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필의 특별한 추모
청담 정연원
신년음악회로 익숙한 빈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가 내한했다. 2022년 11월 3일 예술의 전당 연주 홀이다. 나와는 지난해에 이어 세 번째의 만남이다. 국가의 애도 기간에 어렵게 만났다. 합창석과 3층까지 가득 채운 관중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호한다.
오스트리아 지휘자 프란츠 벨즈뫼스트(62)가 무대 인사를 하고도 지휘봉을 들지 않는다. 빈 필 단원들의 무대는 한동안 정적에 잠겼다. 그때 이 악단의 단원 대표이자 제1바이올린 주자인 다니엘 프로사워(57)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해서 바흐의 곡을 연주하겠습니다. 연주가 끝난 뒤에도 박수를 보내는 대신에 묵념으로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의 두 번째 곡이다. G선상의 아리아(Air on G string)’가 엄숙하고 포근하게 울리자 흙탕물 같던 마음이 가라앉으며 뭉클해진다. 연주가 끝난 뒤 단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나를 비롯한 관객들도 박수 대신에 묵념으로 희생자들을 기렸다. 음악이 흐르는 공연장이 잠시의 정적靜寂을 통해서 하나가 된 특별한 추모였다. 빈 필은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한 뒤 공연 직전 리허설을 통해서 바흐의 이 곡을 추모곡으로 연주하기로 했다고 한다.
빈 필은 이어 원래 프로그램인 리하르트 바그너의 ‘파르지팔 전주곡’을 연주했다. 이 곡이 끝났지만, 지휘자 프란츠 벨지뫼스트는 지휘봉을 내리지 않은 채 다음곡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으로 넘어갔다.
바그너 마지막 음악극인 ‘파르지팔’은 최후의 만찬에 쓰인 성배와 예수를 찔렀던 ‘성창’을 소재로 한 구원의 이야기다.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죽음과 변용’은 두려움과 고통, 투쟁을 거쳐 마침내 죽음이 아름답게 변용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추모곡으로 시작해 구원과 죽음과 승화를 이어서 하나로 만들었다.
2부는 드보르작 교향곡 8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빈 필의 사운드’를 마음껏 즐긴 연주였다. 예정된 연주가 모두 끝난 뒤에도 관객들의 박수가 끊이지 않자 이번에는 지휘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빈의 왈츠는 그저 가벼운 음악에 그치는 게 아니라 빈의 정신과 문화를 담았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태원 참사 속에 앙코르곡으로 춤곡을 연주하는 데 대해 미리 양해를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렇지만 이 앙코르는 산 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찌꺼기를 뽑아내는 크나큰 배려였다. 그가 고른 앙코르는 요세프 슈트라우스(1827~1870)의 ‘자이셀른 왈츠(Weisserln, Walzer)’였다.
이들이 연주하는 빈 왈츠는 유려하고 아름다웠다. 지휘자 프란츠 벨저뫼스트는 2011년과 13년에 이어 2023년에도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를 지휘할 예정이다. ‘자이셀른 왈츠'는 그가 내년 신년음악회에서 연주할 곡으로 한국인에게 미리 보내는 선물이리라.
추모곡追慕曲이란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와 악곡이다. 또한 산 자를 위한 위로의 음악이기도 하다. 빈 필하모닉의 이날 공연은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음악이 위로되고 품격 있는 추모가 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줬다. 국가가 선포한 애도 기간으로 공공연주장들이 잇따라 연주회를 취소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새로운 추모의 길을 제시하였다.
먼저 떠난 아내를 위한 나의 추모곡은 많다. 첫 번째 추모곡은 ‘카로미오벤’이다. 이 곡은 내가 결혼 피로연에서 불러 평생 아내 자신이 불러온 애창곡이었다. 이어지는 추모곡은 홍난파의 ‘옛 동산에 올라’등 해마다 바뀌고 반복되기도 했다.
이어서 말러(1860~1911)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새뮤얼 바버(1910~1981)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엘가(1857~1934)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 알비노니(1671~1750)의 ‘아다지오 g단조’등이다.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존 F. 케네디 대통령, 아인슈타인 장례식에서 연주하여 지금은 추모곡으로 더욱 친숙해졌다. 2001년 9월 11일 테러 직후에도 런던 음악제 ‘프롬스’에서 희생자를 기리며 이 곡을 연주했다. 추모곡마다 이런 특별한 사연들이 담겨 있었다.
알반 베르크(1885~1935)의 생애 마지막에 쓴 바이올린협주곡은 ‘천사를 추억하네.’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18세에 소아마비로 세상을 떠난 소녀를 추모하는 곡이다.
리하르트 시트 라우스(1864~1949)가 1885년 작곡한 ‘위령절 慰靈節’. ‘모든 영혼의 날’인 11월 2일, 독일 시인 요한 콧대 비의 ‘모든 영혼을 위한 기도문’에 프란츠 슈베르트가 1816년에 작곡한 연도문連禱文. 구스타프 말러의 5곡의 연가곡連歌曲 ‘죽은 아이를 위한 노래’. 모차르트와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 (진혼곡鎭魂曲) 등 추모와 위로의 분위기에 맞는 곡을 만나면 추모곡으로 써먹었다. 지난해 친구의 죽음에는 ‘재클린의 눈물’, 고모님의 소천에는 페르귄트의 ‘오제의 죽음’으로 추모하고 위로받았으며, 이번에 ‘G선상의 아리아’를 추모곡으로 추가했다.
추모 음악을 찾으며 들어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고와 비극, 아픔을 보았다. 추모와 위로는 아픈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덮어주는 배려가 우선이다. 자신은 물론 사회도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원인을 찾아 예방하고 조심하는 일이었다. 나의 경우, 그저 담담하게 옆에서 지켜봐 주고 함께 하는 사람이 가장 고마운 위로와 격려였다. 내가 장애와 슬픔에서 혼자 일어설 수 있는 시간은 5년여가 지나서부터였다. 다른 유가족과 친지들도 마찬가지이리라.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을 다시 드러내고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음악 예술이 지닌 힘이었다. 그런 음악의 치유력을 자연스럽게 표출시킨 빈 필이 새롭게 보인다.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진혼鎭魂하는 것은 부족하지 않는 우리의 전통의식이며 풍습이다. 오히려 무력해진 산 자들에 대한 위로와 격려가 더 시급한 문제인 것이다. 이날 빈 필은 180년의 전통을 지닌 교향악단답게 정중한 예절과 완벽한 연주를 펼쳤다. 1부는 망자를 위한 추모였고 2부는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특별한 위로와 최상의 연주였다.