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에 최초로 나타난 태양신 부활절 축제 행사
싯딤의 사건과 “발람의 꾀”(민31:16)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지 거의 40여년 후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을 떠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 곧 미디안 여인과 함께 죽임을 당한 자의 이름은 시므리니 살루의 아들이요 시므온인의 종족 중 한 족장이며 죽임을 당한 미디안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니 수르의 딸이라 수르는 미디안 백성 한 종족의 두령이었더라”(민25:1-15)
이 사건을 회상하면서, 시편 기자는: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함을 인하여 재앙이 그 중에 유행하였도다 때에 비느하스가 일어나 처벌하니 이에 재앙이 그쳤도다”(시106:28-30)
하였다. 이제 그 동일한 사건을 기술한 민수기와 시편에 나타난 두 기사를 요약하여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모압의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민25:2)
②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민25:2)였다. 그래서 그 祝祭儀式에 호기심으로 참례했다.
③ 그리하여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시106:28)고 술에 취하면서 여인들의 음탕스럽고 광란적인 춤에 넋을 잃게 되어 여인들이 이끄는데로 끌려가서
④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민25:1)였던 것이다.
⑤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함을 인하여 재앙이 그 중에 유행하였”(시106:29)다.
⑥ 그리고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민25:9)다.
⑦ 백성의 이 악행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모두 그들 스스로 파했으므로, 당시 규례에 의해 처벌이 가해졌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민25:4)고 하였는데 바알신은 태양신이었다.
⑧ 그런데 그 祭禮儀式에 참례했던 이스라엘 종족 중 한 두령이 미디안의 한 부족의 족장 딸인 여인을 이스라엘 진영 내의 자기 장막에까지 데리고 와서는 그 성교의식을 재차 치루고 있는 것을 “‧‧‧ 비느하스가 ‧‧‧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민25:7-8)
이 사건의 줄거리를 다시 구성된 어구와 어휘를 놓고 분석해보자:
1. “그 여자들이 神들에게 祭祀(the sacrifices of their gods)할 때 ‧‧‧”(민25:2)를 잘 살펴보면,
① 이 祭禮儀式의 主體는 女人들(women)이었다는 것과
② “신들”이라는 복수형은 남신과 여신을 나타낸다.
2. “저희가 또 바알브올(Baal-peor-브올山의 바알)과 聯合하여 죽은 者에게 祭祀한 음식을 먹어서(ate the sacrifices of the dead) ‧‧‧”(시106:28)를 보면,
① 이 祭禮儀式에서 女人들이 祭物을 바친 神을 “죽은 자”(the dead)라는 단수형으로 묘사되었으니-神은 죽을 수 없으므로-“죽어서 부활하는 神”(dying and rising god)이었다.
②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They joined themselves also unto Baal-peol)는 민수기 25장 3절의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And Israel joined himself unto Baal-peor)와 동일한 표현으로써 이는 백성이 바알(Baal)神과 “연합” 곧 “일치동체”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바알과 그의 배우 여신 아스다롯과 얽힌 부활절 축제의식에서는 남자들이 바알을 대표했다. 그것은 마치 모압의 여인들이 이 제전의식을 수행할 때 그들의 여신 아스다롯(Ashtarot)과 “일치동체” 또는 그 여신을 대표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3.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 시작하니라”(민25:1)의 내용은 이제 太陽神 Baal을 대표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女神을 대표하는 Moab 女子들이 이제 막 부활한 하늘의 太陽 Baal과 땅의 大母神 Ashtarot과의 성적 결합을 상징하는 남녀 성교의식(a ceremony of sexual intercouse)을 치루기 시작한 것이다.
이 행위는 부활한 태양의 생기를 인하여 지난 겨울에 고사했던 식물의 움이 돋게 하고, 사람과 짐승들의 새로운 생명이 태양신과 여신의 성적 결합으로 말미암아 탄생하게 된다는 상징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그들의 농경사회의 부활절 신화에서 전승된 것으로, 추악스럽게도 그 제전에 참례했던 남녀의 그룹성교가 바로 축제의식 현장에서 처절하게 자행되었던 것이다.
이상의 것들을 고찰해 볼 때 싯딤(Shittim)에서 발생된 이 사건은 성경에 나타나 묘사된 첫 번째의 태양신 부활절 경축행사였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E. G. White은 영감의 필설로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발람의 제의(Balaam’s suggestion)에 따라 모압 왕(the King of Moab)은 저희 신들을 높이는 대축제일(a grand festival)을 정하였고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유혹하여 참석시키려고 이 축제는 비밀리에 준비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람을 하나님의 선지자(a prophet of God)로 알고 있었으므로 발람은 자기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거의 어려움이 없었다. 많은 백성들이 그와 함께 축제를 참관하였다. 저들은 감히 금지된 곳으로 나아갔으며, 사단의 올무(the snare of Satan)에 걸렸다. 음악(music)과 춤(dancing)과 이교들의 축제의 아름다움(the beauty of heathen vestals)에 현혹되어 저들은 여호와께 대한 충성의 의무를 포기하였다. 저희가 환락과 축제에 가담하여(They united in mirth and feasting), 음주에 방종(indulgence in wine)할 때에 저들의 지각은 몽롱하여 저들은 마침내 자제력을 잃었다. 저들은 완전히 흥분에 사로잡히고 음탕한 행위로(by lewdness) 이교도의 제단에 희생제물을 드리고 가장 비루한 의식(the most degrading rites)에 참예하였다.”
모압 왕 발락과 선지자 발람과의 야합
불의의 삯에 눈 먼 발람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광야 생활을 이제 마치고,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하여 “모압 평지에 진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민22:1)었다. 그 지역의 모압 왕 발락(Balak, King of Moab)은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 심히 두려워 하였”(민22:2, 3)다.
그 무렵, “메소포타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Balaam the son of Beor of Pethor of Mesopotamia, 신23:4)은 “초자연적인 권능을 가졌다는 말이 떠돌아 그의 소문이 모압 땅에까지 전달되었다.” Balak 왕은 미디안 장로들과 모압 장로들과 함께 대책을 강구한 후 이들의 “손에 卜術의 禮物을”(민22:7) 보내면서 Balaam을 초청했다.: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하였고 (민22:6) 우리보다 강하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민22:5, 6)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는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민22:12) Balaam은 어쩔 수 없이 사절했다. 이러한 사정을 몰랐던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귀족들을 더 많이 보내”(민22:15)면서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케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민22:17) “不義의 삯을 사랑”(벧후2:15)한 Balaam은 하나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허영과 탐욕에 눈이 멀어 “심중에 왕의 요구에 응하고자 갈망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민22:20)는 조건적 허락을 하셨다.
“발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민22:21) 나섰다. 그 시점에 발람은 자기가 입게 될 호화찬란한 귀족의 의복과 누리게 될 궁궐의 사치스러운 생활과 환대 등이 그의 눈에 아롱거리었다. 그리하여 “‧‧‧ 하늘 천사가 가로막은 것을 보지 못하였고 하나님이 그의 길을 막으시고 계심을 알지 못하였다.... 무자비하게 나귀를 때리고 억지로 전진하게 하였다.”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어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민22:31-35).
발람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왕은 국경선까지 영접하러 나왔다. 그러나 발람은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임의로 말할 수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민22:38). 다음 날 아침 왕은 나라의 중신들과 함께 장엄하게 위엄을 갖추어 발람을 호송하고 산 위에 있는 바알의 산당(the high places of Baal)에 올라갔다. 거기서 발람은 이스라엘 진영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그 때 그는 “그들의 번영을 보고 크게 놀랐다. 발람은 이제까지 이스라엘은 미개하고 아무 조직도 없는 민족으로 무리를 지어 배회하면서 나라들을 해치므로 부근의 국민들에게 염오와 공포의 대상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모습이 이 모든 것과는 정반대이었다. 발람은 이스라엘 진영이 그 규모가 크고 완전히 정렬되었고 모든 것이 완전한 규율과 질서를 가진 것을 보았다.”
저주의 술법(주술)이 축복으로
Balak 왕과 Balaam은 이스라엘을 술법으로 저주하기 위해 서둘러 “일곱 단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준비 ‧‧‧ 한 후에 매 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를 드”(민23:1, 2)렸다. 이에 하나님께서 이 제물을 흥향하시고 그의 입에 말씀을 주셨다. 발람은 발락왕과 장로들과 신하들 앞에서, 이스라엘 진영을 향하여 두 손을 번쩍 들어 저주의 주문을 선고하는 듯 했다.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모압 왕이 동편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처할 것이라 그를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 이스라엘 사분지 일을 뉘 능히 계수할꼬!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민23:7-10).
발락왕은 발람에게 대노했다.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온전히 축복하였도다”(민23:11).
왕과 발람은 제단 자리를 세 번이나 옮겨가면서 이스라엘을 주술로 저주하려 했으나 오히려 그 때마다 축복으로 일관했다(민23:18-24; 24:3-9, 15-19). 그리고 발람은 최후로 모압(민23:17), 에돔과 세일(민23:18) 그리고 아말렉과 가인의 족속(민23:20-24)까지 완전한 멸망을 예언함으로써 모압 왕 발락에게는 한 가닥의 희망도 남기지 않았다.
발락왕은 심히 분통하면서 격노하였다. 그들은 서로 아무런 다짐없이 제 갈길을 따라 떠났다. 그들의 제1차 야합 작전은 완전히 실패로 막을 내린 셈이다.
발람의 꾀
발람은 그 길로 집에 돌아와서 자기가 한 일들을 생각했다. 이 때 그는 하나님의 영이 자신으로부터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느끼자, 버림받은 것을 깨달았다. 그뿐만 아니라 왕으로부터 약속된 아무 보상도 받지 못했다는 것을 감지했을 때, 발람은 “탐닉하다”(발라암-Βαλαάμ)는 뜻을 가진 자기의 이름과 같은 본성이 폭발해서 분통을 스스로 가누지 못했다. 발람은 이제라도 놓친 왕의 약속한 그것이라도 되찾기 위해 무엇인가 서둘러 궁리해야 했다. 주술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했다면.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그 언약을 파하게 해서 그들 스스로 저주받아 멸망을 자초하는 방안을 짜내야 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그 자리에 악령이 대신했을 때, 실로 무서운 괴계가 떠 올랐던 것이다.
이제 오래지 않아서 곧 다가올 모압과 미디아인들의 민속적인 축제 행사 곧 태양신 바알과 여신 아스다롯에 얽힌 부활절 경축 행사에 이스라엘 백성을 초청해서 참관케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부패시킬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모세는 그 때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민31:16)
기독지혜사가 펴낸 「성서대백과」에는:
“‧‧‧ 그러나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도들이 있었다. 발람의 제안은 술법을 사용하려 했던 발락의 책략보다 더 악한 것이었다. 발락의 노가 진정된 후에 발람은 그 실망한 군주에게 하나의 실천 방안을 보냈다. 발람의 교훈은 중생하지 못한 마음이 품을 수 있는 가장 비열한 행동을 포함하고 있었다. 즉 ‘네가 저주할 수 없는 그 백성을 타락시켜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징계하실 것이라’는 생각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하에 있는 그 백성을 유혹하여, 교묘히 죄를 짓게 함으로써 그 축복을 빼앗으려는 것을 의미한다.... ‘‧‧‧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계2:14) 발람이 제안한 방법을 좇아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과 친분을 맺은 후 그들을 미혹하여 결국 타락으로 인해 멸망을 당하도록 했다....”
하나님의 공의
E. G. White은 그의 역작 「부조와 선지자」에서:
“부귀영달의 희망과 왕의 총애를 잃고,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산 것을 알고 실망한 발람은 자기 스스로가 선택하였던 사명의 길에서 되돌아 왔다. 발람이 집에 도착한 후에는 하나님의 성령의 제어하시는 능력(the controlling of the Spirit of God)이 그를 떠나고, 다만 이제까지 제지해 왔던 그의 탐욕이 그를 지배하게 됐다. 그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발락이 약속한 보상(the reword promised by Balak)을 얻고자 하였다. 발람은 이스라엘의 번영이 저희가 하나님께 순종함에 달려있고 저희를 죄에 빠뜨리지 않고서는 저희를 전복시킬 길이 없음을 알았다. 이제 그는 모압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에게 저주가 내리도록(to bring a couse upon Israel)할 방법을 조언함으로 발락의 환심을 사고자 결심하였다.
발람은 즉시 모압 땅으로 돌아가 왕 앞에 자기의 계획을 아뢰었다. 모압인들도 역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방패가 되실 것을 깨닫고 있었다. 발람이 제안한 계획은 이스라엘을 우상숭배로 유인함으로 저희를 하나님과 분리시키는 것이었다(The plane proposed by Balaam was to separate them from God by enticing them into idolatry). 만일 저희를 바알과 아스다롯의 음탕한 예배에(in the licentious worship of Baal and Ashtarot) 참석시킬 수 있다면 저들의 전능하신 보호자(their omnipotent Protector)는 저희의 원수(the enimy)가 되실 것이며, 저희는 곧 저들 주위에 있는 맹렬한 호전 민족들의 희생제물이 되고 말 것이다. 왕은 쾌히 이 계획을 받아들이고, 발람은 자신이 이곳에서 머물러 이것을 수행하는데 조력하였다.
발람은 악마적인 계책(diabolical scheme)이 성공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저주가 당신의 백성에게 임하여 무수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벌(His judgment)을 받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죄를 벌하신 하나님의 공의는 유혹자들을 그대로 두시지 않으셨다(but the Divine justice that punished sin in Israel did not permit the tempters to escape). 발람은 이스라엘과 미디안 백성 사이에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에덴 동산에서 평화스럽게 행복을 누리고 있었던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를 꾀어 선악과를 따 먹게 하므로 이 세상에 죽음의 저주를 내리게 했던 우리의 원수 사단(Satan)은 결국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 이미 선고되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그 사단의 정신으로, 이스라엘 진영에 저주를 내리게 했던 발람도 역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면치 못했다.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그 남자를 다 죽였고 ‧‧‧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민31:7, 8)
발람의 이 처참한 죽음은 장차 도래될 사단의 운명을 미리 인류에게 보여주시므로 하나님은 자비하실 뿐만 아니라 공의로우신 분으로서 인류의 원수를 신원해주실 것을 온 우주에 선포하셨다. 그 기별이 일련의 안식일 제도 속에 밝히 빛나고 있다.
세기적인 발람의 교훈과 현대판 비느하스의 의거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그리스도의 편지
“12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죄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13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12:12-17)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그리스도의 이 편지는 사도 요한 시대의 소아시아에 산재했던 일곱 교회들 중에서 세 번 째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교의 영적 상태를 예언적으로 지적한 내용이다. 즉 A.D. 313-538년 전후 시대에 해당된다. 맥스웰(C. Mervyn Maxwell)는 그의 저술 「요한 계시록 연구」에서:
“아이작 뉴톤 경을 위시하여 여러 훌륭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주석가들은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교회의 미래의 역사에 나타나는 일곱 시대를 예표한다고 주장했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그리스도교 역사의 일곱 시대를 취급하고 있다는 유력한 논증이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는 것은 무익한 일이 아닐 것이다.”
E. G. White은 그의 명저에서:
“일곱 교회의 이름들은 교회가 창설된 시대 이후(the Church Era)부터 각기 다른 기간 시대의 교회(the church in different periods)를 상징한다. 일곱이라는 수는 완전함을 가르키는 동시에, 세계 역사에 있어서(in the history of the world) 시대적으로 종말까지(to the end of time) 있을 그 긴 시대의 기별들 속에 드러난 실상(the fact that the massage extend)을 상징하며, 또 각기 다른 기간 시대의 교회의 상태(the condition of the church)를 나타내는 데 사용한 상징(the symbols)이다.”
따라서
① 예베소 교회는 사도시대 교회로서 일명 순결시대인데 그 기간은 A.D. 100년경까지를,
② 서머나 교회는 핍박시대 교회로서 일명 순교시대인데 그 기간은 A.D. 313년경까지를,
③ 버가모 교회는 세속화시대 교회로서 일명 정‧교야합시대인데 그 기간은 A.D. 538년경까지를,
④ 두아디라 교회는 부패시대 교회로서 일명 암흑시대인데 그 기간은 A.D. 1560년경까지를,
⑤ 사데 교회는 종교개혁시대 교회로서 A.D. 1790년경까지를,
⑥ 빌라델비아 교회는 재림운동시대로서 A.D. 1840년경까지를,
⑦ 라오디게아 교회는 조사심판시대로서 그리스도 재림시까지를 상징한다.
여기서, 버가모(Pergamos) 교회 시대는 Roma의 Constantinus 황제가 그리스도교 박해 중지령 곧 “밀라노칙령”(the Edict of Milanon)이 내려진 A.D. 313년부터 시작된다. 이 시점으로부터 그리스도교는 이교의 각종 풍습과 미신과 점성술, 그리고 철학사상으로 더렵혀졌다. St. Augustinus(Bishop of Hippo, 354-430 A.D.)의 교부철학(또는 교부신학)은 그 절정에 이르렀는데, 이는 성경에 나타난 복음기별을 Hella의 철학, 특히 Platon의 사상으로 설명한 것으로 Socrates의 영혼불멸설이 이 기간에 그리스도교에 도입되어 일요일 예배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교의(Dogma)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발람의 교훈”
Maxwell은 그의 대작에서
“일곱 교회를 상징적으로 이해한다면 니골라당과 발람의 무리의 죄도 상징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시대의 이방 나라들과 종교와 정치적인 동맹을 맺는 악행을 저질렀을 때 ‘간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겔16, 23장).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순결을 주변 민족의 철학과 부도덕과 위압적인 수법을 빌어 욕되게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포기했다.... ‘니골라당’이니 ‘발람’이니 ‧‧‧ 하는 낱말들은 모두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기독교의 배도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들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하게 된 경로는 현대 이스라엘인 그리스도교의 타락 경로와 그 양상이 비슷했다. 구약성경 민수기 22장-25장에 나타난 모압나라 군주 발락(Balak)과 “불의의 삯”을 탐했던 하나님의 선지자 발람(Balaam)의 야합은 Roma제국의 황제 Constantinus와 세속적 명예욕이 강했던 교회사가 Eusebius감독과의 사이에 진행된 야합과 비슷했다.
영국의 신학자 뉴만(John Henry Newman, 1801-1890 A.D.)은:
“교회사가 Eusebius는 Constantinus황제가 새 종교를 이방인들에게 추천하기 위하여 그들과 친숙한 예배용 장식들을 교회 내에 이끌어들인 사실을 여러 가지로 말해준다.... 특정한 성자들에게 바쳐진 신전들(temple)을 사용할 것, 나무가지를 장식하는 것, 향, 등잔, 촛대, 병 치료를 위하여 봉헌한 물, 거룩한 물, 보호소, 성일들 절기들 역법의 사용, 행렬기도, 성의와 체발과 결혼반지에 강복을 기원하는 일, 동방경배, 후일의 우상숭배, 교회의 송가 등은 다 이교적 기원을 가진 것으로서 교회가 이를 채용함으로써 성별되었다.
버가모 교회 시대(A.D. 313-538)의 현대판 “발람의 교훈”을 재연한 것들을 대강 살펴보면:
a. 황제 Aurelianus(재위 270-274 A.D.)가 273년에 Persia 사람들의 태양신 Mithra의 탄신 경축일인 양력 12월 25일을 Roma제국의 공식 국경일로 제정 공포했다.
b. 황제 Constantinus(재위 306-337 A.D.)가 321년에 태양신 예배일인 “태양의 날”(dies solis-sunday)을 Roma 시민의 공공 휴업일로 제정 공포했다.
c. 황제 Theodosius Ⅰ(재위 379-395 A.D.)가 392년에 그리스도교를 Roma제국의 국교로 승격시킴으로써 교회가 완전히 부패하기 시작하였다.
d. 이 모든 이교의 제도와 교의가 그리스도교화 되면서 로마 법왕은 로마 역대 황제의 대사제직 공식 칭호인 “Pontifex Maximus”를 사용했다.
① Roma교회 법왕 Sylvester는 A.D. 325년에 교서를 통해 일요일을 “태양의 날”이라고 하지 말고 “주의 날”이라고 호칭할 것을 명령했다.
② 황제 Constantinus의 주재로 열린 A.D. 325년의 Nicea총회에서 반드시 일요일에 부활절을 지키도록 명령, 공포했다.
③ 336년 또는 354년에 태양신 Mithra의 탄신일인 양력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신일이라하여 Christmass(Χ-mass)로 경축할 것을 명했다.
④ A.D. 425년 에베소 회의에서 여신 Isis(Babyloia의 Ishtar; 에베소의 Artemis; Greek의 Aphrodite; Canaan의 Ashtarot; Phrygia의 Cybele; Roma의 Venus; Syria의 Astarte) 등 이교의 여신을 마리아로 통합 개칭, 성모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로 추앙, 숭배키로 했다.
그 외에 이교의 우상을 사도의 이름으로 개칭하고, 제일을 모두 성자의 제일로 고쳤다. 감독과 사제의 화려한 복장들은 모두 이교의 사제들이 착용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들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일요일 준수와 영혼불멸설의 교의다. 사실이 이럴진대 그 누가 제사장 비느하스처럼 일어나서 “좌우에 날선 검” 곧 그리스도의 “입의 검”을 들고 이교와 교회가 야합해서 만든 것들을 분쇄한단 말인가!
비느하스의 의거와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민25:6-13).
E. G. White은 그의 저작에서 이 사건을 심도깊게 서술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법적인 행위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발람의 모든 사술이 행할 수 없었던 일 곧 이스라엘을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키는 일을 행하였다. 백성들은 신속히 내리는 형벌로 저희 죄가 얼마나 큰 것을 깨달았다. 무서운 염병이 진중에서 퍼져서 수만명이 신속히 죽임을 당하였다. 하나님께서도 이 배도의 두목들을 죽이라고 사사들에게 명령하셨다. 이 명령을 신속히 순종하였다. 범죄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저희 시체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 높이 매달아 두목들이 그처럼 혹독한 처벌을 받는 것을 보는 회중에게 하나님께서 저희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며 저들에 대한 당신의 분노의 무서움을 깊이 깨닫게 하셨다.
그 형벌의 공의로움을 깨달은 모든 백성들은 급히 성막으로 나아가 눈물과 깊이 뉘우침으로 저희 죄를 자백하였다. 이와 같이 저희가 성막문에서 하나님 앞에 울고 있을 때에 염병이 아직도 사람들을 죽이고 사사들은 그 무서운 임무를 집행하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의 귀족 중 한 사람인 시므리는 자기의 장막으로 호송하는 「미디안 백성 한 종족」의 공주 미디안 창녀를 데리고 담대하게 진영으로 들어왔다. 이보다 더 대담하고 완고한 악행은 전에 결코 없었다. 술에 벌겋게 된 시므리는 「그의 죄를 소돔과 같다고 선포하고」 자신의 수치를 영광으로 여겼다.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슬픔과 굴욕 중에 엎드려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울면서 여호와께 당신의 백성을 아끼시고, 당신이 택하신 백성을 책하지 마시기를 간청하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의 귀인은 마치 하나님의 형벌을 부인하고, 민족의 사사들을 조롱하는 것처럼 회중의 목전에서 보라는 듯이 뻐기면서 범행하였다.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그 둘을 살해하였다. 이리하여 염병이 멎고 하나님의 형벌을 집행한 그 제사장은 온 이스라엘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아 사제 직분이 그와 그의 가문에 영원히 보장되었다.
민수기 25장 6절-13절의 본문에 나타난 사건의 주요 연출자들은 세사람이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 중 한 종족 족장의 아들이었던 시므리와 다음으로는 미디안 백성 중 한 부족 두령의 딸 고스비이고, 마지막으로 제사장의 아들 비느하스였다.
우리가 구약 성경에 나타난 주요 사건 기사 내용을 그 당시의 한 역사적 사건일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이 지적한 말씀(고전10:7-11; 롬14:4)대로, 장차 일어나게 될 한 예언적 사건으로써 주께서 참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해 주시기 위하여 성경에 기록케 하셨다고 이해가 된다면-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여기서 우선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의 시므온 종족 족장 살루의 아들 시므리(Zimri)와 미디안의 한 종족 두령 수르의 딸 고스비(Cozbi)는 각각 두 부류를 대표할 수 있다 하겠다. 첫째는 더 과거에 거슬러, 노아 홍수 때에 물로 심판을 받았던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창6:1-5; 벧후3:6)을; 두 번째로 장래의 것으로, 장차 불로 심판을 받게 될(벧후3:7) 타락한 그리스도교와 이교를 각각 예표할 수 있다 하겠다. 따라서 이들 남녀의 “음란한 결합”은 곧 타락한 그리스도교와 이교의 “음란스런 야합”을 상징하는 것이 되겠다. 그런데 실은 이와같은 상황이 실질적으로 교회 역사상, 버가모 교회 시대인 A.D. 313년부터 모압 왕 발락을 예표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하나님의 타락한 선지자 발람을 예표한 교회 역사의 비조요 가에사레아 교회 감독이었던 유세비우스의 야심적이요 탐욕스럽고 음흉한 계교로 그리스도교의 교의에다가 Apollow 태양신 숭배의 이교적 교의를 접붙였다. 그리하여 A.D. 538년에,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Ⅰ(Uustinianus, Ⅰ, 재위 527-565 A.D.)의 칙령으로 “로마교황권”(the Roman Papacy)이 확립되자, 교회의 “이교화”(Paganization)가 더욱 급속히 진행되어, 부패하게 되면서 Roman Cathoric Church의 “황금시대”(the Golden Age)가 전개되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 1073-1085A.D.) 때 그 절정에 이르렀다. 이 시대를 서양사에서는 “세계의 암흑시대”라 했다. 오래지 아니하여, 세기적인 오랜 깊은 암흑의 밤은 점점 사라지고 곧 동틀 새볔이 닥아오고 있었다.
끝으로, 이들 두 남녀의 부정한 결합을 “여호와 하나님의 질투심”의 의분으로 “손에 창을 들고 ‧‧‧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 두 사람을 죽”인(민25:8)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Phinehas)는 그리스도의 “입의 검”(계2:6)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Ἀντιπάς ὁ μάρτυς-the martyr, Anti Papa[Pope]-순교자, 적-교황, 계2:13)의 의분으로써 교회와 이교의 야합으로 빚어진 “영적 음행”을 내려쳤던 순교자 네스토리우스(Nestorius, Arch-bishop of Constantinople, ?-451 A.D.)를 비롯하여 봘도(Peter Wald, [불어는 Pierre Valdo], 1140-1217 A.D.)와 그들 따르는 무리들(Waldens), “종교개혁의 새벽 별”인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9-1384 A.D.), 프라하 대학장 후쓰(Johaness Huss, 1370?-1415 A.D.), 제롬(Jerome of Prague, 1370-1416 A.D.), 그리고 “종교개혁의 영웅”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A.D.) ‧‧‧ 등을 예표한다 하겠다.
이들은 모두 순교자의 정신으로 “기독교의 가면을 쓴 이교”인 Roman Catholic Church의 실상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폭로함으로써 그 가면을 외부의 현저한 것부터 하나씩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겉옷 속 깊숙이 감추어진 것은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환언하면, 루터가 종교개혁을 완성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뒤에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었다. 광명하고 찬란한 햇빛이 깊은 흑암의 밤중에서부터 비취는 것이 아니고, 새벽녘 동틀 때부터 서서히 밝아오는 것처럼 “생명의 빛” 곧 “진리의 빛”(the Light of the True)도 그러해야 했다. 그래서 루터는 안식일과 일요일의 본질을 명확히 파헤쳐 보지 못한 채 개혁의 사명을 다음의 세대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러나 라이프찌히(Leipzig)에서 개최된 엨크(Eck)와의 공개 토론 때 이 안식일 문제 때문에 그는 종교개혁을 단행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사단(Christ and Satan), 빛과 어둠(Light and Dark), 선과 악(Good and Evil)의 대쟁투에서 논쟁의 핵심은 “안식일과 일요일”(the Sabbath and Sunday)이다. 즉 그리스도의 창조주 하나님으로서의 권위의 표로써 창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세계 역사에 날인(stamp)해 온 “제칠일 안식일”(THE SEVENTH DAY SABBATH)과 이에 맞서 처음부터 곧 하늘에서부터(계12:7-9) 그리스도의 “주되심”(the Lordship)에 도전하여 전쟁을 일으켰던 사단은 이에 대한 도전장(挑戰狀-the challenging Mark)으로써 “태양의 날” 곧 “일요일”(Sunday)을 만들어서 내밀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사단의 야심과 그의 파괴적인 활약을 묘사하는 글에서: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세계를 황무케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않던 자가 아니뇨 하리로다”(사14:12-17)
사단이 이 지상에서 안식일을 지워 없애기 위해 파괴하고 황무케하고 황폐케 했던 그 안식일을 선지자는 또한 회복하는 대역사가 전개될 것을 예언했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사58:12-14)
선지자 이사야는 또 그리스도의 “안식일 해방론의 메시야적 사역”을 예언하면서(사61:1-3) 그 뒤를 이어 현대판 비느하스의 의거가 전개될 것을 이렇게 예언했다.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사61:4,6)
이 말씀을 다시 민수기서에 언약하신 말씀과 대조해보자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My covenant of peace)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the covenant of an everlasting Priesthood)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민25:11-13)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한에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2:9)이라고 했다. 그러면 “여호와의 제사장” 또는 “왕같은 제사장”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비느하스처럼 “여호와의 질투심”을 품고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함을 얻는다는 그리스도교 기본 복음에 접붙여진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을 제거하고, 오랫동안 잊혀진 안식일 준수 회복운동 대열에 가담하는 자들이다. 이 안식일은 예수의 피로 자기 백성을(히13:12) 하나님이 “‧‧‧ 거룩하게 하는(to be sanctify) 여호와인줄 알게”(출31:13, 겔20:12) 하는 표징으로써 사람들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이 왕같은 제사장이 되는 “안식일 수복 운동자들”은 사단이 마지막으로 노리는 자신의 최대의 적이 될 것이다.
밧모섬에서 이 선-악의 대쟁투의 장면을 보게 된 사도 요한은 증언하기를: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12:17)
이들은 “세 천사의 기별자들”(계14:6-12)로서 선-악의 대쟁투에서 사단의 대리자와 그 권위의 표(mark)인 일요일 즉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이다(계14:11,12). 이들은 그 대쟁투에서 최후의 승리가 이미 보장되어 있었다. 밧모섬의 선지자는 그 광경을 보았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계15:2-4)
“‧‧‧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1: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