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 소래사에 쓰다 /정지상
적막한 옛 길에 솔 뿌리 얽혀 있고
하늘 가까워 斗牛星두우성 만질 수 있으리
뜬 구름 흐르는 물에 손은 절에 이르며
단풍잎 푸른 이끼에 중은 문을 닫누나
가을 바람 서늘하게 지는 해에 불거늘
산 달 밝아지며 원숭이는 울고 있네
기이해라! 수북한 눈썹의 늙은 스님이여
기나긴 세월 시끄러운 인간세 꿈꾸지 않으셨네
題邊山蘇來寺 / 鄭知常
古徑寂寞縈松根 고경적막영송근
天近斗牛聊可捫 천근두우료가문
浮雲流水客到寺 부운유수객도사
紅葉蒼苔僧閉門 홍엽창태승폐문
秋風微凉吹落日 추풍미량취낙일
山月漸白啼淸猿 산월점백제청원
奇哉厖眉一老衲 기재방미일노납
長年不夢人間喧 장년불몽인간훤
소래사는 전라북도 부안의 관음봉 아래 자리한 사찰로서, 633년 두타승 혜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조선후기 신경준의 <변산내소사기>에 따르면 원래 큰 소래사와 작은 소래사가 있었으나 후에 작은 절만 남게 되었고 이름도 내소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변산은 부안 변산면 일대에 걸쳐있는 명산으로 최고봉은 의상봉(508미터)이다.
1 연은 산사를 향해 가는 길의 풍경과 느낌을 노래했다. 진입로의 경치를 묘사한 1 구는 절에 관한 여러가지 단서를 담고 있다. 고경적말 古徑寂寞은 길이 난지 오래 되었으며 고요하다는 것으로 서 소래사가 유서 깊은 고찰이며 인적 드문 산 중에 있음을 알려 준다.소나무 뿌리가 뒤엉켰다는 것에도 송림이 울창하다는 뜻과 더불어 절의 연원이 깊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2 구에서는 하늘의 별을 만질 수 있으리라는 주관적인 상상을 절이 높은 곳에 자리한 사실을 과장했다. 변 산은 해발고도가 높지 않으나 바닷가에 접해 있어 상대적으로 높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웅장하고 고원한 화면을 그려내기 위해 극단적인 과장 법을 쓴 것이다.
2연은 소래사에 도착한 직후의 정경을 그렸다. 主客을 나누어 길손이 이른 뒤 승려가 문을 닫는 장면으로 對偶했는데, 나그유의 분방한 발걸음과 승려의 한가로운 모습을 대비 시켰다. 3구의 부운유수(浮雲流水)는 실경이자 ‘客’으로 지칭된 작자의 비유한 것이다. 4구는 홍엽창대(紅葉蒼苔)로써 수려한 산색을 형요하는 한편 아름다운 자연 속에 깃들여 사는 승려의 한적한 모습을 암시했다.
시의 후반부는 경내에 머무르며 보고 느낀것을 위주로 구성했다. 우선 3연에서는 선선한 가을바람 속에 석양이 지고, 산 위로 달이 떠오르자 원숭이가 우는 풍경을 그렸다. 처연한 느낌을 주는 경물리 조합되어 호젓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촉가과 시각, 시각과 청각이 어우러져 인상이 또렷하며 미감이 풍부하다. 여기서 원숭이는 당연히 공상의 산물로서, 정적을 강조하기 위해 원숭이 울음소리를 활용했다. 이렇듯 맑고 고요한 풍경은 아련히 키끌세상을 벗어난 느낌을 주어 산중의 산중의 사찰공간을 무욕과 탈속의 淸靜세계로 꾸며주고 있다.
4연은 우연히 만난 큰 스님을 등장시켜 절의 탈속적 이미지를 한층 선명하게 부각하며 마무리했다. 흰 눈썹이 수북한 그 모습에는 원만구족(圓滿具足) 한 고승대덕(高僧大德)의 형상성이 있어 경외감을 주며, 시끄러운 인간세상에 관한 꿈조차 꾸지 않는다는 표현은 그를 일체의 인연으로부터 자유로운 초월적 존재로 상상하게끔 이끌고 있다. 불교 진리를 체득해 해탈의 경지에 오른 양 늒지는 노승의 출현은 소래사를 생불(生佛)이 자리한 거룩한 장소로 승화시켜주는 것이다.
이 사찰의 제영시는 아늑하고 고요한 산사의 자연환경과 득도해 현실을 초월한 인물 형상을 통해 홍진세계를 벗어난 고아하고 청아한 청취를 만들어냈다.
이하 생략
출처: 고려한시선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