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를 보낸 그대여!
흔히 사람들은 세월의 흐름을 강물의 그것과 비유한다. 물이 흐르는 원리는 뒷물에 밀려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머물고 싶어도 또 밀어내는 뒷물의 강력한 떠밀림에 물은 흐름으로 비친다. 세월 또한 이와 비슷하다. 2024년이 밀려옴으로 2023년은 제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새로움이란 이름으로 맞이하는 새해는 깨끗하고 하나의 흠도 없어 보이지만 지난해가 있었으므로 그렇게 존재하게 되었음을 모를 리 없다. 어제가 있어서 오늘이 있듯이 그 오늘은 또 내일을 이어주는 연결선이다. 어제는 참 일이 많았다. 희비애락(喜悲哀樂)이 곳곳에 편만했다. 고단한 여정, 피곤한 나날, 병약한 사정, 절명의 순간이 그 어제 속에 지울 수 없는 문양으로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미래의 부푼 꿈은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산화되었다. 비상하던 날개가 꺾이고 절망의 나락으로 고공낙하(高空落下) 되는 비운을 피할 길 없었다. 열정을 불태우며 의욕으로 충만하던 기상은 사라진 지 오래고 재기불능(再起不能)의 진단을 받고 주저앉아 망연자실(茫然自失) 하고 말았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어제의 영상들이다. 그런 어제를 보내고 이제 또다시 새로운 오늘을 맞이할 한 해 끝자락에 선다.
그러나 그렇게 처절했던 어제에도 검은 구름 사이를 비집고 빛을 발하는 작은 햇살이 비치는 밝고 환한 이야기가 있었다. 남들은 모를 나만의 뿌듯한 보람이 양 어깨에 실릴 때도 있었다. 반복적인 시행착오(試行錯誤)로 세인의 비난 화살을 피할 수 없었지만 거기서 얻은 경각대오(警覺大悟)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인생의 자산이 되기도 했다. 의의 대로(大路)를 걸어야 하는 운명적 삶의 틀 안에 있어야 하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작은 일탈은 일말이라도 떠올릴 수 없는 영역에서 살았지만 신앙 안에서는 누리는 참 자유도 있었다. 이 또한 어제를 보낸 그대가 겪은 일상의 체험이리라. 다시 오늘을 맞이하는 그대에게 어제는 소중한 인생 자산이 되었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자신감을 선물했다. 오늘을 맞이하는 마음이 한결 가볍고 내일의 소망은 중천에 떠 있는 하루해의 빛남으로 환하게 다가온다. 지나온 어제만큼 오늘을 맞이하는 마음에는 성숙의 싹이 움튼다. 좁디좁은 마음의 지경이 넓어지고 착각일망정 원수라도 껴안을 듯이 하늘 품이 형성된다. 이 또한 어제를 보낸 그대가 누리는 축복이다.
왜 그랬을까? 어제 밟았던 발자국에 새겨진 이 의문은 극심한 후회와 탄식으로 이어지더니 이내 오늘의 갈 길을 알려주는 방향타(方向舵)가 된다. 전혀 보이지 않은 미래의 오솔길은 어둠으로 채색되었지만 어제를 보낸 그대에게는 투시력을 발산하는 비범함을 보이며 자신 있게 전진한다. 마치 한 번 걸어봤던 길처럼 능숙한 안내자가 되어 그들 앞에서 힘차게 나아간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도 굳이 잘못된 어제를 떠올리며 스스로 낙심하고 절망하는 그에게 다가가 잘 될 내일의 소망을 안기는 희망의 천사로 변신한다. 배설물처럼 버려도 아깝지 않을 쓴 뿌리를 무슨 생명 열매인 양 움켜쥐며 본인과 타인에게 일타(一唾)를 가하는 무례함을 타이르며 예수님 닮은 선한 청지기로 변화를 꿈꾸는 그대는 어제를 보낸 탓이리라. 어찌 후회 없이 살 수 있을까? 하늘의 삶이 아니고서는 비껴갈 수 없는 운명이니 수용할 수밖에 없다지만 후회의 수를 줄이면서 오늘을 맞이한다면 그런 어제를 보낸 자만이 할 수 있는 저력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또 2023년을 보낸다. 그 연수 안에는 만 가지의 우여곡절(迂餘曲折)이 있었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일상의 연속이었다. 파란만장(波瀾萬丈)의 세월이 흘렀다. 천신(千辛)과 만고(萬苦)의 순간을 맞이했다. 이 모든 게 어제라는 시간의 군상들이다. 그때는 몰랐던 그 모습에서 다시 새로움을 창출할 능력이 담겨 있음은 전능하신 창조주의 신비라. 베일에 감춰진 그 신비가 어제를 보낸 그대 앞에서 벗겨진다. 어렴풋하던 영상이 선명한 색상으로 다가온다. 밑그림도 없는 흰색의 채색지에 자신 있게 물감을 덧칠하니 조금씩 구체화된 모양이 완성된다. 어제를 보낸 그대가 진정 미래를 아름답게 수채화로 만들어낸 화가요 빈 오선지에 교향곡 악보를 그려낼 작곡가다.
지나온 2023년 호(號) 그 배는 밝고 희망찬 2024년에게 바통을 터치하고서 더욱 겸손하고 온유하게 영원하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라고 무언으로 간곡하게 부탁하며 불귀(不歸)의 길을 떠난다. 어제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으므로 어제를 보낸 그대만이 느끼는 오늘의 소중함을 마음 깊이 깨달으라고 당부한다. 늘 내 곁에 서 있어 투명인간처럼 바라보던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보라고 한다. 오늘을 함께 걸어갈 벗이요 비상시 나와 함께해 줄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타인들은 내게 손가락질해도 말없이 지지해 주는 침묵의 후원자다. 그와 함께 매일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어제를 보내고 다시 새날을 맞이하는 그대여!
어제가 지나서 맞이한 오늘이듯이 2023년이 지나서 맞이하는 2024년이다. 지난 한 해가 그렇게 소중한 인생 자산이었으니 다가오는 새해 2024년을 기쁘고 즐겁게 만들어갈 희망의 화살을 높이 쏘아 올리자. 어제는 웃음기가 가신 어그러진 희극인처럼 살았다 해도 이제 그 웃음을 되찾고 하늘도 푸르게, 세상도 밝게 만드는 오늘을 만들어 보자. 터널의 끝을 지나자 열린 새로운 광명천지의 신시대 서막을 걷어치우고 힘찬 오늘을 맞이하는 그대가 되자.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시편 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