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에서 22일까지...
제14차 이산가족상봉에 다녀왔다.
6월 18일 설악산 한화콘도에서 예비교육을 받고 일박 후 금강산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4백여명의 이산가족이 보이는 모습들은 내게는 작은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설레임과 같이 술렁였다.
남측 북측이라 부르라는 말에 평생 당국이 하던 남한,북한 등 호칭의 얼떨함이 있었고 국민학교(초등)시절 짐승꼬리를 단 북한병사의 그림과 별이 새겨진 모자를 썼던 그림이 떠올랐다.
난, 실향민 2세이다.
내 어머니가 황해도 출신이시고... 아버지는 이남출신이나 집안의 몰락으로 전국을 전전하다 강원도에서 본가가 있던 서울로 올라가 6.25전 까지 철공일을 하다 피난와 우리형제를 두셨다.
나의 작은 아버지...
정확히 세분이셨는데 나의 아버지가 장남이셨고 아래로 둘째. 셋째가 인민군에 자원입대하여 둘째는 전쟁 중 행불되었고 셋째는 북으로 인민군과 같이 월북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막내는 현재 진폐증으로 국가지정병원에 입원 중이다...
내 가족의 역사는 별로 풍요롭지 못하다...
증조부의 일본증오는 자신의 가족을 풍지박산하였고 해방 후 그 역시 이승만에게 버림받아 말년을 대한문앞에서 팔순을 넘긴 노구를 이끌고 "인민을 박대하지 말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다 전쟁 중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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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계선을 넘는 버스에서 안내자의 너스레에 그나마 긴장감이 누그러 들고 미군의 마지막모습을 보며 북측경계을 넘어 북측 검색대에 도착하며 밖의 모습은 황량하기만 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생소한 풍경에 정말 어려운 그들의 생활이 짐작되었다.
길가 초소의 북쪽 병사를 보며 너무도 다른 한민족이란 것이 커다랗게 다가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검색대에서 마주친 북측 병사 중 둘은 인터넷게임인지 아니면 컴 보조프로그램의 게임인지는 몰라도 카드게임을 하고 있다.....
4번 출구..
열을지어 방북번호표를 보이고 카메라는 검색대위를 통과시켜 빠져나오니 버스가 대기 중이다...
한화콘도를 출발 후, 불과 50여분의 거리를 두고 남측 검색을 통과하여 10여분 후, 북측에 다다른 내 조국 산하는 북측검색대에서 금강산으로 다시 10여분을 달려 해금강호텔 옆 새로지은 비치호텔앞에 다다렀다.
바위산으로 둘러진 장전항...
기괴한 바위가 병풍둘러지어졌고. 내 조국의 자산인 조선소나무가 구릉지어 반기고 있는 이 땅...
둥그런 해안선으로 둘러진 장전항....
너무도 넓고 해안선의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절러 난다.
난, 바다낚시가 나의 유일한 취미라서 남쪽의 바다는 어지간 하면 거의다 둘러꿰고 있다.
그러나 이 내 조국 한반도의 북쪽 장전항의 모습은 동해안 어디보다...남해안 어디에 내 놓아도 빼어남이 색다르다.....
해안을 마주하고 멀리 안개속 건너 북측마을의 회색빛 모습이 가라앉은 모습으로 펼쳐져 있어도 분명, 이 땅, 아 나라는 한민족의 터전이고 같은 지도의 한 구석인 것을.....
첫째 날,,,
점심을 먹고 3시.
온정각휴게소로 이동하여 첫번째 단체상봉을 하였다.
할 말이 없다.
생전 처음보는 내 작은 아버지의 모습은 이모할머니들의 말씀과는 다르게 초라하고 작은체구에 깡마른 노인의 모습이었고 나 뿐만아니라 모두의 북측 상봉자의 모습이 한결 같았다.
구부러진 노인들.....
철저한 공산주의자 내 작은 아버지...
그는 자신이 선택한 공산주의자로서 평생을 38년간 군생활로 충성을 다했으며 북측장교생활을 거의 다 강원도에서 하셨으며 김일성으로부터 수많은 무공훈장 등 전쟁영웅의 지위를 부여받은 혁명2세대로 추앙받고 있다 하셨다.
북에서 혁명 1세대는 일제와 맞선 항일투사등이고...
혁명 2세대는 미군과 싸워 맞선 자등이라 하셨다.
간간히 가족의 안부를 묻는 중에도 "위대한....., "등 의 북측 지도자의 자랑을 꼭하셨다.
나 어려서 내 고향의 노인들의 모습....
초가에서 개량지붕으로 바뀌었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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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상봉의 내용은 북쪽 내 가족의 안위를 위해 공개적인 글을 싣기가 곤란하다....
2박 3일 상봉 후.
마지막 작은 아버지를 작별하는 순간 난 큰절을 올렸고
개별상봉 중 그 날이 내 아버지의 기일이라서 몰래 호텔방에서 소주한잔 올리고 작은아버지가 올린 제사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난 작은 아바지와 마지막 작별을 하며 평생을 다해 하루 한 시간 먼저 일어나고 한 시간 늦게 자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나의 남은 생동안 지켜야할 예의인것 같았고 나의 의무이기도 하다...
통일되는 그 날,
나의 팔남매 사촌이 날 찾았을 때 난 그들에게 그렇게 약속을 지켰다 말 할 것이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해 하지 않도록 살 것이다.
나 살아가는 동안 내 가족의 불편을 풀기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다....
미안하다! 형제들이여... 너희가 다시 날 찾을 때까지 건강들 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