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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과
영적 성장을 위한 비결-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무진장의 보화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을 찾지 못하는 것은 저희가 그것을 얻을 때까지 탐구하지 않기 때문이다.”(실물, 109)
초대교회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말씀때문이었다. 초대교회 수많은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결과였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직후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하였는가?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거의 낙담에 빠져 있었다. ”(행적, 25)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낙담에 빠졋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예수께서는 여러번 제자들에게 미래를 열어 보이려고 하셨으나 그들은 그분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다. 그 까닭에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들에게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행적, 25)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므로 큰 충격에 빠지게되었던 것이다.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는 믿음의 실패가 따르게된다는 것이다. 이 마지막 시대에 선교사명을 완수해야할 남은 자손들이 주의를 기울여야할 것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것을 막기위해 많은 위협을 가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사도 바울은 얼마나 많은 위협을 당하였는가?
(고후 11:23-28) 『[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이와같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선포로 인하여 많은 위협을 당하였다. 이러한 위험을 무릎쓰고 선포하고자 했었던 것은 바로 감출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감추어져 있거나 묻혀 있어서는 안된다. 그 말씀은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할 소식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한 작용을 하나니 심지어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분을 얻어 영적·지적으로 강건해질 것이며 진리와 의를 위하여 싸울 것이다.”(청년, 425)
사람의 마음 속에 진리가 들어가면 변화되어 진리를 위하여 사단을 대적하여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바뀌어진다. 그렇기에 사단은 사람의 마음 속에 진리가 들어가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사도들이 중요하게 여겼었던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이었다.
(행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 5:25)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사도들은 성전에 들어가기만 하면 하는 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백성들을 가르치지 말라고 금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행 4: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행 5:28)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날마다 성전에서든지 집에서든지 말씀을 전하였다.
(행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뿐만 아니라 새벽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성전을 찾는 이들이 있었고 베드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행 5:21)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스데반이 죽임을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행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행 7:54-58) 『[54]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도 강력하였다. 어느 누구도 능히 당할 수도 없었고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그들의 마음이 찔림을 받았었다. 하지만 오히려 스데반을 향하여 감사하기보다 이를 갈게되었고 더 이상 말씀을 선포하지 못하도록 스데반을 죽이고자 했던 것이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말씀을 선포한 것은 자신이 죽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더 귀중한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데반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마음도 이와같았을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도 1차 선교여행을 마친 후 쉬지않고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행 15:35)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여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전에만 모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고 사도들은 어디서든지 꺼림없이 말씀을 전하였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던 것이다.
(행 20: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그리스도의 생애는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본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생명의 길을 배운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 ”(구호, 59)
죄수로 끌려갔었던 로마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계속 되었었다.
(행 28: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이와같이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된 교회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최고로 여기는 하나님 말씀 중심의 교회였었다. 초대교회는 성령행전이면서도 말씀 행전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재림교회도 말씀 행전의 사역이 되어야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삶도 말씀 중심의 삶, 말씀을 전하는 삶을 위해 살아가는 말씀 행전의 삶을 살아가야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에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었다.
(행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초대교회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하루에 3,000명이 침례를 받는 일들이 일어난 것은 말씀을 들은 결과였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은 사람들이 남자의 수만 오천이나 되었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한 두명도 아니고 백 명, 이백 명이 아니라 오천 명이었다는 것은 말씀의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강력하게 말씀에 역사하였었던지를 깨닫게 해준다.
사도들로부터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은 다이나마이트와 같이 강력하고 폭발적으로 품어져나오는 말씀의 힘이 있었고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강력한 성령의 감화력이 함께 하였던 것이다. 사도들의 입에서 폭포수처럼 품어져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의 힘이 듣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압도하고 사로잡았던 것이다.
저수지에 물이 가득 담겨져있을 때 수문을 열면 물이 폭포수와같이 폭발적으로 품어져나오겠지만, 만약 저수지에 담겨져있는 물이 없다면 아무리 수문을 열어도 품어져나올 폭발적인 힘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저수지 댐의 수문을 열었을 때 폭발적인 힘을 만들어내는 것은 저수지 댐 안에 담겨져 있는 물때문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이 초대교회 때처럼 감당못할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혀, 성령의 권능으로 폭발적인 힘으로 품어져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위해서는 말씀이 가득 채워져야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곧 세상에 불시에 나타나게 될 놀라운 사건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그 교훈을 따라 생활하도록 노력하는 것으로써 이 준비를 해야 한다. ”(선지자와 왕, 626)
늦은비 성령을 받고 놀라운 선교의 사명을 이루기위해 우리들이 해야할 일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나눠줘야할 것은 바로 말씀이요 우리가 전해야할 것은 말씀이다. 그러므로 말씀이 준비되어 있어야하는 것이다.
요셉의 때에 이집트에 7년 풍년을 주신 것은 7년 흉년을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쌓는 일이 되어야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위해 말씀을 상고하여야 한다. 말씀을 전하기위해 양식을 준비해야한다. 말씀을 전하기위해 말씀을 배워야하고 말씀을 배우기위해 모여야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살아간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는가?
(행 2:44-47)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하나님의 말씀이 채워진 곳에 성령이 부어지자 그 결과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먼저 성도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이기심과 욕심이 사라지고 자신의 소유를 나눠주고 서로 물건을 나누는 일들이 일어났다.
속담에 “광에서 인심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히 채워지면 영적인 변화를 통해 육적인 변화가 따르게되는 것이다.
“신자들 편에서의 이러한 관대한 행위는 성령의 부어 주심을 받은 결과였다. 복음으로 개심한 사람들은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의 공통된 관심, 곧 그들에게 위임된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일로 마음이 가득 차서 탐심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었다.”(행적, 70-71)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때는 어떤 실패가 따르게 될까?
“젊은이들과 심지어 성년층의 사람들까지도 너무도 쉽게 유혹과 죄에 빠지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지 않고 당연히 해야 할만큼 그것에 대하여 명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애와 품성에 나타나는 확고하고 단호한 의지력의 부족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교훈을 등한히 하는 데서 온다.”(8증언, 319)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지않을 때 쉽게 유혹과 죄에 빠지게되고 말씀을 등한히 할 때 단호한 의지력이 부족하게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 나약한 신앙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은 매일 먹지않으면 안되는 음식과 같은 것이다. 이 말씀은 이제 나만 살 찌우기위해 먹는 양식이 아니라 생명의 양식에 굶주려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준비하고 나누어주어야할 양식이 되어야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머지않아 이 세상에 일어날 놀라운 사건을 위하여 준비하여야 하며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 계명에 저희 생애를 일치시키려고 노력함으로 이러한 준비를 해야 한다. ”(선지, 625)
“우리는 이 마지막 날에 전해져야 할 기별을 능력 있게 선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한다. ”(8증언, 210)
애굽의 7년의 풍년과 같은 은혜의 시간을 오늘날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다. 양식을 나누어주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사명을 위해 양식을 모으는 일에 부지런히 힘쓰고 힘써야할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마음으로 연구해야 할까?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주리고 목마름같이 할 것이다.”(교권, 54)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기 위하여 열심을 내고 주린 것처럼 갈급할 것이다. 저들은 성경의 이 말씀과 저 말씀을 비교하고 그 말씀에 대해서 명상하기 위한 시간을 갈망할 것이다. 저들은 조간신문이나 잡지나 소설을 구하기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구하는 데 더 열심을 낼 것이다. 저희의 최대의 욕망은 하나님의 아들의 살을 먹는 것이요, 그 피를 마시는 일일 것이다. ”(교권, 86)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에 목마름을 가져야한다. 말씀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갈급함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영적으로 살뿐만 아니라 이 양식이 없어 주리고 있는 자들을 위해 주어야할 백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생명의 양식을 쌓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요셉의 한 명으로인해 애굽의 모든 백성뿐만 아니라 주변 나라 백성들의 목숨까지 달려있었다. 한 사람에게 수십명, 수백명, 수천명, 수만명, 수억명이 달려있는 것이다. 그만큼 생명을 달리는 일에 있어서 한 명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말씀을 연구하는 일에 마음과 애정을 빼앗지 못하게해야할 것이다.
“아무리 귀중하고 아무리 사랑스런 것일지라도 어떤 것도 그대들의 마음과 애정을 빼앗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와 열렬한 기도에서 그대들을 분리시키지 못하게 하라. ”(8증언,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