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은 달을 품은 산이다.
둥근 달을 품을 땐 한없이 아름답고,
달이 없는 밤의 월악은 외롭고 고독해 보인다.
월악은 깎아지른 경사를 이루며 치솟아 있어서
중원의 맹주답게 나라 안 3대 악산岳山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수직 경사 계단 옆으로 절벽이 솟았고,
깎아지른 암벽 옆으로 휘돌아난 계단은 아찔하다.
거친 숨 몰아쉬는 힘든 발걸음....,
성지를 향해가는 수행자의 길인 듯
몸 속 깊은 곳까지 찌꺼기를 쏟아낼 때면
세상살이의 지난함을 잊는다.
들머리 초입부터 목덜미와 등줄기에 땀이 흥건한 채 하봉下峰에 이른다.
푸른바람이 땀을 걷어가는 층암절벽에서 바라보는 청풍호수는 아름답다.
저 푸른 호수는 스위스 루체른 호수를 연상케 한다.
하봉에서 중봉까지는 오금이 저리도록 아찔하다.
그곳에 바람처럼 스쳐간 숱한 산객의 흔적들....,
그들도 사후의 세상를 살고 있는 저 고사목을 봤으리라.
오늘 문득 나는, 내 명(命)이 다하는 어느 날, 저 구름다리 위 달빛에 싸여 산바람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길에 어찌 병원 주사바늘 주렁주렁 꽂혀 떠나랴. 그 길은 바람처럼 자유로워야 하리라.
중봉 가는 길은 때론 천상을 걷는 듯....,
하지만 카랑한 성정의 중봉中峰이 저만치 버티고 섰다. 함부로 덤벼들었다간 파죽이 될 터.
두 개의 절벽 틈새에 거대한 바위가 걸린 암문이 절경이다.
이곳에 이르면 수해 전 겨울, 눈보라 속 어느 부부의 모습이 오브랩 된다.
눈보라를 뚫고 가던 그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이 내게 각인된 영상이다.
♥~♥~♥
오늘도 세상은 속이 뒤틀리게 돌아가는데, 이곳의 하늘과 호수는 한없이 깊고 푸르다.
이곳에 서면, 나는 삶의 어떠한 질곡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움이 있다.
남쪽으로 눈을 돌린다. 당당하고 의젓한 주흘산이 잡히고, 그 윗쪽으로 북바위산, 마패봉, 부봉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어느 해 겨울, 이곳 천길 벼랑을 지날 때 아찔했다. 삶과 죽음의 명제 때문이었다. 그 불가분도 결국 찰라라는 생각이 스친 곳이다.
영봉으로 향하는 길에 진한 꽃향의 참조팝이 소담하다.
그 길에 나무이파리가 공작의 나래처럼 화려하다.
저기가 영봉 靈峯이다. 깎아지른 경사를 이루고 치솟아 있다.
그 영봉이 손끝에 닿는다.
이곳에서 등짐을 풀면, 하루의 고된 노동을 끝낸 듯, 몸과 마음이 한없이 정(靜)해지고 나른한 평온이 깃든다.
저기 무궁으로 흐르는 저 산, 저 능선이 내 넋을 뽑는다.
다시 보덕암자로 회귀한다. 저 암자의 스님이 어느 날 섹스폰을 불더니, 어느 날은 유행가를 부르고 있었다. 어쩌랴....!!
나는 저 느티나무 아래서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그림을 그리며, 저무는 생의 한 시간을 누리고픈 생각이 스친다.
세상의 숱한 욕심과 탐욕과 허망한 꿈들과는 아무른 상관없는 월악이 저 만치 멀어진다. 인간도 저 산처럼 살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싶다. 석등*
24. 06월, 제천 월악산 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