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子/안동림 역주>
끝없이 넓은 우주공간에서 무한한 시간이 흘러가는 모습을 응시하면서 인간이 자신을 볼 때, 스스로 조그맣고 초라한 꼴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언어로 무한이다 유한이다 규정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지대至大한 시간과 공간이다. 도道를 인간존재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는 경우, 인간은 과연 얼마만큼 귀중하며 자신이 본래 어떤 존재이며, 우리가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하면 진정 의미 있는 삶이라 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 같은 본질적인 문제들을 자기의 문제로 삼고, 이에 대하여 무한한 효용을 지닌 진리를 터득한다면 인간은 유한한 인생에 대하여 허덕일 필요가 없으며 자신이 처한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려 마음껏 살아갈 수 있다. 장자의 철학은 인간 실존을 광대무변廣大無邊한 피안으로 인도하는 무한한 효용을 가져다주는 인류의 위대한 청량제이다.
莊子는 인류 역사상 보기 드문 천재다. 그의 천재성은 인간의 상식을 멀리 뛰어넘는다. 상식의 척도에서 보면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인다. 그러기에 위대한 사상가일지도 모른다. ≪장자≫에서는 ≪論語≫나 ≪孟子≫에 보이는 경건敬虔하고 독실篤實한 인생의 지혜智慧나 착실着實한 이상주의적 설교를 찾아보기 어렵다. 논어나 맹자가 도덕교과서라면 장자는 오히려 그렇지 않은데 특유의 존재가치存在價値가 있다.
공자와 맹자는 상식적인 세계를 살고 있다. 그 세계는 상식적常識的인 사고思考가 긍정하는 세계, 세속적世俗的인 가치價値가 권위를 가지는 세계다. 그러나 장자는 상식적 사고의 한 世俗적 가치를 일소一笑에 붙인다. 장자의 독설이 한 번 스치면 공자의 근엄함이 문득 제멋에 지친 꼴이 되고, 절세의 미인도 괴기怪奇한 해골骸骨로 변變해버린다. 당대의 성현聖賢을 멋대로 주무르고, 고금의 역사도 희화화戱畵化해버린다. 우주의 진리는 분뇨糞尿로 바뀐다. 그는 ‘도道는 똥과 오줌 속에 있다.’고 했다. 인생과 우주 일체를 소리 높여 공소哄笑하는 통쾌痛快한 해학가諧謔家이다.
장자는 그저 단순한 諧謔의 철학자는 아니다. 그는 해학으로 일체를 묵살하면서 상식적인 사고와 세속적인 가치에 반역하고 있다. 상식적인 사고에 사로잡힌 옹졸壅拙함과 세속적인 가치관에 뒤틀린 왜矮小함을 함께 연민憐憫한다. 해학은 그의 반역反逆이며, 홍소는 그의 연민이다. 그는 세속 인간의 미망迷妄을 통곡痛哭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통곡까지도 소리 높여 홍소한다. 그는 세속 인간의 허세虛勢와 오만傲慢을 모멸侮蔑하며, 그 侮蔑을 홍소 속에서 해학 한다. 장자의 철학은 이 인간 모멸과 연민이라는 이율배반二律背反 속에서 탄생하고 있다.
장자만큼 인간의 추함, 어리석음, 비굴함, 오만함을 꿰뚫어본 사상가도 드물다. 장자만큼 인간사회의 어두움과 험난함, 이지러지기 쉽고 뒤집히기 쉽단 점을 속속들이 맛본 철학자는 없을 성싶다. 그는 면밀하면서도 냉철하게 인간을 응시한다. 정확하면서도 절실하게 인간 사회를 관찰한다. 밑바닥에서 파악한 현실이란 옴짝달싹 못하게 묶여버린 인간의 비참한 ‘삶’이었다. 그의 초월 사상이 여기서 비롯된다. 인간이 짊어진 숙명적宿命的 부자유의 질곡桎梏으로부터의 해탈이다.
인간의 근원적인 부자유는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이다. 태어날 때 거부도 수락도 허용되지 않는다. 자유의지나 선택을 넘어선 문제다. 인간은 다만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엄연한 사실만을 유일한 이유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각각의 인간이 각자의 생애를 살고 돌아가는 종착역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는 죽음-거부할 수도 반항할 수도 없는 허무의 심연이다.
인간은 죽음에 묶여 있는 부자유한 존재다. 현실에서 인간은 안팎으로 부자유할 뿐만 아니라, 그 존재 자체의 근원에서도 부자유하다. 자유롭기를 바라는 인간은 누구나 그 부자유로부터 해탈을 추구한다. ≪장자≫는 이 해탈의 중국적 논리를 밝힌 책이다. 또한 장자의 철학은 인간이 어떻게 하면 부자유하고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기를 지닐 수 있는가를 밝히려 했다.
첫댓글 문학은 창의성은 '낯설게 하기'에 있다고 합니다.
장자는 세상을 뒤집어 보는데 명수였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장자를 간추려 옮겨보려고 합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부자유는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이다. 태어날 때 거부도 수락도 허용되지 않는다. 자유의지나 선택을 넘어선 문제다. 인간은 다만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엄연한 사실만을 유일한 이유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대목은 니체가 말한 실존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니체도 국가, 시대, 민족, 부모 등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실존의 문제라 하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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