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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 <트리스탄과 이졸데>
대본 리하르트 바그너
초연 1865년 뮌헨 궁정 오페라 극장
<1993 베를린 도이체 오퍼 동경 투어 / 233분 / 한글자막>
베를린 도이체 오퍼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이리 쿠트 지휘 / 괴츠 프리드리히 연출
트리스탄......브르타뉴 성주, 콘월 왕국 마르케 왕의 조카..........르네 콜로(테너)
이졸데.........아일랜드의 공주, 마르케 왕의 왕비.....................귀네스 존스(소프라노)
마르케 왕.....콘월의 왕.......................................................로버트 로이드(베이스)
쿠르베날......트리스탄의 친구이자 심복.................................게르트 펠트호프(바리톤)
브랑게네......이졸데의 시녀.................................................한나 슈바르츠(소프라노)
멜로트.........마르케 왕의 신하. 트리스탄의 친구이자 배신자.....페테르 에델만(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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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등 ===
위대한 바그너 가수 르네 콜로와 귀네스 존스의 모습을 담은 소중한 영상물
20세기 후반을 풍미했던 정상급 바그너 가수들의 활약을 담은 소중한 기록이다. 베를린 도이체오퍼가 1993년 9월 도쿄의 NHK 홀의 무대에 올렸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그것으로 이제는 추억의 이름이 되어버린 르네 콜로와 귀네스 존스가 남녀 주인공을 노래한 실황이다. 두 가수 모두 자신들의 최전성기가 지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으며, 큰 스케일의 무대를 기반으로 펼쳐지는 명 연출가 괴츠 프리드리히의 선 굵은 연출도 훌륭하다. 당시 도이체오퍼의 상임지휘자로 재임했던 체코 출신의 지휘자 이지 코우트는 강렬함과 유려함을 겸비한 반주로 이 프로덕션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하였다. 켈트 전설에서 모티브를 따온 바그너의 위대한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사랑의 묘약에 취한 나머지 금지된 사랑에 말려든 왕비와 기사의 얘기를 담고 있다. 바그너가 실제로 겪었던 베젠동크 부인과의 금지된 사랑의 아픈 경험이 이러한 걸작을 낳은 원동력이 되었다.
영국 콘월의 기사 트리스탄과 아일랜드의 공주 이졸데의 슬픈 사랑을 담은 켈트인의 전설은 중세유럽을 대표하는 연애담으로 널리 알려졌다. 12세기 말에 활동했던 독일의 민네징거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는 이 전설을 로망스로 갈무리했다. 바그너는 이 로망스의 내용을 토대로 리브레토를 만들었고, 여기에 음악을 붙여 3막의 뮤직 드라마를 완성하였다. 1859년에 완성되었지만, 초연은 1865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이 오페라에 사용된 반음계적인 음악어법은 이후 20세기 음악의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고, 바그너 자신이 꿈꾸던 극과 음악이 일체가 된 새로운 스타일의 무대예술이 최초로 현실화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바그너의 모든 악극 중에서도 가장 숭고한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콘월의 기사 트리스탄과 그의 숙부인 마르케 왕의 아내인 아일랜드의 공주 이졸데 사이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사랑의 묘약의 힘이 두 사람의 사랑에 불을 지른 것으로 설정되었지만 바그너 자신이 완성한 뛰어난 대본과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몽환적인 음악은 그런 단편적인 설정을 모두 뛰어 넘을 정도이다. 2막의 열정적인 사랑의 이중창은 동서고금의 오페라에서 가장 길고 가장 농염한 장면이며, 3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이졸데의 ‘사랑과 죽음’은 극적인 감동을 최고조로 자아내는 명장면이다.
=== 줄거리 === <게르만신화.바그너.히틀러 : 안인희> 부록에서
<제1막> 장소 : 트리스탄의 배 갑판
트리스탄은 마르케 왕의 구혼 사절로 아일랜드에 파견되었다가 신부가 될 이졸데와 함께 돌아가는 중이다. 배는 이제 잉글랜드 남부 콘월에 가까워지고 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이졸데와 트리스탄은 점점 더 침울해진다. 어두운 비밀이 두 사람을 묶어놓으면서 동시에 갈라놓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아일랜드에 맞선 해방전쟁에서 트리스탄은 이졸데의 약혼자 모롤트(Morold)를 죽이고, 적을 조롱하기 위해 그의 잘린 목을 그녀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 자신도 또한 이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었다. 나을 길이 없는 상처에 절망한 그는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적국으로 들어가, 어머니에게서 훌륭한 약제술을 전수받은 이졸데를 찾아갔다. 그녀는 탄트리스(철자 바꾸기. Tantris라는 이름에는 트리스탄의 철자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라는 이름의 이 부상자를 받아들여 정성껏 간호해 주었다. 그러다 그녀는 그의 칼에서, 약혼자의 잘린 목에 남아 있던 파편이 꼭 들어맞는 모양으로 이가 빠진 것을 보고 그의 정체를 알아챘다. 그녀는 약혼자를 위해 복수할 셈으로 칼을 들고 그의 침대로 다가갔지만 그 순간 자신의 눈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 부딪힌다. 그러자 그녀는 힘을 잃고 칼을 떨어뜨리고 만다. 이 한 번의 눈맞춤은 그 어떤 사랑의 고백도 아니지만 전체 줄거리의 핵심을 이루는 사건이다. 그 뒤로 이졸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상자를 치료해 주었다.
아름다운 공주의 모습을 가슴에 간직한 채 그는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며 아일랜드를 떠났다. 그러나 콘월에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그녀의 약혼자를 살해한 인연이 자신들 사이를 영원히 갈라놓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체념한 나머지 극단적인 행동을 결심했다. 삼촌인 마르케 왕에게 이졸데를 신부로 맞이하라고 제안한 것이다. 그러고는 구혼 사절로 가기를 자청했다. 이졸데는 그 구혼을 받아들이고 말없이 그의 배에 올랐다.
그러나 배가 막 목적지에 도착하려는 순간 그녀의 내면에서 분노와 실망과 절망이 터져 나온다. 그녀는 트리스탄과 만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트리스탄은, 구혼 사절은 신부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관습을 핑계로 오지 않고, 이에 분노한 이졸데는 시녀 브랑게네에게 그동안 마음속 깊이 감추어 두었던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트리스탄을 죽이고 자신도 그와 함께 죽겠다고 말한다. 브랑게네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작은 상자를 가리키며, 그 안에 든 사랑의 음료로 트리스탄의 마음을 완전히 붙잡아 둘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졸데는 죽음의 음료를 고집한다.
배가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때 쿠르베날이 나타나 여인들에게 뭍에 오를 준비를 하라고 알린다. 이졸데는 트리스탄이 자신과 화해하기를 거부하면 뭍에 오르지 않겠노라고 말한다. 이러한 위협에 마침내 트리스탄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 그는 이 만남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원수를 갚으라며 칼을 내민다. 그녀가 물러나 화해의 음료를 나누자고 제안한다. 트리스탄은 그것이 죽음의 음료일 것이라 믿고 단숨에 들이킨다. 그러자 이졸데는 자신의 몫을 남기라고 소리치며 잔을 빼앗아 나머지를 마신다.
그런데 브랑게네는 죽음의 음료 대신 사랑의 음료를 잔에 따랐었다. 다만 여기서 두 사람을 변화시킨 것은 사랑의 음료가 아니라 함께 죽는다는 의식이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유로워진 그들은 이제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사랑의 망아경에서 깨어보니 배는 이미 항구에 들어서 있고, 그곳에서 마르케 왕이 신부를 기다리고 있다.
<제2막> 마르케의 왕궁안 이졸데의 처소앞 정원
마르케 왕은 밤 사냥을 떠난다. 이졸데는 브랑게네에게 횃불을 꺼서 트리스탄에게 신호를 보내달라고 청한다. 브랑게네는 자신이 음료를 바꾸어놓는 바람에 여주인을 괴로운 처지에 몰아넣었다며 절망하고 있다. 그녀는 이졸데에게 트리스탄의 친구인 멜로트를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브랑게네는 멜로트가 오늘 왕에게 밤 사냥을 권했고, 이 기회를 이용해 친구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불륜 현장을 잡으려 하니 제발 오늘 밤만은 트리스탄을 만나지 말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이졸데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손수 신호를 보낸다. 트리스탄이 나타나자 그들은 정열적으로 포옹하며 자신들을 결합시킨 음료를 찬양하고, 사랑을 가능하게 해주는 밤을 예찬한다. 그리고 점점 더 열에 들떠 '영원한 밤'을 꿈꾸다가 결국 사랑의 죽음이라는 생각에 열광적으로 빠져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이 다가오고 쿠르베날이 나타나 트리스탄에게 도망치라고 경고한다. 멜로트가 두 사람을 배신한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같이 죽기로 결심한 상태다.
불륜 현장을 목격한 왕은 처절한 목소리로 탄식한다. 왕은 트리스탄을 아들처럼 사랑해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왕에게 결혼을 권한 것은 트리스탄이었고, 이졸데를 아내로 맞지 않으면 왕국을 떠나겠노라고 위협한 것도 그였다. 그때문에 왕은 결혼을 결심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게 이런 일을? 트리스탄, 이런 일을 내게 하다니?" 이유를 묻는 왕에게 트리스탄은 할 말이 없다. 세상은 이미 꿈속만 같다. 그는 이졸데에게 자신을 따라 죽음의 나라로 갈 것인지 묻는다. 이졸데는 길만 가르쳐달라고 대답한다. 트리스탄은 멜로트를 자극하고 그가 칼을 빼들자 스스로 상대의 칼에 뛰어들어 심각한 상처를 입고 쓰러진다.
<제3막> 브르타뉴에 있는 트리스탄의 성 앞 정원
쿠르베날은 중상을 입은 트리스탄을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 있는그의 고향으로 데려왔다. 트리스탄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목동 하나가 피리의 일종인 샬마이로 우수에 찬 멜로디를 연주한다. 그 목동은 쿠르베날에게 성주 트리스탄의 상태가 어떤지를 묻는다. 쿠르베날은 어서 가서 배가 오고 있는지 살펴보라고 지시한다. 목동이 멀어져 가는데 트리스탄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 거의 죽음에 이른 순간 이졸데에 대한 생각이 그를 붙잡은 것이다. 쿠르베날은 이졸데에게 사람을 보냈으니 배가 오고 있을 거라고 말한다. 목동의 우수에 찬 피리 소리는 아직 배가 보이지 않는다는 신호다.
피리 소리를 따라 트리스탄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목동의 피리 소리는 자기 운명에 대한 상징처럼 들린다. 슬픔으로 점철된 삶, 아픔 속에 자신을 잉태하고 죽어가면서 자신을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 옛날 깊은 상처를 입은 채 배를 타고 아일랜드로 갔던 일을 추억한다. 이졸데가 그 상처를 치료해 주었으나 그녀와 눈길이 마주친 순간 새로운 상처가 생겨났다. 나중에 그녀는 사랑의 음료가 든 잔을 내밀었다. 그는 자신을 이토록 고통스러운 그리움에 빠뜨린 그 독약을 저주하다 다시 혼절한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자 그는 기다리던 배가 나타나 이졸데가 환한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구원하러 오는 환영을 본다. 이번에는 그의 망상이 현실이 되었다. 환희에 찬 목동의 피리 소리가 배의 도착을 알린다. 쿠르베날이 항구로 달려가는 동안 트리스탄은 상처에서 붕대를 떼어내고 죽어가는 모습으로 이졸데를 맞이한다. 그는 그녀를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해하며 그녀의 품안에서 피를 흘리며 죽음을 맞는다. 이졸데는 함께 죽는다는 '영원하고 짧은 마지막 행복'이 사라진 것을 탄식한 후 정신을 잃고 그의 곁에 쓰러진다.
그때 목동이 또다른 배가 도착했음을 알린다. 쿠르베날은 무장한 신하들을 거느린 마르케 왕과 멜로트를 알아본다. 그들이 이졸데를 추적해 왔다고 생각한 쿠르베날은 칼을 뽑아들고 멜로트를 찌른 후 함께 쓰러진다. 그러나 마르케 왕은 싸울 생각으로 이졸데를 따라온 것이 아니었다. 브랑게네로부터 뒤바뀐 음료의 비밀을 듣게 된 그는 이 한 쌍을 축복해 주려고 온 것이었다. 하지만 소중한 친구 트리스탄이 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에 모든 것이 암담한 슬픔으로 무너져 내린다. 이졸데는 왕의 탄식을 듣지 못한다. 그녀는 황홀경에 잠겨 트리스탄이 새로운 삶을 위해 깨어나는 모습을 보며, 자신들의 사랑이 죽지 않으리라는 믿음과 함께 죽음으로 그와 하나가 된다. 마지막 무대는 트리스탄, 이졸데, 쿠르베날, 멜로트 등의 시체로 가득 찬다.
3. 감상포인트(안인희)
온몸이 녹아내릴 듯 아리고 슬프고 에로틱한 선율에 잠겨보라. 특히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노래는 발성조차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가수를 괴롭게 만들만큼 난해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음 듣는 순간 벌써 듣는 이를 불안하게 만든다. 단조와 난해한 반음이 뒤섞인 선율들이 귓가에 맴돈다.
사건의 배경을 알려주는 제1막은 전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제2막은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위험을 무릅쓰고 만나는 '연인들의 밤' 장면. 다시 만난 기쁨과, 지겹기만 한 낮과는 달리 사랑을 가능케하는 밤에 대한 찬미. 그들은 밤을 찬양하다 영원히 계속되는 밤을 꿈꾸고 이어서 사랑의 죽음을 몽상한다. '사랑의 죽음'을 몽상하는 이 부분이 제2막의 절정을 이룬다. 가수들이 숨이 막히도록 환호성을 외치는 동안 기악 부분은 환희의 날개를 달고 하늘로 한층 더높이 치솟으며 열광을 표현한다. 번갈아 나오는 성악 부분과 기악 부분이 서로를 부추기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동안, 듣는 이도 또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이들의 기막힌 사랑의 열정에 함께 말려들고 만다. 아아, 사랑을 불가능하게 하는 낮은 이제 그만, 영원한 밤을, 달콤한 밤을! 삶이나 낮이 아니라 밤과 죽음이 더욱 아름답구나! 뜨겁게 불타오르는 마음에 사랑의 최고 환희!
제2막 제3장. 조카이자 신하인 트리스탄과 사랑하는 아내에게 배신당한 마르케 왕의 괴로움...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사랑의 죽음 테마는 제3막 마지막에서 이졸데가 죽은 트리스탄이 깨어나는 환상을 보며 부르는 마지막 노래에 다시 한번 나온다. 듣는 이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음악에 휩쓸려 자신의 삶을 잊고 함께 사랑과 죽음을 동경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삶의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차원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이다. 마치 연인들이 마신 마법의 약에 홀린 것같이 다른 차원의 낯선 세계, 사랑과 죽음의 세계를 갈망하게 된다. 이 음악 자체가 바로 사랑과 죽음의 음료이므로.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이은진 글>
트리스탄과 이졸데
리하르트 바그너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중세 기사문학을 토대로 하여 사랑과 의무 사이의 갈등을 그린 작품으로, ‘한틀룽(Handlung, 드라마)’이라는 부제와 함께 발표되었다. 바그너가 오페라라는 이름을 버린 첫 작품인 셈이다. 이 작품은 또한 바바리아의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를 지원하면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 작품이기도 했다. 이 작품이 초연된 후 바그너는 세계적인 음악가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다질 수 있었고, 평생 염원해 온 음악극의 이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바그너 작품 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초연이 이루어지기까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심지어 이 작품은 너무 어려워서 공연될 수 없는 작품이라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루트비히 2세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초연이 이루어진 후로, 이 작품은 바그너의 작품 중 가장 사랑받은 작품이 되었으며 수많은 명반들을 낳았다.
트리스탄 전설과 마틸데 베젠동크와의 사랑
〈트리스탄과 이졸데〉에는 바그너와 마틸데 베젠동크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1849년, 5월 혁명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체포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바그너는 아내 민나를 남겨두고 드레스덴을 떠나 취리히로 피신하였다. 힘겨운 시절을 보내던 중 부유한 상인 오토 베젠동크를 만나게 되어, 1852년부터는 그가 제공한 별장에 머물면서 작곡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베젠동크 부부와 가깝게 지내면서 바그너와 마틸데 베젠동크는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자신의 후원자의 아내와 금지된 사랑에 빠진 바그너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트리스탄의 전설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당시 바그너는 〈지크프리트〉를 작곡하던 중이었지만, 트리스탄 전설에 대한 매력을 떨쳐낼 수 없었다. 결국 바그너는 〈지크프리트〉 작업을 중단하고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작업에 몰두하였다. 1857년, 바그너는 마틸데가 쓴 5개의 시에 노래를 붙인 《베젠동크 가곡집》을 작곡했다. 바그너가 다른 사람의 시를 가사로 한 대단히 예외적인 작품인 것이다. 바그너는 이 가곡집을 ‘트리스탄을 위한 습작’이라고 설명했는데, 실제로 이 중 두 개의 가곡에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2막의 모티브와 3막 전주곡의 모티브가 사용되었다.
이처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마틸데와의 사랑으로 인해 바그너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1857년의 어느 저녁, 바그너는 베젠동크 부부와 아내 민나, 그리고 훗날 자신의 아내가 되는 코지마와 한스 폰 뷜로 부부 앞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한 소절을 낭독한다. 이미 바그너와 마틸데의 불륜을 눈치채고 있었던 민나와 오토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또한 이 날의 인연이 계기가 되어, 코지마는 몇 년 뒤 바그너와 연인 관계가 된다. 운명의 짓궂은 장난의 희생물이 된 한스 폰 뷜로는, 1865년 아내의 불륜을 알면서도 바그너와 자신의 아내를 만나게 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초연을 지휘해야 했다.
급기야 이듬해 1858년, 위태로운 삼각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민나는 바그너가 마틸데에게 보낸 악보를 가로채어 두 사람을 고발하겠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오토 베젠동크는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로 떠나버리고, 바그너는 민나의 심장병을 핑계로 그녀를 온천으로 보내버린다. 바그너 자신도 모든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베니스와 루체른으로 떠난 후에야 드디어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쇼펜하우어를 만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처럼 마틸데와의 사랑과 트리스탄 전설에 대한 매력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음악적 내용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접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1854년 처음으로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읽은 바그너는,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을 이룰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고통 받는 현실에 대한 그의 철학에 깊이 매료되었다. 3막에서 트리스탄이 자신을 괴롭히는 열정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대사들은, 쇼펜하우어의 이러한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든 장면이라 하겠다.
바그너는 고통과 기만으로 가득한 현상(페노메논)과 기만적 표상으로부터 벗어난 실체(누메논)라는 쇼펜하우어적인 세계관을 낮과 밤이라는 이분법적 시공간 속에서 펼쳐보였다. 낮의 세계는 마르케 왕에게 속한 세계로,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자신들의 열정을 숨겨야만 하는 기만적인 세계이다. 밤의 세계는 본능적 현실을 표상한다. 밤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고 싶은 열망이 진실하게 표현되는 영역이며, 이 열망이 결국 죽음으로 구현되는 영역이다. 즉 밤의 영역은 죽음에 대한 갈망의 영역이다. 이 두 연인의 사랑은, 그것을 금기시하는 세상 속에서는 그 시작부터 불행을 안고 있다. 따라서 세상으로부터 숨어 있을 때에만 연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세계에 등을 돌릴 때에만 진실을 직면할 수 있다는 이러한 사고는, 쇼펜하우어적인 비관주의인 동시에 불교적인 사고이기도 하다.
또한 바그너가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공감한 것 중 하나는, 인간의 성적 갈망을 가장 강렬한 인간의지로 인정했다는 점이었다. 평생 동안 사회적 제도에 의해 억압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랑을 꿈꿔 온 바그너는 쇼펜하우어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인간의 가장 강렬한 갈망이자 인간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갈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 갈망을 가장 인상적인 형태로 표현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극중 대부분을 서로에 대한 갈망과 그리움을 표현하는 인물이다. 이졸데에 대한 트리스탄의 갈망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지만, 동시에 그를 살아있게 해 주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다. 바그너는 3막에서 이러한 아이러니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트리스탄은 이졸데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죽어가지만, 이졸데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이 두 사람의 갈망은 죽음을 통해서만 충족된다.
이처럼 죽음을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는 갈망은 계류음이라는 장치를 통해 음악적으로 구현되었다. 실제로 바그너가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읽으면서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대한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쇼펜하우어가 계류음에 대해 논의한 부분에서였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쇼펜하우어는, 계류음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과 그로 인해 지연된 해결이 주는 만족감이 연기됨으로써 더욱 고조되는 의지의 만족감과 유사하다고 논하였다. 이 문구에 깊이 공감한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음악 전체를 계류음으로 구성함으로써 이룰 수 없는 갈망을 표현하자는 착상을 얻게 된다.
바그너는 극의 시작에서부터 계류음을 연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그 불협화음에 대한 해결을 갈망하도록 연출하였다. 이 충족될 수 없는 해결에의 갈망은 인간의 욕망이 충족될 수 없는 현실을 음악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계류음들의 연쇄는 극중에서 계속 해결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결국 두 연인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 이르러서야 완전하게 해결된다. 바그너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갈망은 결국 죽음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트리스탄 코드, 새로운 음악의 시대를 열다
바그너가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펼쳐보인 계류음들의 연속은 당대 음악가들과 청중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특히 이 계류음들의 연쇄를 시작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의 첫 화음은 ‘트리스탄 코드’라고 명명될 정도로, 이후의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혁신이었다. 트리스탄 코드는, 계류음으로 인한 불협화음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또 다른 불협화음으로 진행함으로써 전통적인 화성어법에서 벗어난 진행을 보여준다. 이러한 불협화음의 연쇄를 음악의 첫 머리에서부터 제시한 이 작품은, 수세기를 이어져온 서양음악의 조성체계를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또한 두 개의 연속하는 화음이 삼전음(트라이톤)을 사용하는 등 기존 화성어법의 영역을 넓혔고, 당시로서는 충격적일 정도의 반음계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조성체계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놀랍도록 다채로운 오케스트레이션과 이전의 어느 오페라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대위법적 진행들은 당대의 음악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실제로 구스타프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알반 베르크와 아르놀트 쇤베르크 등 19세기 말과 20세기 음악을 이끈 수많은 작곡가들이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새로운 시대의 음악을 발견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바그너 음악극의 특징 중 하나인 무한선율의 아이디어가 처음으로 완전한 형태로 시도된 작품이기도 하다. 선율이 가사로부터 유기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바그너는, 아리아가 끝남과 동시에 선율이 종결되는 기존의 형식 대신 선율이 계속 이어지며 확장되는 무한선율이라는 형식을 고안했다. 바그너는 이를 통해 극적 진행이 펼쳐지는 동안 음악 역시 지속적인 흐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다.
바그너가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보여준 음악적 혁신은 20세기 음악의 향방을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20세기 무조성음악의 길을 열어주었을 뿐 아니라, 그가 사용한 음악적 색채 효과는 영화음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버너드 허먼이 음악을 담당한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이나, 루이스 부뉴엘과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연상시키는 음악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당대 할리우드 영화의 음악은 대부분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바그너가 보여준 반음계기법과 색채감의 영향을 보여주었다.
모두 3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이 절정에 이른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여 과거의 사건을 소급하여 설명하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내러티브를 따르고 있다.
줄거리와 주요 음악
1막
콘월의 왕 마르케의 조카 트리스탄이 아일랜드의 공주 이졸데를 마르케 왕의 신부로 데려간다. 이졸데가 시녀 브랑게네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며 과거의 사건들을 회상한다. 트리스탄이 자신의 약혼자 모롤트를 죽였으나 그 과정에서 상처입은 트리스탄을 간호하면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졸데는 사랑하는 트리스탄이 자신을 마르케 왕의 신부로 데려가려는 것에 분노하여 그와 함께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죽으려고 결심하고 브랑게네에게 독약을 가져올 것을 명한다. 그러나 브랑게네는 독약을 사랑의 미약으로 바꿔버리고, 이 약을 먹은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더욱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2막
콘월에 도착하여 마르케 왕과 결혼하여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이졸데는, 마르케 왕이 밤 사냥을 떠난 틈을 타 트리스탄과 밀회한다. 두 연인은 덧없는 의무와 명예를 저주하며 영원한 밤과 죽음을 찬미하는 2중창을 노래한다. 이때 트리스탄의 부하 쿠르베날이 달려와 함정이라고 외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관계를 눈치챈 마르케의 신하 멜로트가 두 사람의 밀회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밤사냥을 기획했던 것이다. 마르케 왕은 가장 믿었던 트리스탄의 배신에 비통해 하고, 트리스탄은 멜로트의 칼에 쓰러진다.
3막
쿠르베날은 상처 입은 트리스탄을 고향 브르타뉴로 데려와 치료한다. 이졸데에 대한 그리움에 괴로워하던 트리스탄은, 그녀만이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다고 쿠르베날에게 간청한다. 쿠르베날의 전갈을 받은 이졸데가 마침내 브르타뉴에 도착했지만, 그 순간 트리스탄은 숨을 거둔다. 뒤이어 마르케 왕이 부하들과 함께 브르타뉴로 오지만, 쿠르베날은 왕의 부하들과 전투를 벌이고 트리스탄을 밀고한 멜로트를 죽인 뒤 숨을 거둔다. 두 연인을 용서해주려 했던 마르케 왕은 이러한 참극에 말을 잃는다.
한편, 트리스탄의 죽음을 보고 정신을 잃은 이졸데는 브랑게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지만, 트리스탄의 마지막 미소를 바라보며 죽음을 결심한다. 이졸데는 마지막으로 ‘사랑의 죽음’을 부르면서 독약을 마시고 트리스탄을 따라 죽음을 택한다.
1막 전주곡
바그너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구상하면서 가장 먼저 작곡한 음악으로, 쇼펜하우어의 계류음에 대한 논의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탁월하게 발전시킨 곡이다. 첼로가 고요하게 선율을 시작하고, 곧 오보에와 바순, 잉글리시 호른이 첨가되면서 유명한 트리스탄 코드를 만들어낸다. 계류음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 이어진 뒤, 오케스트라가 서정적이면서도 애절한 선율을 연주하며 점차 감정을 고조시킨다. 주제선율과 현악의 반음계진행이 결합하면서 음악이 점차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클라이맥스 이후에도, 마치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처럼 음악은 길게 여운을 남기면서 지속된다. 주제선율이 점차 잦아들면서, 관악기에서 다시 한 번 트리스탄 코드를 반복하면서 마무리된다.
2막, 사랑의 2중창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밀회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로, 극 중에서 가장 긴 길이의 음악이다.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세 막을 모두 2중창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1막은 이졸데와 브랑게네의 2중창을 통해 이졸데와 트리스탄의 과거를 설명하고, 3막에서는 트리스탄과 쿠르베날의 2중창을 통해 트리스탄의 과거와 회한을 표현하였다. 1막과 3막의 2중창이 두 주인공이 각각 충실한 측근과 부르는 노래인 것과 달리, 2막의 2중창은 두 연인이 함께 만나 서로의 감정을 가장 진실한 표현으로 토로하는 음악이다.
이처럼 두 사람이 서로의 사랑을 표현하는 노래이면서도, 이 노래는 일반적인 오페라의 감미로운 사랑의 2중창과는 매우 다른 특징을 가진다. 두 연인의 2중창은 처음부터 매우 격렬한 진행으로 시작된다. 이졸데는 광기어린 높은 C음을 노래하고 트리스탄의 선율 역시 격정적이다. 두 사람의 선율은 함께 제시되지 않고 각자의 선율을 노래할 뿐이다. 1막의 전주곡에서 제시된 반음계적인 선율이 격렬한 감정을 더욱 강조한다. 격정적인 선율이 점차 잦아들면서 부드럽고 유혹적인 선율이 제시된다. 두 연인이 사랑이 지배하는 밤을 갈망하면서 서로를 밤과 꿈의 세계로 유혹하는 장면이다. 두 사람의 감정은 선율보다는 오케스트라의 진행에 의해 대부분 표현된다.
이러한 유혹의 제스처에 뒤따라, ‘사랑의 밤(Liebesnackt, O sink hernieder, Nacht der Liebe)’ 장면이 이어진다. 숭고하면서도 섬세한 음악은 현실세계를 등지고 진실한 사랑의 합일을 꿈꾸는 두 사람의 소망을 독특한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다. 절제된 오케스트라 반주 위에서 드디어 함께 제시되는 두 사람의 감미로우면서도 서정적인 선율은 1막 전주곡의 주제선율과 어우러져,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과 현실을 벗어나려는 초월적인 갈망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3막 트리스탄의 노래
트리스탄이 멜로트에게 입은 상처로 인해 죽어가면서 부르는 노래로,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이졸데의 모습을 보기 위해 고통스럽게 생명을 이어가는 심정을 탁월하게 포현하고 있다. 죽음이 목전에 이른 것을 깨달은 트리스탄은 자신의 충실한 부하 쿠르베날에게, 자신을 낳고 죽음에 이른 어머니로 인해 정해진 이름의 유래와, 이졸데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억압하는 낮의 세계에 대한 비판 등을 토로한다. 바그너는 이 노래에서 이제까지 제시되었던 상처의 모티브, 낮의 모티브, 독약의 모티브, 목동의 모티브 등을 모두 사용하여 대위법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
트리스탄의 이 노래는 음악적으로도 매우 아름답지만, 트리스탄의 입을 빌어 쇼펜하우어적인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되는 노래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자신을 파멸시키고 있지만,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유일한 이유가 그 이룰 수 없는 갈망임을 깨달은 트리스탄의 선율은, 마치 열반에 이르려는 승려와 같은 회한과 황홀감이 뒤섞인 감정을 표현한다.
마침내 죽음에 이른 트리스탄은, 격정적인 선율로 죽음에 대한 황홀한 갈망을 표현하고, 앞서 제시된 목동의 피리 선율이 다시 등장한다. 다른 악기들이 절망적으로 하행하는 동안, 이 피리 선율은 계속해서 상행하면서 열반 혹은 죽음을 통한 구원에의 갈망을 암시한다.
3막 이졸데의 노래, ‘사랑의 죽음(Liebestod)’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에서 1막 전주곡과 함께 가장 유명한 음악으로, 보통 콘서트용으로 연주될 때에는 전주곡 다음에 연달아 연주되곤 한다.
극중에서는, 트리스탄을 치유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지만 뒤늦게 도착한 나머지 트리스탄의 죽음을 목도한 이졸데가 부르는 노래이다. 1막 전주곡의 주제선율을 변형한 선율을 노래하면서, 죽음을 통해 트리스탄과의 합일을 꿈꾸는 절망적이면서도 환희가 교차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음악이다.
선율 자체로도 고난이도의 기교를 요구하지만, 슬픔과 황홀경이 교차하는 미묘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소화해내기가 매우 어려운 곡이다. 또한 바그너가 완전한 형태로 선보인 무한선율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 곡이기도 해서 호흡의 안배가 매우 중요한 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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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 === <2010년 11월 30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반음계적 화성, 무한선율 기법이 적용된 혁신적 오페라
1857~1859년에 작곡, 1865년 뮌헨에서 초연
낭만적인 사랑을 다루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지상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두 연인의 죽음으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자살하는, 이른 바 ‘정사(情死)’라는 것이지요. 오페라 중에는 베르디의 [아이다],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들은 민족, 가문, 군신관계 등의 이유로 사랑을 이룰 수 없게 되자 사회적 의무와 개인적 열정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랑의 묘약을 소재로 한 중세문학
기사 트리스탄에 대한 이야기는 켈트의 전설로 전해내려 오다가 12세기 프랑스에서 [트리스탄과 이죄(Iseut. 이졸데의 프랑스 식 이름)]라는 제목으로 문학화 되었습니다. 독일에서는 13세기 초에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가 [트리스탄]이라는 제목의 장편 서사시를 썼지요. ‘트리스탄’이라는 이름은 ‘슬픔’을 뜻하는 라틴어 ‘트리스티스(tristis)에서 온 것입니다. 트리스탄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전사했고, 그 소식에 절망한 어머니가 트리스탄을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거든요. 그러니 ’슬픔 속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바그너는 ‘하루를 못 보면 병이 들고, 사흘을 못 보면 죽는다’고 하는 ‘사랑의 묘약’을 마신 연인들의 이 이야기를 토대로 ‘한틀룽(Handlung. ‘행위’ 또는 ‘줄거리’라는 뜻)’이라는 부제를 달아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했습니다. 이전의 작품들에 ‘낭만적 오페라’라는 부제를 단 것과는 확실히 구분됩니다. 그는 이 단어로 ‘고대 그리스 식의 비극’을 의미하려고 했습니다. 그리스 비극처럼, 외적인 사건의 전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내면심리를 언어로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가 [트리스탄]에 담은 정치적, 문학비평적인 내용은 바그너의 작품에서는 다 빠졌고, 오로지 ‘사랑’만이 핵심주제로 남았습니다. 바그너는 스위스 망명중에 자신을 후원해준 기업가 베젠동크의 아내 마틸데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고, 그 시기에 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작곡했습니다. ‘통속적 현실’ 속의 아내 민나를 벗어나 자신의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베젠동크 부인과 결합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 그 바그너의 소망이 그의 텍스트와 음악을 더욱 극단적 갈망으로 충일하게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중세’라는 시대를 외피로 두르고 있지만, 내용은 낭만주의 시대 연애담입니다. 한편 이 작품에서 바그너는 ‘예술가의 자유와 사회규범 간의 충돌’이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통한 사랑의 승리’라는 주제 외에도, ‘예술가가 작품 창조를 위해 도덕을 저버리는 것이 어느 선까지 용납되는가’ 하는 문제가 바탕에 깔려있는 셈입니다.
바그너는 자신의 가수들에게 주문이 많았는데요, 극의 내용을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분명하고 흠 없는 발음을 요구했습니다. 이처럼 가사를 강조하기 위해 ‘멜로디는 가사에서 유기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그너 작곡의 원칙이었고, 이 원칙은 후에 그의 ‘무한선율(Unendliche Melodie) 기법’을 이끌어내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무한선율이란 멜로디가 아리아를 마치면서 끊어지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며 확장되는 것을 뜻합니다.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분리가 사라지면서 이 무한선율은 듣는 사람들을 신비로운 도취상태에 빠지게 하죠.
무한선율이라는 용어를 바그너가 처음 사용한 것은 1860년 <미래음악 Zukunftsmusik>에서였습니다. 드라마의 내적 행위가 전체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펼쳐지고, 음악 역시 지속적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만들어진 기법으로, 이것은 낭만주의의 무한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1865년에 뮌헨에서 초연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런 무한선율의 특성이 극의 내용과 가장 잘 부합되는 드라마입니다.
사회적 의무와 도덕을 벗어나 밤과 죽음을 찬미
‘트리스탄 화성’으로 유명한 전주곡이 끝나고 막이 열리면, 콘월의 왕 마르케의 조카인 기사 트리스탄은 아일랜드 공주 이졸데를 배에 태워 왕의 신부로 데려갑니다. 과거에 트리스탄이 이졸데의 약혼자 모롤트를 죽이긴 했지만 이졸데가 트리스탄의 상처를 치료해주면서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버렸죠. 그런데도 연인인 자신을 왕과 결혼시키려는 트리스탄에게 분노하면서 이졸데는 콘월로 가는 배 안에서 그와 함께 독이 든 술을 마시고 죽으려 합니다. 그런데 시녀 브랑게네가 독약을 사랑의 미약으로 바꿔치기 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새롭게 더욱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여기까지가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의 내용입니다.
사회적 도덕과 의무가 지배하는 낮의 세계와 자연의 욕망이 인정되는 밤의 세계의 대립, 그리고 죽음을 통한 완벽한 합일이라는 주제는 2막에서 더욱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마르케 왕이 밤 사냥을 떠나자 이졸데는 연인 트리스탄에게 건너오라는 신호를 보내지요. 달려온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뜨겁게 포옹하며 영원한 밤과 죽음을 찬미하고 대낮 세계의 덧없는 명예와 삶을 저주합니다. 이들의 사랑의 이중창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트리스탄의 충직한 부하인 쿠르베날이 달려들어와 "함정에 걸려들었다"라고 외칩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밀회를 눈치챈 마르케의 신하 멜로트의 계략으로 밤 사냥이 기획된 것이었지요. 밀회현장에서 발각된 트리스탄에게 마르케 왕은 가장 믿고 아꼈던 트리스탄의 배신에 비통한 심경을 노래합니다. 트리스탄은 "어머니가 나를 낳고 떠나간 밤의 세계로 나도 간다"라고 말하며 멜로트의 칼에 맞아 쓰러집니다.
3막에서 부하 쿠르베날은 트리스탄의 고향인 브르타뉴의 카레올로 주인을 데려와 정성껏 치료하고 있습니다. 이졸데를 그리워하며 몸부림치던 트리스탄은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줄 이졸데가 마침내 배를 타고 도착했을 때 숨을 거둡니다. 뒤를 이어 마르케 왕의 배가 나타나자 쿠르베날은 부하들과 함께 왕의 부하들에 맞서 싸우다가 멜로트를 죽이고 자신도 쓰러집니다. 두 연인을 용서하러 찾아왔던 마르케 왕은 이 참극에 넋을 잃게 됩니다.
한편 트리스탄과 포옹한 채 정신을 잃고 있던 이졸데는 시녀 브랑게네의 목소리에 눈을 뜨지만, ‘부드럽고 고요하게’ 미소짓는 트리스탄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최후의 노래인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과 함께 이졸데 역시 트리스탄과 더불어 행복하게 저세상으로 떠나갑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트리스탄-이졸데-마르케 순)
[음반] 루트비히 주트하우스, 키르스텐 플락스타드, 요제프 그라인들 등,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및 코벤트가든 로열오페라 합창단, 1952년
[음반] 볼프강 빈트가센, 비르기트 닐손, 마티 살미넨 등, 칼 뵘 지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66년
[DVD] 르네 콜로, 요한나 마이어, 마티 살미넨 등, 장 피에르 포넬 연출,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83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실황
[DVD] 이언 스토레이, 발트라우트 마이어, 마티 살미넨 등,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밀라노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파트리스 셰로 연출, 2007년 라 스칼라 극장 실황
첫댓글 <불멸의 오페라 2 / 박종호> ★★ ... 베를린 도이치 오퍼 공연평(베를린 도이치 오퍼의 동경 투어 실황)
역시 뛰어난 무대에 일류 가수들이 포진했으며 비르기트 닐손(이졸데)과 존 비커스(트리스탄)에 필적할 만한 또다른 명커플 기네스 존스(이졸데 역)와 르네 콜로(트리스탄 역)의 당당한 모습이 이 프로덕션의 백미이다. 두 사람의 가창은 여전히 뛰어나고 존경할 점들로 넘치지만, 둘 다 전성기를 지난 다음이라 음반에서 느끼던 감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신에 전반적으로 강렬하고 유려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더욱 멋지게 다가온다. 무대는 새로울 것이 없으나 아름답고 큰 스케일은 환상적인 상상에 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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