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금바위 원효방
전북 부안 상서로운 땅 상서면에 평지에 우뚝 솟구친 바위가 등대처럼된 울금바위다. 울금이란 위용이 크다는 위큼에서 왔다. 두 쪽 바위의 형상은 영락없는 남성의 고환이다. 변산은 남성의 성기에 해당하고, 울금바위는 바로 낭심이라고 한다. 원효가 울금바위의 천연 굴 속에서 수도한 이래 수많은 수도자들이 이곳에 찾아와 새 세상의 개벽을 꿈꾸었던 것과 풍수가 무관할까. 능가산 골짜기에 소나무 사이로 폭 넓은 사찰이 두 팔을 벌리고 있다. 개암사다. 전화를 받아주지 않던 호방한 사내대장부인 혜오 스님이 웃음을 짓는다. 구절초차 마시며 선객다운 기백이 있다. 원효와 의상 러브스토리는 귀족 아닌 6두품 출신의 원효는 당나라행을 접은 이후 소성거사로 살았고, 요석공주와 합궁해 설총을 낳았다. 반면에 최고 귀족인 의상은 화엄학의 정수를 체득하고 평생 계를 지키며 마치 천인과도 같은 삶을 살았다. 산동반도 선묘낭자 전설은 지금까지 전해온다. 선묘는 세세생생 의상을 도울 서원을 세우고 바다에 몸을 던졌고, 용이 되어 의상의 고국행을 도왔다. 이어 소백산 자락에 절을 세우는 것을 방해한 사람들에 너럭바위를 떠올려 부석사를 창건 도왔다. 위 혜오 스님은 1970년대 지리산 상무주암과 금대 등 오지 암자에서 참선수행을 했다. 그렇게 30여 년을 지내오고 개암사에 온 지도 어언 17년이다. 흔들리는 순간 때는 완성은 없고 끊임없는 자기혁명이 있을 뿐이라 여긴다. 번뇌가 없는 이의 경지도 인정치 않는다. 번뇌가 바로 생명인데, 번뇌가 없다면 산 것이 아니지 않은가? 식욕, 색욕, 수면욕, 명예욕, 물집욕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어려웁던가요? 다 똑같은 무게로 다가올 뿐. 다 같은 욕망일 뿐이라 답. 울금바위를 향해 고개를 넘어선 순간, 천길 낭떠러지가 있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23권 남행일원기에 원효방에 왔던 얘기가 적혀 있다. “ 높이가 수십 층, 나무사다리 발이 후들후들. 이따금 범과 표범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다 마침내 올라오지 못한다고 들었다.” 이제 나무사다리는 없다. 벼랑 끝 외길에 발을 딛고 절벽에 매미처럼 붙어서 10여 미터를 돈다. 10년 전 한 청년이 비를 만나 꼼작없이 절벽에 붙어있다. 스님이 불길한 직감을 느껴서 119에 신고 후 도착해 보니 한나절 동안 매달려 있었다. 날이 어두워져 절망적인 상황에서 구해졌다. 벼랑 끝을 돌고 나니 족히 10여 명이 앉을 만큼 넓은 천연 동굴 두 개가 나란히 나온다. 백제 무왕의 왕사였던 묘련의 제자 복신이 숨어서 백제 부흥을 꽤했던 곳이다. 울금바위를 떠받치고 있는 개암사는 바로 묘련 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굴 옆엔 수백 명이 머물 만한 대규모 굴이 있고, 울금바위 뒤쪽엔 백제 부흥군들이 베를 짠 베틀굴이 있다. 원효가 이곳에 온 시기는 삼국통일 직후다. 개암은 바위가 열림이다. 서로 싸우는 중생들이 언제 열려서 불알의 씨(불성)가 삼라만상에 개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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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퍼온 글입니다.
언젠가 우리도 그쪽을 가봐야 할 것 같아 참고로 올려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