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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원 박사의 周·人·工 四書三經] *—<제45강> (2017.01.09)
— <周·人·工 四書三經>은 ‘周易과 人性을 工夫하는 四書三經 강좌’를 말한다 —
맹자(孟子) (제9강)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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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공부> ; 1. <맹자 8강> [복습] ‖ 2. 오늘의 <맹자> 읽기
* [오늘의 맹자(孟子) 읽기] *— [공손추·상](제7장~9장)
* [공손추·상](제7장) — [矢人章] ; 인(仁)은 누구에게 달려 있는가? [反求諸己]
03-07-01 孟子曰 矢人豈不仁於函人哉 矢人惟恐不傷人
函人惟恐傷人 巫匠亦然 故術不可不愼也
02 孔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智
夫仁天之尊爵也 人之安宅也 莫之禦而不仁 是不智也
03 不仁不智 無禮無義 人役也 人役而恥爲役
由弓人而恥爲弓 矢人而恥爲矢也
04 如恥之 莫如爲仁
05 仁者如射 射者正己而後發
發而不中 不怨勝己者 反求諸己而已矣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인(仁)하지 못하겠는가마는, 화살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다치게 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다치게 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니, 무당과 관(棺) 만드는 목수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생업으로 삼을 기술을 선택하는 것을 신중하지 아니할 수 없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을은 어진 것이 아름다운 것인데 (마을을) 선택하되 어진 마을에 거처하지 아니하면 어떻게 지혜로울 수 있겠는가?’ 하셨다. 대저 인(仁)은 하늘의 높은 벼슬[尊爵]이며 사람의 편안한 집[安宅]이다. 그것을 막지 아니하는데도 인(仁)하지 아니하는 이는 지혜롭지 아니한 것이다.
인(仁)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여 예(禮)가 없고 의(義)로움이 없으면 남에게 부림을 당하게 되는 것이니, 남에게 부림을 당하면서 부림당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활 만드는 사람이 활 만드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화살 만드는 사람이 화살 만드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다. 만약 그것을 부끄러워한다면 인(仁)을 하는 것만 못하다. 인자(仁者)의 마음가짐은 활 쏠 때와 같다. 활 쏘는 자는 자기를 바로잡은 뒤에 쏘지만, 쏘아서 적중하지 않더라도 자기를 이긴 자를 원망하지 아니하고 돌이켜 자기에게서 원인을 찾을 따름이다.”
* [자구(字句)의 해석] —————
· ‘矢人豈不仁於函人哉’에서 ‘矢人’은 ‘화살 만드는 사람’. ‘函人’은 ‘갑옷 만드는 사람’
· ‘巫匠亦然’에서 ‘巫’(무)는 ‘무당, 병을 치료하는 사람’, ‘匠’(장)은 ‘목수’ ‘관 만드는 사람’
· ‘故術不可不愼也’에서 ‘術’(술)은 ‘생업으로 삼는 기술’
· ‘莫之禦而不仁’에서 ‘之’는 ‘禦’와 도치되어 있다.
· ‘由弓人而恥爲弓’에서 ‘由’(유)는 ‘유(猶)’와 통용.
· ‘反求諸己而已矣’에서 ‘諸’(저)는 ‘之於’의 축약형. ‘돌이켜 자기에서 구할 따름이다.’
* [강 설(講說)] —————
화살을 만드는 사람과 방패를 만드는 사람은 그 제작하는 무기의 특성에 따라 직업적으로 의도하는 바가 다르다. 직업은 귀천이 없지만, 의사(醫師)는 사람을 살리는 데 힘쓰고 장의사(葬儀士)는 사람이 죽으면 돈을 벌기 때문에, 의사는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 확충되기 쉽고, 장의사는 확충되기 어렵다. 그래서 직업을 선택하는 일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사람 사는 거처도 그렇다. 어질고 좋은 마을에 사는 사람은 그 좋은 환경의 영향을 받아 건실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주자가 말했다. “마을에 인후(仁厚)한 풍속이 있는 것도 오히려 아름답게 여기는데, 사람이 자처할 바를 가리되 인(仁)에 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혜로울 수 있겠는가. 공자의 말씀이다.(里有仁厚之俗者 猶以爲美 人擇所以自處 而不於仁 安得爲智乎 此孔子之言也)”
인(仁)을 실천하는 사람은 남의 단점을 드러내지 않고 남의 장점을 찾아내어 칭찬하므로 남들이 모두 그를 좋아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인(仁)하지 못한 사람은 남의 단점을 드러내어 선전하고 남의 장점은 감추고 자기를 높이려 한다. 인(仁)한 사람은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게 되어 결국 저절로 높은 자리에 오르지만, 인하지 못한 사람은 남이 싫어하게 되므로 어떤 개인의 임의로 높은 자리에 임명된다. 전자를 천작(天爵)이라하고 후자를 인작(人爵)이라 한다. 주자가 말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모두 하늘이 주신 양귀(良貴, 良知良能)인데, 인(仁)은 천지가 만물을 내는 마음으로서 가장 먼저 얻었고 이 네 가지을 겸하여 통솔하니, 『주역(周易)』「건괘(乾卦) 문언(文言)」에 이른바 ‘원(元)은 선(善)의 으뜸’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존작(尊爵)이라 말한 것이다.(仁義禮智 皆天所與之良貴 而仁者天地生物之心 得之最先 而兼統四者 所謂元者善之長也 故曰尊爵)”
인(仁)은 남을 나처럼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므로, 인(仁)한 사람은 남과 경쟁하지 않고 긴장하지도 않는다. 또 인(仁)은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므로,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경우에는 자신의 죽음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어서 아무 두려움이 없다. 따라서 인(仁)은 사람이 편안하게 거처할 수 있는 집과 같은 것이다.[仁, 人之安宅也[離婁章)]
그래서 인(仁)한 사람은 문제가 없다. 그로나 불인(不仁)한 사람이라도 지혜롭기만 하면 인(仁)과 불인(不仁) 중 어느 것이 더 유리한 줄 알기 떼문에 결국 인(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다만 인(仁)하지도 않으면서 지혜롭지도 않은 사람은 구제불능(救濟不能)이다.
지혜로운 사람이어야 예(禮)를 실천할 수 있고 인(仁)한 사람이어야 의(義)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에, 인(仁)하지도 못하고 지혜롭지도 못한 사람은 예(禮)도 실천할 수 없고 의(義)로움도 실천할 수 없다. 이러한 사람은 남이 따르지도 않고 존경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남에게 부림을 당하는 수밖에 없다.
인자(仁者)는 활 쏘는 사람의 마음과 같다. 활을 쏠 때 자기를 바로잡은 뒤에 쏘지만, 쏘아서 적중하지 않더라도 돌이켜 자기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다. 인을 행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으니, 남에게 달려 있겠는가.(爲仁由己而由人乎哉 )
* [공손추·상](제7장) — 인(仁)을 실천하는 공통된 특성은? [莫大乎與人爲善]
03-08-01 孟子曰 子路人告之以有過則喜
02 禹聞善言則拜
03 大舜有大焉 善與人同 舍己從人 樂取於人 以爲善
04 自耕稼陶漁 以至爲帝 無非取於人者
05 取諸人以爲善 是與人爲善者也 故君子 莫大乎與人爲善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자로(子路)는 사람들이 그에게 허물이 있음을 말해주면 기뻐하였고, 우(禹)는 선언(善言)을 들으면 절하였다. 대순(大舜)은 위대한 것을 가지고 있으니, 남과 잘 하나가 되어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며, 남에게서 취해서 선(善)을 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밭 갈고 곡식 심으며 질그릇 굽고 고기 잡을 때로부터 황제가 됨에 이르기까지 남에게서 취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남에게 취해져서 선(善)을 하는 것과 남과 더불어 선(善)을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군자의 도리로는 남과 더불어 선(善)을 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 [자구(字句)의 해석] —————
· ‘禹’(우) ; 순(舜)의 선위(禪位)를 받아 하(夏)나라를 창업한 고대의 임금. 성은 ‘사(似)’. 이름은 ‘문명(文命)’. 치수(治水)를 잘한 임금으로 알려져 있다.
· ‘大舜’(대순)은 ‘위대한 순임금’. 성은 우(虞), 이름은 중화(重華), 순(舜)은 그의 호.
요(堯)임금의 선위를 받아 중국을 통치한 성군(聖君)으로 알려져 있다. 나라 이름은 ‘虞’
· ‘善與人同’에서 ‘善’(선)은 ‘잘’이라는 뜻의 부사로 쓰였다. 주자는 ‘與人同’을 ‘선(善)을 남과 더불어 같이 가진다.’고 주석하였다.
· ‘舍己從人’에서 ‘舍’는 ‘사(捨)와 통용’, ‘버린다’의 뜻.
· ‘以爲善’에서 전치사 ‘以’의 목적어는 앞에 나온 ‘取於人’으로, 생략되었다.
· ‘以至爲帝’에서 전치사 ‘以’의 목적어는 앞에 나온 ‘耕稼陶漁’인데, 생략되었다.
· ‘是與人爲善者也’에서 ‘與’는 ‘더불어’, 주자는 ‘허락하다, 돕는다’는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맹자의 동화사상을 감안하면 글자 그대로 ‘더불어’로 해석하는 것이 좋다.(이기동)
· ‘君子 莫大乎與人爲善’에서 ‘莫’는 ‘더 ~한 것이 없다’. ‘乎’는 ‘~보다’(비교격 전치사)
* [강 설(講說)] —————
자로(子路)는 남이 자기의 허물을 말해주면 기뻐하였으니 스스로 닦음에 용감함이 이와 같았다. 이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서 자기의 허물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적극적인 것은 훌륭한 것을 찾아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禹)는 남에게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하였다’ 하였으니, 허물이 있음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을 굽혀서 천하의 선언(善言)을 받아들인 것이다.[書曰 禹拜昌言 蓋不待有過 而能屈己以受天下之善也 —大禹謨] 그리고 인격이 완성(完成)된 사람은 남과 나를 하나로 여기는 마음으로 인(仁)을 실천한다. 순(舜)이 바로 그런 분이다.
순(舜)이 천자가 되어 천하에 좋은 일을 한 것은 스스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남들에 의해 추대되어 높은 자리에 올라가 그렇게 한 것이다. 밭을 갈고 곡식을 심고 질그릇을 굽고 물고기를 잡던 시절부터 황제가 되기에 이르기까지 남들의 추대에 의해 점점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史記 五帝本紀] 순(舜)은 인격이 완성되어 남을 자기처럼 사랑하였으므로 모든 사람이 순(舜)을 좋아하였기 때문이다. 남과 하나가 되면 순(舜)이 착한 일을 한 것은 곧 다른 모든 사람들이 착한 일을 한 것이 된다.
군자가 해야 할 도리 중에는 자기의 허물을 고치는 것도 있고, 훌륭한 것을 보고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과 하나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공통된 의지를 대행하는 것이다.
* [제8장 장하주(章下註)] —————
이 장(章)은, 성현이 선(善)을 좋아하는 정성이 애당초 피차(彼此)의 간격이 없으므로 남에게 있는 것을 자신에게 넉넉히 할 수 있고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남에게 미칠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此章 言聖賢樂善之誠 初無彼此之間 故其在人者 有以裕於己 在己者 有以及於人)
* [공손추·상](제7장) — 군자의 대인관계 기준은? [伯夷와 柳下惠의 경우 ]
03-09-01 孟子曰 伯夷非其君不事 非其友不友 不立於惡仁之朝
不與惡人言 立於惡人之朝 與惡人言 如以朝衣朝冠 坐於塗炭
推惡惡之心 思與鄕人立 其冠不正 望望然去之 若將浼焉
是故諸侯雖有善其辭命而至者 不受也 不受也者 是亦不屑就已
02 柳下惠不羞汚君 不卑小官 進不隱賢 必以其道
遺佚而不怨 阨窮而不憫 故曰爾爲爾 我爲我
雖袒裼裸裎於我側 爾焉能浼我哉 故由由然與之偕而不自失焉
援而止之而止 援而止之而止者 是亦不屑去已
03 孟子曰 伯夷隘 柳下惠不恭 隘與不恭君子不由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이(伯夷)는 제대로 된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아니하며, 제대로 된 벗이 아니면 벗 삼지 아니하며, 나쁜 사람의 조정에는 서지 않으며, 나쁜 사람과는 말하지 않았다. 나쁜 사람과 말하는 것을 마치 조정에서 입는 옷을 입고 진흙이나 숯에 앉아있는 듯이 여겼으며, 악을 미워하는 마음을 확대하여, 시골 사람과 서 있을 때 그의 갓이 바르지 못하면 휑하니 거기를 떠나서 마치 더럽혀질 것처럼 생각했다. 이 때문에 제후들 중에 비록 말을 잘 가다듬어서 찾아오는 자가 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이 또한 나아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하혜(柳下惠)는 더러운 임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작은 관직도 낮게 여기지 않으며, 나아가서는 현명함을 감주치 않고서 반드시 그 도(道)를 실현하였으며, 버려지고 소외되더라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고난을 당하여도 근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 비록 내 곁에서 옷을 걷거나 몸을 드러내더라도 어떻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 하였다. 그러므로 느긋하게 그와 함께 있으면서도 자기의 주관을 잃지 않았다. 끌어당겨서 멈추게 하면 멈추었으니, 끌어당겨서 멈추게 하면 멈추는 것은 이 또한 떠나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맹자가 말씀하셨다. “백이(伯夷)는 마음이 비좁고 유하혜(柳下惠)는 공경스럽지 아니하니, 마음이 비좁거나 공경스럽지 아니한 것은 군자가 말미암지 아니한다.”
* [자구(字句)의 해석] —————
· ‘推惡惡之心’에서 앞의 ‘惡’(오)는 ‘미워하다’, 뒤의 ‘惡’(악)은 ‘나쁜, 나쁘다’
· ‘思與鄕人立’에서 ‘鄕人’은 ‘시골에 사는 못나고 무식한 사람’
· ‘望望然去之’에서 ‘望望然’은 ‘휑하니 떠나는 모습’,
‘去’는 ‘떠나간다’, ‘之’는 ‘향인과 함께 있는 장소’
· ‘若將浼焉’에서 ‘浼’(몌)는 ‘더럽다’
· ‘是亦不屑就已’에서 ‘屑’(설)은 ‘깨끗하게 여긴다’
· ‘柳下惠’(유하혜) ; 노(魯)나라의 대부. 성은 전(展), 이름은 획(獲) 자는 ‘자금(子禽)’
· ‘必以其道’는 ‘以’는 ‘以A爲B’의 문형으로 여기서는 ‘爲B’에 해당하는 동사가 생략되었다
· ‘袒裼裸裎’에서 ‘袒裼’(단석)은 ‘옷을 벗어 어깨를 드러낸 것’, ‘裸裎’(나정) ‘옷을 다 벗음’
· ‘由由然’은 ‘여유있고 느긋한 모양’
· ‘不自失焉’에서 ‘自’는 ‘자신의 주관’. 타동사 ‘失’의 목적어인데 도치되었다. ‘不失自焉’.
* [강 설(講說)] —————
백이(伯夷)는 지나치게 청절(淸節)하여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니면 상대하지 않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극에 달하여 갓을 바로 쓰지 않은 것만 보아도 용납하지 않았던 사람이며, 유하혜(柳下惠)는 지나치게 너그러워 상대의 잘못을 따져야 할 것도 따지지 않는 폐단이 있었던 사람이다. 상대방의 잘못을 따져야 하는데도 따지지 않는 것은 시비(是非)를 가리는 인간의 본마음을 따르지 않는 것이며, 남의 잘못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은 남을 나처럼 여기는 마음인 인(仁)을 실천하지 않은 것이다.
주자(朱子)가 말했다. “백이와 유하혜의 행실이 진실로 모두 지극한 경지에 이르렀으나 이미 편벽된 바가 있으니, 그렇다면 폐단이 없지 않다. 그러므로 행할 수 없는 것이다.(夷惠之行 固皆造乎至極之地 然旣有所偏則不能無弊 故不可由也)”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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