 신라 건국 공로를 기리기 위해 이씨(급량부) 최씨(사량부), 정씨(본피부), 손씨(점량부 또는 장복부), 배씨(한기부 또는 가덕부), 설씨(습비부 또는 임천부)등 성을 각기 부여하니 지백호(智伯虎)는 정씨(鄭氏)의 성(姓)을 하사(下賜)받았으며 직계 경주정씨, 제1측계 온양정씨, 제2측계 초계정씨, 제3측계 연일정씨, 제4측계 하동정씨, 제5측계 동래정씨, 제6측계 광주정씨, 제7측계 광성정씨, 제8측계 월성정씨, 제9측계 장기정씨로 분파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정(鄭)씨는 후대에 여러 갈래로 갈라져 본관을 달리하나 모두 지백호(智伯虎)의 후예들인 셈이다.
훗날 지백호(智伯虎)의 원손(遠孫) 정종은(鄭宗殷)이 신라(新羅)에서 간관(諫官)으로 직언(直言)을 하다가 인동(仁同) 약목현(若木縣)에 유배되었는데 이분이 연일(영일,오천)정씨의 시조가 된다. 그 후 그의 후손인 정의경(鄭宜卿)이 연일(延日)로 이거(移居)하여 호장(戶長)을 지냈고 다시 연일현백(延日縣伯)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연일(延日)로 한 것이며 이 고을의 별칭인 오천(烏川)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후의 계대(系代)가 실전(失傳)되어서 소목(昭穆)을 고증할 문헌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재는 고려(高麗) 예종(睿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인종조(仁宗朝)에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로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낸 정습명(鄭襲明)을 시조(始祖)로 받드는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와 감무(監務)를 역임한 정극유(鄭克儒)를 시조로 받드는 감무공파(監務公派), 고려 현종 때 동비원부사를 지낸 정자피(鄭子皮)를 1세조로 하는 양숙공파(良肅公派)로 갈라져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그러나 각 종파들 사이의 촌수를 헤아릴 수 있는 계보가 전해지지 않고 있으므로 각각 족보 및 종친회를 다르게 하고 있다.
(기백산 홈에서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