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따라]
새봄 대문 밖 매화나무는 꽃망울을 품는데 아침 기온은 영하의 날씨다. 처마 끝 낙숫물 받이 물통은 얇은 얼음으로 햇살을 맞이한다. 도시에서 지내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아내를 따라 시골 생활의 기분을 누리기 시작한 것이 삼 년째다. 집 안팎의 유실수 가지치기를 어설프게 해 볼 작정으로 사다리를 메고 길이 조절되는 전정 가위를 들고 나선다. 자두, 봉숭아, 단감나무 전정 작업에 들어간다. 우선 큰 가지에 작은 가지가 하늘을 보고 선 나뭇가지를 쳐 낸다. 햇볕이 잘 들도록 만드는 일이 가지치기 일 순위다. 한 그루 한 그루 모양을 잡아가면서 잘라낸 가지는 쌓아두기 편하게 작은 가지마저 토막을 낸다.
마저 끝내기도 전에 아내의 부름이 있다. 어제부터 불려 놓은 메주 만들 콩을 가져다 달라고 한다. 무쇠 가마솥을 몇 번 씻어낸 다음 콩을 안친다. 콩 물 조절도 중요하다. 불 피우는 세기도 마찬가지다. 참나무 장작으로 방을 데워 놓은 상태에서 불을 추가로 피우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온돌이 뜨거워지는 물론이고 장판까지 태울 수 있다. 야외 아궁이에서 불을 피워 삶을까 고민하다가 온돌방이 있는 아궁이에 콩을 삶기로 하였다.
지푸라기를 밑에 깔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올려 부엌 바닥에 토치를 들이댄다. 온돌방에 난방으로 불을 피울 때는 아궁이 깊숙이 나무를 넣는데, 오늘 콩 삶는 솥 밑바닥에 불기운이 닿을 수 있게 장작 조각을 화덕 입구 쪽에 쌓아 지폈다. 통나무는 도끼로 반으로 조각을 내어 불기운이 세게 만들었다. 한 시간여 후쯤 달궈진 솥뚜껑에 한두 개 물방울이 맺히는가 싶더니 어느새 소리를 내며 뜨거운 김이 솟구친다. 불기운이 세어 끓여 넘쳐도 안 된다. 장작은 적절한 크기를 골라 불길을 조절한다. 끓어 넘칠 기세가 보이면 솥뚜껑에 물을 바가지로 살짝 끼얹는다. 세력이 낮아졌다가 다시 기온이 오르기를 반복할 때마다 또 물세례를 한다.
콩 삶기 시작한 지 두 시간이 지났다. 솥뚜껑을 비스듬히 열어보는데 콩 색깔이 처음과 차이가 없다. 메주콩은 제대로 삶아지면 불그스름한 빛이 난 기억을 떠올리며 계속 불을 지핀다. 메케하게 뿜어대는 연기는 솥뚜껑만큼이나 내 눈을 적신다. 종이부채를 꺼내어 연기를 몰아내고 가끔 솥뚜껑을 열어 삶는 콩을 꺼내 씹어 본다. 삶기는 콩 색도 밝은 빛에서 짙은 색으로 바뀌고 있어, 장작을 마지막으로 올려놓고 방안에 몸을 들였다. 아랫목은 이전에 센 불로 장판이 검붉게 변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발을 살며시 이불 밑으로 넣는데 찜질방이 따로 없다. 오늘 밤은 맨살이 방바닥에 닿지 않게 구석구석 이불을 깔고 자야 할 정도다. 여닫이문 사이로 차가운 바람과 함께 초롱초롱한 별을 품에 안는다.
시골 밤하늘에 굴뚝 연기가 위로 솟다가 아래로 내리깔린다. 아랫목에 발 디딜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윗목으로 몸을 뉘어 잠에 빠졌다. 차가운 기운의 웃풍에 몸을 뒤척이다 눈을 비비고 방문을 연다. 아침 햇살이 처마 끝을 밝힌다. 삶은 콩 색깔을 확인하려고 솥뚜껑을 여는데 콩 삶은 특유의 향이 코에 와 닿는다. 제대로 삶겼다. 몇 시간 장작불 피운 정성이 이 같은 결과를 가져왔나 싶다. 삶은 콩은 바가지로 퍼서 소쿠리에 옮겨 담는다. 남아 있는 물기를 제거하고 콩을 짓이겨 모양을 만들 것이다. 돌절구 씻는 것이 번거로워 소주병으로 툭툭 쳐 알갱이를 잘게 만든다. 주머니에 콩을 넣고 비닐에 다시 넣어 뜨거울 때 발로 자근자근 밟아 콩이 으깨지도록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 손이 많이 간다. 물기가 남아 손으로 주무른 콩은 콩 반죽이 따로 없다. 넓은 광주리에 펴서 햇볕에 내다 놓았는데 제법 꾸덕꾸덕해졌다. 플라스틱 사각 틀에 넣어 꾹꾹 눌러 준 후 반듯한 모양을 만드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방법을 달리해 주먹만 한 크기로 둥글게 만든다. 모두 여덟 덩어리다. 이제 본격적인 2차 말리기다. 더 굳어지도록 햇볕이 드는 마루에 바구니를 받쳐 놓았다. 새끼줄에 메주를 엮어서 걸어두고 바람에 마르고 발효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말리고 띄우기가 남았다. 건조하는 과정에서 곰팡이가 생기는 일도 있어 하나하나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
조상들이 전통적으로 행해왔던 일이 지금에 와서는 특별한 것이 되었다. 비단 콩 삶고 메주 만들어 된장 담그는 것에 한정된 것만 아니다. 아파트에 부엌이 입식으로 설치되면서 난방 방법도 연탄 아궁이에서 보일러로 바뀌었고, 부엌과 마루가 통합된 형태가 되었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장작으로 난방을 하는 일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산에서 나무를 가져오고 톱으로 같은 크기로 잘라 장작더미를 쌓아 간다. 연료 조달의 어려움과 화재나 연기 발생 등 여러 가지 불편함 때문에 예전의 온돌 기능은 기름, 가스, 전기 등을 이용한 보일러 시설로 바뀌었고, 가마솥의 음식 조리 시설은 가스레인지 등으로 대체되었다. 그래도 가마솥이 깊은 맛이 있고, 메주를 띄우는 데는 온돌방이 으뜸이다.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해온 구들 문화는 한 번 데워지면 긴 시간 온기를 유지하는 장점이 있어 온돌을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여겨 왔다.
이것만이 아니다. 현대 문명에 밀려 조상의 지혜가 담긴 생활이 편리성이라는 이유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뜰 안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 둔 김치 항아리는 겨우내 발효되어 깊은 맛을 전해 주었다. 그 자리는 김치 냉장고가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시간을 아끼고 바쁜 일상에서 손이 가는 것들은 점차 멀어져간다. 잊혀 가는 전통이 양손에 꽂아 넘칠 정도다. 하찮다고 생각하는 일까지 장인들의 손길 도움을 거쳐야 접할 수 있지 않을까.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드는 아내를 보면서 진정한 느림의 미학을 접한다. 요즘 들어 옛것을 되살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같은 또래의 주부들에게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에도 도전을 한다. 우리 전통문화 중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 것이 없다. 시간과 싸움이 한국의 전통에 깃들어 있다. 시간 다툼을 벌이고 빠른 것을 요구하는 지금과는 거리가 있다. 신구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시간과 싸움에서 앞서가는 것이 모든 부분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빠른 것만이 최고가 아니라 달팽이의 느긋함 속에 실속을 기다려 본다. 전통을 잇고 우리만의 문화를 누려 나가자. 진정한 전통을 지키는 우리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