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우에 합당하라.
성경본문: 잠언 25: 11-13
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12.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
우리 생활 속에서 우리들은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집니다. 대부분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지만 때로는 인사를 주고받는 사람들, 의미 있는 말들을 주고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엘레베이터를 타봤을 것입니다. 엘레베이터를 탔을 때 많은 사람들이 타면 거의 어색함을 느끼지 않지만 그 안에 한 사람이나 두 세 사람이 탔을 때 어색함을 느끼고, 지루한 시간을 느끼게 됩니다. 엘레베이터를 탔을 때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나면 덜 어색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그리고 엘레베이터 바닥만 바라보거나 천장만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제가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한신아파트 맨 위층인 15층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엘레베이터를 타게 되면 아래층에 사는 누군가가 꼭 같이 타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반드시 인사를 하는 습관을 길렀습니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상관하지 않고 눈만 멀뚱하게 뜬 사람도 있었습니다. 인사를 하면 '이상한 아저씨 다 보겠네'하며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사하기가 어색해지고 부담스런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 중 인사를 잘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카톨릭 신자였는데 연세가 50초반으로 보였습니다. 그분은 짧은 시간을 함께 타고 내려오면서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말들을 적절하게 하는 분이였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수고하십시오, 언제 봐도 활기가 넘쳐 보이십니다, 오늘은 참 상쾌한 날인 것 같지요" 이렇게 매 시간마다 적절하고, 합당하게 말을 잘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또 한 분은 8층에 사는 침례교회 여집사님이셨는데 말을 지혜롭고, 조리 있게 잘 하셨습니다. 마침 그 집 아들과 우리 집 막내가 같은 학년이라서 아이들 이야기도 같이 할 수 있었고, 작년에는 저희 교회가 건축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만날 때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한 자기 교회도 건축했을 때는 힘이 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니까 모두 해결됐다고 저희 교회 목사님께서도 힘드셨지만 교회가 부흥되니 그렇게 좋으실 수가 없다고, 한밭교회는 목사님이 계시니까 염려하실 것 없다며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다니던 은행이 퇴출 되어졌습니다. 그러나 퇴출 은행 차장으로 있던 남편이 실직의 위기가 있었지만 지점장으로 승진하여 더 큰 은행에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남편은 상냥하고 경우에 합당한 말을 적절하게 잘 하는 아내가 있기 때문에 더 큰 은행에 지점장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IMF시대에 다 지리하고 무더운 여름철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위로의 말, 격려의 말, 용기를 북
돋아 주는 말들을 하여 활기찬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독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축복은 입술을 타고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한다'
우리 한마디 말이 축복이 되어 들어오기도 하고, 빠져나가기도 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있는 것처럼 '경우에 합당한 말을 은 쟁반에 올려놓은 금 사과와 같다'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는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럼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는 성도는 어떤 성도들인가?
1.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한 말을 할 줄 아는 성도입니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 상황에서 가장 알맞은 말이 경우에 합당한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 때에 가장 적절한 말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한다 할지라도 말이 시간과 장소에 적절하게 이야기되지 않는다면 그 말은 더욱 어색한 말이 될 수 있고, 더욱 상처가 되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똑같이 칭찬을 하면서도 그 말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칭찬이 될 수 있고, 책망의 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격려하고 위로 할 때에도 시간과 장소를 맞춰 할 수 있어야합니다.
여러분 구약 성경을 보면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함으로써 동족간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잘 극복했던 경우를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한 가정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이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는 아내를 통해서 그 가정이 위기를 벗어났던 이야기를 성경에서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사사기 8장을 여러분 보시면 이 기드온이라는 위대한 사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이라는 이방족속들을 물리치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가운데 아주 자존심이 강하고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와서 이 기드온에게 시비를 붙었습니다. 당신이 왜 전쟁에 나갈 때 우리에게 아무 이야기도 아니 않고 당신들만 전쟁에 나가 싸우고 돌와왔냐고. 우리에게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고 시비를 붙었습니다. 그 배경을 보면 에브라임 사람이 진정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서 적과 더불어 싸울 때는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고 모른 척 하다가 전쟁에 이기고 나니까 돌아와서 왜 우리를 전쟁에 나갈 때 부르지 않았냐 우리를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고 시비를 걸어옵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에브라임 사람들에 대해서 뭔가 적대감을 나타내고 그들의 한 말에 대해서 보복이라도 서슴없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의 이런 말에 대해서 아주 부드럽게 그 말을 받습니다. 나의 이제 행한 이일이 너희의 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당신들은 나보다 휠씬 낫고 훨씬 똑똑하고 당신들은 나와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다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왜곡된 마음을 누그러뜨림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이스라엘의 파국을 모면하는 지혜를 보게 됩니다.
사무엘상 25장에 보면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은 나발이라는 미련한 사람의 아내였습니다. 다윗에게 평소에 신세를 많이 졌던 나발이 다윗이 그 병사들을 위해서 포도주와 먹을 것을 구했을 때 이 나발은 다윗을 희롱하면서 내가 다윗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서 그런 소리하지 마라 나는 그를 도와 줄 수 없다는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과 그의 사백 용사들은 이 나발을 죽이려고 그의 집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즉시 종들을 시켜서 포도주와 떡을 준비하게 하고 다윗이 쳐들어오는 길목에 나가서 엎드려서 다윗에게 절을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내주는 이 불행한 사람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이니라. 주의 여종의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하면서 모든 잘못이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다윗에게 용서를 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다윗을 높이는 존귀히 여기는 말을 함으로 말미암아 이 나발의 가정이 위기를 모면하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때와 장소에 가장 적절한 말은 분노한 사람의 분노를 식혀 줄 수도 있고 실망한 사람이 용기를 갖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그런 희망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경우에 합당한 말, 시간과 장소에 가장 적절한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지혜를 하나님 앞에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요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라는 곳을 향해서 어긋난 길을 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나를 치셨습니다.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나서 파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뱃 사람들이 배에 있는 물건을 다 던져버리고 어떡해서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리고 이 풍랑이 누구로 인하여 발생했는가를 제비로 뽑아서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제비가 요나에게 걸려들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 상황에서 아니라고 뻗대면서 왜 내가 이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핑계하고 변명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 자리에서 자기로 인하여 이 풍랑이 이 배에 미쳤다는 것을 시인합니다. 그리고 뱃사람들에게 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져라 나를 던져서 바다에 던지라고 합니다. 그래서 뱃사람들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 배의 위기가 지나가게 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 바다에 집어 던져져야 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엉뚱한 말들을 늘어놓고 변명하고 핑계되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더 심하게 풍랑을 만나게 된 것처럼 요동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크든 작든 내가 책임 져야 될 자리에서 책임 있는 말을 하는 것이 어쩌면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2. 자신의 말을 절제할 줄 아는 성도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는 성도는 자신의 말을 절제할 줄 아는 성도를 말합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말이 많으면 허물도 많다고 했습니다. 말을 많이 하다가 보면 그 말속에 실수의 말도 많아지고 허물이 묻어 나오는 무익한 말, 허탈한 말들을 우리가 늘어놓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우리가 잘 절제하지 못하면 그 좋은 것이 독이 됩니다.
오늘날 여러분들 '약물 남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약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많이 사용할 때 독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도 절제하지 못하면 그 말로 말미암아 해가 되는 경우가 됩니다. 우리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지나친 잔소리는 자녀들에게는 좋은 말이지만 계속돼서 반복하게 되면 하나의 교훈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자녀들을 빗나가게 만드는 그런 경우들이 수 없이 많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대로 남용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 할 수 있는 믿음의 지혜를 가질 수 있어야 되리라 생각이듭니다.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인간 심리 연구소에서 특이한 조사를 했습니다. 인간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 대해 조사를 한 것입니다. 사용하는 언어들을 악한 말 즉 나쁜 의도가 실린 말,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말, 무의미한 말들.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하여 통계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악한 말, 즉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는 말은 우리가 사용하는 전체 말 가운데 48.7%가 되더라는 겁니다. 그런 반면 좋은 의미로, 덕을 세우고 좋은 말들은 25.5%밖에 안 되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아무런 의미 없이 헛소리를 하는 경우가 26.8%나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는 말들 가운데 좋은 의미로서 이야기하는 경우는 25.5%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말들은 악한 의미나 아무런 의미 없이 던지는 말들이 75.5%나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다'라는 말이 전해내려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내가 사용 할 수 있는 말들을 아주 적절하게 사용하여 귀한 유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져야 되리라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그것보다도 더 큰 유익을 없을 줄 생각이 듭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지혜의 말을 주사 많은 말을 하기보다는 적은 말을 하면서 다른 믿음의 사람들에게 영적인 덕을 끼치는 말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김대중 대통령께서 전직 대통령 부부를 청와대에 초청하여 만찬을 가졌던 일이 있습니다. 그 일 후에 언론에서는 적당하게 기사하여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 자리에서 만났던 다섯 분 전직 대통령들의 관계가 얼마나 어색했겠습니까? 아마 분노를 아직도 삭히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 식사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알맹이가 없는 말들만 오고 갔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전직 대통령 다섯 분이 손을 맞잡고 울면서 '현재 우리 나라가 겪고 있는 국난은 모두가 내 탓 때문입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서로 자기들의 탓을 하면서 우리 나라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녁밥만 먹고 헤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국민들이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시켜 속죄양을 찾고자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부분들이 결합이 되어 총체적인 난국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정치가들이 아무리 썩고, 지도자들이 아무리 썩어도 백성들만이 눈을 똑바로 뜨고 정신을 바로 차리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난 정부에 의하여 가장 부패한 정치인으로 뽑힌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75채의 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국회의장으로 선출이 되어 기자들에게 75채의 집에 대해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대답은 75채를 국가에 환원하겠다는 대답이 아니라 자신이 75채의 벌집을 소유한 것은 내가 국가 실책에 충실했기 때문에 갖게 된 것이라 이야기를 했습니다. 책임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 아무도 책임 있는 말은 하지 않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들이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모두 핑계를 대고, 변명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속죄양으로 잡았습니까? 그러나 그 정권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그들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우리는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세워져 있는 나라에 크리스챤으로 책임 있는 생활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임적인 존재는 자기에게 주어진 말을 잘 절제하면서 책임 있는 말을 잘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1절에서 2절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에 굴레 씌우리라' 우리는 우리 입에 재갈을 물리고 굴레를 씌움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의 자유를 적당하게 절제하여 우리에게 유익함을 줄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3. 해야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는 성도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경우에 합당한 말이 있고, 듣기 거북한 말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공중을 향해 함부로 말하는 것보다 돌을 던지는 것이 더 피해가 적다"라는 것입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것보다 돌을 던지는 것이 상처가 깊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신체에 상처를 주는 사람은 그 상처가 깊지 않고 빨리 회복이 되지만 말을 통해서 상처를 주는 것은 평생 치유되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정에서 부부간에 정리해야 될 줄로 압니다.
요즘을 텔레비젼을 통해서 상스럽고, 천박한 말들이 너무 남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 꼬마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영악하고 어떨 때는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가 아닙니까? 그렇다 보니 가정에서부터 언어생활의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함부로 말하는 습관들이 들여진 것입니다. 말하지 말아야하는 말들을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해야하는 말들을 잘 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해야하는 말과 하지 말아야 하는 말들을 잘 구분하여 이야기한다면 말을 통해 덕을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노엽게 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을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요즘 시중에 떠도는 말 중에 '열 받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마음에 열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단단한 쇠덩어리도 열을 받게 되면 물러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인격도 불필요하게 열을 받게 되면 마모되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서로 열 받게 하지 맙시다.
서로에게 분노를 느끼도록 빈정대지 말아야 하며, 거짓말과, 남의 비밀을 함부로 말하며 다니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가장 많이 널려 있는 말이 원망의 말, 불평하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시끄럽습니까? 원망과 불평이 하늘을 찌를 듯 합니다.
학생은 학생들 나름대로, 노동자들은 노동자 나름대로 머리에 띠를 두르고 원망과 불평의 말들이 반복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 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여러분 우리는 원망을 할 때 우리 입술을 제어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향해서 쏟아놓는 원망, 불평은 남편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를 향해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부모는 자녀를 향해서, 자녀는 부모를 향해서 서로 유익한 말, 위로의 말, 감사의 말, 은혜가 되는 말, 선한 말, 덕을 세우는 말, 정직한 말, 권면의 말들을 나눌 수 있어야 되리라 생각이 듭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장 4절에서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우리는 서로 감사 할 수 있어야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질 가운데 서양 사람들과 다른 부분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마음으로는 쉽게 감사를 하는데 입으로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감사한데도 불구하고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 함으로써 상대방을 기쁘게 할 수 있고,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내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남편에게 진정으로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다면 남편이 아무리 직장 생활에서 힘이 들어도 활기차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인 것 같아요. 나는 늘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당신이 힘들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남편의 자리, 아빠의 자리를 지켜줌으로써 우리 가정이 이렇게 행복하지 않습니까?"하는 한마디의 말이 남편으로 하여금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남편들이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이런저런 불평의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 줄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든 가정생활이라도 모두 참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경우에 합당치 않은 말을 내뱉음으로 말미암아 아내가 상처받는 일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서로 감사의 말들을 나누십시오. 선한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덕을 세우는 말들을 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전도서 12장 11절을 보면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의 주신 바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자의 말씀을 주기도 하고 때론 스승의 말씀을 주기도 하는데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아서 어떤 사람이 깨닫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하는 말이 스승의 말씀과 같아서 잘 박힌 못과 같아 어떤 사람이 올바르게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잠언 18장 4절에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우리는 명철한 사람의 입으로 말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지혜자의 말을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스승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말들이 너무 거칠고, 험하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말들을 함부로 내뱉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텔레비젼을 틀어보면 얼마나 많은 채널들이 있습니까? 그 수많은 말들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또한 만나는 사람들과 우리를 질식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내가 사용하는 말이 경우에 합당한 말이 될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래 전 미국 타임지에 이런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한 말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우주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는 맞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타임지에서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한 말이 우주 공간에 존재하여 후에 한 사람이 했던 말들을 합성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그 기사를 읽고 그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체가 했던 선한 말도, 헛소리도, 득이 되는 말 등 모든 말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한마디씩 내어놓는 말들로서 한 사람을 벌떡 일으켜 세울 수도 있고, 주저앉게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Eric Berne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쓴 책 중에 '안녕하세요 이후의 한마디'라는 책이 있습니다. 당신은 안녕하세요 이후에 어떤 한마디를 할 것인가! 우리는 평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만날 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안녕하세요" 한마디로 인사가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녕하세요" 그 말 한마디 다음에 내가 어떤 의미를 두고 말을 잇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간 관계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이 81년부터 18판이 거듭된 베스트 셀러입니다. 이 사람이 내세운 이론을 통해 많은 미국인들, 기업체들, 국가 기관들, 단체들이 변화된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이후의 한마디' 운동을 전개한 단체나 회사들이 3개월 안에 인간관계가 바뀌게 되었고,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몇 명과는 아주 가깝게 지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녕하세요' 수준에서 사귀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한 교회에서 1년, 2년 같이 생활했음에도 '안녕하세요' 수준밖에 벗어나지 못하고 지나온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그 이후에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의 말을 던지느냐하는 것이 새로운 인간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밭교회 모든 성도들은 이 어렵고 힘든 IMF시대, 무덥고 지루한 장마와 홍수 속에서 서로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안녕하세요" 이후의 한마디를 덧붙일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경우에 합당한 "안녕하세요" 이후의 한마디, 그 한마디를 생각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치는 교회, 영적인 교제가 충만한 교회가 되기 위해 '안녕하세요' 그 이후의 한마디에 관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더욱 배려하고,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말들을 함께 나누게 되기를 바랍니다.
대전 정부 청사도 거의 이전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전에 새로 오셔서 삶의 터전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대전 시민들과 대전에 있는 교회들은 그분들을 향해 "안녕하세요" 이후에 한마디를 덧붙일 수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분들과 더 좋은 영적인 관계, 더 좋은 인간 관계를 통해 대전에 정이 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참 잘 오셨습니다, 대전은 살기 좋은 곳입니다, 제가 무엇을 도와 드릴 것은 없습니까?, 불편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돕겠습니다."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 관심을 갖는 만큼 그 관심을 입술로 표현해 나가고, 행동으로 뒷받침 되는 책임있는 말, 의미있는 말을 주고 받음으로써 그 가운데 경우에 합당한 말들이 우리 교회를, 우리 사회를, 우리 대전을 변화시켜 나가게 되리라 믿습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