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산 속은 더위가 덜할까?
아무렴, 도심보다야 시원하겠지.
툭트인 시야, 짙은 초록빛 숲에 바람이 있으니 시원하겠지...
2주전 아침 일찍 리트리버 한 쌍을 승용차 뒷좌석에 싣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더 이상 키우기가 힘이 들어 이들을 끔직이 좋아하는 아내를 겨우 설득해 우리집 보다 삶의 환경이 좋은 곳으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이 개들이 우리집에 와 살게 된 건 1년 4개월 전 김해서 비닐하우스 농장을 하는 지인이 하루는 강아지 네마리를 데리고 와서 키울 수 있는 만큼 키우고 나머지는 좋은 가정에 분양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갔다. 우리는 얼떨결에 강아지들을 받았고, 주변에 수소문해서 세마리를 분양했다. 한달 뒤에 또 두마리가 왔다.
지인 왈 '강아지 두마리가 카네이션 밭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도저히 못 키우겠습니다. 어디든 잘 키우실 분에게 분양을 좀 해주세요.'하고 놓고 갔다.
그 중 한마리는 분양을 했고, 한 마리가 남아 먼저 와 있던 강아지와 한 쌍이 되어 우리 집안의 귀염둥이로 사랑을 받으며 잘 자랐다.
우리집에는 시베리안 허스키 한 마리, 풍산개 한 마리에다 골드리트리버 두 마리가 동서남북 지킴이로 같이 살았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한결같을 수는 없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법이다.
우리는 이 둘을 더 좋은 환경으로 보내기로 했다.
이 둘은 거창사는 친구의 소개로 덕유산 7부능선에 위치한 오리농장의 지킴이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보내기로 하고, 이른 아침 밥을 먹여 승용차에 태워 출발을 했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 적응되지 않아 앉지도 못하고 버티고 서서 불안한 자세로 칭얼거리는 둘을 번갈아 달래가며 갔다. 어린 강아지 때부터 키운 이들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이 개들도 이젠 그냥 한마리의 개가 아니었다.
어느새 훌쩍 성견으로 성장한 암수 한쌍이 어느 날 교미를 해 여덟마리의 새끼를 낳은 것이다. 갑자기 식구가 늘어났다. 여덟마리의 강아지들은 어미, 애비보다 더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어린 것들은 하루가 멀다고 쑥쑥 잘도 자랐다. 먹이와 우유를 바쁘게 사다나르는 와중에 우리는 점점 시름에 잠겨 들었다.
네 마리 성견에, 여덟 마리의 강아지...
집안이 온통 개판이 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칠 않았다.
두달 가까이 키우면서 여기저기 분양할 집을 찾았다. 그러나 쉽질 않았다. 개를 잘 키울 집과 개가 꼭 필요한 집을 찾았다. 꾸준히 노력한 결과 간절곶 가까운 전원주택에서 암수 한쌍을 골라 데리고 갔다. 우리는 처음으로 분양받아 가는 새주인에게 잘 키워 달라고 당부했다.
두번째 분양받을 사람들이 다행히도 여기저기서 나왔다. 거창서, 합천서, 기장에서...
강아지 5마리를 합천군 적중면 농가에 주기로 했다. 한 동네 이웃들이 나누어 키우겠다고 해서 태풍이 몰아치는 아침에도 불구하고 직접 데리고 가서 내려주고 왔다. 비닐하우스에 강아지들을 내려주고 농부들이 귀여운 새 식구에 반기는 사이에 홀가분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어미를 끝까지 따라 다니며 젖을 달라고 보채는 귀염둥이를 가까운 기장 어느 집에 보낸 것으로 분양을 마쳤다.
좀 홀가분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이 두마리 성견이 그대로 있으면 가까운 시일에 또 왕창 식구가 늘어나고 또 같은 일을 반복해야 된다. 그래서 이참에 개를 좋아하는 아내를 설득해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한 걸음 멀리서 개를 보자하고, 어느 날 이른 아침, 개 두마리를 승용차 뒷좌석에 싣고 덕유산 자락 오리농장에 실어다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안 친구가 작년에 이곳에 분양한 숫놈 '장군이'가 가까운 찜질방 지킴이로 있으니 한번 보고 가자고 했다. 우리는 차를 몰아 찜질방으로 향했다. 가면서 어릴 적 분양한 것인데 과연 알아볼까 의문을 가지고 찜질방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아내가 나무그늘 아래 쉬고 있는 장군이를 불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장군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꼬리를 흔들며 앞발을 들어 끙끙소리를 내며 아는 체를 했다. 일년도 넘었고, 더구나 어린 강아지 때 보냈는데도 알아본다는 것이 신기하고, 대견했다. 우리는 흐뭇한 미소를 보내며 장군이와 헤어졌다.
날씨가 너무 덥다.
창밖을 내어다 보다가 개들이 뛰어다녔던 마당을 물끄러미 바라다 본다. 그리고 지금 덕유산 자락 시원한 오리농장에서 지킴이로 잘 살고 있을 '마루'와 '예삐'를 생각해 본다.
더위가 조금은 물러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