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다가 소위 '전문가(expert)의 직관은 정말 잘 맞나 틀리나'라는 주제의 강좌를 접했는데요.
그 강좌에서 인지과학를 40년이상 연구한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Gary Klein)과 2002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인지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공동 연구를 통해 2009년에 American Psychologist에 발표한 12페이지짜리 논문 『Conditions for intuitive expertise: a failure to disagree』의 내용을 언급하더라구요.
원문은 https://emcrit.org/wp-content/uploads/2015/03/Conditions-for-Intuitive-Expertise.pdf
영어 실력이 워낙 미천해서 논문의 전문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주요 내용들이 소개한 글들이 구글에 엄청 많더군요.
역시 영어든 뭐든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건가 봅니다. 누가 좀 도와주면 좋은데...
이 두 학자는 서로 만나기 전까지 전문가의 직관에 대해 매우 상반된 견해를 갖고 있었는데, 마치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에 견줄만큼이나 극과 극이었답니다.
그런데 대니얼 카너먼이 게리 클라인에게 공동 연구를 해보자고 제안했고 개리 클라인이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당시 학계에서는 이 두 학자가 공동 연구를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 말이 많았대요.
뭐 어쨌거나 이 두 학자의 견해(?), 인식(?)이라는 것이 참...
◇ 대니얼 카너먼
인간의 직관은 만능이 아니며 직관적 생각은 매우 잘 틀린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자신감 과잉이나 편견 등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거나 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 그 자체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며, 무엇이 틀렸는지 무엇을 모르는지 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자기 직관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게리 클라인
진짜 전문가는 자기 지식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때때로 직관을 사용하며 그때 사용하는 직관은 매우 훌륭하다.
수십년간 심리학을 연구해 온 이 두 학자는 어렵사리 성사된 공동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엄청 논쟁을 많이 했다는데 결국 알고보니 두 사람이 언급한 전문가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직군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었다는 겁니다.
게리 클라인은 대부분 몸과 손을 쓰는 직업군의 전문가들(소방지휘관, 임상간호사 같은 주로 현장에서 몸으로 뛰는 직군)을 연구하면서 얻은 견해였던 반면, 대니얼 카너먼의 견해는 주로 머리와 말로 먹고 사는(정치해설가, 주식감별사, 미래예측가 같은.. 주로 말로 먹고 사는 직군 ㅋㅋ) 직업군의 전문가들에게서 얻어진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빵 터졌습니다.
어찌되었거나 과거 자신들의 연구 대상들에서 다름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음에도 격렬한 학문적 논쟁(할배들이 뭐 순순히 질리가 만무하겠죠)을 거듭한 두 학자가 내놓은 결론은 이렇다고 합니다.
결론을 간략하고 친절하게 우리글로 요약해 놓은 것이 있더군요. (진짜 맞는지는 논문 원문을 다 읽으신 분만 아시겠죠?)
전문가라고 믿을 수 있는 6가지 조건
① 기초 지식과 경험이 충분하다.
② 관련 분야에서 일정 시간 이상의 훈련을 거쳤다.
③ 기능이나 사고 패턴을 학습할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④ 뛰어난 지도자에게서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⑤ 배운 것을 실제로 적용해보는 적극성을 가졌다.
⑥ 훈련으로 주관과 자신감 과잉을 억제할 수 있다.
이 논문을 발표한 이후에도 여전히 두 학자는 자신의 생각에는 큰 변함이 없다는데요.
그래도 누가 진짜 전문가인지 감별해낼 수 있는 방법을 '논문'으로나마 남겼다는 점은 참 박수를 칠만 합니다.
요즘 유별나게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자기들끼리 서로 잘났다고 막 싸우고(입이나 자판으로만)...
이것을 보다가 나온 김에 십여년 전쯤 미국의 화이트워터 심포지움에서 '누가 급류 카약 전문가인가'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코치가 발표한 내용을 적어두었던 것도 찾아봤는데요.
당시에 제가 적어둔 것을 간단하게 소개해볼텐데요.
미국에서 내노라하는 카약 코치들이 참가하는 심포지움에서 왜 이런 토픽을 다루었는지는 대충 짐작하실 겁니다.
코치를 하려면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인데.. 뭐 속 뜻까지는 말 안해도...
① 전문가는 자기 분야에서만큼은 대체로 뛰어나다.
하루 이틀 걸린 것도 아니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버텨내면서 수련했고 내공도 쌓았을테니 밥값은 한다는 뜻인가?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 말한 '1만시간의 법칙'이 정말 맞는 듯도...
② 전문가는 초보자에 비해 복잡한 과제들을 훨씬 더 오류없이 정확하고 쉽게 수행하고 해결한다.
왜냐하면 전문가는 자기 분야와 관련된 정보에 대해 우수한 장·단기 기억을 갖고 있고 과제 및 관련 단서들 간의 패턴들을 더 잘 지각하는 방법을 배우거나 터득했기 때문이라는데 선천적으로 이게 뛰어난 이들도 있다.
③ 전문가는 목표로부터 역탐색을 하기보다는 주어진 정보로부터 전향적인 탐색을 한다.
따라서 쉽게 결과를 예단하지도 않지만 결과를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성향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를 쉽게 예단하는 전문가 말은 아예 믿지도 말라는 설도 있다.
그들의 직관은 자기가 보고 싶은 정보만을 토대로 도출해낸 것을 결과로 삼는 경향이 강하기 떄문이다.
④ 전문가는 어떤 문제를 질적으로 분석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것은 개인의 전문성 정도가 구체적인 목표와 연습, 피드백을 통해 안정적이며 점진적으로 증진되기 때문인데, 문제의 분석은 물론 해결책까지 내 놓으려면 어쩔 수 없이 많은 시간이 들 수 밖에 없다.
⑤ 전문가는 초보자보다 훨씬 더 깊이있으면서도 원리적인 수준에서 당면한 문제를 보고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전문성은 매우 특수한 영역의 것이지만 수단·목표분석 같은 쉬운 방법들에 의해 처음부터 차례로 습득한 지식에서부터 점차 발달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⑥ 전문가의 수행은 그들만의 특별한 규칙들에 관한 데이터나 지식 등으로부터 정확히 예측될 수 있는데, 그러한 규칙을 배우는 것은 전문성을 배우고 발전시키는데 엄청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특별한 규칙을 배우는 과정은 누구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한 열정, 투자, 노력이 따르지 않고서는 절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⑦ 전문가는 강력한 자기-모니터링 기능을 갖고 있다.
이것은 전문가는 자기 한계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일련의 피드백(자의든 타의든) 과정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걸 견디지 못하거나 소홀히 하면 결국 자칭 전문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어쩌면 이 부분은 솔직, 정직, 겸손한 자세라고도 말할 수 있다.
어제 강좌를 보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어디가서 함부로 전문가 행세를 하지 말아야 한다'입니다.
저는 아직 멀었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수련하는 중이고요.
전문가냐 아니냐는 훗날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에 달려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