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10.
지난 학기 대학원 수업에서 만난 선생님 한분이 이번 학기 내 학부 수업을 수강하고 있는데 오늘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명절에 시댁에서 힘들지 않았냐는 안부 인사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아주 작은 소리로 임신 7주라는 소식을 전했다. 듣는 순간 나도 기분이 무척 좋았고 진심으로 그녀를 축하했다. 나는 그 무렵 입덧이 너무 심해 아무 것도 먹지 못해서 어지럽고 힘들었는데 그녀는 무엇이든 맛있게 잘 먹는다니 다행이다.
"아이가 생기고 나니 우리 수업 교재인 선생님 책이 새롭게 느껴지더라구요. 이미 읽은 책인데 요즘 다시 읽고 있어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출산 후 생각이 바뀌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당위적으로 생각한 사람일수록 출산과 함께 아이의 교육에 대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서열과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매 학기마다 학부 수업에서 삶의 목표가 '남들보다 더 잘 사는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학생들을 만난다. 이번 학기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이번 학기 한 수업은 이런 학생들이 유난히 많은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필수라고 생각하고 경쟁에서 이겨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소득을 가지는 것을 추구하는 20대가 많아지는 사회가 과연 건강할까?
언젠가 남편이 동영상을 보며 언급했던 말이 생각난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교수가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에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했는데 한국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모두 가족이라고 대답했고 한국 학생들은 물질적 풍요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영상 링크: https://news.kbs.co.kr/news/mobile/view/view.do?ncd=7646992&fbclid=IwAR17Txvj7Tcc72eyYE1jToNWnRz33e0w-pCKGl_L_t9zh3pDbqVtswgnpv4
이 영상을 찾아 오늘 수업 말미에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바로 위 내용이 표로 보여졌는데 아래로 국가 이름이 내려가면서 그 옆에 하나같이 '가족'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는데 거의 마지막에 나온 한국 옆에 '물질적 풍요'라는 단어가 보이자 학생들도 빵 터지며 웃었다. 신나서 웃는 표정이 아님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물질적 풍요 혹은 남들보다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 20대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부모 세대인 우리 세대의 잘못이다. 통렬히 반성하고 진심으로 그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지난 주 수업에서도 학생들에게 작금의 사회를 만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오늘도 수업에서 사과했다.
현재 경쟁과 서열 중심의 사회를 더이상 대물림하지 않길 나는 바란다. 아이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주체적으로 키우고자 애쓰는 어른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지길 바라고 또 바란다. 이제 갓 임산부가 되어 <우리 아이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면> 책을 다시 읽는다는 선생님을 그 누구보다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