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환자들이 갖가지 사연으로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는 요양병원의 중환자실 가습기가 쉴새없이 안개를 뿜어댄다. 환자들의 머리 위에는 의료용 호스들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고 침대마다 수액거치대에선 투명한 액체가 고드름 녹아내리듯 방울 방울 환자들의 핏줄을 타고 생명을 전달한다. "영태야" 오전11시 칸트의 산책시간처럼 이 시간이면 나타나는 영태엄마 L튜브를 코에 삽입한채 마취된듯 미동도 않던 뇌사환자 영태가 엄마의 부름에 반응을 한다. 엄마는 늘 그래왔던것처럼 영태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상태를 살피다가 조그만 트집거리라도 발견하면 간호사를 불러 불만을 토로한다. 영태가 쓰러진지 3년 나이 31세 인생에서 가장 누릴것이 많은 꽃다운 나이에 술과 가난과 불운으로 인해 영태의 삶은 되돌릴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날 영태는 회사에서 회식을 마친후 만취한 상태로 귀가하여 방으로 들어가다가 쓰러졌는데 불행하게도 책상모서리에 머리를 다친것이다. 포장마차를 하는 엄마는 그런 사실도 모른채 일을하다가 새벽에서야 귀가하여 영태를 발견하게 되지만 뇌를 심하게 다친 상태에서 오랜 시간을 방치한것이 원인이 되어 회복 불가능한 식물인간이 된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던 엄마의 모습이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영태야" 기저귀 케어시간 간호사들이 마비되어 오그라든 영태의 몸을 뒤집으며 불러보지만 반응이 없다. 엄마의 목소리와 간호사의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는 것 일까? 사고직후 일찍 발견이 되어 적절한 조치를 취할수 있었다면 이런 끔찍한 상태는 되지 않았을텐데......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이혼 후 따로살던 초춰한 차림새의 영태 아버지가 다녀갔다. 영태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했다. 이승의 끝자락 구석진 곳에서 촛불처럼 켜두고 간절하게 기다리던 엄마의 목소리 엄마의 부름이 끊긴지 이십여일이 지나고 영태의 생명을 이어주던 튜브가 코에서 제거되었다.이승에서의 한을 가슴에 품은채 영태의 가엾은 영혼은 지구라는 별에서 영원의 세상으로 날아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