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드라마에 나온 대사가 생각난다.
산다는건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삶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어서
우리가 알 수 있게 앞통수를 치는 법이 없다고.
요즘 우리 부부 꼴이 딱 그렇다.
장마 전까지 잘 커가던 사과들 보면서
무모하리 만큼 약 안치고 버티다가
뒤통수 제대로 얻어맞고 있는 중이다.
골이 띵~할 정도로.
지난 한주도 병들고 썩어가는 사과를 따내느라
슬픔으로 배가 불렀다.
밥 한 공기 목구멍으로 넘기는 일도 힘이 들고
라면을 한 냄비 끓여 꾸역꾸역 넘겨보지만
라면 면발도 소화시키지 못할 만큼 몸과 마음이 경직되어 버렸다.
소화제를 먹어봐도 더부룩한 속이 쉽게 가라앉질 않는다.
남편은 그런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는 뭘 했던 걸까?
전형적인 A형 소심남,
이번에 제대로 기가 팍 죽었다.
맛난 것 먹고 나면 기운이 나려나, 하고 찾아간 읍내 삼계탕집.
늦더위에 식당 안은 손님으로 북적댔다.
소란스럽고 바삐 움직이는 식당 안에서
두 사람은 말없이 삼계탕을 먹기만 했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날개를 내 뚝배기에 넣어주고,
나는 남편의 뚝배기에 가슴살을 넣어주고 그러면서....
대학시절, 그해 여름이 생각난다.
스스로 학비를 벌어 공부를 해야 했던 시절이었기에
우리 둘에게는 학교앞 분식집 라면이 아닌,
삼계탕은 일년에 한 두번밖에 먹을 수 없는 사치스러운 음식에 속했다.
고향을 떠나, 부모 품을 떠나 낯선 서울이라는 곳이라서 그랬을까?
이상하게 그 시절을 떠올리면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졌던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날은 큰 맘 먹고, 명동에서 삼계탕으로 유명한 집을 찾아갔었다.
지금의 남편이 된 한씨와 손을 잡고.
오늘은 배불리 한번 먹겠구나 하는 마음에 들떠 있었다.
한 그릇에 얼마였던가, 5천원이었던가?
주문한 삼계탕이 나왔는데,
두 사람 앞에 놓인 삼계탕 한 그릇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턱없이 적은 양이었다.
뚝배기 안에 들어 있는 닭은 어찌 그리 작던지......
엄마가 집에서 해준 삼계탕은 솥을 삐져나올 만큼 닭이 컸었는데,
여섯 식구가 닭 한 두마리면 배불리 먹었었는데....
난생 처음 영계백숙을 본 부산 깡 촌년은
그 순간 무지 당황해서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그 집 삼계탕 맛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허기진 두 사람에게 영계백숙 한 그릇은 간에 기별도 안 갔고,
공기밥을 시키고, 깎두기도 더 달라고 하고,
그러면서 공기밥으로라도 허기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서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을 외면할 만큼 뻔뻔할 수 없었기에.
멀건 국물만 연신 퍼먹고 나오면서 왜그리 속은 기분이 들었는지........, 화가 났었는지....
뭐 저리 작은 닭이 다 있냐고,
별거없는데 왜그리 유명한 거냐고,
괜히 돈만 버렸다고,
다시는 이 집 오지 말자고......
투덜투덜거렸던 기억.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삭이 피기 시작한 논도 보고,
하늘도,
그곳에 둥실 떠 있는 구름도 보고,
그런데 왜 오늘 문득,
그해 여름의 하루가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이 났던 걸까?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시 한 편까지 생각난다.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서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 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 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첫댓글 힘 내세요.
이번의 경험이 내년을 더욱 풍요롭게 할거에요.
힘 내란 말도 더 이상 못 할 정도의 분위기네요?
라면 좀 그만 먹으라고 할까??
잘 하셨어요. 삼계탕이라도 먹고 또 힘을 내 봐야지......
힘 내세요~~~
친환경 농산물도 좋고,,,유기농 농산물도 좋지만...어느 정도 현실을 인정하시며 농사 지으셔야 됩니다.
어제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볼일 좀 보고자 나섰는데(울진,봉화,영주)과수원 저녁 들녁길에 승용차 문을
열어 놓고 달리지 못하겠더군요...~~~농약 냄새 때문에...또한 기계로 농약 분무하는 모습이 흰구름 처럼
아롱지더군요. 그런 현장을 보면서 많은걸 느꼈습니다...힘 내세요...님들에게는 사치스런 단어가 될련지
모르지만...희망을 가지세요...이 글 읽고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농촌이자 현재의 우리 모두 자화상 아닐까요?
님께서 좋아하시던 그 시처럼, 그 시절 짜디짠 땀을 닦으면서도 꿋꿋하게 잘 자랐던 우리네의 기억들.. 일일이 다 표현들을 안해서 그렇지 어디 한 두 사람이었을까요~ 대학시절, 아무리 힘들었다 하더라도 그저 좋아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같이 짠해주던 그 내용들을, 이제는 현재 이 순간 내가 만난 인생에서 짜디짠 땀맛을 알아버린 님이여.. 그 눈물은 왜 짠가..그것을 실감하며 겪어내는 님이여~ 삼계탕을 말 없이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님의 인생에서 그것들을 겪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것이겠지만 이왕에 만난 것입니다. 두 분이 서로 손 잡고 있으니 시행착오들을 어디 못 이겨 내실까요~ 만만하지 않는 현실들 부딛칠 때마다 더 힘을 줘서 꼭 잡고 힘을 내십시요~ 까만 구름뒤에는..바람뒤에는 조용한 평화도 있습니다...슬픔으로 배부르지 않고 웃음으로 배부를 때 분명 있을 것입니다.. 노희경님 드마마 중 엄마가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빨간색 약을 바르던> 그 장면을 살면서 지금도 기억합니다... 아무런 도움도 못되고 같이 마음만 아립니다~~
기운내셔요...먼저 갔다고 잘 간건 아니여서 함부로 조언하지 못했던 후회스러움이 지금 생깁니다
감히 잘난척 할수 없었던 지난 날들도...오늘은 고단해서 서글퍼서 울지라도 내일은 또 새로운 희망이 기다릴 거예요
사람이 사는길 수월한건 하나도 없음을 알기에 님의 고단함에 마음 아파옵니다
그래도 또 해야 하는 거라서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것...다시 한번 제대로 바라보는거...아시죠
두 분 아직은 할수 있을 거예요...다시 한번 기운 내셔요...^^
우리도 약 남들 반도 안쳐서 포도송이 사이에 벌레들이 살더군요. 비가 연일 오니 포도 당도도 떨어지고 포도가 터져서 울시어머니 맘이 많이 타들어가십니다. 농부의 마음은 비슷하겠죠... 약도 그의 안치고 열정과 사랑으로 도전한 농사라 그만큼 힘들것입니다. 그래도 맛난것 드시고 기운내세요. 님들의 그마음을 알아주는 이들이 많으니 금새 기운 내실꺼라 생각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