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에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피자의 발상지인 나폴리의 피자를 꼭 먹어 보고 싶었다. 둘째, 여행을 많이 다니는 우리나라 젊은 친구들이 나폴리를 엄청 위험한 곳처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실제 그런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원래 계획은 폼페이 관광을 오전 중에 마치고 오후에 댓 시간 정도 나폴리의 주요 명소를 돌려고 했으나,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폼페이 입장권 사는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등 지체되어서 내가 나폴리에 도착한 것은 네 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그래서 피자 먹고 남은 두 시간동안 시내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1) 피자 나폴리에는 서너 개의 유명한 Pizzeria가 있다. di Matteo, Brandi, da Michele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 내가 찾아간 집은 da Michele였다. 서민적이어서 가격이 착하기도 하거니와, 나폴리 중앙역에서 가깝기 때문이다. 그 점포가 있는 골목에 들어서면 단번에 이 집을 알 수가 있다. 가게 앞에 항상 대기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 시간이라도 기다릴 각오로 대기표을 받기 위해 사람들을 뚫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약간 불량스럽지만 멋쟁이인 청년이 순서표를 나눠주고 있었다. 몇 명이냐고 해서 나 혼자라고 했더니, 이 게 웬 떡? 바로 따라 들어오란다. 부모와 딸인 듯한 세 명이 앉아있는 테이블 한 자리에 꼽사리 끼라는 것이다. 미안하다고 하니 내 옆자리 뚱보 양반이 흔쾌히 앉으라며 의자를 조금 옆으로 빼 준다. 이태리에서는 1인 1피자 한 판이 기본이다. 그렇다고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라지 사이즈보다 작지 않다. 다만 도우가 얇긴 하다. 나는 마가리타를 시켰다. 풍부하게 들어간 토마토소스 맛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은근히 매력적이었다. 얇은 도우는 바삭한 것이 아니라 쫄깃쫄깃 했다. 아마도 이 도우가 인기의 비결인 듯. 한 가지 더 특이한 것이 피자 위에 국물이 흥건하다는 것. 영어로 쥬시하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흡족한 맛이었다. 그러나 라지 피자 한 판은 내 정량을 훨씬 초과한 양이다. 문제는 내 앞에 앉은 날씬하고 예쁜 아가씨가 피자 한 판을 거뜬히 다 먹어.치우고 있는 중이라는 것. 그 앞에서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 건 대한민국 사나이를 대표하여 체면이 안 서는 것 같아 꾸역꾸역 먹었으나 마지막 한 조각은 역부족이었다. 어쨌든 오리지널 나폴리 피자를 먹어봤다. 아마 이것도 소박한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라면 하나였을 것이다. 피자와 이태리 맥주 한 병 해서 7유로. 식당에서 작은 생수 한 병에 2.5유로를 받는 것에 비교하면 아주 착한 가격이다.
- 미켈레의 "마가리타" 피자 - 저렇게 거뭇거뭇 탄 자국 때문에 피자를 다 먹고나니 손에 검뎅이가.. - 미켈레 앞에서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
2) 나폴리의 치안 나폴리의 첫인상은 어수선 했지만, 살벌하지는 않았다. 구글의 안내를 따라 피자집을 찾아갈 때 중간에 으슥한 골목길을 거쳐야 했는데, (구글은 조금이라도 빠르면 좁은 골목길로 안내도 마다하지 않는다) 서너 명씩 많게는 예닐곱 명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흑인들 사이를 지나야 했다. 최대한 겸손한 표정으로 지나갔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단 이틀이었지만 이태리 정부의 치안의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순찰을 도는 경찰은 물론이고, 로마 시내 곳곳에서 중무장한 군인들이 경계를 서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로마에 도착한 첫 날 밤 10시가 가까운 시간에 으슥한 골목을 지나야 했는데, 들고 있는 카메라와 현찰 때문에 걱정했는데, 고맙게도 그 길 중간에도 중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기 있었다. 아마 난민 문제도 있고, 테러 방지의 목적도 있겠지만, 이태리 정부가 자기 나라에 대한 소매치기 많고, 위험분자도 많아 불안한 나라라는 국제적인 평판을 알고 이를 해소하려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양쪽 옹기종기 모여 있던 흑인들은 나한테는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다. 나폴리에서 두시간 정도 시내를 돌아 다녔는데, 길 건널 때 오토바이나 좀 위험했지, 나머지는 특별한 위험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젊은 친구들은 나폴리에 가기만 가면 당장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히스테리일까? 나는 그 진원지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2017년 1월에 유럽여행전문 카페 게시판에 어느 오지랖 넓은 친구 하나가 어처구니 없는 글을 올렸다. 경찰이 마피아 소탕에 나서고 있다는 전면기사가 난 이태리 신문 사진과 함께 "나폴리는 절대 가지 마세요. 위험합니다ㅆ"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는데 내용인 즉슨 마피아 간에 전쟁이 일어나서 경찰이 툭별 검거에 나서는 등 분위기가 험악하다는 소리였다. 그 글을 읽은 많은 친구들이 자기 블로그에 들은 풍월로 위험하다고 강조하면서, 나폴리는 마치 가려면 목숨을 걸어 야하는 곳이라도 되는 냥 점점 더 위험한 곳으로 매도된 것 같다 . 이런 현상은 종종 집단광기의 전조 현상이 되기도 하는 일종의 패닉상태와 비슷한 것이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아주 희미하나마 이런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가졌던 것은 광우병 촛불 집회 때 부터였다. 이렇다는 것은 너무 우울하고 슬픈일이다. 단 2시간 만에 무엇을 파악할 수 있으리오만 내 생각엔 제아무리 악명 높은 나폴리라 한들 나대지 않도록 행동 조심하고, 도발하지 않고, 조신하게만 행동 한다면 특별히 위험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잔인한 마피아가 활개를 친다고 한들 일개 관광객에 대하여 적대행위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 미켈레 피자집으로 가기 위해 이런 골목을 두어번 지나야 했다. 이런 길 양쪽에 불량스럽게 느껴지는 흑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도 있었다.
- 가리발디의 동상. 가리발디는 수십개의 작은 도시국가들을 통합하여 드디어 이태리를 통일시킨 영웅이다. 그놈의 그래피티는 건국의 아버지 동상까지 점령했다. 언젠가는 콜로세움의 벽면에도 스프레이 낙서가 그려지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이태리는 그래피티에 멍들어 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