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그들은 바다를 건너가서,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닻을 내렸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은 곧 예수를 알아보고,
55. 그 온 지방을 뛰어다니면서, 예수께서 어디에 계시든지, 병자들을 침대에 눕혀서 그 곳으로 데리고 오기 시작하였다.
56. 예수께서, 마을이든 성읍이든 농촌이든, 어디에 들어가시든지, 사람들이 병자들을 장터거리에 데려다 놓고, 예수께 그 옷술만에라도 손을 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병이 나았다.(마가복음6:53-56)
53. They crossed the lake and came to land at Gennesaret, where they tied up the boat. 54. As they left the boat, people recognized Jesus at once. 55. So they ran throughout the whole region; and wherever they heard he was, they brought to him the sick lying on their mats. 56. And everywhere Jesus went, to villages, towns, or farms, people would take their sick to the marketplaces and beg him to let the sick at least touch the edge of his cloak. And all who touched it were made well.
주님은 배를 애용하셨습니다.
주님은 배를 강대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매우 큰 무리가 모여드니, 예수께서는 배에 오르셔서, 바다쪽에 앉으셨다. 무리는 모두 바닷가 뭍에 있었다.(막4:1)
많은 사람을 해변에 앉혀두시고 주님은 배 위에서 말씀을 전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시더니 그 많은 사람을 해변에 남기시고 배를 저어서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35. 그 날 저녁이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막4:35)
예수께서는 배에서 주무셨는데 이번에는 배가 침실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풍랑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에 주님을 깨웠습니다.
39. 예수께서 깨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 하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께서 그들에게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막4:39,40)
주님을 깨워서 문제를 해결했으니 제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문제를 지적받았습니다.
너희는 뭐하냐?
믿음은 어디로 갔느냐?
주님은 일단 푹우를 잠잠하게 하신 것 다음에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꾸중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담대히 그 파도에게 명령하시고 그것을 잠재우셨는데 다음에 주님은 주님의 잠을 깨워서 의존하는 제자들을 꾸중하신 것입니다.
파도에 대해 너희도 나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무시는 주님을 깨워서 무조건 기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라도 때가 되며 부리로 쪼아서 쫓아버립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기대고 귀찮게 의지하는 것과 믿음은 다른 것임에 분명합니다.
배에서 내리신 주님은 거기에서 군대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쇠사슬로 묶어도 통제가 되지 않던 사람!
가두어두어도 튀어나와서 무덤을 헤매던 사람!
그 사람이 제정신이 돌아온 것입니다.
그 일로 마을 사람이 모두 기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그친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을의 돼지 떼가 모조리 바다로 빠져 죽은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마을 사람들은 제 돼지를 확인하느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죽은 돼지가 네 것이고 산 돼지는 내 것이다.
사이좋던 마을 사람들이 돼지 때문에 멱살을 잡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이 여기에 더 머무셨다가는 큰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일이 또 일어날 것을 염려했습니다.
저의 생각도 그것입니다.
귀신만 마을 저 멀리 쫓아내시지.......
그저 말씀 한마디로 해결될 일인데.......
이 귀신아 네가 왜 돼지에게 들어가냐!
썩 사라져라!
하필 귀신의 요구를 들어주셨을까.......
그 지역 사람들은 마을 회의를 하더니 전원 일치로 예수님을 마을에서 쫓아내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생각은 공짜는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일을 위해서는 그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돈이 최고였습니다.
주님께는 사람이 최고였습니다.
어디 사람을 돼지에 비교해!
그래도 돼지가 중요하기는 한데.......
그래서 주님은 마을에서 쫓겨가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마을 사람들에게 쫓겨가실 때에도 배를 타셨습니다.
21. 예수께서 배를 타고 맞은편으로 다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예수께로 모여들었다. 예수께서는 바닷가에 계셨는데,(막5:21)
주님이 배에서 내리시기 무섭게 회당장 야이로가 주님께 뛰어갔습니다.
죽어가는 딸을 치료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던 급한 행렬이 멈추어 섰습니다.
혈루증 걸린 여인이 예수님의 옷 쪼가리를 만졌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밀치고 밀리는데 무슨 말씀이시냐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 말도 옳다며 양보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을 기필코 찾아서 이것을 교정해주신 것입니다.
네가 나음을 입은 것은 내 옷 때문이 아니라 너의 믿음 때문이다!
지금 예수님의 옷 쪼가리가 예루살렘 박물관에 그대로 남아있더라도 그것이 자체적으로 신비한 능력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 실랑이하는 사이에 야이로의 딸은 죽고 만 것입니다.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서 고향에 가시니, 제자들도 따라갔다.(막6:1)
몰려드는 사람들로 쉴 틈이 없었습니다.
31.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오고가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떠나갔다.(막6:31,32)
도대체 밥을 먹을 수가 없어서 밥 먹으려고 배를 타고 외딴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배에서 내릴 즈음에 놀라운 사실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배보다 빨리 주님이 내리실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으므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막6:34)
주님은 이 일이 목자가 없어서 일어난 일이라고 결론지으셨습니다.
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신 주님은 거기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사람들을 먹이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37. 예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제자들이 "그러면 우리가 가서 빵 이백 데나리온 어치를 사다가 그들에게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였다.(막6:37)
주님은 그들에게 그 장소에서 믿음을 드러내기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엉뚱한 소리나 했습니다.
주님께서 한 명의 도시락을 가지고 5,000명의 장정을 먹이셨는데 먹고 나서 보니 남겨진 음식 부스러기가 애초의 도시락 한 개보다 수백 배 많았습니다.
남겨진 생선만도 한 백여 마리 되었고.......
그 일을 목격한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13. 그래서 보리빵 다섯 개에서,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께서 하신 표적을 보고 "이분은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와서, 억지로 자기를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6:13-15)
주님은 이 일을 보시더니 기겁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산으로 가시고 제자들은 먼저 배 태워 보내신 것입니다.
45. 예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자기보다 먼저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무리를 헤쳐 보내셨다.(막6:45)
주님께서는 산으로 가셨고 그들만 배 타고 가다가 난리를 만난 것입니다.
바다 가운데서!
그런데 산에 계셨던 주님은 거기 바다에도 계셨습니다.
그 주님을 보고 베드로가 나도 주님처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베드로는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바다 위를 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겁을 먹고 물에 빠졌습니다.
30. 그러나 베드로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자,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에 그는 "주님, 살려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31.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서, 그를 붙잡고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 하셨다.
32. 그리고 그들이 함께 배에 오르니, 바람이 그쳤다.(마14:30-31)
주님께 소리를 질러서 주님의 손을 의지해서 살아남은 것을 두고 믿음이라며 주님께서 칭찬하신 것이 아닙니다.
물 위를 자신의 발로 걷는 것을 두고 믿음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 일은 무리를 바다에 그대로 놔둔 채 제자들이 배 타고 가다가 일어난 일들입니다.
불에 넣었다가 꺼내서 망치로 두들기고 물에 집어넣는 일을 반복하셨습니다.
모았다가 흩으시고 또 모으신 것입니다.
그 때마다 배가 이용되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이 배를 타고 게네사렛에 내리셨습니다.
53. 그들은 바다를 건너가서,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닻을 내렸다.
53. They crossed the lake and came to land at Gennesaret, where they tied up the boat.
주님은 그들에게 벳새다로 가라고 하셨지만 그 배가 미친바람에 흘러갔던 모양입니다.
벳새다와는 몇 km 떨어진 게네사렛에 그들이 내렸습니다.
제가 어제 처갓집에 갔다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인 중에 누가 저의 행적을 알겠습니까?
또 알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주님의 행적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방송국 아홉시 뉴스 첫 내용이 주님께서 내일은 어디로 가실까? 였습니다.
왜냐하면 고질병 걸린 사람이 주님께 나아가면 말짱하게 나아서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마다 고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가면 귀신이 나가고 죽은 사람조차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생의 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어디 계시냐가 사람들의 인사였습니다.
지금 여러분도 사람 만나려고 교회를 오는 것이 아닙니다.
딱 한 사람 주님을 만나러 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은 곧 예수를 알아보고,
54. As they left the boat, people recognized Jesus at once.
우리 봉성 교회 장로님은 주일 학교 때 교회 왔다가 새 신발을 잃어 먹었습니다.
그 일로 화가 나서 교회와 발을 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40세 때에 사업을 모조리 망하고 교회를 찾아온 것입니다.
나중에 하는 말이 진작에 교회를 다녔더라면 좋았을텐데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벗어두었던 신발 아니라 내 입고 있던 바지를 강제로 벗겨갔더라도 예수님만 만났다면 아주 수지맞은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 앞에 모였던 사람들은
보리 타작하고
딸기 수확하고 그것을 뒤로 미루고 주님을 찾아나섰던 것입니다.
할 일이 없어서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촉각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신발 한짝 잃어버리고
병든 사람 고치고
귀신에게서 해방 받고
혹은 잠을 설치는 고민들
영생을 얻었다면 오히려 그것을 바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귀신들린 사람도
병도 가지각색입니다.
폐결핵
피부암1기, 2기, 3기, 말기
하혈
지방간
정신병
나병.......
답은 한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 자리가 어디든지 주님과 함께하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난 것입니다.
베드로가 미친 바람을 만났던 바다 위라도.......
바울이 갇혔던 빌라도의 감옥을 생각해봅시다.
바울은 빌라도 지역에서 전도하다가 귀신 들린 여인의 귀신을 쫓아내버렸습니다.
귀신아 나가라!
그 일로 이 여인이 점을 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점으로 돈벌이를 못 하게 된 사람들이 바울을 고발한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에게서 귀신 쫓아냈다고 실컷 두들겨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더니 한 밤 중에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니,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행16:25)
저것들은 하나님을 전하다가 쳐 맞고 억울하지도 않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네
간수가 그 생각을 하는 중이었는데 눈앞에서 난리가 난 것입니다.
지진이 나고 모든 옥문이 열린 것입니다.
죄수들은 모조리 도망할 텐데 이 책임을 어떻게 진다는 말인가!
차라리 자살하려는 순간 바울이 그 일을 막았습니다.
일어난 일을 모두 보고 있었던 간수는 놀란 나머지 바울에게 물은 것입니다.
31. 그들이 말하였다.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행16:31)
바울이 먼저 사람이 도망하지 못하도록 큰 대문부터 잠근 다음에 경보를 울리고 총을 든 경찰을 부른 다음에.......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간수에게는 황당한 답을 한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랬더니 일어난 일입니다.
34. 간수는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온 가족과 함께 기뻐하였다.(행16:34)
그래서 온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좌우간에 예수님만 만나면 되는 것입니다.
나무 한 그루를 봅시다.
사람 눈에는 땅 밖으로 나와 있는 줄기와 가지만 보일 뿐입니다.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가지와 줄기를 결정하는 것은 실은 뿌리에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이 그 모든 일을 결정하신 것입니다.
55. 그 온 지방을 뛰어다니면서, 예수께서 어디에 계시든지, 병자들을 침대에 눕혀서 그 곳으로 데리고 오기 시작하였다.
55. So they ran throughout the whole region; and wherever they heard he was, they brought to him the sick lying on their mats.
간이 나쁜 사람은 내과로 가고
뼈가 부러진 사람은 외과로 가고
아이가 아프면 소아과로 가고
그런데 당시의 사람들을 모조리 예수님께 데리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요청되는 것은 엄청난 수고였습니다.
혼자서 그 많은 무리를 뚫고 주님께 접근하기가 그렇게 어려운데 병자를 침대에 눕혀서 달려가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주로 배를 타시고 사람들은 침대를 들고 뛰었습니다.
그래도 주님을 따라가야 했습니다.
바다가 그들은 막아도 가야 할 방향은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정해져 있습니다.
침대를 들고 뛰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목표는 실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만사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되었든지 거기에는 예수님께 가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더 강한 추진력입니다.
건강한 사람들이야 여유롭게 예수님을 구경해도 되지만 죽게 생긴 사람들은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숨넘어가게 오직 주님을 향해서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 지붕을 뚫고 주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병들고 가난한 자들입니다.
그러니 병든 자들은 하나님께 특혜를 받은 것입니다.
주님을 안 만나면 죽게 생겼습니다.
물론 뜨거운 물에 꿀을 타서 마신 후에 드러누워 한잠 자고 나면 낫게 되는 감기 걸린 사람이 아닙니다.
가산을 탕진하게 생긴 중병에 걸린 사람들이 더 복된 것입니다.
56. 예수께서, 마을이든 성읍이든 농촌이든, 어디에 들어가시든지, 사람들이 병자들을 장터거리에 데려다 놓고, 예수께 그 옷술만에라도 손을 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병이 나았다.
56. And everywhere Jesus went, to villages, towns, or farms, people would take their sick to the marketplaces and beg him to let the sick at least touch the edge of his cloak. And all who touched it were made well.
그런데 주님 일의 가장 큰 특징이 있습니다.
마을이든 성읍이든 농촌이든 그래서 어부든 농부든 도시 빈민이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주께 나아갔습니다.
주님의 발걸음에 온 촉각을 세우고 그가 계시는 곳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21. 그러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행2:21)
나 살려달라고 오직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됩니다.
그들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저는 고재봉에 대한 간증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가장 악질적인 살인범이었습니다.
악감정을 품은 나머지 도끼를 들고 자기 상관의 군 막사에 들어가서 일가족을 살해한 것입니다.
그는 사형수가 되었는데 그가 옥에서 전도를 받았습니다.
한 집사님이 그렇게 전도를 했습니다.
나도 죽을 죄인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나를 살려주셨습니다.
그 전도에 고재봉도 나도 예수님을 믿어서 사형을 면해보자고 정신없이 성경을 읽은 것입니다.
남들은 잠든 밤에도 문틈으로 들어오는 빛에 비춰가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러더니 사형을 감사하며 수용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사형장에 끌려가는 순간까지 사람들에게 전도했습니다.
그가 사형틀 위에서 자신이 웃거든 총을 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는 찬송가 493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찬송했습니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었고 총성이 울렸습니다.
그는 천국에 간 것입니다.
주님의 복음은 어느 마을 어느 인종 혹은 사형수라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의 형을 속여서 장자권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더니 앞 못 보는 아버지까지 속였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를 속여 형이 받을 복을 빼앗은 것입니다.
형의 손에 잡혀 죽을 위험에 처한 것입니다.
그가 도망자 거짓말쟁이 어린 나이에 위험한 사막에서 한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거기에서 돌을 베개 삼아 자다가 위대한 발견을 했습니다.
16.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17. 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 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18. 야곱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베개 삼아 벤 그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베델이라고 하였다. 그 성의 본래 이름은 루스였다.(창28:16-19)
마을이든 성읍이든 농촌이든 하나님께서 어디에도 계신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사막에도 계셨던 하나님께서 범죄자도 만나주신 것입니다.
그는 수시로 거짓말을 하는 자신에게 진절머리가 났습니다.
사막에서 야밤에 맹수에게 죽을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었습니다.
그를 만나 주신 곳입니다.
그는 내 한계로 인해 부를 수도 없는 하나님 하고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주님께 몰려든 사람들은 병자였습니다.
그들은 그 병이 심각할수록 주님을 결사적으로 찾았습니다.
이 본문은 게네사렛에서 일어난 일들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수두룩한 사람들이 주님의 옷 쪼가리에라도 스칠 수 있는 기회를 부탁드렸습니다.
병자들을 치료하신 일들이 한 두 건이 아닙니다.
그 일을 통해 주님이 주시려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죄란 비윤리를 이릅니다.
거짓말이나하고.......
세상 사람들을 죄를 지으면 그들의 비윤리를 지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다른 면에서 죄를 지적합니다.
1.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 하는구나. 모두가 하나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착한 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구나.(시53:1)
하나님의 실재를 부인하는 행위입니다.
실은 그 비윤리 행위도 원인죄(하나님을 부인함)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할 때 사람이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27. "'간음하지 말아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5:27,28)
세상 윤리는 간음하지 않으면 의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전제하면서 사는 사람은 음욕을 품은 것조차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제 할 경우 사람들은 전혀 다른 행동을 할 것입니다.
어제도 고속도로를 달려서 처가 집을 갔다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고속도로를 달릴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있습니다.
과속 단속 카메라입니다.
그것 앞에서는 정확히 100km를 달려갑니다.
띵똥뎅 그 소리만 나면 쏜살같이 엑셀을 밟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병자가 주님의 옷 쪼가리를 스칠 때마다 나 여기에 있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교회에 와서 바로 그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병자를 건강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서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질을 바꾸고 계십니다.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후5:17)
보라 예배당에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다르다!
물론 그들은 정교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한 병은 제멋대로 해석입니다.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킬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주님을 세상의 왕으로 삼으려 한 것입니다.
15.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와서, 억지로 자기를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6:15)
둘째로 큰 질병이 있습니다.
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무디어 있었다.(막6:52)
빵을 먹고 뒤로 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바다 위에서 그들은 바로 그 기적을 잊었습니다.
그들은 무서운 파도의 위력에 하나님의 실재를 잊고 말았습니다.
10번의 기적을 보면서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할렐루야를 외치고도 홍해 앞에 서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까맣게 잊고 만다는 것입니다.
56. 예수께 그 옷술만에라도 손을 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병이 나았다.
56. people....... beg him to let the sick at least touch the edge of his cloak. And all who touched it were made well.
충격적인 일입니다.
내 눈에 안 보여서 안 계시는 줄로 알았는데 그 하나님께서 내 눈앞에 역사 현실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분의 옷 쪼가리를 만져도 나 여기 있다 그 분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병 나은 것이 문제 해결이 아니었습니다.
보이지 않던 하나님께서 눈앞에서 확인되고 보니 엄청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는 결혼을 하고 정말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내 여동생을 평소에 “야, 누구야” 하면서 동생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내를 “야” 하며 불렀다는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정말 악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평소에 동생 부르듯이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혼을 한 것은 내게 사건이었습니다.
나는 전혀 다른 문화에서 살아왔던 아내라는 인격과 붙어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8.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9.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사55:8,9)
신앙이란 하나님과 붙어서 사는 일입니다.
이 일이 나에게 완전히 엄청나게 높은 삶의 기준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또 그 요구가 얼마나 엄중한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병 치료를 위해 예수님의 옷 쪼라기라도 만져야겠다고 생각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혈루증 앓던 여인 때문에 급한 그 행렬이 멈추었습니다.
30. 예수께서는 곧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아서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제자들이 예수께 "무리가 선생님을 에워싸고 떠밀고 있는데, 누가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십니까?" 하고 반문하였다.(막5:30,31)
이 불쌍한 여인은 제 신분을 결사적으로 감추려했습니다.
율법을 어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 딸이 죽어가고 있다는 야이로의 부탁을 잊으셨던지 행렬을 멈추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녀를 찾으신 후에 이 문제를 교정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병만 나으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생각은 다른 것입니다.
그 다음이 더 문제였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여부를 좌우하는 신학적 문제였습니다.
34. 그러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막5:34)
저도 아이를 기르면서 응급실로 달려가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는 호흡 곤란이 와서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야이로가 그런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가던 길을 멈추었습니다.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반드시 기억해라.
네 혈루병이 나은 것은 옷 쪼가리 만졌다고 일어난 일이 아니다.
네 믿음 때문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모든 기적의 핵심적 내용입니다.
그 믿음을 읽어내지 못하면 모조리 헛것이 되고 맙니다.
귀신을 몰아내는 기술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봉성 교회에 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목사님과 축귀 하는 현장에 갔다가 남편 집사님이 귀신들렸습니다.
그 일로 전국의 유명하다는 부흥사들을 모조리 찾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면서 강대상 위를 방방 뛰던 부흥사의 그 누구도 이 귀신을 남편에게서 몰아내지 못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집사님은 귀신 들린 남편을 두고 “아이고, 우리 남편, 우리 남편 살려주세요. 예수님. 우리 남편 우리 남편. 하나님 살려주세요. 예수님, 예수님 이것이 무슨 날벼락입니까! 이 놈의 귀신아 예수 이름으로 나가라.” 붙잡고 울고불고하다가 눈 뜨고 보니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귀신이 놀라서 튀어 나가고 남편이 말짱해진 것입니다.
귀신 쫓는 것은 종교 기술이 아닙니다.
그 기술자 부흥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옷 쪼가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신앙 실체의 소지 여부였습니다.
따라서 오늘 성경 본문은 얼마나 간결합니까?
예수께서 병 고쳐주셨다. 끝!
실제로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역장 공부 시간에 제자들을 불러 일일이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열 사람이었든지 백 사람에게였든지 내 옷 쪼가리를 만지고 나은 사람들에게는 야이로의 경우를 교육 시키도록 하라!”
이 문제는 엔진을 켜고 나서 자동차 기어를 중립에 두느냐 혹은 일단이나 이단에 두느냐의 문제와 같이 결정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차가 천국을 향해서 달려 가느냐 엔진은 돌아가고 있는데 차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추어 서 있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뒤집어지는 기적이 일어나도 천국은 그 종교 기술과는 하등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의 작업입니다.
말씀 한마디에 미친 파도가 잠잠해진 것도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걸은 것도
물에 빠진 것도 그의 믿음의 여부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그 일을 종교 기술로 여겨서 돈을 주고 그 기술을 사려던 시몬은 베드로에게 엄청난 경고를 들었던 것입니다.
17.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손을 얹으니,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18. 그 때 시몬은 사도들이 손을 얹어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돈을 내고서
19. 말하기를 "내가 손을 얹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도록 내게도 그런 권능을 주십시오" 하니,
20.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사려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21. 그대는 하나님 보시기에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우리의 일에 그대가 차지할 자리도 몫도 없소.
22. 그러므로 그대는 이 악한 생각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시오. 그러면 행여나 그대가 마음 속에 품은 나쁜 생각을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오.
23. 내가 보니, 그대는 악의가 가득하며, 불의에 얽매여 있소."(행8:17-23)
전 주에 집사님께서 이런 질문을 저에게 하셨습니다.
3.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으로 감동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고전12:3)
이렇게 주님에 대한 고백이 성령의 역사라고 해놓고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마7:22,23)
주의 이름을 확실하게 부르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도 구원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가 무어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당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귀신을 쫓는 바울을 구경하더니 자신들도 귀신 앞에서 바울을 따라 주의 이름을 불러 본 것입니다.
그러자 귀신들이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15. 귀신이 그들에게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요?" 하고 말하였다.
16. 그리고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달려들어서, 그들을 짓눌러 이기니, 그들은 몸에 상처를 입고서,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였다.(행19:15,16)
그 똑같은 말을 바울이 했더라면 귀신은 놀라서 도망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시비를 걸어!
그 일은 존재의 문제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옷 쪼가리에 손을 대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옷 쪼가리 만져서 나은 사람이 그것을 믿음으로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면 그것은 옷 쪼가리 미신에 빠진 것입니다.
실은 그런 옷 쪼가리 매개물이 없더라도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병에서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성경 본문이 간단했던 것은 구역 방문의 이야기가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금요일 구역 방문에서 예수님의 옷 쪼가리라도 만지고 병이 나은 집사님의 가정을 찾아가서 그것은 옷 쪼가리 사건이 아니라 믿음의 역사였다고 설명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