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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초록온배움터준비위원회 원문보기 글쓴이: 태양옆자리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이번 여섯 번째 강의에서는 다섯 분만이 오셨습니다. 박준건 교수님께서 집안에 사정이 생겨 이번 강의에는 오시지 못했고 오신 분들이 오붓하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지금까지 배웠던 것들을 돌이켜 보며 토론 아닌 토론이 이루어진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교수님께서는 오시지 않았지만 서로의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강의 스케치는 서로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강의 스케치>
채상병 : 오늘은 강사 선생님께서 오시지 않아서 저희들끼리 지금까지 배웠던 것을 중심으로 생태적 삶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로 돌아가면서 이야기하시죠. 앞에계신 심영보님부터 왼쪽으로 돌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심영보 : 저는 처음에는 그냥 산야초를 듣다가 첫 강의를 청강하게 되었습니다. 청강을 하면서 이 강의도 신청해서 다 듣는 것이 좋겠다 싶어 정식으로 신청하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생태철학이나 생태주의에 대한 거부감도 사실 많이 있었습니다. 생태철학에 말하는 주장들이 사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많다고 여기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다양한 관점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부분 이외의 다른 생각들을 배워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본 지식이 짧다보니 강의 하는 부분들을 겨우 이해하기 급급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단편적인 제 생각으로는 생태적 관점이 절대적 선이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자본주의의 장점도 많다고 생각해요. 물론 단점도 잇겠지요. 그래서 다양한 생각들을 배우고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채상병 : 특별히 이번 강의들을 들으면서 조금 자신의 생각과 다른 부분들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요?
심영보 : 특히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개인의 삶과 그 개인이 주장하는 것들이 일치가 안 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든다면 소개하신 책자들 중에 소로우의 웰든이 있는 데요. 그 사람의 삶을 보면 웰든에서 살아간 삶은 겨우 2년 남짓한 것에 불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도시적 삶이 대부분이었지요. 그 책을 보면 사람이 혼자서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가는데 사실 그렇게 살기는 무척 어렵다고 생각되요.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 가야 되지 않나요? 어쨌든 저도 귀농준비를 계속 하고 있고 고민 중에 있습니다.
채상병 : 네, 좋은 말씀 들었고요. 같이 계속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옆에 계신 최홍자님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어떤 계기로 이런 생명사상에 관심을 가시지게 되었나요?
최홍자 : 저는 원래 그림을 그리는 화가입니다. 작품도 몇 번 발표하기도 했고요. 생명에 대한 작업을 주로 하면서 그 쪽 분야가 저의 본질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흥미가 있어 노장 사상에 관한 강의를 들으며 여러 고민들을 했다가 우연히 저의 사위 집에 김지하 관련 책이 많은 것을 보고 그 책들을 보다가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특히 흰그늘이라든지 생명이라든지 하는 김지하가 채득한 생명에 대한 인식들에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김지하가 감옥에서 민들레 풀한포기를 보며 흰그늘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었다잖아요. 저는 그 부분에서 깊은 공감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은 사실 많은 괴로운 시간들을 겪고 얻게 되는 거잖아요. 옛날에 예술가들이 술을 먹고 괴짜같은 행동들을 하고 그러는데, 그게 다 괴로움 끝에 깨달음을 얻기 위한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김지하 책이나 간디의 삶과 관련된 책들을 보면서 생명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내 속에 우주가 있다, 모두가 하나다 같은 말들이 참 좋더라구요. 밥 한 그릇에 우주가 있나는 것, 우리가 밥 먹고 똥 누고 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일상에서 많이 느껴져요. 그리고 강의를 들으니까 더 많이 공감하게 되더라구요. 강의 내용들이 그냥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제 것이 되었다고나 할까. 불교적인 것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 말고도 더 많은 것을 깊이 알고 싶어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채상병 : 특별히 이 강의들을 듣고 생각이 더 깊어지거나 느낀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최홍자 : 제가 산야초를 배우는데요. 그 산야초 풀 한포기에서 생명의 신비를 느껴요. 꽃 하나에도 암술과 수술이 있어 수정을 해야 열매가 맺히고 햇빛을 더 받기 위해 줄기를 뻣고 추위를 이기고 하는 것들이 너무 신기하고 식물이 인간보다 더 똑똑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때까지 제가 추상화를 많이 그렇는데, 이제는 자연이나 우주, 산 같은 것을 그림으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돌은 그냥 물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요즘엔 바위도 정말 생명이 있다고 느끼게 되요.
채상병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역시 화가라서 그런지 김지하 선생님의 '흰그늘'같은 개념에 쉽게 공감을 하시나 보네요. 저는 아직 서구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김지하 선생님 글을 읽으면 참 모호하고 쉽게 이해가 잘 안가던데요. 어쨋든 옆에 계신 차영근님께서 말씀해 주시죠. 차영근님은 녹색당 운영위원장이시기도 합니다.
차영근 : 저는 사실 처음부터 강의를 들었던 것은 아니고 세 번 째 강의부터 들었어요.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저도 서양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입니다. 대학 졸업 후에 어떤 스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스님께서 저보고 불경 교정작업을 좀 하자고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그 때 불경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저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서구적 세계관을 가진 정도의 사람이고요. 제가 생태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그냥 우연한 계기였던거 같아요. 평소 쓰레기 분리수거 같은 것은 철저히 한 편이었거든요. 분리수거 재대로 못하면 왠지 마음이 안 편하더라구요. 쓰레기도 잘 줍고 그랬어요. 그냥 지구 환경을 걱정하고 오염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있던 편이었어요. 그러다 우연하게 기후변화와 대체 에너지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환경과 자치 연구소 3기로 수료하게 되었어요. 그때 좀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그게 구자상 지금의 부산녹색당 대표에게 잘 보였나봐요. 환경 운동 연합과 결합하면서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작년부터 녹색당 만들자는 취지에 동감하고 지금 녹색당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어요.
채상병 : 이번 강의 들으면서 바뀌거나 새롭게 느낀 점이 있다면?
차영근 : 서구 사상의 합리주의적 성격이 저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여러 패단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요 제 생각으로는 불교사상으로 재해석해서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요. 이번에이 강의를 들으면서 참 제가 공부가 부족하구나를 많이 느꼈고요. 박영신 선생님이나 박준건 선생님께서 소개해 준 책 한 10번씩은 읽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심영보 : 녹색당의 지금 당원 현황이 어떤가요?
차영근 : 지금 대선후보는 안내고 있습니다만 각 후보들에게 환경 관련 녹색당의 정책들을 수용하라는 압박을 하고 있죠. 원래 당이 만들어지려면 전국에 5천명이 있어야 되요. 물론 아직 페이퍼 당원이라고 진성당원이 조금 부족한 편이라서 이번에 진성당원으로 전환시키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어요.
채상병 : 정치적 활동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요?
차영근 : 사실 핵발전소만 봐도 우리가 어떤 반대 운동만 해서는 아무런 정책에 변화를 주지 못하고 있잖아요. 운동만으로는 안된다. 정치적 활동이 필요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실 전기가 필요한 건 수도권 서울 사람들인데, 그들을 위해서 밀양에 송전탑을 세우고 있는 거거든요. 실제 핵발전소는 대기업에 필요한 거에요. 그들이 엄청난 전기를 쓰거든요. 그런데 그 피해는 국민들이 봐야 해요. 정치적으로 이 문제들을 풀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에요.
채상병 : 네, 이정도로 차영근님 말씀을 듣고요, 녹색당에 관한 것은 다음 주에 구자상 대표가 오니까 그때 더 논의하면 될 듯 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제 옆에 계신 조용규님께서 말씀해주시겠습니다.
조용규 : 사실 저는 일반 주류 사회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에요. 작년에 우연히 귀농학교에 들어간게 저에게는 큰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은퇴 이후 귀농을 하려고 준비하던 차에 귀농학교엘 갔는데 귀농 기술 같은 것은 안가르쳐 주고 완전 귀농 철학을 강조하면서 정신 무장을 시키더군요. 그때 아 귀능이나 생태주의 같은 것에 대해 맛을 조금 봤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비주류 쪽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 거죠. 사실 저는 철학과 출신입니다. 사회 생활하고 직장생활 하면서 잊고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제 인생을 생각하면서 삶의 방향을 고민해 볼까 합니다. 그리고 귀농이 제 적성이나 제 자신과 잘 맞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이번에 자연 농법을 들으면서 생태철학 강의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흥미를 조금 느끼고 왔습니다.
사실 저는 자본주의 속에서 그냥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그런 자본주의적 논리에 익숙한 편입니다. 솔직하게 좀 전에 원자력 말씀 하셨는데, 저는 원자력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나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원자력이 없으면 전기료가 더 비싸질 것이고 더 많은 생활비가 들겠지요. 전기가 없으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그러니 우리가 이런 생활을 누리려면 원자력이 필요한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필요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관리를 잘해서 사고가 안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합니다. 그런 생각 속에 있다가 이번에 이런 비주류의 사상을 들으면서 이런 아웃사이더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차영근 : 정말 제가 한번 강의해 주고 싶네요. 핵발전소가 전혀 그렇지 않아요. 더 많은 비용과 돈이 드는 것이 현실이죠. 게다가 그 관리도 쉽지가 않아요.
조용규 : 어쨌든 처음엔 그랬는데 요즘 들어 이런 쪽의 이야기들을 하는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강수돌 교수의 <살림의 경제학> 같은 책을 읽어봤는데요, 앞으로 지속 가능한 삶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의 소비 위주의 삶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요, 또 이런 자본주의에 대안이 있는가에 대한 주제에 흥미를 느끼고 있어요. 아무래도 이 사회가 변화하려면 생각이 먼저 바뀌어야겠지요. 그런데 참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요즘 젊은이들 보면 점심 때 맥도날드 가서 점심 먹자란 말이 쉽게 나와요. 저 같은 사람은 차라리 그 돈이면 돼지국밥을 먹으러 가지 햄버거로 밥을 대신해서 먹는 다는 것이 상상도 못할 일이거든요. 이해가 되질 않아요. 이렇게 젊은이들도 자연스럽게 패스트푸드에 길들어진 것 같아요. 이런 소비 사회에서 갈수록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낭비하고 있어요.
귀농하기 전에 아파트의 삶부터 벗어나야겠다고 해서 주택으로 이사를 갔는데요, 아파트도 편리한 점이 있지만 주택에서의 삶도 조금 춥다는 단점말고는 좋은 점이 많은 것 같아요. 몸을 더 많이 움직여야 되는 것도 건강을 유지해준다는 점에서 더 좋다고 생각할 수 있고요. 아파트는 너무 편하기만 할 뿐 사람이 사는데는 주택이 더 좋다, 조금 춥고 불편해도 좋다고 생각해요. 귀농하면 불편을 감수해야지 그런 각오도 없으면 안되겠지요. 어쨌든 불편한 것에 대한 감수가 우리들에게도 필요하다 생각해요.
채상병 :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의 말씀을 통해 또 다른 것을 배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다들 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이 있는가? 혹은 희망이 있는가란 질문을 많이 하셨는데요. 여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신 것 자체가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부산 초록 온배움터가 작년부터 해서 시작되었는데 이번 2학기에만 수강생이 90명이 넘어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이런 생태주의가 과연 대안이 될 수 있는가란 의문이 드시겠지만 갈수록 이 생태주의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이런 생태주의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거들떠도 안 봤잖아요. 이 공간초록만 해도 7년전에 세워질 때만 해도 잘 되겠냐는 말도 많았어요. 그렇지만 지금 이렇게 여전히 잘 운영되고 여러 활동이 이루어 지고 있잖아요. 예전 같으면 금방 망했겠죠. 하지만 요즘은 여기 계신 일반인들도 관심을 기울이고 말을 듣고자 한다는 것은 그만큼 생태주의가 설득력이 있고 호소력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그런 면에서 이런 생태적 사상들이 훨씬 빠르게 전파될 수 있을 것이고 금방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시간이 9시 10분 정도 되었는데요. 교수님이 주신 프린트물을 서로 돌아가면서 1장씩 읽은 뒤에 시간이 되면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박준건 교수님께서 주신 ‘느림의 철학’과 관련한 글을 서로 윤독하면서 10시까지 글을 읽었고요, 그 글들이 너무 좋아서 같이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그 자료는 게시판 아래 정중효 님이 파일로 올려주셔서 오시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한번 열어보시고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여기엔 그때 읽었던 부분들을 조금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 1 : 김현돈의 「느린 것이 아름답다!―느림의 미학」
느리게 산 다는 건 자신을 성찰하는 삶이며 타인을 배려하는 삶이다. 빠름은, 속도는 자신을 망각하는 삶이며 타인을, 무엇보다도 공동의 선을 몰각하고, 공동체를 무시하는 삶이다. ‘슬로우’란 말 속에는 ‘지속가능한’, ‘생태적’ ‘지역적’, 그리고 ‘심미적’이란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초고속으로 질주하고 있는 자본주의 문명의 광기를 제어할 대안적인 삶, 즉 자연친화적이며, 인간다운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또한 빠름을 지양하여 느리게 산다는 것은 세속적 이해관계를 초탈하여 세상과 인생을 부드럽게 관조하고 음미하는 심미적인 태도를 말한다. 장자의 예술정신인 ‘소요유(逍遙遊)’의 절대자유야말로 오늘날 초고속정보통신망으로 집약되는 디지털 문명세계의 재안적 삶의 가치이다. 장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삶은 유희, 즉 천지자연에 동화되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신의 해방이다. 모든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도 결국은 인간 영혼의 자유로움이다. 피에르 쌍소는 느림을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으로 본다.
오늘날 우리의 식생활은 ‘패스트 푸드화’에 의해 총체적으로 오염돼 있다. 그것은 ‘슬로 푸드화’로 정화돼야 한다. 1989년 11월 9일에 채택된 슬로 푸드 운동의 선언문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되었다...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는 종이 소멸되는 위험에 처하기 전에 이 광란의 속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어리석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빠른 생활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물질적 만족을 자제하는 것이다...지금 유일하면서도 진정한, 진취적인 해답은 슬로우 푸드이다.” 하나의 음식 속에는 인간과 세계, 인간과 우주의 관계가 응축되어 있다. 알, 한 잎의 푸성귀에 담긴 우주와 그 시간에 대한 사유는 그것을 매개로 한 인간과 사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성찰하는 일이다.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사회에 막대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과 번영에 이르는 길은 조직적으로 일을 줄여가는 일이다”라고 했다. 러셀의 이 책은, 열심히 일하라고,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닦달하며 근면의 미덕과 게으름의 악덕을 가르치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근면 이데올로기에 대한 귀 기울일만한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아 잉여생산을 위한 근면한 노동은 일하지 않는 자가 일 하는 자에게 세뇌시킨 지배 이데올로기이다.
속도는 육체를 망각하게 하고, 나를 망각하게 하여 끝내는 인간의 기계화, 인간의 비인간화를 촉진한다. “느림과 기억 사이, 빠름과 망각 사이에는 어떤 내밀한 관계가 있다.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속도는 이미 우리 삶의 곳곳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자본주의는 속도를 물신화하는 체제이다. 우리 일상은 철저하게 속도에 길들여졌다. 현대인에게 속도는 신앙해야 할 종교가 되었다. 속도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겐 경쟁이 배워야 할 미덕이며, 양보와 협조는 배척해야 할 악덕이다. 속도는 불온하다. 고속화 도로를 보라. 이제 길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매개고리가 되지 못하고, 속도전의 충실한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속도의 물신은 이웃끼리 다함께 누려야 할 시간과 공간을 독점적으로 수탈한다. 속도는 영혼을 피폐하게 한다. 속도는, 빠름은 고단한 영혼이 편히 쉴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영혼이 병들면 개인도, 사회도 타락한다. 속도에 대한 맹신은 개인과 사회를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느린 삶은 천천히 즐기는 삶이며, 음미하는 삶이며, 기다리는 삶이다. 디지털 시대의 미적 감성은 기다림을 허용하지 않는다. 입출력이 동시에 일어나는 첨단 디지털 기기에서 기다림은 곧 퇴보를 의미한다. 느린 삶은 그동안 문명인의 대열에서 패스트 증후군으로 왜곡되었던 나와 타인, 나와 자연, 나와 세계의 관계를 회복하는 건강한 삶의 실천이다. 지상의 모든 시간을 정지시키고 공간과 절연되어 자신의 전 존재와 마주하는 존재론적 고독은 더없이 고귀하다. 그것은 신산스럽고 혼돈스러운 삶의 와중에 소중한 쉼표를 찍는 자기결단이다. 디지털 미디어가 초래하는 인지능력 또는 지각능력의 비약적 확대에 비해 인간의 상상력은 갈수록 왜소해져간다. 디지털 전자기기들로 휘황찬란한 밤의 한가운데서 모든 플러그를 뽑아 촛불과 대면하는 몽상의 순간에 불꽃은 자아의 내면으로 깊은 심지를 내리고, 우리들에게 상상을 강요한다.
슬로 라이프의 실천은 걷기로부터 시작된다. 걷기의 참맛은 목적지를 염두에 두지 않는 유유자적, 정처 없는 발길에 있다. 오직 걸어온 길과 지금 걷고 있는 길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는 한가로운 거닐기이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바삐 걷는 걸음은 옹색하다. 쌍소는 도시 안에서 내게 말을 걸어오는 참된 길과 오직 이동 통로로서의 역할만 기대할 수 있는 길을 구분한다. 내게 말을 걸어오는 길이란 그 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결코 태어나지 못했을 사상과 감정을 만나게 되는 길이다. 걷는다는 것은 나를 세계로 확장하는 것이다. 인간은 두 발로 서면서, 자유로워진 손과 얼굴로 비로소 타인과 세계와 교신할 수 있는 소통의 길이 열렸다.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개조하고 통제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지성이 연마되었고, 감성이 계발되었다.
결론적으로 속도는 기계의 시간이며, 느림은 자연의 시간이다. 나아가 느림은 생명 · 평화의 시간이다. 자연의 숨결, 생명의 리듬은 본래 느린 것이다. 느림의 미학은 기분 좋은 자기충만, 영혼의 자유해방, 감성의 열림, 영성으로의 초대, 그 속에서 맛보는 나른한 행복감 같은 정신적 가치이다. 느림의 향유는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한다. 느긋하고 유쾌하게 즐기는 삶은 영혼을 살찌우고 행복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한가롭게 거닐며 자연의 부름에 나를 맡기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미래의 지평을 향해 마음을 여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본의 논리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말고 작은 것, 느린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마음의 평정을 누리는 미적 감수성의 계발이 절실하다.
이것 말고도 아래 게시판 글의 파일을 차분하게 읽으면 감동적인 내용을 접하실 수 있을 거에요.
<다음 강의 안내>
다음 강의는 현 부산녹색당 대표이신 구자상님께서 오셔서 '녹색운동과 녹색정치' 를 주제로 강의하십니다. 많은 참석부탁드리고 오셔서 녹색당에 대한 이야기도 서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