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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봉산 정상에 선 별동대
2019년 12월 29일 일요일 백두대간 점봉산
자유인 산악회 22기 별동대원과 함께
산행 코스 : 조침령 – 북암재 – 단목령 – 오색 사거리 – 홍포 수막터 – 점봉산 – 홍포수막터 회귀 – 곰배령 주차장
산행거리 : 약 26 km 산행시간 : 약 13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844698
거리 26.4 km
소요 시간 14h 9m 5s
이동 시간 12h 33m 27s
휴식 시간 1h 35m 38s
평균 속도 2.1 km/h
최고점 1,450 m
총 획득고도 1,156 m
난이도 매우 쉬움
날씨 : 흐림, 밤에 비,
옷차림 : 두 겹 옷이 조금 춥다고 느껴진다..
뒷풀이 : 곰배령 주차장에 있는 ‘금순이네 식당’에서 나물전 한 접시와 닭도리탕 (박영묵 회원이 )
프로로그 – 케미컬 인간
몇 년 전부터 몸에 나타난 가려움증이 요즘 더 심해진 느낌이다. 처음에는 피부가 건조해서 생기는 현상으로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해서 바디로션을 발라보았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증상은 간단하다. 바쁘게 뭔가에 몰두해 있으면 전혀 느낌이 없다가 한가해지고 갑자기 몸 어딘가 약간 가려움이 느껴져서 살짝 긁어면 그 주변이 더욱 가려워진다. 그렇게 영역을 확대해서 등이며 배 어깨 허벅지 머리 등 무차별적으로 가려워진다. 그러다가 참아야지 하고 잠시 가만히 있으면 채 5분도 안돼서 정상으로 돌아온다. 가려움 증은 피부 발진을 동반한다. 긁은 부위 주변이 벌겋게 부풀어 오른다. 물론 이것도 가만히 있으면 금방 가라앉는다.
여간해서는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는 성격인데도 내 스스로 피부과를 찾았다. 내 딴엔 심각한데 젊은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내 증상을 들어보더니 피부 건조증이란다. 피부가 노화해서 생기는 현상인데 약을 먹으면 된다면서 작은 알갱이 약을 처방해준다. 매일 자기 전에 한 알씩 먹으면 된단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지금 혈압약도 먹고 있는데 또 한 가지를 추가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한 기분이 들기에 다른 방법을 물으니 그런 건 없단다. 집에 와서 약을 먹으니 정말 신기하게 가려움증이 없어졌다. 한 알을 먹으면 4~5일간은 아무런 증상없이 지나간다.
피부약이 간에 제일 부담이 많이 간대요. 내가 그런 약을 먹는다고 얘기했더니 누가 조언이라고 해 준 말이다. 그러니까 가려움 증을 없애려고 간에 안좋은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니 결국 카드 돌려막기 같은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또 다른 피부과를 찾았다. 결과는 또 같았다. 그리 독한 약이 아니니 그냥 혈압약처럼 하루에 한 알씩 먹으면 괜챦다고 안심하란다.
전에 누가 선물한 코코넛 기름을 바르니 증상이 조금 완화되는 느낌이다. 그러다 지난 여름 형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형도 비슷한 증상이 있었는데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은 약을 먹고 금방 나아졌다며 나한테 그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불치병이라고 생각했던 병이 나을 수 있다고 하니 어딘들 못가겠나. 2 주전 토요일에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증상을 물어보더니 혈액검사를 해보자고 한다. 피 한 방울을 뽑아서 90 여가지 알레르기 반응을 검사한다고 한다. 지난 주 토요일 검사 결과를 보러 갔더니 알레르기는 모두 음성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여기서도 가려움증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혈액검사에서 알레르기 반응은 안나왔지만 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지방간 수치가 높고, 당뇨기가 있으며 고지혈증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비타민 D가 부족한데 어쩌면 이게 가려움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의사와 협상했다. 당뇨는 운동으로 개선해보겠다고 하고 고지혈증 치료제와 비타민 D 보충제를 60일 치 받아왔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전에 역류성 식도염 약 한 알을 먹는다. 그리고 식사 후에 혈압약, 고지혈증 치료제, 비타민 D 이렇게 세 알을 먹는다. 일단 가려움증 약은 먹지 않고 버텨보기로 했다. 그건 그냥 몸을 긁지 않고 참으면 되니까 담배 끊듯이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내 몸은 화학물질 투성이다. 여기에 당뇨까지 더하면 정말 한 주먹은 되겠다. 이제 나이가 들어감을 서서히 실감하게 된다.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벌써 단풍잎처럼 힘들게 매달려 있을 나이다. 갖가지 의약이 발달했으니 이나마 건강하게 지내고 있지만 해마다 먹는 약이 늘어나다 보면 종국에는 화학인간이 될 것 같다. 약 신세를 조금이라도 덜 지려면 많이 움직이고 적게 먹어야 한다.
산행기
자유인 22기 백두대간 팀 중에서 맨 뒤쪽 후미에서 늘 느림보 걸음으로 주변을 살피면서 어슬렁거리던 별동대에서 졸업기념 산행을 하기로 했다. 지난 9월에 심한 비바람에 중도에서 걸음을 멈추고 탈출해서 아쉬웠던 조침령~한계령 구간 중 한계령~점봉산 부분을 제외하고 조침령~점봉산 구간을 다녀오기로 했다.
이렇게 짧게 끊어서 가더라도 거리가 만만치 않으니 무박산행으로 계획하고 대간 마지막 산행 때 최종적으로 인원을 구성하니 5명이다. 차량 제공에 운전과 산행을 인도할 황일영 님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이번 구간만 걸으면 지리에서 진부까지 백두대간 전 구간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완주하게 된다는 정구진 님, 자전거로 몸을 완성하고 남들은 숨을 헐떡이면서 힘들게 걷는 대간길도 그저 동네 뒷산 산보하듯 걸어다니는 김 종진 님은 토요일 집안행사를 마치고 올라와서 함께 하기로 했다. 자유인 22기 대간팀에서 연륜이 제일 많으신 박 영묵 큰형님도 졸업여행의 의미를 담아 산행을 함께 하고 산행 후 점심을 한 턱 내기로 했다. 이렇게 4명이 토요일 밤 10시에 양재역에서 만나 출발하고 나는 마침 지나가는 길목이니 천호대교 아래에서 기다렸다가 차를 타기로 했다.
토요일 늦은 밤 고속도로는 텅 비었다. 도중에 내린천 휴게소에 들러 밤참으로 제육덮밥을 먹고 갔는데도 출발한지 3시간만인 29일 일요일 새벽 1시에 산행 들머리인 진동리에 도착했다. 지난 여름 구룡령에서 출발하여 갈전곡봉을 거쳐 내려섰던 날머리이다. 새벽 공기는 생각보다 차지 않다. 그냥 느낌상으로 영하 3~4도쯤 되려나. 하늘에는 달은 없고 별만 총총하다. 일요일에는 제주도를 비롯하여 서해남부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여 오후에는 전국적으로 비소식이 예보되어 있으나 지금 밤하늘은 맑음 그 자체다.
내린천 휴게소에서 제육덮밥으로 에너지 보충
조침령(鳥寢嶺 770 m)
곧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전에 걸어 내려왔던 옛 조침령길을 걸어오른다. 여름 빗물에 깊이 파여 있던 도로를 최근에 보수한 것인지 새 흙으로 메꿔 놓았다. 발 밑에 힘없는 서릿발이 서걱서걱 밟히는 소리가 조용한 밤공기에 파장처럼 울려퍼진다. 양양과 인제를 이어주는 고개로 군인들이 피땀흘려 닦아 놓은 길이다. 지금은 진동터널이 뚫려 있어 등산객과 산나물을 채취하는 동네 주민들이나 이용하는 그야말로 옛길이 되어 버렸다.
고개가 하두 높고 길어서 새조차 한꺼번에 넘지 못하고 잠을 자고 넘어야 하기에 조침령(鳥寢嶺 770 m)이라 부른다고 한다. 지난 번 이 길을 내려올 때 길 가에는 물봉선, 싸리꽃, 쑥부쟁이 등 수 많은 야생화가 만발했었다. 덜 익은 호두가 달려 있던 가래나무가 잎을 다 떨군 나목(裸木)으로 찬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조침령 옛길 이름돌 앞에서 인증사진을 남긴다. 헬기장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집채만큼이나 큰 백두대간 이름돌이 또 하나 있다. 우리가 다가가자 갑자기 가로등처럼 세워진 기둥에 불이 켜지고 아주 큰 소리로 음악과 함께 산불기간 출입을 금지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어둠을 뚫고 울려퍼지는 방송에 잠시 당황한다. 그러나 그뿐이다. 방송은 계속 흘러나오고 우리는 차례대로 이름돌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유유히 데크가 깔린 산길로 들어선다.
“비단길이네 !” 큰형님 뒤따라오며 잘 다듬어진 데크길을 보며 한 말씀하신다. 올 해 76세 노장이시다. 내가 70일 되었을 때 저 분처럼 백두대간길을 걸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형님, 초입만 이래요.” 역시 데크로 만든 전망대에 서서 형님의 기대를 꺽어버린다.
조침령 - 기린면 진동리와 양양군 서면 서림리를 연결하는 고개다.
높고 험하여 새가 하루에 넘지 못하고 자고 넘는다는 고개다. 새벽 1시 조침령을 출발한다.
키작은 나뭇가지가 엉켜 있는 좁은 산길을 오른다. 오른쪽 산 아래에는 조침령 터널로 이어지는 도로가 가로수 불빛에 환하게 비쳐진다. 그 너머 산에는 빨간 불빛이 군데군데 깜빡거린다. 어두운 밤에 걸으면 이렇게 주변에 있는 불빛만 보인다. 아마 인제쪽에 있는 진동호수 양수발전소에서 양양에 공급하는 고압선일 거라고 김 종진 님이 나중에 생각해 내었다.
한참 앞서가던 황일영 님이 서서 우리를 기다린다. 단목령 8.84 km 표시가 되어있는 거리목이 서 있다. 조침령에서 약 1 km 지나왔다. 산길은 이 곳에서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이 때부터 오른쪽으로 양양시 시내 불빛을 보며 걷는다. 2017년 다른 산악회를 따라 한계령에서 조침령까지 걸을 때는 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어 있어 주변 조망을 하나도 볼 수 없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불빛이나마 볼 수 있으니 좋다. 하늘에는 별빛 땅에는 불빛 그리고 오르막 길에 솟아난 땀방울을 능선을 타고 흐르는 바람이 식혀준다.
약 1 km 오르막 후에 왼쪽으로 꺽어 내려간다.
오른쪽으로 양양 시내 불빛이 환하게 비친다. 그 너머에는 동해바다가 있을 터인데 밤이라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능선을 따라 가던 산길이 다시 왼쪽으로 완만하게 떨어진다. 음지라서 그런지 바닦에 눈이 밟힌다. 오늘 대간길에 눈을 실컷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왔는데 아직 이렇다 할 눈은 보이지 않는다. 전에 꽤나 많이 내린 듯한데 다 녹고 발에 밟힐 만큼 남았다. 후레쉬 불빛에 비친 눈 위에 낯선 짐승 발자국이 보인다. 고양이과 짐승일 것 같은데 고양이보다 발이 크고 간격이 길다. 오소리인가? 너구리인가? 하지만 얘네들은 한 겨울에 굴속에서 잠을 자고 있을텐데.
능선길에서 벗어나 펑퍼짐하게 넓은 숲이 보이는데 잘못하면 길을 잃기 쉽상이겠다. 듬성듬성 남아 있는 눈 위로 앞서 지나다닌 사람들의 발자국이 조금 남아 있지만 대체적으로 길이 뚜렷하지 않다. 나무에 걸려있는 노란색 시그널을 찾으며 산길을 이어간다.
양양 양수발전소
눈 앞에 멀리 나무 사이로 불빛이 번쩍인다. 이런 설악산 산중에서 불빛이 있을 턱이 없는데 하면서 조금 더 가다가 길가에 서 있는 팻말을 보고서야 양양 양수발전소에 있는 풍력발전기에서 비치는 불빛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저수지 가에 산책로를 따라 밝혀진 가로등 불빛이 저수지 물에 비친다. 여름날 안개 낀 산길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는데 무성하던 나뭇잎이 다 떨어지니 앙상한 가지사이로 불빛으로 볼 수 있다. 여름 같으면 여기 살짝 들어가서 몸을 식히고 와도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양양 양수발전소는 상부저수지와 하부저수지 사이의 낙차가 819 m로서 아시아에서 제일 크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총 9개의 양수발전소가 있는데 2006년 10년 공사끝에 완성된 이 양양발전소의 발전규모가 제일 커서 한 기가 25만Kw씩 총 4개의 발전기에서 100만 킬로와트의 전기가 생산된다. 이는 왠만한 원자력발전소의 발전용량과 같다고 한다.
양양 양수발전소가 대간길 가까이 있다.
굴.채취 금지라는 말에 잠시 당황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양수발전소라 한다.
그런데 경고 안내판 생소한 단어가 보인다. ‘회귀식물 굴.채취 금지’ 라 써 있는데 아니 산에 무슨 굴이 있다는 말인가.
“여기 저수지 콘크리트 벽에 뭐가 붙어 있대요.” 김종진
“아~ 정말요? 그게 따개비처럼 붙어 있어서 굴이라고 하는가보지요?” 박상복
“그런가 봐요. 그게 귀한거니까 함부로 채취하지 말라고 하는건가보지요. “ 김종진
도대체 어떻게 생긴 굴이 민물에서 자라는 건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이 경구문의 굴.채취 금지라는 말은 굴취 및 채취를 금한다는 말이었는데 우리는 엉뚱한 생각으로 상상의 동물을 만들어 버렸다. 진동 저수지가 보이는 길 가에 서서 물 한 모금 마시고 과일을 먹으며 잠시 쉬어간다.
북암령(北庵嶺 940 m)
산길은 다시 양양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능선을 따라가다가 왼쪽으로 조금 꺽여 가파르게 내려간다. 눈이 제법 쌓여 있어 재미가 쏠쏠하다. “어이쿠 ~” 조금 앞서 가던 정구진 님이 미끄러져 눈 위에 주저 앉는다. 눈 위에 넘어지면 잠시 몸이 놀라지만 금방 눈을 털고 일어나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정구진 님은 산행 구간 내내 여러 번 넘어졌다. 등산화 바닦이 다 닳아서 미끄러웠다.
산행을 시작한지 4시간만인 새벽 5시 북암령에 도착했다. 들머리인 조침령에서 7.5 km 왔고 단목령까지 2.9 km 남았다. 차를 세워둔 진동리 입구에서 약 9 km 정도 걸은 셈이다. 북암령은 양양군 북암리와 인제군 진동리를 이어주는 고개다. 미천리 북쪽에 암자가 있어 달리 북암리라 불렀다 한다.
북암령에서 다시 서서히 오름이 이어진다. 백두대간길은 이렇게 큰 봉우리를 여러 개 넘어야 한 구간이 완성된다. 북암령을 사이에 두고 큰 봉우리가 앞뒤로 서 있는데 따로 봉우리 이름은 없다. 북암령을 지나 이어진 봉우리를 오르는데 오른쪽 계곡 아래 작은 불빛이 여럿 보인다. 이제 단목령이 가까워지니 저 불빛이 있는 곳은 오색약수터가 있는 오색리일 것이라 추측해본다.
봉우리를 지나 단목령을 약 2 km 쯤 남았을 때 처음으로 푸른색 잎이 나 있는 나무를 보았다. 조침령에서 시작하여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 흔한 소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우리나라 어딜 가나 소나무가 흔하게 자라는데 어째서 이 조침령 ~ 단목령 구간에는 소나무가 자라지 않는지 의문이다. 단목령까지 2 km 남은 구간은 국립공원 표시가 있고 드물게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1135봉에서 내려가는 길 눈길이 미끄럽다.
난 한 번도 안넘어졌어유 ~
차가운 날씨에도 머리가 땀에 흠뻑 젖을만큼 힘든 산행이다.
산림 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입산이 금지된 지역을 걷는다.
활엽수 보호림이라는 말마따나 단목령 2 km 지점까지는 침엽수가 보이지 않는다.
단목령(檀木嶺 855 m)
설피밭 삼거리에 이르기 전부터 왼쪽에서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최근 들어 눈이나 비가 내린 기억이 없는데도 이렇게 물이 많이 흐르는 것은 산 봉우리 위에 쌓인 눈이 녹아 흐르는 까닭이겠다.
단목령(檀木嶺 855 m)이 가까워지면서 앞서 가던 황 일영 님이 조심스럽게 뒤돌아보며 이제 조용히 가야겠다고 한다. 혹시 국립 공원 관리공단에서 나온 직원이 지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달리 박달령(朴達嶺)이라고도 부르는 단목령은 왼쪽으로 인제군 진동리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오색리로 내려갈 수 있는 사거리다. 국공직원이 근무하는 초소는 문이 잠겨 있고 주위는 적막하다. 거리목 옆에서 사진을 찍던 김종진 님이 거리목 밑에 있는 돌을 가리키며 뭔가 써있다며 자세히 살펴본다. 불을 비쳐 자세히 보니 ‘백두대간 숲사랑’이라 쓰여 있다. 2005년 숲을 보호하고 백두대간 안전을 위해 시설을 정비하면서 세운 기념돌이다. 아마 그 당시에는 이 길을 통제받지 않고 다닐 수 있었나보다.
설피밭으로 가는 갈림길 - 저 아래 계곡에 물흐르는 소리가 명랑하게 들린다.
새벽 6시 20분 단목령 감시초소를 지난다.
단목령에서는 진동리로 하산할 수 있고 점봉산까지 6.2 km 남았다.
백두대간 보호 숲사랑 운동 기념비가 거리목에 기대어 쓰러져 있다.
퍼온 사진 : 2005년에는 이 대간길이 열려있었나보다.
오전 6시 20분이니 해가 뜨려면 1시간 20분쯤 남았다. 점봉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고 마음먹고 왔으나 역시 허튼 생각이었다. 가다가 조망이 트이는 곳이 있으면 그 곳에서 일출을 볼 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유있게 걷는다. 단목령을 떠나 오르막 통나무계단을 오르려는데 진동리쪽에서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 개는 사람보다 청각이 발달하여 먼 곳을 지나는 도둑놈 발자국 소리를 잘 듣는다. 큰 죄를 짓지 않았어도 이렇게 금지된 산길을 걷다보면 괜히 주눅이 드는 건 아마도 우리가 너무 순수한 탓이리라. 아니면 도둑이 제 발 저려서일까?
이제 허기가 느껴진다. 산행을 시작한 이후 단 한 번 휴식을 취하면서 녹차 한 잔 귤 한 조각이 전부다. 어디 편안한 곳에 자리잡고 뭣좀 먹고가자고 한다. 오르막에 이어 완만한 내리막이 잠시 이어진다. 길을 가로 질러 아름드리 신갈나무가 쓰러져 있다. 커피와 빵으로 허기를 달랜다. 산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물통을 꺼내 한 모금 마신다.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이 것 좀 보세요.” 큰 형님이 나무에 방금 엎지른 물을 가리키며 신기해한다. 방금 쏱아진 물이 금방 살짝 얼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잠시 위었는데도 몸이 차가와진다. 겨울 산행을 할 때는 계속 움직이고 쉴 때는 보온을 철처히 해야 저체온증을 막을 수 있다. 저체온증은 신체가 외부온도에 반응하여 대사량을 현저히 줄이기 위해 차츰 신체 조직의 활동을 중지시키는 현상이다. 심장이나 폐기능을 멈추면 사망한 것처럼 된다. 얼마전 캐나다에서 한 여성등반가가 저체온증으로 코마상태가 되었다가 3일만에 살아난 사건이 있었다. 이처럼 신체가 모든 신체활동을 중지하고 뇌만 살아 있다가 외부환경이 호전되었을 때 서서히 깨어난다고 한다.
단목령을 지나 잠시 휴식을 갖는다. 나무에 흘린 물이 금방 얼어버릴 만큼 기온이 차다.
여명이 서서히 밝아온다. 바람이 불었는지 눈이 내린건지 주변에 있는 거대한 나무들이 여럿 쓰러져 있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나무도 언젠가는 저렇게 생을 마감하고 땅에 쓰러져 자연속으로 사라지나보다. 인간에 비해 절대적 수명이 길다 뿐이지 나무들도 저렇게 거목으로 성장하기까지 온갖 위험을 이겨내야 하는 것은 인간과 별반 다르이 없다. 인간은 그나마 위험을 피해서 달아날 수도 있지만 나무들은 그럴 능력이 없이 외부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아직 어두운 기운이 남아 있는 나무 숲 사이로 멀리 점봉산이 흰 눈을 덮어쓰고 서 있다. 마음으로는 벌써 다 온 기분이지만 어디 산이란게 그리 만만하던가. 산길은 점봉산을 곧바로 향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평이하게 달린다. 일출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어디 조망이 트인 곳에 자리를 잡고 해돋이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주변은 온통 나무숲이다. 그러는 사이 나무 숲 사이로 오늘 새벽에 지나온 단목령 방향에서 붉은 기운이 점점 강해지더니 잠시동안 숲이 불타는 듯하다. 그리고 나서 서서히 붉은 기운이 옅어지고 사방이 밝아온다. 그렇게 갈망하던 아침 해돋이는 짧은 쇼처럼 끝나버렸다.
7시 40분 나무사이로 해가 솟는다.
멀리 나무 숲 사이로 점봉산이 실루엣처럼 비친다.
평이한 길이 이어지는데 갑자기 반대방향에서 한 무리의 산꾼들이 올라온다.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라 반갑다. “아니 이 추운 날 집에 계시지 뭐하러 이렇게 나와 고생하세요?”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안부를 묻는다. 그들은 한계령 필로령에서 왔다는데 검문 초소는 없었으나 미끄러운 바위를 타고 오느라 시간을 많이 소비했다 한다. 새벽 두 시 반쯤에 출발했다는데 이만하면 그리 늦은 편이 아니다. 그들도 단목령 검문소 사정을 물어본다. 우리 지날 때는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하니 서둘러 가봐야겠다고 한다.
반대 방향에서 오는 대간팀을 만난다. 오늘 산행에서 이 10명의 산행팀 외에 또 한 사람을 만났다.
오색령 삼거리
중간에 간식을 먹어서 배가 그리 많이 고프지는 않지만 어디 편안한 데 앉아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우산 천을 깔고 버너를 설치한다. 코펠에 물을 가득 담고 라면 세 개를 끓인다. 어묵을 많이 넣고 또 밥까지 넣으니 다섯이 먹기에 충분하다. 디저트로 과일에 커피까지 든든하게 먹었다.
오색령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면서 길이 가팔라진다. 바닥엔 눈이 제법 쌓였다. 오른쪽으로 설악산 대청봉과 서북능선이 나무사이로 보이고 눈 앞에는 점봉산이 점점 가까워진다. 나이가 수 백년은 됨직한 나무들이 울퉁불퉁한 형태로 자라나는 모습이 신비롭다. 여기서는 박달나무가 유독 많이 보인다. 거제수나무와 사스레나무 등과 뚜렷한 구분은 안되지만 대부분 참박달나무들이다. 박달나무를 한자로 단목(檀木)이라 한다. 새벽에 지나온 단목령의 이름 유래가 이 산에 박달나무가 많아서라고 하는데 어쩌면 이 산의 박달나무를 두고 한 말인가 보다.
오색령 갈림길에서 정구진 님 - 오늘 산행으로 남한 구간 백두대간을 빠짐없이 완주하게 된다.
홍포수막터
10시 20분 홍포수막터에 도착했다. 자유인 22기 백두대간팀이 지난 여름 폭우를 만나 중간탈출했던 곳이라 한다. 오늘도 점봉산을 오른 후 다시 여기로 내려와 곰배령으로 내려갈 참이다. 홍포수막터는 옛날 홍씨 성을 가진 포수가 이 곳에 움막을 짓고 사냥을 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참 낭만적인 이름이다.
원시림의 진면목을 본다. 이 산길에는 수 백년은 넘었을 듯한 나무들이 즐비하다.
우리는 점봉산에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내려올 예정이기에 배낭을 벗어두고 가볍게 눈길을 오른다. 그리 무겁지 않은 배낭인데도 짐을 하나 덜었다고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고 느껴진다. 정상까지 1 km 이니 힘든 고비는 다 넘겼다. 그러나 조금 더 올라가니 눈이 미끄럽고 경사가 급해 아이젠에 대한 미련이 다가온다. 그렇다고 다시 내려가서 가져오기에는 너무 많이 올라왔다. 정구진 님이 몇 번 비틀거린다. 등산화 바닦이 다 닳아 미끄러운 눈을 감당하지 못하는가보다. 스틱으로 단당히 고정하면서 산을 오른다.
서덜취
잔대
단풍취
쑥부쟁이
범꼬리
투구꽃
참조팝나무
야생화의 보고(寶庫)답게 길 가에는 지난 여름 꽃길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마른 풀잎들이 아직도 그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한 채 도열해 있다. 범꼬리, 잔대, 단풍취, 미역취, 쑥부쟁이, 수리취, 산부추 그리고 다른데서는 보기 힘든 과남풀까지 정말 없는 것 없이 여름의 흔적을 보여준다.
점봉산(點峰山 1424 m)
넓은 점봉산(點峰山 1424 m)정상은 느닺없이 다가왔다. 아름다운 조망과 주목 그리고 야생화 마른 풀들을 감상하다보니 눈 앞이 훤히 트이고 앞서 간 사람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산 정상이 펑퍼짐하다 해서 덤붕산이라 부르던 것이 이두식 한자로 표현하다 보니 점봉산이 되었다고 한다. 꽤 넓은 정상에 서면 사방 팔방 시야를 가리는 나무 하나 없고 어느쪽을 보나 그야말로 망망대해 – 시야가 닿을 수 있는 곳까지 산줄기가 파도처럼 출렁인다.
“날만 조금 더 맑았으면 좋을텐데” 하고 누가 아쉬움을 얘기하지만 나는 이 정도면 정말 아쉬울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높은 산에는 수시로 안개와 비가 찾아와 힘들게 올라온 산꾼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흐릿하긴 하지만 멀리 있는 산도 구분이 가능할 만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점봉산 정상에 올라서자 마자 펼쳐지는 설악산의 서북능선 - 오른쪽 대청봉에서 왼쪽 귀때기청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발 아래 작은점봉산이 보이고 멀리 오대산, 계방산, 방태산 등이 어렴풋이 비친다.
산마루가 펑퍼짐하다 하여 덤붕산이라 부르던 것이 한자로 점봉산이라 쓰였다 한다.
망대암산을 거쳐 한계령으로 흐르는 백두대간길 그리고 그 너머로 설악산 서북능선 상 귀때기청봉이 우뚝 서있다.
왼쪽에 가리봉 그리고 그 너머 오른쪽으로 안산에서 시작한 서북능선길 위에 귀때기 청봉이 보인다.
우선 동쪽으로는 우리가 지나온 산길이 구불부불 조침령부터 능선으로 이어진다. 그 끝에는 국내 최대 양수발전소라는 양양 양수발전소 진동저수지가 두 개의 풍력발전기를 양쪽에 호위무사처럼 세우고 앉아 있다. 남쪽으로는 발 아래 작은점봉산 그리고 멀리 왼쪽으로 오대산, 계방산 그리고 방태산까지 흰눈 듬성듬성 산줄기가 펼쳐져 있다. 서쪽은 인제 원통을 둘러싼 산군들이고 북쪽으로는 대청봉에서 시작된 설악산 서북능선이 귀때기청봉을 거쳐 안산까지 이어진다. 그야말로 일망무제(一望無際) 마치 이 점봉산을 중심으로 주변의 산군들이 엎드려 있는 듯하다.
백두대간은 여기서 망대암산(望對巖山 1,234 m)을 거쳐 한계령으로 이어진다. 꼭 한 번 2017년 다른 산악회를 따라 가랑비를 맞으며 밤중에 지나온 길이라서 아무런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구간이다.
홍포수막터에서 곰배령
오늘의 산행은 여기까지다. 다시 홍포수막터로 내려와 배낭을 짊어지고 너른이골로 들어선다. 지난 여름 중간탈출할 때 이용한 루트라고 한다. 너른이골이라는 이름은 분명 골짜기가 넓다는 의미에서 온 것일터이다. 홍포수막터에서 골짜기까지 거리는 아주 가깝다. 계곡을 따라 걷다가 잠시 비탈길로 오르기도 하지만 다시 계곡으로 내려와 한참을 걷는다. 계곡물은 얼어서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명랑하다. 오랜 시간의 산행에다 잘 모르는 계곡길을 걷는 것이 쉽지 않다.
계곡 양쪽으로 원시림이 펼쳐진다. 200년이 넘었다는 돌배나무가 보호수종이라는 팻말을 앞세우고 서 있고 박달나무며 물푸레나무 신갈나무 서어나무 등 온갖 활엽수가 계곡을 가득 메우고 있다. 더러는 너무 오래되어 꺽이거나 뿌리째 뽑혀 있고 죽은지 얼마 안되는 나무에는 말굽버섯이 달려 있다. 말굽버섯을 넣고 삼계탕을 끓이면 좋다는 말에 두어개 따서 배낭에 담는다. 전체적으로 이 너른이골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계곡이니만큼 태곳적 숲의 모습이 잘 간직되어 있다.
미역줄나무 - 회초리만큼 작은 나무가 주변의 교목을 쓰러드리며 이렇게 크게 성장했다. 생명력이 엄청 강하다.
200년 넘었다는 돌배나무 -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숲 속에서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세대교체가 진행중이다.
물맛이 좋아요. - 오늘로써 백두대간을 완전하게 종주하는 정 구진 님.
얼음 언 계곡에 살짝 눈이 덮였다.
고목에는 말굽버섯이 자라고 숲은 그 자체 질서에 따라 나고 자라고 또 흙이 되어 사라진다.
약 3시간의 계곡 탐방이 끝나고 민가가 나타난다.
홍포수막터를 출발한 지 거의 3시간 걸려 오후 3시에 계곡을 벗어나 인가가 들어선 곰배령 입구에 도착했다. 좁은 계곡을 벗어나자 몇 채의 팬션과 카페 등 민가가 보이고 산 밑에는 밭농사를 지을 만큼 작은 땅떼기가 보인다. 아마 이 계곡 입구가 넓직해서 너른이골이라 부른 모양이다.
황일영 님이 잘 안다고 하는 금순이네 식당으로 찾아갔다. 곰배령 주차장에 있는 식당이다. 거의 14시간이나 걸린 긴 산행으로 지친 몸이 비로소 쉴 수 있게 되었다. 식당안에는 장작불이 이글거리며 타고 있어 훈훈하다. 난로 옆에는 잘게 자른 칡을 말리고 있고 난로 위 주전자에는 칡과 각종 약초를 넣은 물이 끓고 있다. 주차장 옆에 있는 공중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는 동안 황일영 님과 김종진 님은 식당 주인의 차를 빌려타고 아침에 주차해 놓은 차를 가지러 갔다. 택시를 타고 가서 가져오는 대신 이렇게 주인에게 만원을 주고 차를 빌릴 수 있어 다행이다. 점심을 내겠다는 큰 형님이 닭도리탕을 시키고 산나물 부침에 소주를 주문했다. 산행 시간이 길기는 했지만 배가 허기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점심 겸 저녁으로 배를 든든히 불렸다.
금순이네 식당에서 늦은 점심겸 이른 저녁을 먹고 오후 5시쯤 서울로 출발한다.
긴 산행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2019년 마지막 산행이다.
귀가길
모두 산행으로 지친 몸을 의자에 누인채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운전대를 잡은 황일영 님이 정체된 도로에서 수마와 싸우고 있을 때 뒷좌석에 앉은 김종진 님이 가끔 말을 걸어 황잉영 님을 응원한다. 하늘에선 산행 내내 참았던 빗물이 쏱아진다. 잠시 정체되었던 도로는 금새 뻥 뚫리고 우리는 가평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간단한 군것질거리를 사고 화장실을 본 다음 다시 도로를 달려 곰배령을 출발한지 두 시간 반 만인 7시 30분쯤 풍납동 집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