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 시호없는 왕은 있어도 휘(이름)없는 왕은 없지요. 님 말씀대로 당연한 이치 입니다.
고로 의자는 시호가 될 수 없지요. 더구나 무왕조 33년의 기록에 맏아들 의자(살아있는
사람이므로 이름을 썼겠지요.)를 태자로 책봉했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2) ㅇ 님께서 의구심을 가지시니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조 원문을 올립니다.
원문 : 王 諱臧 或云寶臧 以失國故無諡 建武王弟大陽王之子也 ..이하생략
번역 : 왕(寶臧王)은 이름이 장(臧)(혹은 보장(寶臧)이라고도 하였다.)이고, 나라를 잃었으므로
시호가 없다. 건무왕의 아우 대양왕(大陽王)의 아들이다...이하생략
상기 원문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보장은 이름입니다. 시호가 아니지요. 나라를 잃었으므로 시호가
없다라고까지 확실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후 보장왕은 당고종에게 시호대신 위위경 작위를
추증 받습니다. 이것도 신뢰가 안간다면 박물관에서 원본을 찾아보시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겠지요.
ㅇ 의자왕이 경순왕과 같은 대우를 왜 받아서는 안되는가!.라는 것에 대해..
전쟁포로인 의자왕이 귀순왕인 경순왕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또한 스스로 귀부한 자와 싸움에 져서 압송되어온 포로의 품은 생각이 다르고 기여한
바가 천지차이 인데 바보가 아닌 이상 포로와 귀순자를 같은 대우를 하지는 않습니다.
엄연히 귀부자 경순왕은 식읍을 받고 귀족으로 편입되어 그 자손들도 혜택을 받았지만
의자왕은 사후에 시호도 받지 못하고 허울뿐인 위위경 작위만 추증되었음도 이를 반증 합니다.
2. 해동삼국사..삼국사기..
현전하지도 내용이 명백히 전하지도 않는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동삼국사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논쟁거리이며 실전된 책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하는 것을 여기서는 지양하고자 합니다.
또한, 김부식의 집필의도 문제를 제기하여 상기 제시한 삼국사기의 기사들을 전면 부인하려는
의도라면 더 이상의 토론은 사양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진실된 역사를 찾는다고 하시는 분들
중 몇몇이 김부식의 의도를 문제삼아 삼국사기 기사만 나오면 무조건 왜곡을 주장하는 경우를
보았으며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은 발췌해 사용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는바 이것을
경계코자 하는 것이니 양해바랍니다. 아무리 열심히 논거를 제시해도 삼국사기사료는 못믿겠어
한마디면 모두 도루묵 되버리는 경우들이 몇몇 있었기에.. 삼국사기를 신뢰한다 하지 않는다는
지속적으로 논의해야할 것이므로 이것만 가지고도 추후 열띤 논의를 할 기회가 있겠지요.
오해없기를 바라며 추가 댓글은 사양합니다.
3.
1) 손호와 진숙보는 그 선대처럼 대륙을 호령하던 영웅이 아니고 유비아들 유선처럼 그저
나라를 이어받았을 뿐이며, 지키지 못하고 황음방탕으로 망국지왕이 된 사람으로, 현군으로
정관의 치를 이룩한 당왕 이세민이 보기에 의자왕과 격을 따질 인물들이 못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의자왕을 이들과 나란히 같은 묘역에 묻은것은 의자왕을 이들처럼 나라를 망친
탕왕으로 취급하여 그 이미지를 심으려한 노림수로 보여집니다. 실제 손호와 진숙보 또한
망국지왕으로 시호를 받지 못하고 손호는 귀명후에 진숙보는 그나마 작위도 받지못하고 그냥
후주라 불리웁니다.
2) 먼저 일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민란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 의견이
틀린것이 아니지요.^^ 오히려 님이 제기하신 "민란에 가까울 정도의 부흥운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민란에 가깝다."이란 "정규화 되지 못한 또는 체계가 잡히지 않은 백성들의
폭동에 가깝다 "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봅니다만.. 그럼 부흥군이 백성들이 일으킨 난의
수준도 안되었다는 말씀이신지요. 부흥세력의 초기 전공을 볼때 군에 준하는 전투력을
가진 것으로 보여집니다만..엄연히 주도세력이 다른 두가지를 하나로 치환시키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흥세력은 기 설한바 당이 볼모를 잡아간 이유중 하나입니다.
오히려 부흥운동 = 민란의 등식에 가깝게 만든 논리공박을 위한 논리로 보입니다.
또한 님의 의견대로 싹을 자르기 위해 백제 의자왕을 죽였다면 백제유민의 공분을 사서
오히려 부흥운동군에 더욱더 힘을 실어 주었을 가능성이 높은 바 제 의견이 잘못
되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3) 제가 우매하여 질문요지가 파악이 안되는 군요.
다만 제 견해는 이전 본문에 설한바와 같이 의자왕이나 부영융은 당태종의 이이제이라는
장기판에 있어 최고의 장기말이었다는 것입니다. 단순 인질을 넘어 저항 또는 부흥운동의
명분과 세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주 목적인 것이지요. 그리고 그 목적을 다한 순간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사후에 허울뿐인 금자광록대부위위경의 작위나 추증되어
북망산의 한자락에 시호도 없이 묻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신이 한반도에 돌아오는
것을 신라도 달가워하지 않았겠지요.
원 청대의 볼모와의 차이점이라면 원청대의 볼모는 인질을 가장 주 목적으로 보고 더불어
원/청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지인을 만들고 혼인하게 하여 친원/친청적인 인물로 양육하여
왕으로 세우는 것을 부가적으로 추구하였다고 봅니다.
또한 당과 원/청의 볼모의 효용성은 당이 도독부를 설치하여 한반도의 직접지배를 추구한바
볼모의 필요성이 직접지배의 안정성을 확보할때 까지의 한시성을 갖는 반면에 원/청의
경우 번국 또는 속국의 형태로 대대로 간접지배를 추구하였으므로 장기성을 띤다고
하겠습니다. 고로 전쟁포로로써 초기의 대접은 의자왕이나 원/청의 볼모나 같았겠지만
지배방식의 차이로 인하여 그 효용성이 차이가 나므로 이후 세대의 볼모의 대우가
당연히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상으로 미학한 저의 소견을 마칩니다... 다소 거친표현이 있었다면 양해바라며, 제가 우매하여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개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천리장성이나 한번
파볼까 합니다.
그럼 이만..
by 말학 계룡산맥
첫댓글 ^^ 우선 한말씀만 올립니다. 님께서도 확인하셨겠지만....... 우리 카페의 홍보글은 '우리 역사가 60~70%가 왜곡되었다'는 주장입니다. 근자 회원 수가 급격히 늘어 5,000명에 육박하는 시점입니다. 제가 이 카페에 가입할 시절에는 미처 500 명이 되지 않을 시절이었습니다. 나머지 4500명은 '우리 역사가 60~70%나 왜곡되었다'는 홍보글을 읽고 들어온 회윈이 태반일 겁니다. 그런데 님께서는 '삼국사기'의 내용을 들이밀며 제게 순응을 강요하시는군요. 저는 '연사, 청연사 만능주의에 빠진 친일 앞잡이 삼우 카페'를 비판하고 자진 탈퇴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님과는 끝장토론을 준비 중이나, 그렇다고 우리 카페를 곤경에 빠뜨리기 싫어서
운영진의 의견(삼국사기에 관한 카페 운영진의 입장)을 구하는 중입니다. 따라서 운영진의 답이 나오는 즉시 님께 끝장토론을 제의하겠습니다. 그 기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님께서도 우리 카페에서 경원시하는 '삼국사기'가 아닌 다른 문헌의 기록으로 제가 요구하는 끝장토론에 임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덧붙입니다/ 저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인용은 할망정 삼국사기의 모든 내용을 믿지는 않습니다^^
저도 말씀드립니다. 삼국사기 내용의 100% 신봉자라면 이 까페에 가입하지도 않았다는 것을요. 그리고 삼국사기는 기 설한바와 같이 탐구와 연구가 되어야 할 부분이며, 2번과 같은 문제를 경계하기에 다루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의자왕과 시호에 대해 님께서 추측한 내용외에 어떤 객관적 논거가 있는지요. 의자가 시호다 라고 볼만한 사료라도 있으면 보고 싶군요. 논거가 부족한 추측은 자칫 상상이 될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용할 지언정 믿지는 않는다면 인용하는 부분은 무슨근거로 왜곡되지 않았다고 확신하시는지요.오히려 필요할때만 끌어다 쓴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그렇다면 문답무용이겠지요. 어조가 격했다면 양해 바랍니다.
두 분 논쟁이 흥미롭군요..해박한 지식과 역사적 상상력에 경탄합니다..역사는 과학입니다...그것은 상상력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이죠...상상의 자유와 그것에 맞는 가설을 세워 증명해 나가는 것이죠...중간에 오류가 생기면 또 다시 시작해야하고,자료를 수집합니다...그리고 증명을 해보여야 하는 것이죠...그래서 역사학을 인문과학 이라고 합니다..제가 이리도 뻔한 얘기를 하는것은 이 카페의 많은 분들중 적지 아니한 분들이 심각한 오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역사적(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아니한 근거없는 설들을 누가 만들면 그대로 신봉해버리는것입니다..솔직히 말해 그것은 역사가 아닙니다..개인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소설일 뿐이죠.. 정확한 근거제시와 설득력있는 논리를 제공해야 합니다...삼국사기가 불완전한 사서라는것은 모두가 인지합니다..그러나 현존하는 사서중 삼국사기만큼 가치(똑바로 해석해야 합니다)있는 사서는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 일본에서는 삼국사기만 텍스트로 놓고 연구하는 학자만 600명이 있다고 합니다..믿느냐 마느냐 하는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죠..두 분의 건승을 바라며 몇자 적었습니다...
먼저, 위 세분의 열정적이고 치열한 견해에 박수를 보냅니다. 김자님과 계룡산맥님이 끝장 토론을 원하신다면 본글로 어느분이 하나의 주제글을 올리시고 댓글로 공격과 방어 또는 반박 재반박으로 끝장토론을 이어가시길 권해드립니다. 이렇게 댓글로 하시지 않고 본글에 대한 답글 형식으로 할 경우 이 역사자유토론장은 님들만의 글로 도배될것이고, 다른 님들이 글을 올릴경우에는 님들의 토론이 끊기는 수도 있을 겁니다. 다른 님들이 올리는 글로 인하여 님들의 끝장토론 본글이 뒤로 밀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공지로 올려서 하면 될겁니다. 감사합니다.
나우님의 고견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자유토론장을 지저분하게 만든것에 대해 삼태극님과 까페가족들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댓글로 몇줄 달만한 내용이 아니었음에 대해 정중히 양해를 구합니다. ^^. 또한 토론에 대해서는 이미 문답무용이라 말씀드린바 더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한번 나우님의 고견과 삼태극님의 조언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